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준비 ( 5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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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 복음준비 ( 55~60 )

by mrsoojak 2021. 12. 18.

동방박사의 경배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55. 동정녀 마리아의 자장가

 

오늘 아침 나는 말할 수 없이 기분 좋게 잠을 깼다.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느린 자장가를 조용히 부르는 아주 깨끗한 자장가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나 느리고 예스러운지 옛날의 성탄 자장가같이 들렸다. 나는 점점 더 커지는 행복을 내게 주고 그 조용한 소나기로 잠을 깨워 주는 그 주제와 목소리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잠에서 깨서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고 말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분이 어머니이셨으니까. 그리고 "너도 잘 있었니? 와서 행복을 누려라!" 하고 내게 말씀하시고 나서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나는 베들레헴의 집, 마리아가 지내던 방에서 예수를 잠들게 하려고 흔들어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방안에는 마리아의 베틀과 바느질감이 있었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려고 일을 중단한 것 같았다. 아니 기저귀라기보다는 오히려 씨트라고 해야 옳겠다. 벌써 몇 달, 여섯 달이나 많으면 여덟 달은 되었을 아기였으니까. 아기가 잠이 들면 일을 다시 시작할 작정이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벌써 황혼이 완전히 깔리면서 군데군데 황금빛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고요하였다. 양 떼들이 양우리로 돌아오면서 꽃이 핀 풀밭의 마지막 풀을 뜯고 부리를 틀면서 울고 있었다.

아기는 잠이 이내 들지 않았다. 이가 나려고 하기 때문이거나 어린아이에게 흔히 있는 어디가 좀 아픈 것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처럼 좀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아침이 되었을까 말까 한그 시간의 어둠 속에서 종이 조각 하나에 쓸 수 있는 대로 썼던 것을 지금 여기에 옮겨 쓰는 것이다.

 

"주님의 양떼양 떼 같은 금빛 구름들아, 꽃이 만발한 풀밭에서는 또 다른 양 떼가 쳐다본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있는 모든 양 떼를 다 가진다 해도, 항상 네가 내게 가장 소중한 어린 양일 것이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울음을 그쳐라‥‥

저 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내려다본다. 아리따운 네 눈동자들을, 아아! 더는 울리지 말아라. 청옥색 네 눈은 내 마음의 별들이다. 네 눈물은 내 고통이로구나! 아아! 울음을 그쳐라.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울음을 그쳐라‥‥

천국에 있는 빛나는 모든 천사들이 네 얼굴을 보고 즐기려고 순진한 너를 위해 화관을 만든다. 그러나 너는 울면서 엄마를 찾는구나. 엄마를, 엄마를, 여기 네 곁에서 '자장', 자장, 자장, 자장‥‥ 하고 말하는 엄마를 찾는구나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울음을 그쳐라‥‥

하늘이 온통 볼그레해졌다. 다시 새벽이 되었지만, 엄마는 네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아직 자지 않고 있다. 잠이 깨면 너는 '엄마' 하고 부를 테지. 그러면 나는 '아가' 하고 대답하면서 네게 입 맞추고 젖과 함께 네게 사랑과 생명을 주리라.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울음을 그쳐라‥‥.

네 엄마가 없으면 네가 하늘을 꿈꾸더라도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오너라, 오너라! 내 베일로 가려 너를 잠들게 해 주마, 내 가슴은 네 베개, 내 팔은 네 요람, 내가 네 곁에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라. 자장, 자장, 자장‥‥ 울음을 그쳐라.

나는 언제나 너와 같이 있겠다. 너는 내 마음의 생명이다. 아가 자는구나‥‥ 가슴에 내려앉은 꽃 한 송이라고나 할까. 아가 자는구나‥‥ 조용히들 하거라! 어처면‥‥ 어쩌면 아기가 거룩하신 아버지를 뵙고 있는지도 모르니‥‥ 이렇게 뵙는 것으로 내 온유한 예수의 눈물이 닦아지는구나‥‥아기가 잔다, 잔다, 잔다, 잔다, 울음을 그쳤다‥‥."

이 광경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할 수가 없다. 아기를 흔들어 주고 있는 한 어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어머니이고 어떤 아기인가! 이 작으면서도 위대하고 매혹적인 광경에 어떤 우아함과 어떤 사랑, 어떤 순수함, 어떤 하늘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다. 그 광경을 생각만 해도 나는 즐겁고, 그 광경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확증하려고 이 곡조가 남아있어 당신들에게도 그것을 들려주려고 당신들을 위하여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리아와 같은 지극히 깨끗한 은구슬 소리를, 동정녀의 동정녀다운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다!‥‥ 나는 보잘것없는 아코디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다. 성탄의 구유 둘레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아름다운 목가가 되겠는가! 엄마가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요람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가 진정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요람 곁에 열린 창문 근처에 앉아서 아기를 안아 무릎에 올려놓고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천천히 흔들어 주면서 자장가를 두 번 되풀이하였다. 그때에야 아기 예수는 그 작은 머리를 엄마의 가슴 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고, 한 손은 어머니 가슴 위에 닿은 볼그레한 뺨 곁에 얹고, 또 한 손은 가슴 위에 내려뜨린 채 작은 얼굴을 따뜻한 엄마 품에 파묻고 잠이 들었다. 마리아의 베일은 그의 거룩한 어린 아들을 덮어 주고 있었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한없이 조심하며 일어나서 예수를 요람에 내려놓았다. 마리아는 아기를 가벼운 리넨천으로 덮어 주고, 파리와 바람을 막기 위하여 베일을 파서 덮었다. 그리고 그의 소중한 아들이 잠든 것을 들여다보느라고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마리아는 한 손은 가슴에 얹고, 또 한 손은 아기가 깨려고 하면 흔들어 줄 채비를 하고 아직 요람에 댄 채, 요람쪽으로 약간 몸을 구부리고 환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동안 어둠과 고요가 땅 위에 내려와 동정녀의 작은 방에 스며들고 있었다.

얼마나 평화롭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이 광경에 넋을 빼앗겼다!

 

이것은 굉장한 환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이 아무 특별한 것도 알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환상들의 전체 속에서 쓸데없는 것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하나의 참된 매력이다. 그래서 이 환상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그것은 이 환상이 내 정신을 어머니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진 것같이 평온하고 순수하고 사랑이 가득 차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뜻으로 이 환상이 당신들의 마음에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다. 그것이 낫다. 예수님의 마음에 드니까. 유식하고 까다로운 다른 사람들은 마음대로 우리를 "유치하다"라고 생각하리라. 우리는 그런 것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56. 세 동방 박사의 경배

 

내 마음 속에서 내게 알려 주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보여주고 네가 묵상하게 될 이것들을 '믿음의 복음'이라고 불러라. 이 복음들이 너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믿음과 그 은총의 힘을 확실하게 설명할 것이고, 하느님께 대한 너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고 새하얀 베들레헴이 한배의 병아리들처럼 별빛 아래 모여 있는 것을 본다. 여기에서는 큰길들이 직각으로 교차한다. 길 하나는 마을 밖에서부터 이 읍내 지나서까지 계속되고, 또 한 길은 읍내를 죽 가로질러 가지만 더 멀리까지 가지는 않는다. 다른 작은 길들이 이 작은 도시 여기저기에 뚫려 있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것과 같은 전체적인 계획의 흔적은 조금도 없고, 높낮이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지면에 맞게, 그리고 지면의 기복에 따라 또 집 짓는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는 집들에 맞게 뚫려 있다. 어떤 집들은 오른쪽을 향하고, 어떤 집들은 왼쪽을 향했으며, 또 어떤 집들은 옆을 지나가는 길에 비하여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서, 길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가는 직선으로 된 길이 아니고 구불구불 펼쳐지는 리본같이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따금씩 작은 광장이 있는데, 장터인 경우도 있고, 샘이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무턱대고 세우는 집들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지을 수 없는 비뚤어진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곳에 마침 이 불규칙적인 작은 광장 하나가 있다. 광장이라면 정사각형이거나, 적어도 장방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나 이상한 사다리꼴로 생겼는지 정점이 빗나간 예각 삼각형이라고 할 만하겠다. 삼각형의 아래쪽 제일 긴 변은 이 마을에서 제일 넓고 낮은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지금은 닫혀 있고 겨우 마차나 드나들 수 있는 대문 둘만이 있는, 빤빤하고 아무 장식도 없는 높은 담이다. 이와는 반대로 안쪽에는 네모 반듯한 마당을 죽 돌아가며 2층에 창문이 많이 나 있고, 아래층에는 짚과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말과 다른 짐승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한 수반들이 있는 마당 둘레로 회랑들이 보인다. 회랑의 촌스러운 기둥에는 짐승들을 매는 고리들이 있고, 한쪽에는 양 떼들과 타는 짐승들을 들여보내기 위한 넓은 헛간이 있다. 베들레헴의 여관이라는 것을 알겠다.

삼각형의 다른 두 쪽에는 큰 집들과 작은 집들이 있는데, 어떤 집들은 앞에 작은 정원이 있고, 어떤 집들엔 없다. 그 집들 가운데 정면이 광장 쪽으로 향한 것도 있고 정면이 뒷쪽으로 향한 집들도 있기 때문이다. 더 좁은 다른 쪽, 그러니까 대상들의 숙소 맞은편에는 정면 한가운데에 이층 방들로 올라가는 바깥 계단이 달려 있는 유일한 작은 집이 있다. 밤이 되었기 때문에 그 방들은 모두 닫혀 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동방의 하늘에 그렇게도 아름다운 별들이 총총 박힌 밤에 빛이 더 환해지는 것을 본다. 그 별들은 매우 생생하고 너무 커서 아주 가까운 것 같이 보이고 가까이서 비단결 같은 하늘의 빛나는 저 꽃들을 만지기가 쉬울 것같이 생각될 지경이다. 나는 빛이 이렇게 더 환해지는 원인을 알아보려고 눈을 쳐든다. 마치 작은달과 같고 보통 크기가 아닌 별 하나가 베들레헴의 하늘로 다가온다. 다른 별들은 마치 여왕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과도 같이 슬그머니 물러나서 그 별을 지나 보내는 것 같다. 그만큼 그 별의 광채는 다른 별들을 능가하고 보이지 않게 한다. 안쪽에서 태양이 비추고 있는 엄청나게 크고 밝은 청옥 같은 덩어리에서 빛나는 항적이 시작되는데, 황옥의 황금빛, 벽옥의 초록빛, 단백석의 유색산광을 띤 빛, 홍옥들의 빨간빛, 자수정의 부드러운 섬광이 한데 섞여 있으면서 엷은 청옥빛이 가장 돋보인다. 살아 있는 것같이 빠르고 물결치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하늘을 두루 달리는 이 항적에는 이 세상의 모든 보석이 들어 있다. 그러나 돋보이는 빛깔은 별 덩어리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저 빛깔이다. 구세주의 요람인 베들레헴의 집들과 거리들과 땅을 내려와서 하늘색을 띤 은빛으로 물들이는 천국의 빛깔 같은 엷은 청옥색이다.

이 순간에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농촌 마을에 지나지 않는 보잘것없는 소도시가 아니다. 모든 것이 은으로 되어 있는 동화 속의 환상적인 도시 같다. 샘과 수조의 물은 물결치는 금강석과 같다.

더 강렬한 광채로 반짝이면서 별은 광장의 좁은 쪽에 있는 작은 집 위에 멎는다. 그 집 사람들도 베들레헴의 주민들도 문을 닫은 집에서 자고 있기 때문에 그 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별은 그 빛을 점점 더 빨리 꿈틀거리고 그 꼬리가 떨며 하늘에 반원들을 그리면서 좌우로 흔들린다. 하늘은 그 별이 이끌고 가는 천체들의 무리로 인하여, 또한 마치 다른 별들에게 기쁜 말을 전해 주려는 듯이 그 위에서 수없이 많은 빛깔로 빛나는 보석과 같은 별들의 무리로 전체가 밝게 빛난다.

그 작은 집은 진주빛의 액체와 같은 불로 완전히 감싸 졌다. 평면으로 된 작은 지붕과 우중충한 돌로 된 층계와 작은 문이 온통 금강석과 진주 가루를 뿌린 순은 덩어리와 같다. 어떤 왕의 궁전에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어머니께 봉사하기 위해 내려오는 천사들의 발을 받기 위하여 만들어진 층계와 같은 층계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티 없는 동정녀의 그 작은 발들은 이 눈부신 흰빛 위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옥좌의 단 위에 놓이기로 되어 있는 그의 작은 발들은 거기에 놓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정녀는 이 선경을 도무지 모른다.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아들의 요람 곁에서 깨어 있으면서 기도를 드린다. 그의 영혼에는 그 별이 물건들을 아름답게 꾸미는 그 광채를 능가하는 광채를 가지고 있다.

큰길에서 행렬이 하나 나아온다. 마구를 단 말들과 손으로 끌고 오는 다른 말들, 그리고 어떤 것은 사람이 타고 어떤 것은 짐을 실은 단봉낙타들과 쌍봉낙타들이다. 굽소리는 급류의 물이 돌 위를 지나가다가 부딪혀서 흐르는 소리를 낸다. 광장에 이르러서 모두가 걸음을 멈춘다. 행렬은 별의 방사를 받아 환상적으로 빛난다. 대단히 호화로운 짐승의 장식과 말 탄 사람들의 옷과 얼굴과 짐들, 모두가 반짝이며, 금속과 가죽과 비단과 보석과 짐승들의 털 빛깔의 원래의 광채를 선명하게 하며 별의 빛과 합친다. 눈들이 빛나고 입들은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광채가, 즉 초자연적인 기쁨의 광채가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인들이 짐승들을 끌고 대상들의 숙소로 가는 동안 여행단의 세 사람이 각기 타고 있던 짐승들에서 내리니, 짐승들은 어떤 하인이 다른 곳으로 끌고 가고, 그 사람들은 걸어서 집을 향하여 간다. 거기서 그들은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리어 먼지에 입을 맞춘다. 대단히 호화로운 그들의 옷이 말해 주는 것과 같이 그들은 세 사람의 권력자이다. 피부색이 매우 짙은 한 사람은 낙타에서 내리자마자 흰 비단으로 지은 화려한 옷으로 몸을 감싼다. 이마에는 귀금속으로 만든 테를 둘렀고, 허리에는 호화로운 허리띠를 띠었는데, 칼 밑이 보석으로 장식된 비수 또는 검이 매달려 있다. 훌륭한 두 마리 말에서 내린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노란색이 돋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줄 친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다. 그 옷은 두건과 끈이 달린 성직자의 겨울옷 같이 생겼는데, 두건과 끈이 어떻게나 금실 수로 장식을 했는지 전체가 금실로 선세공을 한 한 덩어리 같다. 셋째 사람은 발목을 맨 넓고 긴 바지에서 나오는 헐렁헐렁한 비단 샤쓰를 입고 있다. 그는 아주 고운 어깨걸이를 두르고 있는데, 그 사람 전체를 꾸미는 빛깔이 어떻게나 선명한지 꼭 꽃이 만발한 진짜 정원과 같다. 머리에는 터반을 쓰고 있는데, 금강석을 물린 거미발로 장식된 작은 사슬로 고정되었다.

구세주가 자고 있는 집에 경배한 다음 그들은 다시 일어나 대상들의 숙소로 간다. 거기서 하인들이 문을 두드려 열게 한다.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환상은 세 시간 후에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는 광경으로 다시 계속된다.

 

낮이다. 아름다운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세 동방박사의 하인 한 사람이 광장을 가로질러 작은 집의 작은 층계를 올라가서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여관으로 돌아간다.

세 동방 박사가 각기 자기 하인을 뒤따르게 하고 나온다. 그들은 광장을 건너간다. 드물게 지나가는 행인들이 점잖게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위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려고 머리를 돌린다. 하인이 왔던 것과 세 사람이 오는 것 사이에는 한 15분은 충분히 지났다. 그래서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

손님들은 지난 밤보다도 더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다. 비단이 빛나고, 보석들이 반짝이고, 훨씬 더 귀중한 거북 등딱지를 점점이 박은 값비싼 깃털 장식이 터반을 쓴 사람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하인 한 사람이 전체에 상감세공을 한 궤를 들고 있는데, 그 금속 장식은 끌로 새긴 금으로 되어 있다. 둘째 하인은 매우 섬세하게 만든 잔을 들고 있는데, 그 잔에는 끌로 새긴 뚜껑이 덮여 있다. 셋째 하인은 역시 금으로 만든 넓고 낮은 일종의 항아리를 들고 있는데, 꼭대기에 금강석이 박힌 피라미드형의 뚜껑이 달려 있다. 하인들, 특히 궤를 든 하인이 그것들을 들고 있기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그 물건들이 무거운 모양이다.

세 사람은 층계를 올라가서 들어간다. 그들은 길에서 집 뒤로 가는 방으로 들어간다. 햇빛 쪽으로 열린 창문으로 해서 뒤쪽에 있는 작은 정원이 보인다. 다른 두 쪽 벽에 있는 문들이 열리면서 집주인들이 내다본다. 중년 남자, 여자, 그리고 서너 명의 어린이들이다.

마리아는 아기를 안고 앉아 있고 요셉은 곁에 서 있다. 그러나 마리아도 세 동방 박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서 몸을 굽혀 인사한다. 마리아는 온통 흰옷을 입었다. 목 아래에서 발까지, 어깨에서 가는 손목까지 몸을 감싼 단순한 흰옷을 입은 자태가 참으로 아름답다. 땋은 금발이 얹힌 머리와, 흥분으로 인하여 더 선명한 분홍빛을 띤 얼굴과, 부드럽게 미소 짓는 눈과,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려고 벌어지는 입이 정말 아름답다. 세 동방 박사는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다. 그러다가 앞으로 나아가 발 앞에 엎드리며 앉으라고 청한다.

그들은 편히 앉지 않는다. 마리아가 권하는 데도 앉지 않는다. 그들은 발뒤꿈치에 의지하여 꿇어 있다. 뒤에는 세 하인들이 역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들은 바로 문지방 뒤에 있는데, 그들이 들고 있던 세 가지 물건을 그들 앞에 내려놓고 기다린다.

세 현자는 아기를 들여다본다. 아기가 매우 활발하고 튼튼하며 아홉 달에서 한 살쯤 되어 보인다.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있다. 아기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새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엄마처럼 흰옷을 입고 발에는 조그마한 샌들을 신었다. 매우 간단한 작은 옷인 내리닫이인데,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은 발과 무엇이든지 잡으려고 하는 포동포동한 손이 옷 밖으로 나와 있고, 특히 아주 예쁜 작은 얼굴이 나와 있다. 얼굴에서는 짙은 파란 눈이 빛나고, 웃을 때면 양쪽에 볼우물이 생기고 처음으로 난 작은 이들을 드러내 보이는 입이 빛난다. 잘게 굽슬굽슬한 머리는 어떻게나 빛나고 너울너울한지 꼭 금가루같이 보인다.

 

제일 나이 많은 현자가 모두를 대표해서 말한다. 그는 지난 12월 어느 날 밤 그들이 새 별 하나가 하늘에 이상한 광채를 띠고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마리아에게 설명한다. 천체도에는 그 별이 나타나 있지 않았고, 그 별에 대한 말도 일찍이 없었다. 그 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별은 이름이 없었다. 하느님의 품에서 나서 축복받은 진실, 하느님의 비밀 한 가지를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꽃이 피듯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별을 우습게 보았었다. 그들은 눈을 하느님께로 들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가지고 써놓으시는 말씀을 - 이로 인하여 하느님을 영원히 찬미하자 - 읽을 줄을 모른다.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을 보았고. 그 목소리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몸에 허락하던 얼마 안 되는 잠을 기꺼이 포기하고, 음식 먹는 것도 잊고 황도대 연구에 몰두하였었다. 그리하여 천체의 교회(交會)와 시간과 계절과 옛날 시리와 천체의 배합의 계산으로 그 별의 이름과 비밀을 알게 되었었다. 별의 이름은 "메시아"였고, 그 비밀은 "메시아가 세상에 왔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메시아에게 경배하려고 각기 다른 사람 모르게 떠났던 것이다. 그들은 산과 광야, 골짜기와 강을 지나 밤에 여행하여 팔레스티나 쪽으로 왔었다. 별이 그 방향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가 지구의 각기 다른 세 곳에서 이 방향으로 오다가, 나중에 사해를 지난 곳에서 같이 만나게 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그들을 거기에 모아 놓으셨다. 그래서 비록 각기 자기네 고장 말을 하는데도 서로 알아들으며 앞으로 나아왔고, 그들이 지나오는 나라들의 말을 알아듣고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영원하신 분의 기적이었다.

메시아는 예루살렘의 왕, 유다인들의 왕일 것이므로, 그들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었다. 그러나 이 도시 상공에서 별은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들은 가슴이 메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고, 하느님께 은총을 잃을 행위를 하였는가 하고 성찰을 하였었다. 그러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음을 확신하고, 그들이 경배하러 온 유다인들의 왕이 어느 궁궐에서 났는지 물으려고 헤로데 왕을 찾아갔었다. 왕은 사제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불러 모아 가지고 메시아가 어디에 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이들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라고 대답하였었다.

그들은 베들레헴을 향하여 왔었고, 별이 다시 그들의 눈에 나타나 성도를 떠났었고, 지난밤에는 한층 더 빛났었다. 하늘이 온통 불이 붙은 것 같았었다. 그러다가 그 광채에 다른 별들의 빛을 모아 가지고 이 집 위에 멎었었다. 그들은 여기에 태어나신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그래서 지금 아기에게 경배하고, 그들의 초라한 선물을 드리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려 주신 은총 때문에 그분을 끊임없이 찬미하였고, 그분의 아들도 사랑하였던 그들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을 지금 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헤로데 왕도 아기에게 경배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보고하러 돌아간다는 것이었다."여기 임금님이 차지하기에 마땅한 황금과, 하느님께 적합한 유향이 있습니다, 아기 어머니, 여기에 또 하느님이신 당신의 갓난아기가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의 인간의 육체와 생활로 죽음의 쓰라림과 피할 수 없는 법칙을 경험할 것이므로 동시에 몰약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지 않고 아기의 육체가 그의 영혼과 같이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 당신의 아들인 이 아기는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그리스도이며, 이 이유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의 죄를 짊어져야 할 터인데, 그 죄의 벌 중의 하나가 죽음입니다. 이 몰약을 그 시간을 위한 것으로, 그의 거룩한 육체가 썩지 않고, 부활까지 그 완전을 보존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선물들 때문에 아기가 우리를 기억하고 당신 종들을 구원하고 당신의 나라를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로 인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아기 어머니가 아기를 우리의 사랑에 주어 그의 발에 입맞춤으로 하늘의 축복이 우리 위에 내리게 해 주십시오."

현자들의 말로 인하여 생겼던 공포를 극복하고, 죽음을 상기시킴으로 인하여 느꼈던 슬픔을 미소로 감춘 마리아가 아기를 내준다. 아기를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의 팔에 안겨 주니, 그 노인은 아기에게 입 맞추고 아기의 쓰다듬음을 받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준다.

예수는 방글거리며 세 사람의 가는 사슬과 가장자리 술장식을 가지고 논다. 아기는 노랗고 반짝이는 게 가득 찬 뚜껑 열린 보석상자를 신기한 듯이 내려다본다. 몰약 그릇의 뚜껑의 금강석에 햇빛이 비치며 무지개가 생기는 것을 보고 웃는다.

그런 다음 세 사람은 아기를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일어선다. 마리아도 일어선다. 제일 젊은 동방 박사가 그의 하인에게 나가자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들은 양쪽에서 몸을 굽혀 인사한다. 세 사람은 아직 좀 더 말을 한다. 그들은 차마 이 집을 떠날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감격의 눈물이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인다. 마침내 그들은 마리아와 요셉의 배웅을 받으며 문쪽으로 향한다.

아기는 내려서 세 사람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한 손은 어머니의 손에, 또 한 손은 현자의 손에 잡혀서 걷는데, 현자는 아기의 걸음을 인도하느라고 몸을 구부린다. 예수는 아직 어린아이다운 불확실한 걸음을 걸으며, 바닥에 깔린 포석 위에 해로 인하여 생긴 빛줄기를 발로 차면서 웃는다.

문지방에 이르러서--이 방은 집 전체 길이에 걸쳐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이다--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무릎을 꿇고 예수의 발에 입 맞추며 하직 인사를 한다. 마리아는 아기에게로 몸을 숙이고 그의 작은 손을 잡아 동방 박사 각 사람의 머리 위에서 축복의 손짓을 하라고 이끈다. 그것은 벌써 마리아가 인도하는 예수의 작은 손가락이 긋는 십자 성호이다.

그런 다음 세 사람은 층계를 내려간다. 여행단은 벌써 채비를 다 차리고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다. 말들의 재갈 장식이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야릇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다.

예수는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엄마는 아기를 들어 올려 층계참에 둘러친 넓은 난간에 기대 놓았다. 엄마는 아기를 떨어지지 않게 하느라고 한 팔로 가슴에 껴안고 있다. 요셉은 세 사람과 같이 내려가서 그들이 말이나 약대에 올라타는 동안 각자의 등자를 잡아 준다.

이제는 주인과 하인 모두가 말이나 약대에 올라앉아 있다. 출발 신호가 내려졌다. 세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하느라고 그들이 탄 짐승의 목에까지 몸을 구부린다. 요셉도 몸을 굽혀 인사한다. 마리아도 몸을 숙여 인사하고, 예수의 손을 이끌어 작별과 축복의 손짓을 하게 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57. 동방 박사들의 믿음을 생각해 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제는? 너희 믿음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는 영혼들아, 이제는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저 동방의 현자들은 그들에게 진리를 확증해 주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천문학적 계산과 그들의 청렴한 생활로 완전하게 된 심사숙고의 노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가졌었다.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지식에 대한 믿음, 그들의 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인자에 대한 믿음을. 지식으로 그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류가 기다린 '그 별', 즉 메시아의 별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별의 신호를 믿었다. 양심으로는 하늘의 '목소리들'을 받아서 그들에게 '저 별이 메시아가 오신 것을 가리키는 별이다'하고 말하는 같은 목소리를 믿었다. 그들의 착함으로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속이지 않으셨을 것이고, 또 그들의 의향이 옳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어떻게든지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하였다. 징조를 연구하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들만이 이 징조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들만이 올바른 뜻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불안스러운 소원을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의향의 깊은 생각은 지체하지 않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출비와 피로를 미리 알고 떠난다. 그들은 다만 하느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시고 영원히 구원해 주시기만을 청한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위하여도 아무런 인간적인 보상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들이 길을 떠나기로 결정할 때에 아무런 인간적인 걱정도 하지 않는다. 너희들 같으면 수많은 핑계를 내놓았을 것이다. 말이 서로 다른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로 그렇게 먼 여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내 말을 믿을 것인가? 그렇지 않고 나를 간첩이라고 잡아 가둘 것인가? 사막과 강과 산을 넘고 건너라고 사람들이 내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그리고 더위는? 또 고원의 바람은? 늪이 많은 지대에 창궐하는 열병들은? 비가 와서 불어난 강물들은? 서로 다른 말들은? 그리고‥‥또‥‥또'하고 너희들은 이렇게 따진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진실하고 거룩한 대담성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가 어떤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온전히 당신께 맡깁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당신의 둘째 위(位)에 경배하는 초인간적인 기쁨을 주십시오.'

그만하면 됐다. 그래서 그들은 머나먼 인도에서부터 길을 떠난다. 수리와 독수리들만이 그 위로 날아다니고, 바람과 급류 요란스럽게 몰아치는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눈이 덮인 끝없이 넓은 책장에 하느님께서 신비스러운 말을 쓰는 몽고의 첩첩산중에서 떠난다. 나일강이 발원하여 하늘빛을 띤 초록색 혈맥처럼 지중해의 파란 심장에까지 흘러가는 오지에서 떠난다. 그리고 산봉우리도, 산림도, 모래도, 대양보다도 더 위험한 물 없는 사막도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별은 그들의 밤 동안에 빛나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 하느님을 찾을 때에는 동물적인 습관이 초인간적인 초조함과 욕구에 양보해야 한다.

별은 그들은 북쪽과 동쪽과 남쪽에서 데려오며,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 세 사람을 위하여 같은 지점을 향하여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기적으로 그렇게 오랜 여행을 한 뒤에 그 같은 지점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으로 성령강림의 지혜가 미린 그들에게 주어져, 오직 한 가지 말만을, 즉 하느님의 말만을 하게 될 천국에서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게 되는 은혜가 주어진다.

별이 사라졌을 때에만 한동안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때에는 실제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한 그들은 그 일이 사람들의 악의로 인하여 일어난다는 것과, 예루살렘의 타락한 사람들은 별을 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잃을 행위를 하였다고 생각하고 몸을 떨고 뉘우치고 벌써 용서를 청할 각오를 하고 성찰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 묵상에 습관이 된 사람들이라 그들의 양심은 매우 민감하다. 그들의 양심은 끊임없는 주의와 예민한 내성으로 세련되어서, 그 안이 마치 거울같이 되어 날마다 일어나는 일의 지극히 작은 흔적도 거기에 나타난다. 그들은 양심을 주인으로 삼고, 그들에게 알려 주고 이해시키는 목소리를 삼았다. 아주 작은 잘못에 대하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적인 것을 향하여, 나라는 것에 대한 영합을 향하여 빗나가는 쪽이나 잘못된 생각 쪽으로 눈길을 한번 돌리기만 해도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주인 앞에, 이 엄격하고 밝은 거울 앞에 있을 때면 그들은 그것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지금 그 양심이 그들을 안심시키니 그들은 다시 용기를 얻게 된다.

'아아! 우리 안에 하느님께 반대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의식하는 것은 얼마난 기쁜 일인가! 하느님께서 충실한 아들의 영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축복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러한 감정에서 믿음과 신뢰와 희망의 증거가 오고 영혼의 힘과 인내가 온다. 지금은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며, 틀림없이 한번 더 나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폭풍우는 지나갈 것이다.' 평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상권을 가지고 지도하는 양심에서 오는 평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실제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하였다고 나는 말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너희들의 생활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어떤 개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난폭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영향력과 너희들의 어리석은 맹목적 숭배의 공모로 그의 권력을 얻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겸손하지 않다. 어떤 세력 있는 사람의 우두머리 하인이라든가, 어떤 관청의 안내인이라든가, 어떤 행정기관의 공무원이라든가, 그들에게 자리를 하나 마련해 준 사람에게 달린 사람이라든가 하는 사실 때문에 가엾고도 비열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

그런데 저 세 현자는 실제로 위대하였다. 우선 그들의 초자연적인 덕행으로 그러하였고, 다음에는 지식으로, 끝으로는 재물로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미소 한 번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씨앗처럼 뿌려서 그 별들의 목걸이로 천사들의 눈을 만족시키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자기들은 땅의 먼지에 앉은 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유성을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사는 유성을 기막히게 다양하게 만들어서 한없는 작품을 만드는 무한한 조각가로서 여기에는 화관과 같은 완만한 야산들을 엄지로 한번 눌러 배치하시고, 저기에는 땅덩어리라는 엄청나게 큰 이 몸의 척추와 같은 둥근 산봉우리와 뾰족한 산 붕우리로 된 골격을 만들어놓으셨는데, 이 터무니없이 큰 몸뚱이의 정맥은 강들이고, 골반은 호수들이고, 심장은 대양들이며, 옷은 삼림들이고, 베일은 구름들이고, 장식품은 투명한 빙하들이고, 보석은 다양한 뉘앙스를 보이는 터키옥과 에메랄드, 오팔과 녹주석들인데, 이것들은 수풀과 바람과 더불어 그들의 주께 찬미의 대합창을 노래한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의 원천이시며, 그들의 눈의 시선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을 주시어 현실을 보게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서는 그들의 지혜로 자기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더 날카로운 시선은 사물 안에서 사람의 손이 쓰지 않고 하느님의 생각으로 새겨진 말을 읽을 줄 아는 영혼의 눈이다.

그들은 재물의 소유자로서 자기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식한다. 천체와 유성들 금속과 보석들을 뿌려 놓으신 우주의 소유자의 재물과 비교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한없는 재물과 비교하면 티끌인 재물의 소유자로서 말이다.

유다의 읍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읍내의 초라한 집 앞에 이르러, 그들은 '그럴 수가 없어'하고 머리를 가로젓지 않고, 몸을 구부리고 무릎을 꿇고, 특히 마음속으로 자기들을 낮추고 경배한다. 저기 저 초라한 벽 뒤에는 하느님이 계시다. 멀리 서라도 뵈올 가능성을 가지기를 감히 절대로 바라지 못하면서 가호를 비는 그 하느님이 계시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의' 영원한 이익을 위하여 그 하느님께 비는 것이다. 아! 그들이 바라던 것은 이것뿐이었다. 즉 이제는 새벽도 없고 황혼도 없는 생활에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차지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었다.

그 하느님이 저 초라한 벽 뒤에 계시다. 그래도 하느님의 심장인 어린아이의 심장이 아마도 길의 먼지 속에 엎디어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그분의 종들에게는 평화, 영광, 영광과 축복'하고 외치는 그 세 사람의 심장의 고동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랑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청하는 것은 이것이다. 밤 동안, 그리고 이튿날 아침나절, 그들은 지극히 열렬한 기도로 하느님이신 아기와 깊이 통할 준비를 한다. 그들은 하느님이신 희생제물을 안고 있는 동정녀의 품이라는 제대를 향하여, 너희들이 가는 것처럼 인간적인 일에 몰두하는 영혼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침식을 잊는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인간적인 허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왕중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이다. 군주들의 궁정에서는 고관들이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들어온다. 그러니 이 왕을 뵈러 가는데 왜 명절빔을 입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명절이 어디 또 있겠느냐?

아! 그들은 먼 그들의 나라에서 그들과 동등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여러 번 성장을 해야 하였다. 그러므로 최고의 왕의 발 앞에 홍포와 보석, 비단과 귀한 깃털을 엎드리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발 앞에, 그의 부드러운 작은 발 앞에 세상의 직물, 세상의 보석, 세상의 깃털. 세상의 금속들-그의 일에 속하는 모든 것-을 놓아서, 세상의 물건인 그것들도 그것들의 창조주께 경배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어린것이 그들에게 땅바닥에 엎드려서 어린아이가 걸어가는 데 산 양탄자를 바치라고, 먼지, 먼지, 먼지에 지나지 않는 그들을 위하여 별들을 떠나온 그가 그 위로 걸어가게 하라고 명령하면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럽고 지극히 높은 이의 '목소리'에 순종한다. 그 목소리는 갓난 왕에게 선물을 가져가라고 명한다. 그들 자신이 선물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그분은 부유하시니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하느님이시니 돌아가시지도 않을 것이다'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종한다. 그래서 그들이 구세주의 가난을 구제하는 처음 사람들이 된다. 내일이면 도망자가 될 그들에게 이 금은 얼마나 유익하겠느냐! 멀지 않아 사형을 당하게 될 그에게 이 몰약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이겠느냐! 그의 무한한 순결 주위에서 끓어오르는 사람들의 음탕의 역한 냄새를 맡아야 할 그에게 는 이 유향이 얼마나 경건한 것이겠느냐!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럽고 순종하고 서로 존경한다. 덕행들은 언제나 다른 덕행들을 낳는다. 하느님께 보내지는 덕행들 다음에는 이웃에게 보내지는 덕행들이 여기 있다. 존경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제일 연세 많은 분에게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말하고, 주의 입맞춤을 제일 먼저 받고, 손을 잡아 인도하는 권리가 보류된다. 다른 사람들은 주를 또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세가 높아서 그러지를 못할 것이다.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갈 날이 매우 가까웠다. 그는 이 그리스도를 참혹한 죽음 후에 볼 것이고, 그리스도가 하늘로 돌아갈 때에 구원받은 사람들과 같이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벌써 주름이 잡힌 그의 손에 내맡기는 작은 손의 온기가 노자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새암도 없고, 오히려 나이 많은 현자에 대한 존경이 더 커진다. 그는 자기들보다 더 공로를 세웠고, 더 오랫동안 공로를 세웠다. 하느님인 아기는 그것을 안다. 아버지의 말씀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기의 행동이 말이다. 나이 많은 이를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아기의 순진한 말이 찬양받기를!

그러나 내 자녀들아, 이 환상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다른 교훈이 있다.

'자기' 자리에 있을 줄을 아는 요셉의 태도이다. 순결과 성덕의 수호자와 보호자로 거기 있다. 그러나 권리를 부당하게 가로채지 않는다. 경의를 받고 말을 듣는 것은 그의 예수와 더불어 마리아이다. 요셉은 마리아를 위하여 그것을 기뻐하고, 자기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되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요셉은 의인이다. 둘도 없는 의인이다. 그리고 항상, 이 시간에도 올바르다. 축제 분위기로 흥분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겸손하고 의롭다.

요셉은 선물들을 다행스러워한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선물들을 가지고 아내와 아기에게 더 안락한 생활을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셉에게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 그는 노동자이니,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그의 두 사랑은 유족과 안락을 좀 누려야 한다. 요셉도 동방박사들도 그 선물이 도망하는 데와 망령 생활하는 데 쓰일 것이며, 망명지에서 그리고 또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흩어지리라는 것을 모른다. 그때에는 그들이 단골과 가구 따위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하느님이 동정녀와 결합하여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께 의하여 보호된 그들의 집의 벽들 밖에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보호자이고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정배인 여자의 보호자인 요셉이 하느님의 저 신하들이 말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겸손하다. 사람들의 폭력으로 인하여 다윗의 상속인들이 왕의 소유지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는 보잘것없는 목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왕족이고, 왕다운 태도를 보인다. '그는 참으로 위대하였기 때문에 겸손하였다'는 말은 그의 경우를 두고도 말한 것이다.

기분 좋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교훈은 이렇다.

마리아가 아직 강복할 줄을 모르는 예수의 손을 붙잡고 거룩한 손짓을 인도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손을 붙잡아 인도하는 것은 언제나 마리아이다. 지금도 아직 그렇다. 이제는 예수가 강복할 줄을 안다. 그러나 때로는 강복을 해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꿰뚫린 그의 손이 지치고 낙담해서 떨어진다. 너희들이 내 축복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그때에는 마리아가 이 손에 입 맞추면서 그 노여움을 억제한다. 아아! 내 어머니의 입맞춤! 그 입맞춤에 저항할 사람이 누구냐? 그런 다음 아주 거역 못할 사랑을 가지고 그 가냘픈 손가락으로 내 손목을 잡고 강복하라고 강요한다. 나는 어머니를 물리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어머니를 너희들의 변호인을 만들려면 내 어머니를 통해야 한다.

마리아는 너희들의 모후이기 전에 내 모후이며, 너희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내 사랑조차도 알지 못하는 관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말없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십자가를 상기시키고 공중에 십자 성호를 긋게 하면서 너희들의 사정을 변호하고 나를 설득시킨다. '너는 구세주이니, 구하여라!' 하고.

내 자녀들아. 이것이 동방박사들의 광경을 보여 주는 환상에 들어 있는 '믿음의 기쁜 소식'이다. 너희들의 이익을 위하여 묵상하고 본받아라."

 

1944년 3월 3일, 금요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만을 써라. 며칠 전에 너는 성지를 참배하고자 하는 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다고 말하였지. 너는 그 성지를 보고 있다. 그것도 내가 내 현존으로 그것을 거룩하게 한 그때 그대로의 성지를 보고 있다. 증오나 사랑으로 20세기 동안을 남용하고 난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지금 너는 성지를 보고 있지만, 팔레스티나에 가는 사람은 성지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아라.

둘째 사항, 내게 대하여 말하는 책들까지도 전에는 몹시 좋아하였었지만, 지금은 아무 맛도 없는 것 같다고 한탄한다. 이것도 네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내 배려로 실제적인 사실들이 네게 나타났는데, 사람들의 작품이 어떻게 더 완전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느냐? 이러한 인상은 잘된 번역의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번역들은 언제나 원문의 힘을 변질시킨다. 사람들의 기술은 장소에 대해서나 사실과 감정에 대해서나 '번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사실에 관하여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감정에 관하여 항상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다. 특히 합리주의가 그 기술에 표현되던 생명을 거기에서 상하게 한 지금은 더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에게 보고 알기를 허락하면, 다른 기술은 일체 생기 없는 것으로 보여서 불만족스럽고 지긋지긋하게 생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셋째로, 오늘은 금요일이다. 나는 네가 내 고통을 다시 생활하기를 원한다. 나는 오늘 이것을 네게 요구한다. 즉 내 고통을 네 정신과 육체로 다시 생활하는 것을 말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평화와 사랑으로 고통을 당하여라. 네게 강복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58. 이집트로 피난

 

나는 다음 광경을 본다.

 

밤이다. 요셉은 손바닥 만한 그의 방에서 작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많은 일을 정직하게 정성껏 하고 나서 쉬는 사람의 평온한 잠이다. 나는 방의 어둠 속에 있는 그를 보는데, 그 어둠은 겨우 벙싯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닫히지는 않은 창틈으로 새들어오는 한줄기 달빛 때문에 겨우 약간 엷어졌다. 요셉이 그 작은 방에서 더워서 그랬거나, 또는 새벽에 시간을 조절해서 재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는 한옆으로 누워 자는데, 자면서 꿈속에 무슨 환상을 보는지 빙그레 웃고 있다. 그러나 미소가 공포로 변한다. 그는 무슨 악몽을 꾸는 것처럼 푹하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벌떡 일어난다.

요셉은 침대에 앉아서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빛줄기가 들어오는 작은 창 쪽을 바라본다 깊은 밤이다. 그러나 그는 침대 밑에 펼쳐져 있는 옷을 집어, 여전히 침대에 앉은 채 맨살 위에 입은 소매 짧은 속옷 위에 걸친다. 담요를 젖히고 방바닥에 내려서며 그의 샌들을 찾는다. 샌들을 신고 끈을 맨다. 그는 일어나서 침대 맞은편에 있는 문 쪽으로 간다. 그 문은 동방 박사들을 맞이하였던 방으로 통하는 침대 옆에 있는 문이 아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겨우 똑똑하고 가만히 두드린다.

요셉은 들어오라고 하는 것을 알아들은 모양이어서 조심해서 문을 열고, 소리 나지 않게 다시 닫는다. 그는 문으로 향해 가기 전에 불꽃 하나만 있는 작은 기름등잔에 불을 켜서 그것으로 발 밑을 밝힌다. 그는 자기 방보다 약간 더 큰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요람 옆에 낮은 침대가 놓여 있다. 벌써 야등이 하나 켜져 있는데, 한구석에서 흔들리고 있는 작은 불꽃은 약한 빛을 내는 작은 금빛 별과 같아서 자는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은 채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고 있지 않고, 밝은 빛깔 옷을 입고 요람 가가이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자고 있는 예수를 지켜보며 기도를 드린다. 예수는 내가 동방 박사들을 본 환상 때에 본 것과 같은 나이다. 머리카락이 굽슬굽슬한 예쁜 작은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주먹을 쥔 한 손은 목 언저리에 얹고 있는 아름답고 볼그레하며 금발의 한 살쯤 된 어린 아이다.

"당신 안 자고 있었소?" 하고 요셉이 놀라서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예수가 몸이 좋지 않소?"

"아니에요! 예수는 아무렇지 않아요. 저는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자겠어요. 왜 오셨어요, 요셉?" 마리아는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말한다.

요셉은 아기를 깨우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그러나 흥분해서 말한다. "즉시 여기서 떠나야 하오. 즉시 말이오. 궤와 자루를 거기 넣을 수 있는 것과 아울러 준비하오. 나머지는 내가 준비하겠소.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물건을 가지고 가겠소‥‥ 새벽에 도망합시다. 그보다 더 일찍 떠나고 싶소. 하지만 집주인 여자에게 말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왜 이렇게 도망해요?"

"나중에 이유를 설명해 주겠소. 예수를 위해서요. 한 천사가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하여라' 하고 내게 말했소. 시간을 허비하지 마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준비하겠소."

마리아에게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마리아는 천사니 예수니 도망하느니 하는 말을 듣자마자 아들에게 위험이 닥쳐왔다는 것을 깨닫고, 양초보다도 더 창백해진 얼굴로 벌떡 일어서서 몹시 불안해하며 한 손을 가슴에 얹는다. 마리아는 빠르고 가볍게 걸으며 궤와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있는 침대에 펼쳐 놓은 자루에 옷들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몹시 불안해하지만 당황하지 않으며, 일을 서둘러 하지만 또한 질서 있게 한다. 이따금씩 요람 곁으로 지나가며, 알지 못하고 자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본다.

"내가 도와주어야 하겠소?" 하고 요셉이 벙싯 열린 문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묻는다.

마리아는 항상 "아니요" 하고 대답한다.

다만 자루가 꽉 차서 무겁게 되었을 때에는 요셉을 불러 그것을 봉해서 침대에서 치우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누가 도와주기를 원치 않고 혼자서 요령 있게 처리하여 긴 꾸러미를 들고 그의 작은 방으로 옮긴다.

"모직 담요들을 가져가야 해요?" 하고 마리아가 묻는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가져가요. 나머지는 우리가 모두 잃을 것이니까.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전부 가져가오. 그것은 유익할 거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우리는 먼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요, 마리아!‥‥" 요셉은 이 말을 하면서 매우 슬퍼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어떤 심정인지 우리도 생각한 수 있다. 마리아가 한숨을 쉬면서 그의 담요와 요셉의 담요들을 개키니 요셉이 그것들을 바로 동인다.

"이불들과 자리들은 두고 갑시다" 하고 요셉은 담요들을 동여매면서 말한다. "나귀 세 마리를 쓴다 해도, 그놈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을 수는 없소. 멀고 힘든 길을 가야 할 터인데, 산을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사막도 지나가야 하오. 예수를 잘 감싸오. 나는 동방 박사들의 선물을 가졌소. 저기 가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유익할 거요. 내게 있는 돈은 모두 나귀 두 마리를 사는 데 쓰겠소. 우리는 나귀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으니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오. 새벽을 기다리지 않고 가겠소. 나귀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아요. 당신은 모든 준비를 끝내도록 하오." 그러면서 나간다.

마리아는 또 어떤 물건을 거둔다. 그런 다음 예수를 살펴보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가 전날 빨았는지 아직 축축해 보이는 작은 옷 몇 가지를 가지고 돌아온다. 그 옷들을 개켜서 속옷류 속에 뭉쳐 넣고 다른 것들과 같이 놓는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마리아는 몸을 돌려 한구석에 예수의 작은 장난감을 본다. 나무로 깎아 만든 작은 양이다. 마리아는 흐느끼며 그것을 집어 가지고 입 맞춘다. 나무에는 예수의 작은 잇자국들이 있고, 양의 귀는 온통 잘근잘근 깨물어졌다. 마리아는 가벼운 나무 조각을 깎아 만든 값어치 없는 그 물건을 쓰다듬는다. 그 나무 조각이 예수에 대한 요셉의 애정을 말해 주고 마리아에게 아기를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그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물건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닫힌 궤 위에 있는 다른 물건들과 같이 놓는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요람에 있는 예수뿐이다. 마리아는 아기를 잘 채비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요람으로 가서 아기를 깨우려고 요람을 조금 흔든다. 그러나 아기는 잠깐 끙끙거리더니 몸을 뒤치고 계속 잔다. 마리아는 아기의 굽슬굽슬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예수는 그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 마리아는 몸을 숙여 그의 뺨에 입을 맞춘다. 예수는 완전히 잠을 깨서 눈을 뜬다. 그리고 엄마를 보고 방긋 웃으며 두 손을 엄마의 가슴으로 내민다.

"오냐, 내 사랑아. 그래, 젖 주마. 보통 때보다는 이르다마는‥‥ 그렇지만 너는, 너는 언제나 엄마 젖을 빨려고 하지, 내 거룩한 어린양아!"

예수는 웃으면서, 그 작은 발을 담요 밖으로 내밀고 흔들며, 보기에 아주 귀여운 그 어린아이다운 기쁨으로 팔을 내저으면서 논다. 아기는 엄마의 명치에 두 발을 갖다 대고 몸을 구부려 금발 머리를 엄마의 가슴에 갖다 댄다. 그러다가는 몸을 젖히고 마리아의 옷을 여미는 끈을 잡고 옷을 헤치려고 하면서 웃는다. 아마포로 지은 소매 짧은 샤쓰를 입은 아기는 대단히 아름답고 포동포동하고 꽃처럼 볼그레하게 보인다.

마리아는 몸을 숙이고 이렇게 요람을 가로질러 이렇게 보호하면서 동시에 울고 웃는다. 그동안 아기는 모든 아기들이 하는 그런 말로-사실은 말도 아니지만-종알거리는데, 그 말 중에서는 "엄마"라는 말만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다. 아기는 엄마가 우는 것을 이상한 듯이 쳐다본다. 아기는 마리아의 뺨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눈물 쪽으로 손을 뻗어서 쓰다듬는 바람에 마리아의 얼굴을 적신다. 그런 다음 그 형용할 수 없는 태도로 몸을 엄마의 가슴에 갖다 대고 그 작은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꼭 달라붙는다.

마리아는 아기의 머리에 입 맞추고 그를 안아 앉히고 옷을 입힌다. 자 됐다. 모직으로 만든 작은 옷을 입었고, 양발에 각각 아주 작은 샌들이 신겨졌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주고, 예수는 엄마의 맛있는 젖을 열심히 빤다. 오른쪽에서는 이제 젖이 조금밖에 안 나오는 것 같자 왼쪽을 찾아가서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아래에서 위로 엄마를 올려다본다. 그러다가 머리를 마리아의 가슴에 대고, 볼그레하고 동그란 작은 뺨을 어머니의 희고 둥근 젖에 갖다 댄 채 잠이 든다.

마리아는 가만히 다시 일어나 아기를 자기 침대의 이불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기를 자기의 겉옷으로 감싼다. 요람으로 가서 작은 담요들을 개킨다. 마리아는 작은 매트도 가져가야 하나 하고 망설인다. 그렇게도 작은데! 가져갈 수 있다. 마리아는 매트를 베개와 함께 벌써 궤 위에 얹혀 있는 물건들 곁에 놓는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통하여 박해당하는 이 가엾은 엄마는 텅 빈 요람을 내려다보며 운다!

요셉이 돌아온다. "준비 다 되었소? 예수도 준비됐고? 아기 담요와 작은 침대도 챙겼소. 요람은 가져갈 수 없소. 하지만 아기가 적어도 그의 작은 매트는 있어야 하오. 그들이 죽이려고 애쓰는 가엾은 아기!"

"요셉! " 마리아는 이렇게 외치며 요셉의 팔에 매달린다.

"그렇소, 마리아, 아기를 죽이려고 하오! 헤로데가 그의 왕권 때문에 아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아기를 죽이려고 하고 있소. 저 더러운 야수 같은 자가 이 무죄한 어린아이를 무서워한단 말이오. 아기가 도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소. 그러나 그때에는 우리가 멀리 가 있을 거요. 나는 그가 아기를 갈릴래아까지 찾아서 복수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소. 우리가 갈릴레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벌써 너무 어려을 것이고, 나자렛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더구나 어려울 것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내기도 너무 어려울 거요. 사탄이 그가 자기의 충성스러운 종노릇 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서 그를 도와준다면 몰라도.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하느님 쪽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실 거요, 마리아, 울지 마오. 당신 우는 것을 보는 것이 귀양지로 떠나야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내 마음을 괴롭히오."

"요셉, 용서하세요! 저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니고, 얼마 안 되는 재물을 잃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우는 거예요‥‥당신은 벌써 그렇게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데! 그런데 지금 당신은 단골도 다 놓치고, 집도 없게 되었어요! 제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됩니까, 요셉!"

"얼마나 짐이 되느냐고? 아니오, 마리아, 당신이 내게 짐이 되지는 않소. 당신은 나를 위로하오. 항상. 내 일은 생각하지 마오. 우리는 동방 박사들이 준 보물들이 있소. 처음에는 그 보물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요. 그다음에는 내가 일거리를 얻게 될 거요. 정직하고 능력 있는 일꾼은 즉시 일을 요령 있게 처리하오. 당신 여기서 보았지요. 나는 시간이 모자라서 일을 다 하지 못할 지경이었소."

"알아요, 그렇지만 누가 당신의 향수를 달래 주겠어요?"

"그러는 당신은, 당신에게 그렇게도 소중한 집에 대한 향수를 누가 달래주겠소?"

"예수 가요. 예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제가 그곳에서 가지고 있던 것을 아직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나도 예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몇 달 전에 다시 가기를 바란 고향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오. 나는 내 하느님을 차지하고 있소.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무엇보다도 내게 소중한 것에서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소. 우리는 예수를 구하기만 하면 되오.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되오. 비록 우리가 이 하늘과 이 들판, 그리고 이보다 더 소중한 갈릴래아의 들판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해도, 예수가 우리에게 있을 터이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 될 거요. 마리아, 갑시다. 동이 트기 시작했으니, 우리 집주인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 짐을 실을 때가 되었소,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거요."

마리아는 순종해서 일어난다. 마리아가 겉옷을 입는 동안 요셉은 마지막 꾸러미를 하나 싸서 들고나간다.

마리아는 아기를 소중히 들어 올려 숄에 싸서 가슴에 꼭 껴안는다. 그가 여러 달 동안 들어 있던 방의 벽을 보며 손으로 스친다. 마리아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복된 집!

마리아는 나온다. 요셉의 방이었던 작은 방을 지나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집주인 여자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마리아에게 입맞춤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숄을 들치고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들은 바깥 계단으로 해서 내려온다.

새벽의 처음 돋는 빛으로 겨우 물건들을 구별할 수는 있다. 이 희미한 빛 속에 타고 갈 짐승 세 마리가 보인다. 제일 튼튼한 놈이 짐을 싣고 있다. 다른 놈들에는 안장이 얹혀 있다. 요셉은 첫째 나귀의 길마 위에 궤와 꾸러미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자루 위에 목수의 연장을 싸서 올려놓은 것이 보인다. 또다시 작별인사와 눈물, 그런 다음 마리아가 나귀에 올라타고, 그동안 집주인 여자는 예수를 목에 안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돌려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한다. 요셉도 마리아의 나귀 새끼를 마음대로 잡기 위하여 자기가 탈 나귀를 짐 실은 나귀에 붙잡아 맨 다음 안장에 올라탄다.

아직 동방 박사들의 환상적인 광경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베들레헴은 그가 당하게 될 일은 알지 못한 채 평온하게 자고 있는 동안 도망은 시작된다.

- 환상은 그것으로 끝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59. "고통은 우리에게 성실한 벗이었다. 고통은 여러 가지 모습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일련의 환시도 그러하다. 까다로운 학자들과 일체 의견을 달리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내가 세상에 탄생하기 전후와 탄생과 동시에 일어났던 광경들을 네게 보여 주면서 왔다. 그 광경 자체는 넉넉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광경 자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항상 하느님께 더 큰 찬미를 드리기 위하여 -사실 이 때문에 그것이 용서받기는 하였다마는- 현실을 그대로 두었으면 대단히 아름다웠을 것을 비현실적인 것을 만드는 인간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덧붙여진 요소로 인하여 왜곡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이 방식으로 인하여 내 인간성과 마리아의 인간성이 깎아내려지지 않고, 마찬가지로 내 천주 성과 아버지의 위엄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사랑이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내 어머니의 공로와 내 완전한 겸손과 또한 영원하신 주의 전능하신 자비도 그로 인하여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광경들을 네게 보여 준 것은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 광경에서 유래하는 초자연적인 의미를 적용할 수 있게 하고, 그 의미를 너희들에게 생활 규칙으로 주기 위해서이다.

 

십계명은 율법이다. 그리고 내 복음은 이 율법을 더 명백하게 하고 지키기에 더 사랑스러운 것이 되게 하는 가르침이다. 이 율법과 이 가르침은 사람들을 성인을 만드는 데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너희 안에서 정신을 지나치게 지배하는 너희 인간성으로 하도 얽매여서, 율법과 내 가르침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낙망하여 멈추거나 한다.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과 복음의 본보기를 들면서 너희들을 향상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예수, 마리아, 요셉은(성인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와 같지 않으셨어요. 그분들도 강했었지요. 그분들은 고통 중에도 금방 위로를 받으셨고, 또 그분들이 당한 그 얼마 안 되는 고통 중에도 격렬한 감정(수난)을 느끼지 않으셨어요. 그분들은 벌써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분들이었지요."

얼마 안 되는 고통이라고! 격한 감정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우리에게는 고통이 충실한 벗이었다. 고통은 갖가지 모습을 띠었었고 온갖 이름을 다 가졌었다. 수난‥‥ 너희들을 빗나가게 하는 악습들을 '수난'(Passions, 열정)이라고 불러서 부적당한 말을 쓰지 말아라. 그것들을 숫제 '악습'이라고 부르고 게다가 으뜸가는 악습이라고 불러라. 이러한 악습들을 우리가 몰랐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눈과 귀가 있어서 보고 들을 수 있었고, 또 사탄은 행동 중에 있는 이 악습들을 그 추잡스러움과 아울러 보여 주고 그의 암시로 우리를 유혹하면서 이 악습들을 우리 앞과 우리 주위에 내보이곤 하였다. 그러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맞겠다는 의향으로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그 추잡스러움과 그 암시가 사탄이 꾀하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그리고 사탄이 악착스럽게 굴면 그럴수록 우리는 그가 우리 육체와 정신의 눈에 내보이는 더러운 암흑에 대한 혐오로 하느님의 빛 속으로 더욱더 피해 들어갔었다.

그러나 철학적인 의미로서의 수난(Passions)은 우리 안에서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고향을, 나자렛이라는 작은 도시를 팔레스티나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우리는 우리 집과 친척과 친구들에 대하여 애정을 느꼈다. 왜 우리가 그런 감정들을 느껴서는 안 되었겠느냐? 그러나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감정들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좋은 동반자를 만들었다.

내 어머니는 한 4년 뒤 나자렛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 집으로 돌아와, 그가 '예' 하는 말로 자기의 태를 열어 하느님의 배아(胚芽)를 받았던 방 벽에 입 맞추었을 때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요셉은 그의 친척들과 더 많아지고 커진 조카들에게 기쁘게 인사하였다. 요셉은 동향인들이 그를 기억하고, 즉시 그의 능력 때문에 부탁을 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좋아하였다. 나도 우정에 민감하였고, 유다의 배반 때문에는 정신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어머니도 요셉도 집과 친척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하느님의 뜻보다 앞세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해야 할 때에는 히브리인들의 미움이나 유다의 원한을 살 수 있는 말들을 참지 않았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를 나에게 집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속자로서의 나에게가 아니라 부유한 나에게 집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빵을 많아지게 한 나는 내가 원하기만 했으면 돈을 많이 생기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인간적인 만족을 마련해 주려고 오지는 않았었다. 내가 부른 사람들에게 더구나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나는 희생과 초탈과 순결한 생활과 자기 신분에 맞는 겸손을 권장하였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그것이 어떤 사람을 붙잡아두는 방법이라 해서 그의 탐욕과 관능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돈을 그에게 주었다면, 내가 무슨 스승이며, 무슨 의인이었겠느냐?

내 나라에서는 스스로 '작아지면' '위대한 사람'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내 나라에서는 지배할 능력이 없다. 그것은 마귀들의 침대에 까는 짚이다. 세상의 위대함은 하느님의 율법과는 대립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부정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자리를 독점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웃을 발판으로 써서 이웃을 발로 밟고 그 위에 올라선다. 지배하기 위하여는 죽일 줄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죽일 줄을 알고, 자리들을 강탈하거나 나라들을 정복하며, 남에게서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재산을 빼앗아서 자기 자신들이 부자가 되는 자들을 세상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아니다. '위대함'은 죄악과 양립하지 못한다. 위대함은 착함과 정직과 사랑과 정의에 들어 있다. 너희들의 '위대한 사람들'이 어떤 독이 든 과일을 너희들에게 주는지 보아라. 그들은 그 열매들을 그들의 내적 정원의 악마적 퇴폐 속에서 따는 것이다.

네가 마지막으로 본 환상이-나는 그 환상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지, 그들에 관한 진실을 듣기를 원치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소용없을 다른 것에 대하여 말하느라고 지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이 마지막 환상은 마태오복음에 두 번 말한 어떤 특별한 점을, 두 번 되풀이한 어떤 구절을 해명한다.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2: 11),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2: 27). 그런데 나는 마리아가 자기 방에 아기만 데리고 혼자 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아는 자기들이 진창이고 부패인 만큼 자기들과 같은 인간이 날개와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아기를 낳은 후의 마리아의 동정과 요셉의 순결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지극히 부패한 자기들의 영혼과 육체로 인해서 더럽혀진 자기들의 정신이 너무 타락하여. 여자에게서 육체를 보지 않고 영혼을 봄으로써 그를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고,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숭고한 것을 원하면서 초자연적인 분위기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자기를 들어 올릴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자 그러면, 나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저자(著者)들에게, 나비가 될 수 없는 벌레들에게, 그들의 정열의 점액으로 더러워지고 백합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는 파충류 같은 비열한 사람들에게 말한다. 마리아는 동정녀였고 동정녀로 남아 있었으며, 그의 영이 오직 하느님 성령과 결합한 것과 같이 그의 영혼만이 요셉과 결혼하였다고. 마리아는 성령의 작용으로 외아들을 잉태하여 가졌었으니, 그것은 하느님과 마리아의 외아들인 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내 어머니라는 복된 여인에 대한 애정 곁들인 존경 때문에 나중에 피어난 전설이 아니고, 하나의 진리이며, 이 진리는 초기에서부터 알려졌었다.

마태오는 다음 세기에 난 사람이 아니라, 마리아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마태오는 순진하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믿기 잘하는 시시한 무식쟁이나 미개인이 아니었다. 그는 너희가 지금 세리라고 부르고 우리 시대에는 염세리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보고 듣고 이해할 줄을 알았고 진리와 오류를 구별할 줄 알았다. 마태오는 사실들을 풍문으로, 중간에 든 사람을 통하여 들은 것이 아니다. 그는 마리아의 입에서 정보들을 얻었다. 그는 스승과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마리아에게 정보를 가르쳐 달라고 청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마리아의 신성불가침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마리아가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 친척들도 마리아가 다른 아이들을 낳았었더라면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논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고보, 유다, 시몬, 요셉은 마태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마태오는 만일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다면, 그것들을 쉽게 대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태오는 '일어나 네 아내를 데리고'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고,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라고 말한다. 그는 처음에 '요셉과 약혼한 동정녀.' '마리아와 남편 요셉'이라고 말하였다.

저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내'라는 용어가 욕된 것이기나 한 것처럼,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말투였다고 내게 말하지 말기 바란다. 순결을 부인하는 자들아, 그렇지 않다. 성경 첫머리에서부터 '‥‥이리하여 남자는‥‥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실질적인 결혼 전에는 '짝'이라고 부르고, 그다음에는 여러 차례, 또 여러 장에서 '아내'라고 부른다. 아담의 아들들의 배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의 '아내'라고 불린 사라도 마찬가지이다. '네 아내 사라'라고 되어 있다. 또 롯에게도 '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라고 하였다 룻기에 '마홀론의 아내 모압 여자'라는 말이 있다. 열왕기 상에는 '엘가나는 두 아내를 거느렸다'라는 말이 있고, 더구나 '그리고 엘가나가 그의 아내 안나와 동침하였다'는 말이 있고, 또 '엘리아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였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역시 열왕기에 '히타이트 사람 우리아의 아내 벳사베가 다윗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는 말이 있다. 또 교회에서 너희들에게 결혼생활에서 거룩하게 지내라고 권고하기 위하여 너희들의 결혼식 때에 노래하는 아름다운 책인 토비트에는 어떤 말이 있느냐?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토비트가 자기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또 '토비트는 그의 아들과 아내와 같이 도망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복음서에, 즉 그리스도 시대에, 현대어로 쓰던 시대, 그때로서는 현대어로 쓰던 시대, 따라서 베껴 쓰는 데 착오가 있을 수가 없던 시기에 바로 마태오복음 22장에 이런 말이 있다. '‥‥첫째가 아내를 얻었다가 죽어서 그의 아내를 아우에게 남겨 주었다'*고 말이다. 또 마르코 복음 10장에 '아내를 버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고, 루가는 네 번 계속해서 엘리사벳을 즈가리야의 아내라고 부르고, 8장에는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라는 말이 있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이 명사는 주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의하여 금지된 단어가 아니었고, 하느님과 그분의 놀라운 업적이 화제에 올랐을 때에는 말해서 안 되고 더구나 써서는 안 되는 불결한 단어가 아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하고 말할 때 마리아가 요셉의 아내는 아니면서 예수의 친어머니였다는 것을 너희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언제까지나 요셉의 동정녀인 아내로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환상이 마지막 교훈이다. 이것은 마리아와 요셉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후광이다. 침범되지 않은 동정녀, 순결하고 의로운 남자. 이들은 두 송이의 백합이었으니, 나는 그 가운데에서 오직 순결의 향기 이야기만 들으면서 컸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아, 네게는 자기 집과 고향을 억지로 떠나게 된 마리아의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에 대하여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필요 없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네가 알고 있으며, 네가 그 때문에 죽도록 괴로워한다. 네 고통을 다오, 나는 그것만을 원한다. 그것이 네가 내게 줄 수 있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은 것이다. 마리아야, 오늘은 금요일이다. 네 십자가를 질 수 있게 골고타에서 내 고통과 마리아의 고통을 생각하여라. 평화와 우리의 사랑이 너와 함께 남아 있다."

 

*역주 :공동번역에는 아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므로 이 책 원문대로 의역하였음.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0. 이집트에서의 성가정

 

<성가정에 대한 기분 좋은 환상>: 여기는 이집트이다. 사막과 피라미드가 보이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주 하얀 작은 단층집이 하나 보인다. 매우 가난한 사람들의 초라한 집이다. 벽들은 겨우 초벽을 한 위에 회칠 한 번만 하였다. 이 작은 집에는 둘 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 둘이 나란히 나 있다. 나는 지금 당장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집은 모래 섞인 작은 땅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고 갈대를 땅에 박은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데, 이것은 도둑을 막기에는 약한 방벽이다.

그 울타리는 어떤 떠돌아다니는 개나 도둑고양이나 막는 데 소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보아하니 재물의 그림자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누가 무엇을 훔쳐갈 생각을 하겠는가?

갈대 울타리에는 매덩굴 같아 보이는 덩굴풀을 올려서 더 두꺼워보이고 덜 초라해 보이게 하였다. 한쪽에만 꽃이 핀 재스민 소관목 한 그루와 아주 흔해빠진 장미나무를 여러 그루 모아 심은 것이 있다. 땅은 비록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작은 뜰을 만들려고 참을성 있게 가꾸었다. 뜰 한가운데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없는 오래된 큰 나무 밑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개의 작은 화단에는 매우 빈약한 채소들이 보인다. 그 큰 나무는 햇볕이 내리쬐는 땅과 작은 집에 그늘을 좀 만들어 준다. 이 나무에는 흰 빛깔과 검은 빛깔이 섞인 작은 염소 한 마리가 매여 있는데, 그놈은 땅 위에 던져 준 나뭇가지 몇 개의 잎들을 뜯어먹고 새김질한다.

그리고 거기 땅에 편 자리에 예수 아기가 있다. 두 살, 기껏해야 두 살반 쯤 되어 보인다. 아기는 양이나 말같이 깎은 나무 조각과 그의 금발머리보다는 덜 굽슬거리는 리본 같은 가벼운 나무 오라기를 가지고 논다. 그의 포동포동한 손으로 그 나무 목걸이를 그 짐승들의 목에 걸려고 애쓴다.

아기는 즐거워하고 미소를 짓고 있다 대단히 아름답다. 아주 숱이 많은 컬이 된 금발을 가진 작은 머리에, 살갗은 희고 약간 불그레하며, 짙은 파란색 눈은 생기가 있고 빛난다. 표정은 자연히 다르지만 나는 내 예수의 눈 빛깔을 알아본다. 매우 아름다운 어두운 두 개의 청옥과 같다. 아기는 긴 흰 빛깔 옷을 입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속옷이 되는 것이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온다. 발에는 지금은 아무것도 신지 않았다. 조그마한 샌들이 자리 위에 있는데, 역시 아기의 장난감이 된다. 샌들을 짐승들의 목에 메우니, 그놈들은 마치 조그마한 짐수레처럼 가죽끈으로 끈다. 매우 단순한 샌들이다. 바닥 가죽끈 두 개로 된 것인데, 그 가죽끈 두 개가 하나는 코에 달려있고, 하나는 뒤축에 달려 있다. 코에 달려 있는 가죽끈은 얼마만큼 와서는 둘로 갈라진다. 그래서 한쪽 끈은 뒤축에서 오는 가죽끈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발목에 고리처럼 둘려 있는 다른 가닥에 가서 걸리게 되어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모님이 역시 나무 그늘에 있다. 마리아는 촌스러운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며 아기를 살핀다. 나는 그의 가냘픈 흰 손이 날실 사이로 북을 던지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며, 베틀 신을 움직이는 샌들을 신은 발을 본다. 마리아는 접시꽃 빛깔 같은 분흥색을 띤 보랏빛 웃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금발을 앞가르마를 타서 머리 위에 갈라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머리를 단순하게 땋아서 목덜미 위로 기분 좋게 늘어뜨렸다. 옷소매는 길고 좁은 편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그의 얼굴의 지극히 부드러운 표정 외에 다른 장식은 없다. 그의 살갗, 머리와 눈의 빛깔, 얼굴 모양, 모두가 내가 늘 보는 마리아와 같다. 여기서는 매우 젊어 보인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인다. 얼마 후 마리아는 일어나 아기에게로 가서 몸을 구부리고 샌들을 다시 신기고 정성스럽게 끈을 맨다. 그런 다음 아기를 쓰다듬어 주고. 머리와 눈에 입을 맞춘다. 아기가 떠듬거리며 말을 하니 대답을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런 다음 베틀로 돌아가 짜진 옷감과 날실 위에 리넨천을 펴놓고, 자기가 앉아 있던 걸상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 아기는 엄마를 눈으로 지켜보며, 혼자 남겨두어도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

일이 끝나고 저녁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해가 나무 없는 모래 위로 내려오고, 먼 피라미드 뒤로는 온 하늘이 꼭 불붙은 것같이 보인다.

마리아가 돌아와서 예수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다. 아기는 군소리 없이 복종한다. 엄마가 장난감과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들여가는 동안, 아기는 그 작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염소 있는 데로 뛰어가 염소 목에 팔을 얹는다. 염소는 매애 하고 울면서 주둥이를 예수의 어깨에 비빈다.

마리아가 돌아온다. 지금은 머리에 긴 베일을 썼고 손에는 항아리를 들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의 귀여운 손을 잡고, 둘이 작은 집 주위를 돌아 집의 다른 편으로 간다.

나는 그 우아한 광경을 감상하며 따라간다. 자기 걸음을 아기의 걸음에 맞추는 성모님과 그 곁에서 종종걸음을 치는 아기. 나는 볼그레한 발뒤꿈치가 들렸다가 아이들의 발걸음의 특별한 맵시로 오솔길의 모래로 내려지는 것을 본다. 자세히 보니 아기의 작은 옷이 발까지 내려오지 않고, 장딴지 중단까지만 내려온다. 그 옷은 대단히 깨끗하고 간단하며, 허리는 역시 흰빛인 끈으로 졸라맸다.

나는 집 앞쪽 울타리에는 촌스러운 사립짝이 달려 있는 것을 본다. 마리아는 그 사립짝을 열고 거리로 나간다. 그것은 어떤 도시나 어떤 보잘것없는 마을 끝에 있는 초라한 거리로, 소도시와 들판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마리아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들판 쪽을 보지 않고 마을의 중심 쪽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몇십 미터 위쪽에 있는 못인지 우물인지가 있는 곳을 향하여 간다. 그 위로는 종려나무들이 둥그렇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곳에 는 땅에 푸르른 풀이 깔려 있다.

여기서 어떤 남자가 거리로 해서 앞으로 오는 것이 보이는데, 그리 크지는 않지만 튼튼하게 생겼다. 나는 요셉을 알아본다. 그는 빙그레 웃고 있다. 그는 내가 천국에 관한 환상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젊어 보인다. 나이는 많아야 마흔쯤 되어 보인다. 수염과 머리털은 숱이 많고 검으며, 살갗은 꽤 햇볕에 그을었고, 눈은 짙은 빛깔이다. 성실하고 기분 좋은 얼굴,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얼굴이다. 예수와 마리아를 보고 그는 걸음을 재게 움직인다. 그는 왼쪽 어깨에 톱 같은 것과 대패 같은 것을 메고 있고, 손에는 그가 일하는데 쓰는 다른 연장들을 들고 있는데. 지금 연장들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많이 틀리지 않는다.

그는 개암색과 밤색 중간색의 옷을 입고 있는데, 대단히 길지는 않고-발목 조금 위까지 내려온다-소매는 팔꿈치까지 온다. 허리에는 아마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허리띠를 맸다. 진짜 일꾼 옷이다. 발에는 발목에서 서로 엇갈리는 끈이 달린 샌들을 신었다.

마리아가 미소를 짓고, 아기는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잡히지 않는 팔을 내민다. 세 사람이 한데 모이자, 요셉은 몸을 굽혀 아기에게 과일 한 알을 주는데, 모양과 빛깔이 사과 같다. 그런 다음 팔을 내미니, 아기는 엄마 손을 놓고 요셉의 팔에 안겨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요셉의 어깨 오목한 곳으로 숙인다. 요셉은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아기의 입맞춤을 받는다. 우아한 애정이 넘쳐흐르는 몸짓이다.

나는 마리아가 서둘러 요셉에게서 연장을 받아 요셉이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아기를 안아 줄 수 있게 하였다는 말을 잊을 뻔했다.

그런 다음, 예수의 키에 맞추느라고 쭈그리고 앉았던 요셉이 다시 일어나서 왼손으로는 다시 연장을 들고 오른 팔로는 어린 예수를 그의 튼튼한 가슴에 껴안는다. 마리아가 손잡이 달린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고 샘으로 가는 동안 요셉은 집 쪽으로 간다.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요셉은 아기를 땅에 내려놓고, 마리아의 베틀을 들어 안으로 들여가고, 그다음에는 염소젖을 짠다. 예수는 이 작업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요셉이 집 한편에 지어놓은 작은 헛간에 염소를 가두는 것을 바라본다.

저녁 어두움이 내리깔리기 시작한다. 나는 모래 위에서 자줏빛을 띠는 황혼의 붉은빛을 살펴본다. 모래 위에서는 더위로 인하여 공기가 흔들리는 것 같다. 피라미드는 더 컴컴한 빛으로 보인다.

요셉은 집안의 어떤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방은 작업장도 되고 부엌과 식당도 되는 것 같다. 다른 방은 쉬는 방으로 생각되지만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방바닥 높이에 불을 피운 아궁이가 있고, 역시 이 방에 목수의 작업대와 같은 탁자와 등 없는 걸상들과, 그릇 몇 개와 기름등잔 둘이 얹혀 있는 선반들이 있다. 한 구석에는 마리아의 베틀이 있다. 정말 질서 정연하고 대단히 깨끗하다. 대단히 가난하지만 매우 깨끗한 집이다.

내가 한 가지 주의한 것은 이런 것이다. 예수의 인간 생활과 관계가 있는 모든 환상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예수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요한이 항상 정돈이 잘 되고 깨끗한 옷을 입었고 꾸밈이 없지만 머리를 잘 손질하고 수수한 옷에 단순하지만 깨끗한 머리쓰개를 써서 그들의 품위가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마리아는 손잡이 달린 항아리를 가지고 돌아와서 밤이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에 문을 닫는다. 방은 요셉이 불을 켜서 작업대 위에 올려놓은 등불로 밝혀진다. 요셉은 마리아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자질구레한 일을 더 좀 하려고 작업대 위로 몸을 굽힌다. 불이 방안을 밝힌다. 예수는 작업대에 손을 얹고 머리를 쳐들고 요셉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그런 다음 그들은 기도를 드리고 나서 식탁에 둘러앉는다. 그들은 물론 십자 성호를 긋지 않지만 기도는 한다. 요셉이 기도를 드리고, 마리아가 응답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시편의 어떤 구절인 것 같은데,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말로 왼다.

그런 다음 앉는다. 지금은 램프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안고 염소젖을 먹인다. 마리아는 둥그스름한 빵에서 잘라 낸 빵조각들을 양젖에 담근다. 빵은 껍질도 검고 속도 검다. 아마 호밀이나 보리로 만든 빵인 것 같다. 그것은 밀기울이 많이 들어간 갈색 빵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빵과 치즈를 동시에 먹는다. 치즈 한 조각과 빵을 많이 먹는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예수를 자기 앞에 있는 조그마한 걸상에 앉힌다. 마리아는 익힌 야채를 가져와서-그 야채는 우리도 보통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맹물에 익혀서 양념을 한 것 같다-요셉이 먹은 다음 자기도 먹는다. 예수는 조용히 그가 가진 사과를 먹으면서 작은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고 있다. 식사는 올리브인지 대추야자 열매인지 잘 모를 것으로 끝난다. 올리브 치고는 빛깔이 너무 엷고, 대추야자 열매라면 너무 단단하다. 포도주는 도무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이다.

그러나 이 방 안에서 풍기는 평화는 대단히 고귀하다. 왕의 호화로운 저택을 보아도 이만큼 매력 있는 것은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화목한 집안인가!

 

오늘 밤 예수님은 말씀을 안 하시고, 이 광경을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 내게 보여 주시는 환상으로 가르치실 뿐이다. 이 때문에 항상 한결같이 찬미받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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