1. 복음준비 ( 2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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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 복음준비 ( 25~30 )

by mrsoojak 2021. 12. 9.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25. 새 하와는 어떤 경우에든지 순종을 실천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기쁨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려고 나를 부르시는 사명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쁨이 가득 찼었으니까- 내 심장은 마치 오므라져 있던 백합꽃이 활짝 벌어져서 피가 흘러나와서 그것이 주님의 씨를 위한 땅이 되었다.

어머니가 된 기쁨.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하느님께 바쳤었다.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빛이 내게 세상의 악의 원인을 아주 명백히 보여 주셨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게서 사탄의 흔적을 지우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티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특은을 생각하기만 해도 자만이고 교오였을 것이다. 과연 나는 인간에게서 났기 때문에 내가 티없는 사람이 되라고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었다. 천해지기를 원했던 하와, 은총의 피조물에서 하등 피조물의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던 하와의 타락을 보신 아버지의 고통을 하느님의 성령께서 내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내 생각과 내 소원과 내 인간관계에서 나를 더럽혀지지 않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내 육체를 천사와 같은 순결에까지 들어올림으로써 그 고통을 덜어드리겠다는 소원을 품고 있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심장이 뛰고,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존재 전체를 바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내게 육체의 강렬한 흥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희생은 내게 아직 있었다.

비천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면제된 상태로 어머니가 됨을 조물주이신 아버지께서 하와에게도 주셨었다. 관능의 부담감이 없이 즐겁고 깨끗한 어머니됨을! 나는 그것을 체험하였다. 이 부(富)를 포기함으로 하와는 얼마나 가난해졌느냐! 불멸보다도 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희들에게 과장인 것처럼 보이지 말아야 한다. 내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나는 죽음의 우울감을 경험했다. 나는기운이 다해서 잠이 든 다정스러운 무기력을, 내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무서운 무기력을 체험하였다.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죽음은 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침해도 없는 어머니됨은 새로운 하와인 나에게만 왔다. 그래서 나는 육체에 고통을 당하지 않고 어머니가 되기로 되어 있던 여인의 운명이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을까 하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깨끗한 어머니됨의 소원이 온전히 하느님의 것인 동정녀에게 있을 수 있었고, 또 실제로 있었다. 이 어머니됨은 여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된 여자가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너희들은 내 서원으로써 이 스스로 끊어버림을 수락하면서 바치기로 동의한 희생을 한층 더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당신 여종에게 영원히 인자하신 분이 나를 당신 옥좌에 꽃이 되게 하시려고 내 몸을 꾸몄던 순진함을 빼앗지 않으신 채 그 은혜를 내게 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 사람의 어머니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이중의 기쁨을 누리는 그윽한 환희를 맛보았다.

그를 통하여 평화가 하늘과 땅을 다시 함께 결합시키는 여인이 되는 기쁨.

아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이 평화를 갈망했는데, 능하신 분의 불쌍한 종인 나를 통하여 이 평화가 세상에 온다는 것을 아는 기쁨! '사람들아, 이제는 울음을 그쳐라. 너희들을 행복하게 할 비밀을 내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마치 나의 침범되지 않은 내 태 안에 하느님의 아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들어 있고 그 위에 봉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너희에게 말해 둘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벌써 그것을 너희들 가운데로 가져왔고, 흘러가는 시간마다 너희가 그것을 보고 그 거룩한 이름을 알게 될 순간을 다가 놓는다'고 말하는 기쁨!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 기쁨, 행복하게 되신 그의 하느님을 믿는 여인의 기쁨 !

아아! 하느님의 마음에서 하와의 불복종과 하와의 교만과 그의 의심많음에서 오는 쓴 고통을 치워드렸다는 기쁨! 내 예수는 최초의 부부가 어떤 죄로 더러워졌는지를 이해시켰다.나는 그 죄를 그것이 내려온 길을 반대로 다시 감으로써 없애버렸다.

죄의 시작은 불복종에 있다. '이 나무 열매는 먹지 말고 이 나무를 건드리지 말아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만이 그들보다 높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 나무만 빼놓고는 모든 것을 만지고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던 피조물의 왕인 남자와 여자, 그들은 하느님의 금지를 무시하였다.

나무, 그것은 당신 자녀들의 복종을 시험하는 방법이었다.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선이다. 하느님께서는 선밖에 명령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불복종은 무엇이냐? 그것은 악이다, 불복종은 사탄의 활동에 유리한 터전인 반항의 감정을 영혼 안에 넣어주기 때문이다.

하와는 거기에서 선을 받기 위하여 피했어야 할 그 나무에 가까이 갔다. 그러나 나무에 가까이 한 것이 반대로 그에게 악을 주었다. 하와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같은 호기심에 끌리고, 자기는 강하고 순수하며, 모든 것이 자기에게 복종하고 아무 것도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에덴의 여왕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은 쓸데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하는 무분별에 끌려서 그리로 다가간다. 하와의 자만이, 벌써 교오의 누룩인 자만심이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될 것이다.

나무 근처에서 하와는 유혹자를 만난다. 하와의 무경험에, 그의 처녀로서의 순진한 무경험에, 그의 무경험의 약함에 대고 유혹자는 거짓말의 노래를 부른다. '너는 악이 있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이 네게 그렇게 말한 것은 너희들을 그의 권력의 노예로 붙들어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왕들이라고 믿지? 너희는 야수와 같이 자유롭지도 못하다. 야수에게는 하느님이 진짜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허락했다.야수는 새끼를 낳고 그의 가족이 바라는 만큼 크는 것을 본다. 너희들은 그렇지 못해 너희에게는 이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다.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너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든 것이 무슨 소용이냐? 신들이 되어라. 너희는 둘이 한 몸이 되고 그렇게 해서 세째 몸과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모르고 있다. 너희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고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너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너희 후손을 누리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말아라. 하느님은 너희에게 인생 비슷한 것을 주었다. 실제적인 인생은 인생의 법칙을 아는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는 신들과 같이 되어서 하느님에게 <우리는 동등하오>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와가 유혹을 물리칠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좇아서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었기 때문에 유혹은 계속되었다. 금지된 나무는 이제 그 가지에 사탄에게서 오는 쓰라린 앎의 열매가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나무가 된다. 그리고 여자는 암컷이 되어 가슴에 마귀에게서 오는 앎의 누룩을 가지고 아담을 타락시키러 간다. 육체가 이렇게 품격이 떨어지고, 품행이 타락하고, 정신의 품위가 떨어져서 그들은 은총을 잃은 정신과 불사불멸을 잃은 육체의 고통과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와의 상처는 고통을 낳았고, 그 고통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부부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두 죄인이 걸을 길을 반대로 걸었다. 나는 순종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순종하였다. 하느님께서 내게 동정녀가 되라고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를 첫째 여인이 사탄을 알기 전에 그랬던 것과 같이 순결하게하던 동정을 사랑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내게 아내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나는 순종하여 결혼을 하느님께서 두 첫째 조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딩신 생각으로 그러했던 순결의 정도로 끌어올렸다. 결혼 생활에서 고독해야 하고 내 거룩한 불임(不姙)으로 인하여 이웃의 멸시를 받게 되었음을 확신하는 내게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 말을 들으면서 내게 평화가 넘쳐흘렀기 때문에 그 말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믿었다.

나는 '내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가졌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육체를 만들어 드림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겸손으로 나를 낮추었다. 기쁨이 내 마음에 마치 꽃이 핀 장미 줄기같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 장미 줄기에는 이내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았고, 나는 메의 줄기가 감긴 나뭇가지들처럼 고통에 죄어지고 싸였다. 남편의 괴로움에 대한 고통, 이것은 기쁨 가운데 있는 압찰기와 같은 것이다. 내 아들의 고통으로 인한 고통, 이것은 내 기쁨 가운데 있는 가시들이다. 하와는 향락과 승리와 자유를 원하였다. 나는 고통과 쇠약과 예속을 수락하였다. 나는 내 조용한 생활과 남편의 존경과 나 자신의 자유를 단념하였다. 나는 나를 위해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내 육체로, 내 행실로, 내 정신으로 주님의 종이 되었고, 동정녀로서의 잉태에 대해서뿐 아니라, 내 명예의 옹호와 내 남편을 위로하는데 대하여, 내 남편을 결혼의 승화로 이끌어 가서 우리가 남자와 여자에게 잃어버린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주님을 믿었다. 나는 나와 내 남편과 내 태중의 아이를 위해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나는 사람들이 죄가 있다고 판단하는 아내의 고통,아들을 낳아 고통에 넘겨주리라는 것을 보는 어머니의 고통에서 나를 구제해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 어기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우리 세 사람을 위하여 '예'라고 말씀드렸다.

'예'라고 나는 말씀드렸다. 그렇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예'가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하와의 '아니'를 없애버렸다. '예'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당신이 알라고 하시는 것을 알고, 당신이 살라고 하시는 대로 살고, 당신이 원하시면 즐기겠고, 당신이 당하라고 하시는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주님, '예', 언제나 '예'였습니다. 당신의 빛살이 저를 어머니로 만드신 순간부터 저를 당신께로 다시 불러 가신 순간까지. 예, 언제나 예입니다. 육체의 모든 속삭임, 제 감수성의 모든 경향이 제것인 이 끊임없는 '예'의 무게에 눌려 있습니다. 그리고 날개가 없어 당신께로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기쁨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고 고통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기 위하여 억제되고 굴복한 제 자아 전체를 지배하는 제 정신은 마치 금강석으로 만든 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웃으시고, 기뻐하십시오. 죄가 졌습니다. 죄는 없어지고 부수어졌습니다. 죄는 제 발뒤꿈치 아래 넘어져 있습니다. 죄는 제 눈물로 씻어졌고, 제 순종으로 부수어졌습니다. 제 태중에서 새 나무가 날 것입니다. 그 나무는 모든 악을 자신의 안에서 겪었기 때문에 알고 모든 선을 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는 사람들이 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나무가 제게서 났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면서라도 그것을 꺾으면 저는 기쁘겠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느님께서 사랑을 받으시도록 당신 종을 가지고 사람들이 나무가 우뚝 서 있는 땅을 가지고 하듯이 하기를, 즉 올라가는 단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

 

"마리아(마리아 발또르따)야, 항상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짓밟아도 아무 상관없다. 그들이 십자가 쪽으로 가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그것은 선과 악을 아는 열매를 맺는 새로운 나무이다. - 과연 그 나무는 사람에게 그가 선택하고 살 줄을 알도록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그 나무는 동시에 그들이 맛보기를 원했던 악에 중독된 사람들을 고치기 위하여 액체가 될 줄도 안다. 구속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내 예수의 피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헛되이 흐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심장이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여종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그후 우리는 거룩한 희생 제물을 우리 품에 모실 자격을 얻게 되고, 그분의 피와 우리의 눈물로 반죽이 된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아버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저희가 아버지께 드리는 희생제물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이 희생제물 속에 섞인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그 희생 제물의 무한한 공로로 저희에게 당신의 강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너를 쓰다듬어 준다. 내 딸아 쉬어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26. 원죄에 대한 또 한 마디 설명

 

예수께서 (마리아 발또르따에게) 말씀하신다.

"내 어머니의 말씀을 사람들의 복잡하게 된 생각에 의해서 혼동해서는 안되고 간결한 표현 안의 뜻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하느님의 일에 관해서도 그들의 인간적인 척도로 생각하고자 하고 하느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고집할 정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훨씬 더 무한히 초월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신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맞다. 그리고 인간적인 견해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정신에 따라 생각하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정말 훌륭하고 적절할 것이다. 너희들의 인간적인 생각에 매달려 있는 곳에 뿌리박고 있지 말아라.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완전하다고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교만이다. 오히려 완전한 것이라고는 하느님의 생각밖에는 없다. 하느님의 생각은 원하기만 하면,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는 미천한 사람의 생각 속과 입술 위에 내려오게 할 수 있다. 세상 사람의 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식하고 보잘 것 없고 속이 막히고 유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정신의 교만함이 방향을 못잡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는 사람들 위에 널리 나누어지기를 좋아한다. 이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상도 없고, 교양으로 얻은 주의력은 더더욱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과 순결이 가득차 있으며 하느님을 온힘을 기울여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알 자격을 얻고, 그 후에는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며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위대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아, 살펴보아라. 파티마에서. 루르드에서, 과들루쁘에서, 까라밧지오에서, 라살렛드에서, 그러니까 참되고 거룩한 발현이 있은어디에서나 발현을 본 사람들, 즉 보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나이와 교양과 사회적 지위로 보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 축에 끼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다. 이 이름 없는 사람들, 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은총이 나타나서 그들을 선구자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리와 같이 몸을 숙이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 저는 너무 죄가많아서 당신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저를 위로해 주시고, 천상의 도움과 인도자의 가르침과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당신의 자비 때문에 찬미받으십시오' 하고. 그리고 '천만에 ! 그것은 선입관이고 이단이다.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어떻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냐? 재능이 별로 없는 사람이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유식한 자 되는 것이 말이냐? 왜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냐? 내가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고 미친 사람들을 낫게 하고, 간질병자들을 고쳐 주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주고,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들을 듣게 하고, 정신박약자들에게 지능을 주지 않았느냐?

내가 이와 마찬가지로 마귀들도 쫓아내고, 고기들보고 그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빵더러 많아지라고, 물에게 포도주로 변하라고, 폭풍우더러 잠잠해지라고, 물더러 돌을 덮은 땅처럼 단단해지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하느님, 즉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너희들 가운데 있기 전에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행동하던 종들을 통하여 기적들을 행하지 않으셨느냐? 아브라함의 사래의 수태하지 못하는 태가 아기를 가지게 되어 사라가 되고, 내가 그와 계약을 맺기로 되어 있던 이사악을 낳게 되지 않았느냐? 나일강의 물이 모세의 명령으로 피로 변하고 더러운 동물들이 우글거리게 되지 않았느냐?

그리고 역시 그의 말에 따라서 짐승들이 흑사병으로 죽고, 사람들의 살이 궤양이 되어 떨어지고, 밀이 파괴적인 우박으로 쓰러지고 갈기갈기 찢기고 나무의 잎이 메뚜기들에 먹혀 전부 없어졌으며, 빛이 사흘 동안 꺼지고, 맏아들들이 죽어갔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라고 바다가 갈라지고, 쓴 물이 달게 되고, 메추라기와 만나가 풍족하게 떨어지고, 메마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야훼가 해가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느냐? 또 어린 다윗이 거인을 쓰러뜨리지 않았느냐? 엘리야가 밀가루와 기름을 많아지게 하고 소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되살리지 않았느냐? 그가 명령하니까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불이 하늘에서 희생제물 위에 떨어지지 않았느냐?

그리고 신약은 기적의 꽃들이 핀 작은 숲이 아니냐? 도대체 누가 기적을 행한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대관절 무엇이 하느님께 불가능하단 말이냐? 누가 하느님과 같단 말이냐?

이마를 숙이고 경배하여라. 큰 추수의 때가 와서 사람의 존재를 끝내기 전에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 모든 것, 그리스도 이후의 예언자들과 그리스도 이전의 예언들, 그리고 창세기의 첫마디서부터 시작된 성서의 상징 체계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만일 내가 이제까지 풀이되지 않은 어떤 점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면, 이 선물을 받아들여 거기서 수확을 얻어낼 것이요 단죄를 얻어내지 말아라.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유다인들이 한 것과 같이 하지 말아라. 그들은 나의 가르침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의 문을 닫고자 하였고, 신비와 초자연적인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나를 당할 수가 없으므로 나를 마귀 들린 사람과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나는 '비유적인 나무'라고 말하였는데, 이제는 '상징적인 나무'라고 말하겠다. 아마 너희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그 상징은 명백하다. 하느님의 두 아들이 나무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경향이 선을 향한 것인지 악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금에 대하여 증거가 되는 왕수(금만을 용해시키는 액체)와 금의 무게를 알려 주는 금세공인의 저울과 같이 이 나무는 그것에 대한 하느님의 계명을 위한 '사명'이 되어 아담과 하와의 기질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알려주었다.

내게는 벌써 너희들의 이의가 오는 것이 들린다. '단죄가 지나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발생하도록 사용된 방법은 유치하지 않았는가?' 하고.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그 불복종을 지금 저지르면 그들의 경우보다 덜 중대할 것이다. 너희들은 나에 의하여 구속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독이 언제나 다시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피 속에서 절대로 완전히 중화되지 않는 어떤 병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 두명의 첫째 조상은 은총을 차지하고 있었고 절대로 은총을 잃지 않아 신선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순결과 사랑의 샘인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더 강했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선물은 무한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선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타락한 것은 훨씬 더 중대한 것이었다.

주고 먹은 과일도 상징적이었다. 그것은 사탄의 선동으로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려 그들이 하고자 하였던경험의 과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금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그 사랑에 악의가 없기만을 원하였다. 내가 본질적으로 거룩한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던 것과 같이 그들도 아무런 음란함 없이 순결하고 거룩한 애정으로 서로 사랑해야 했었다.

은총은 빛이고, 은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것이 유익하고 좋은 것인지 알아서 구별할 줄을 안다. 은총이 가득한 여인은 지혜가, 은총인 지혜가 그를 가르쳤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았고, 거룩하게 행동할 줄을 알았다. 그러므로 하와도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 이외의 것을 아는 것은 무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겠다는 그의 약속에 충실하지 않았다. 하와는 사탄의 말을 믿고 약속을 깨뜨렸으며, 선이 아닌 것을 알고자 하였고,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그것을 좋아하였다. 내가 그다지도 거룩한 것으로 그에게 주었던 사랑을 가지고 하와는 문란한 것, 품격이 떨어진 것을 만들었다. 하와는 지상 낙원의 꽃밭에서 행복스럽게 뛰놀며, 잎들을 흙탕 속에 두는 일 없이 꽃이 만발하는 초목과 같이 그의 후손들이 그의 주위에서 번창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떨어진 천사가 되어 진창과 오물 속에서 뒹굴었다.

 

너희들은 내가 복음서에서 말하는 지각없는 아이들같이 되지 말아라. 그들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귀를 막았다. 그들은 북소리를 듣고도 춤을 추지 않았다. 그들은 우는 소리를 듣고 웃고자 하였다. 편협한 사람이되지 말고, 부인하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악의 없이 순순히, 비꼬지 말고 의심을 많이 가지지 말고 빛을 받고 또 받아라.

이 문제에 대하여는 충분히 말하였다. 너희들을 천국에 이르게 하고 악마적인 정욕을 이기기 위하여 죽은 그에게 너희들이 어느 정도 감사해야 할지를 너희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부활절을 준비하는 이 때에, 아버지의 말씀이 묶여서 죽음으로 끌려가고 하느님인 어린양이 묶여서 도살장으로 끌려간 그 사슬의 첫째 고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였다.

내가 거기 대하여 말하기를 원한 것은 현재 너희들 중의 90%가 하와와 같이 사탄의 입김과 말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살지 않고 욕심을 실컷 채우기 위하여 산다. 너희는 천국을 위하여 살지 않고 진창을 위하여 산다. 이제는 너희들이 영혼과 이성의 감각을 지닌 인간들이 아니라, 영혼도 없고 이성도 없는 개들이다. 너희는 영혼을 죽였고, 너희는 이성을 타락시켰다. 정말 너희에게 단언하지만, 짐승들이 사랑의 성실성에 있어서 너희들보다 낫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27. 요셉에게 엘리사벳의 임신을 알림

 

내 앞에는 마리아가 있는 나자렛의 작은 집이 나타난다.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을 때와 같이 아주 어린 마리아이다. 마리아를 보기만 해도 이 집의 동정녀의 향기로 내 마음은 가득 찬다. 천사가 그의 금빛 날개를 물결모양으로 흔들었던 방에 아직 남아 있는 천사의 향기, 마리아를 어머니가 되게 하려고 그의 위에 모아졌었고, 지금은 그에게서 발산하는 숭고한 향기이다.

전에 하늘에서 그렇게도 환한 빛이 내려왔던 방이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저녁 때이다.

마리아는 그의 작은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팔을 십자로 가슴에 포개어 얹고, 얼굴을 아래로 많이 숙인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마리아는 지금도 천사가 알리러 왔을 때에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꽃병에 꽃핀 나뭇가지도 그렇고, 가구들도 같은 순서로 놓여 있다. 다만 토리대와 가락이 한 구석에 놓여 있는데, 토리대에는 삼실 뭉치가 감겨 있고, 가락에는 반짝거리는 실이 감겨 있다.

마리아는 기도하기를 멈추고 새빨갛게 된 얼굴로 일어난다. 입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으나 그의 파란 눈에는 눈물이 반짝인다. 그는 기름 등잔을 가져다가 부싯돌로 불을 켠다. 마리아는 작은 방 안에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도록 주의한다. 옮겨졌던 침대의 담요를 제 자리에 다시 정돈해 놓는다. 꽃핀 나뭇가지가 담긴 꽃병에 물을 더 넣고 밤의 찬 공기를 쐬라고 꽃병을 밖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마리아는 선반 달린 가구에서 수놓던 것을 집어들고 불이 켜진 등잔도 든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간다. 집을 끼고 있는 작은 정원에서 몇 걸음을 걷고 나서, 예수님과 마리아가 작별하시는 것을 내가 본 일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때 있던 어떤 물건이 없기는 하지만 그 방을 나는 알아본다.

마리아는 등잔을 가지고 또 다른 작은 옆방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탁자 귀퉁이에 놓여 있는 그의 일거리와 더불어 홀로 거기 남아 있다. 왔다갔다 하는 마리아의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무슨 물건을 씻는 것처럼 물을 휘젓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다음 땔나무를 때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마리아가 불을 피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다음 마리아가 돌아온다. 정원으로 나갔다가 사과 몇 개와 야채를 가지고 돌아온다. 사과는 탁자 위에 있는 끌로 쪼아서 금속 쟁반에 놓는데, 그 쟁반은 끌로 조각한 구리로 된 것같다. 마리아는 부엌으로 다시 간다 (그 방은 역시 부엌이었다). 이제는 아궁이의 불이 열린 문으로 밝게 투사되고 그림자들을 벽 위에서 춤추게 한다.

얼마 지난 후에 마리아는 작은 갈색 빵 한 개와 뜨거운 우유 한 잔을 가지고 돌아온다. 마리아는 앉아서 빵 조각들을 우유에 담근다. 그것들을 천천히 먹는다. 그런 다음 우유잔을 반쯤 남기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야채를 가지고 돌아와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빵과 같이 먹는다. 마리아는 우유로 목을 축이고 나서 사과를 집어 먹는다. 어린 여자아이와 같은 식사이다. 마리아는 먹으면서 마음 속 생각에 깊이 잠기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눈을 벽 쪽으로 돌려 거기에다 어떤 비일을 전해 주는것 같다. 가끔 심각한 얼굴이 되고 거의 침울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미소가 다시 온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리아는 일어나서 문을 연다. 요셉이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 요셈은 탁자 저쪽에 마리아를 향하여 등없는 걸상에 앉는다.

요셉은 한창 나이의 미남자이다. 기껏해야 서른 다섯쯤 되었을 것이다. 짙은 밤색 머리와 같은 빛깔의 수염이 검정에 가까운 밤색의 부드러운 두 눈을 가진 균형잡힌 얼굴을 둘러싸고 있다. 이마는 넓고 반들반들 하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인데 작으며, 올리브빛이 아닌 갈색인 뺨은 포동포동하고 광대뼈는 볼그레하다. 키는 대단히 크지 알지만, 튼튼하고 체격이 좋다.

요셉은 앉기 전에 겉옷을 벗었는데 (나는 그런 겉옷을 보기는 처음이다), 둥근 모양이고 목은 갈고리나 또는 그런 종류의 물건으로 잠그게 되어 있고, 두건이 달렸다. 겉옷은 엷은 밤색이고 바래지 않은 양털로 짠 물이 스미지 않는 옷감으로 지은 것이다. 그 겉옷은 비바람을 막아주기에 적합한 산골사람들의 겉옷과 비슷하다. 앉기 전에 요셉은 달걀 두 알과 포도 한 송이를 마리아에게 준다. 포도는 너무 익기는 했지만 잘 보존된 것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한다. "포도는 누가 가나에서 가져온 것이오. 달걀은 내가 마차를 고쳐 주었다고 백부장이 준 것이오. 바퀴가 하나 망가졌었는데, 일꾼이 앓고 있거든요. 달걀이 아주 싱싱하오. 백부장이 닭장에서 꺼내 온 것이오, 마셔요. 몸에 좋을거요."

"요셉, 내일에요. 이제 막 식사를한걸요."

"그러면 포도는 먹을 수 있지요. 맛있소, 꿀처럼 달아요,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해서 가져왔소. 내일 것은 바구니로 하나 가져오겠소. 오늘 저녁은 백부장의 집에서 곧장 왔기 때문에 그걸 가져올 수가 없었소."

마리아는 곧 일어나서 부엌으로 간다. 마리아는 또 우유와 올리브와 치즈를 가지고 돌아온다. "다른 것은 없어요 달걀을 한 개 드세요."하고 말한다.

요셉은 안먹겠다고 한다. 달걀은 마리아의 것이다. 요셉은 빵과 치즈를 맛있게 먹고 아직 미지근한 우유를 마신다. 그런 다음 사과 한 개를 받아 먹는다. 이것으로 식사가 끝났다.

마리아는 식탁에 식기를 치운 다음 수놓던 것을 집어든다. 요셉은 마리아를 도와주고 마리아가 부엌에서 방으로 돌아온 다음에 부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모든 것을 다시 정돈하고 저녁이 쌀쌀하기 때문에 불을 쑤셔 일으키는 동안 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돌아오자 마리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요셉은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그의 조카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의 일과 꽃에 대하여 관심을 보인다. 백부장이 그에게 약속한 매우 아름다운 꽃들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한다. "그것은 우리네에게는 없는 꽃들이오. 백부장이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오.그 꽃 모종을 주겠다고 약속했소. 지금은 계절이 알맞으니 그것을 당신에게 심어 주겠소. 그 꽃들은 빛깔이 아름답고 냄새가 대단히 기분좋아요. 지난 여름에 그 꽃들을 보았소. 여름에 피는 꽃이거든요. 그 꽃들이 당신 집에 온통 향기를 가득 채워놓을거요. 나는 그 꽃나무들을 심고 접붙일 수 있을거요. 계절이 알맞아요. 지금이 좋은 시기요."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침묵이 흐른다. 요셉은 수놓는 헝겊 위로 숙인 마리아의 금발을 바라본다. 천사와 같은 사랑이 깃든 눈길이다. 분명히, 어떤 천사가 남편의 사랑으로 아내를 바라본다면, 이렇게 바라볼 것이다.

마리아는 어떤 결정을 취하는 것처럼 수놓던 것을 가슴에 얹고 말한다.

"요셉, 저요 당신께 말할게 있어요. 저는 평소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오늘은 소식이 한 가지 있어요. 즈가리야의 아내인 우리 친척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셉은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그나이에?"

"그 나이에요" 하고 마리아는 미소지으면서 대답한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친척에게 이 기쁨을 주고자 하셨어요."

"그걸 어떻게 아오? 그 소식이 확실하오?"

"심부름꾼이 왔어요. 속일 줄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엘리사벳의 집에 가서 도와주고, 또 내가 엘리사벳과 같이 기뻐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이 허락하시면‥."

"마리아, 당신은 내 아내이고 나는 당신의 종이오. 당신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 하는 것이오. 언제 떠나고 싶소?"

"할 수 있는 대로 일찍이요. 그렇지만 저는 거기서 여러 달을 머무르겠어요."

"그러면 나는 당신 돌아오기를 손꼽아가며 기다릴거요. 안심하고 떠나요. 내가 당신 집과 정원을 방치해두지 않겠소. 당신의 꽃들을 당신이 돌본 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될거요. 다만‥‥ 좀 기다려요. 나는 과월절 전에 내 일에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사러 예루살렘에 가야 하오. 당신이 며칠 기다리면 거기까지 당신과 같이 가겠소. 빨리 돌아와야 하니까 더 멀리는 못가오. 하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같이 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혼자서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더 안심이 되오. 돌아을 때에 당신이 통지를 해주면 마중을 나가겠소."

"요셉, 당신은 정말 착하셔요. 주님께서 그 갚음으로 당신께 축복해 주시고 당신에게서 고통을 멀리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순결한 두 부부는 서로 천사들처럼 미소를 보낸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흐른다. 그런 다음 요셉이 일어나서 겉옷을 다시 입고 두건을 머리 위로 올린다. 요셉은 같이 일어난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마리아는 그가 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듯이 한숨을 쉰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분명히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마리아는 문을 닫고 일거리를 접고 부엌으로 간다. 불을 끈다. 혹은 덮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한지 살펴본다. 등잔을 들고 나오면서 문을 닫는다. 마리아는 밤의 찬 바람에 펄럭이는 불꽃을 손으로 보호한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또 기도를 드린다.

-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28. "내 남편에게 네 무죄를 증명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라"

 

성모 마리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극히 사랑하는 딸아, 나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게 했던 황흘이 끝나자 내 감각능력은 이 세상의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조금 전부터 내 정배가 되신 하느님의 사랑 속에 파묻혀 있던 내 마음을 장미의 날카로운 가시처럼 찌른 생각은 요셉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거룩하고 주의깊은 내 수호자에게 내 사랑을 바쳤었다. 하느님의 뜻이 대사제의 말을 통하여 나를 요셉의 아내가 되기를 원하신 때부터 나는 요셉을 알 수 있었고 그 의인의 거룩함을 평가할 수 있었다. 요셉과 결혼하자 고아라는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내가 잃었던 성전의 안식처를 슬퍼하지 않게 되었었다. 요셉은 내게 대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은 다정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요셉 곁에서는 대사제 곁에서처럼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망설임이 일절 사라지고, 사라졌을 뿐 아니라 아주 잊혀져서 내 동정녀의 마음에서 그것이 멀리 떠나가 버리기까지 했었다. 나는 요셉에 대하여는 아무런 망설임도 어떤 두려움도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었다.요셉에게 맡겨진 내 동정은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보다도 더 평온하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그에게 한단 말이냐? 나는 그에게 그것을 알릴 말을 찾고 있었다.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하느님의 선물을 가지고 자만하고 싶지 않았고, 또 '주님께서 저를 모든 여인들 중에서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당신의 종인 저를 당신의 배필로 삼으셨어요.'하고 말하지 않고는 내 임신을 어떻게도 정당화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내 상태를 숨겨서 그를 속이는 것도 나는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내가 기도를 드리는 동안, 내 안에 가득차 계시던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말을 하지 말아라. 네 남편에게 네 무죄를 증명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라' 하고 언제? 어떻게? 나는 그것을 여쭈어보지 않았었다. 나는 꽃이 자신을 날라주는 물에 몸을 맡기듯이 항상 하느님께 나를 맡겨 드렸었다. 영원하신 분은 당신의 도움 없이 나를 내버려두신 적이 절대로 없었다. 그분의 손이 나를 지금까지 부축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그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내 딸아, 우리의 영원하신 분, 착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용기를 돋구어주는 것이냐! 그분은 우리를 요람과 같은 당신 품에 안으시고 배처럼 우리를 빛나는 선의 포구로 데려다 주시며, 우리 마음을 다시 북돋아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길러 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안식과 기쁨을 주시며,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전부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즉 당신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피조물로서의 내 신뢰를 완전에까지 끌어올렸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나라는 보잘것 없는 피조물, 즉 내가 티없는 사람이 되었어야 할 만큼 그렇게도 지극히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의 신뢰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내 정배, 내아들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숭고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오! 기뻐라! 하느님과 하나가 되다니. 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일치로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분께 '제 안에 계신 당신, 당신만이 제가 하는 모든 것을 당신의 하느님으로서의 완전으로 행하십니다' 하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만일 하느님께서 '말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더라면,나는 아마 얼굴을 땅에 파묻고, '성령께서 제 안에 들어오셔서 저는 하느님의 씨를 가졌어요' 하고 요셉에게 말했을 것이고, 요셉은 나를 존경하고 있었고, 또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그는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도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요셉에게 장차 올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그와 같은 찬사를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은 싫었겠지만 그 혐오감을 극복하고 그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랐고, 그 때부터 여러 달동안 내 마음에 피를 흘리게 하는 첫번째 상처를 느꼈다.

공동구속자로사의 내 운명의 첫번째 고통을. 나는 이와 비슷한 고통의 순간에, 즉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희를 불리한 견지에서 보게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경우에 말을 하지 않아야 될 때에 너희들이 해야 할 행동법칙을 너희에게 주기 위하여 그 고통을 바치고 참아견디었다.

너희의 평판과 너희들이 집착하는 애정을 지키는 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려라. 거룩한 생활로 하느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얻어라.그리고는 안심하고 있어라. 모든 사람이 너희와 대항한다 해도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변호하시고 진실이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

'내 딸아, 이제는 쉬어라. 그리고점점더 내 딸이 되어라."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29.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에 간다

 

나는 성녀 엘리사벳의 집에 가려고 길 떠나는 광경을 본다. 요셉은 회색 나귀 두 마리를 끌고 마리아를 데리러 왔다. 한 마리는 그가 탈 것이고,또 한 마리는 마리아가 탈 것이다.

두 짐승 중의-한 마리에는-이상한 장치를 덧붙인 보통 안장이 얹혀 있는데, 나는 그것이 짐을 얹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일종의 짐받이로 요셉이 마리아에게 비맞지 않게 그 안에 옷을 넣으라고 가져온 작은 나무체를, 그 위에 요새 말로 말하자면 트렁크를 올려놓는다. 나는 마리아가 요셉에게 그의 용의주도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깨닫는다. 마리아는 전에 준비하였던 보따리에 쌌던 모든 것을 꺼내서 그 궤속에 챙겨 넣는다.

그들은 집의 대문을 잠그고 길을 떠난다. 여명이 겨우 동쪽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보아 새벽이다.

나자렛은 아직 자고 있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두 길손은 서로서로 쐐기처럼 들어박혀서 매애매애 하고 울며 종종걸음을 치는 양들을 앞세우고 가는 목동 한 사람을 만날 뿐이다. 어린 양들도 우는데, 그 날카로운 작은 목소리로 다른 놈들보다 더 매애매애 하고 운다. 어린 양들은 아직 어미젖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미들은 풀밭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면서 더 큰 울음소리로 어린 양들에게 재게 걸으라고 재촉한다.

마리아는 내려다보고 양떼가 지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멈추어 선 다음 미소를 짓고, 안장에서 몸을 숙여 자기가 탄 나귀를 스치며 지나가는 온순한 짐승들을 쓰다듬어 준다. 갓난 어린 양을 안은 목동이 다시 인사를 하려고 발을 멈추자 마리아는 죽어라 하고 매애매애 하고 우는 어린 양의 볼그레한 작은 주둥이를 쓰다듬어 주며 웃는다. 마리아는 말한다. "어미를 찾는군요. 엄마가 저기 온다. 엄마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요것아."과연 어미양은 목동에게 몸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제 새끼의 주둥이를 핥아준다.

양떼는 나뭇잎에 비떨어지는 소리를 내고 서두르는 그놈들의 모든 굽으로 일으키는 먼지와 길의 흙에 수 놓은 것과 같은 수많은 발자국을 뒤에 남기면서 지나간다.

요셉과 마리아는 다시 길을 떠난다. 요셉은 겉옷을 입고 있다. 마리아는 아침이 매우 싸늘하기 때문에 줄무늬가 있는 쇼올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들은 이제 들판에 들어서서 나란히 나아간다.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요셉은 그의 일을 생각하고, 마리아는 그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의 생각에 잠겨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미소를 보내고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미소짓는다. 어쩌다가 요셉을 쳐다보고는 얼굴에 약간 슬픈 빛이 감돈다. 그러다가 말수가 적고 마리아에게 몸이 편하냐고,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느냐 묻기 위해서나입을 여는 주의깊은 남편을 쳐다볼 때에도 미소가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행길에 다른 사람들도 지나다닌다. 특히 어떤 마을 근처나 교차점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방울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종종걸음을 치는 나귀를 몰아가며, 빵과 올리브를 좀 먹고 작은 동굴에서 흘러 나오는 샘물을 마시기위하여 다만 한 번만 걸음을 멈춘다. 그들은 시커먼 구름에서 쏟아지는 심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하여 두 번째로 걸음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바위가 툭 튀어나와서 큰 비는 맞지 않게 보호해 주는 야산의 비피할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요셉은 물이 적시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이 스미지 않는 양모로 짠 그의 겉옷을 마리아에게 기필코 입게 하려고 한다.

마리아는 남편의 간절한 강요에 양보할 수밖에 없다. 요셉은 자기의 처지에 대하여 마리아를 안심시키려고 안장에 있던 작은 회색 담요를 머리와 어깨에 씌운다. 그 담요는 아마 나귀를 덮어 주는 담요인 것 같다. 이제 마리아는 얼굴을 둘러싼 두건을 쓰고, 몸 전체를 덮는 목언저리에서 감겨진 밤색 겉옷을 입고 있어 꼭 어린 수사와 같다.

소나기는 그쳤지만, 그 대신 귀찮은 가는 비가온다. 두 사람은 진흙투성이가 된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봄이라. 잠시 후에는 해가 나서 길이 더 가기 쉽게 되기 시작한다. 두 나귀는 더 경쾌하게 길을 달린다.

-환상이 여기서 그쳤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였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30. 예루살렘에서 즈가리야의 집까지

 

여기는 예루살렘이다. 이제는 그 거리와 성문들을 보고 잘 알아볼 수 있다.

두 부부는 우선 성전 쪽으로 향한다. 나는 성전에 예수님을 봉헌하던 날 요셉이 나귀를 맡겼던 마구간을 알아본다. 오늘도 그는 두 나귀를 손질한 다음 그곳에 맡기고 마리아와 함께 주께 예배하러 간다.

그런 다음 나와서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어떤 집으로 가는데, 아는 사람의 집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집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요셉이 한 작은 노인과 같이 돌아올 때까지 쉰다. "이분은 당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오. 당신이 친척집에 이르기까지 흔자 갈 길은 얼마 안 될거요. 이 노인을 믿으시오. 내가 잘 아는 분이오."

그들은 나귀를 다시 타고, 요셉은 성문(그들이 들어온 성문과는 다른 성문이다)까지 마리아를 배웅한다.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리아는. 작은 노인과 같이 간다. 노인은 요셉이 말수가 적었던 것과는 반대로 말을 많이 하고, 별별 일에 다 관심을 보이는데, 마리아는 참을성있게 대답한다.

지금은 안장 앞쪽에 요셉의 나귀가 실었던 작은 궤가 놓여 있고 마리아는 겉옷도 입지 않았다. 쇼올도 두르지 않고 개켜서 궤 위에 놓았다. 마리아는 파란 옷을 입고 햇볕을 가려 주는 흰 베일을 쓰고 있는데 아주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항상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마리아가 그에게 들리게 하려면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것을 보면 작은 노인은 가는 귀가 먹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났다. 이제는 그의 질문과 소식의 보고도 동이 나서 이제 노인은 길을 잘 아는 짐승이 인도하도록 맡겨두고 안장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마리아는 그 일시적인 중단을 이용하여 자기 생각을 가다듬고 기도를 드린다. 한 팔을 가슴에 얹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기도임에 틀림없다. 그의 얼굴은 영흔의 감동의 노력으로 인하여 빛과 무상의 기쁨을 나타낸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게는 환상이 중단된 지금, 나는 어제와 같이 내 곁에 내적인 환상으로 볼 수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아 있다. 어떻게나 분명히 볼 수 있던지 어머니의 초상을 묘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약간 포동포동하지만 기분좋게 부드러운 엷은 분흥빛 뺨, 선명한 붉은 색의 작은 입, 짙은 금빛 속눈썹 밑에 있는 다정스럴게 빛나는 파란 눈.

나는 머리 꼭대기에서 갈라진 머리가 어떻게 기분 좋게 세 개의 웨이브를 이루면서 양쪽으로 내려와 볼그레한 작은 귀를 반쯤 덮기까지 하고 그 엷고 빛나는 금빛을 보이며 머리를 덮은 베일 뒤로 사라지는지 말할 수 있다 (과연 나는 성모님이 천국에나 있을 것 같은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으시고 겉옷을 머리에까지 쓰고 계신 것을 보는데, 그 겉옷은 베일처럼 가볍기는 하지만 그래도 옷과 같은 감으로 만든 탁탁한 것이었다).

나는 옷이 목에서는 끈이 미끄러져 움직이는 홈으로 죄어지는데, 그 끈의 두 끝은 목이 시작되는 곳 앞 쪽에서 고리로 끝나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고, 어떻게 옷이 허리에 더 굵은 끈으로 매져 있으며, 그 끈도 역시 흰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술 두 개가 달려 있으며 옆구리를 따라 내려뜨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목과 허리에 매진 옷의 가슴 부위에는 부드럽고 둥글게 한 주름 일곱 개가 있는데,이것이 그분의 지극히 정숙한 옷의 유일한 장식이라는 말까지도 할 수 있다.

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풍겨지는 순결의 인상을 말할 수 있고, 그분을 천사와 같은 여인으로 만드는 그분의 지극히 품위있고 대단히 균형잡힌 형태에서 풍겨지는 순결의 인상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모님을 쳐다보면 볼수록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이 그분을 괴롭혔는지를 생각하며 고통을 느끼고, 어떻게 사람들이 그분의 육체적인 모습으로도 그렇게도 다정스럽고 친절하고 품위있는 그분을 동정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분을 쳐다보며, 그분을 향하여 지르는 골고타의 아우성, 그분이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분을 향하여 내뱉는 모든 조롱과 야유, 모든 저주를 듣는다. 나는 지금은 성모님의 아름답고 불안이 없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분의 지금 모습도 예수님의 임종의 고통때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의 집에서 나타내던 슬픔의 시간에 가지셨던 비참한 얼굴의 기억을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성모 마리아를 쓰다듬어 드리고 그렇게도 품위있게 볼그레한 뺨에 입맞추어 드리며 성모님과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눈물들의 기억을 내 입맞춤으로써 없애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성모 마리아를 아주 가까이에 모시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평화를 주는지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성모님을 보면서 죽는 것이 살아 있을 때의 가장 즐거운 시간만큼이나, 그보다도 더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이 이렇게 그분을 온전히 보지 못한 요근래에 나는 엄마가 없는 것처럼 그분이 안계신 것이 괴로웠다. 이제는 지난 12월과 1월 초에 나를 떠나지 않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수난와 가슴찟기는 비통을 보는 것이 내 지복을 흐리게 하는 고통의 베일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수난 동안에 예수님이 고통당하시는 것을 본 2월 11일 저녁부터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당하였는지를 말하고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보고서 나는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내가 지금 죽든지 100년 후에 죽든지 그 환상은 그 강함과 그 영향을 그대로 보존할 것이다. 그전에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고통들을 살고 있다.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상본을 한 번 흘낏 보기만 해도 그날 저녁 내가 당한 고통을 다시 당할 수 있고, 그 소름끼치는 고문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의 비탄에 잠긴 고통의 고뇌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며, 그분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그분의 추억이 내 마음을 죄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을 시작하신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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