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준비 ( 6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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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 복음준비 ( 67~72 )

by mrsoojak 2021. 12. 19.

예수님은 두성인 (성요솁 성마리아) 사이에서 자라셨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7. 성전에서 있은 예수의 성인례를 위한 시험

 

명절 때의 성전. 군중이 성벽의 여러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며, 마당과 안뜰과 회랑들을 지나서, 성전의 건물 집단이 흩어져 있는 각기 다른 높이의 땅에 세워진 이 건물 저 건물로 사라진다.

저기 작은 소리로 성시를 읊으면서 예수의 가족의 집단도 들어온다. 모든 남자들이 먼저 들어오고, 다음에는 여자들이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합쳐졌는데, 어쩌면 나자렛에서 왔는지, 예루살렘의 친구들인지, 모르겠다.

지극히 높으신 분을 예배한 다음-내 생각에는 남자들만이 예배를 할 수 있는-장소에서, (여자들은 조금 아래서 멈춰 섰다) 요셉은 아들을 데리고 마당들을 반대 방향으로 다시 건너온다. 그는 어떤 곳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어 어떤 넓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은 교회당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성전 안에도 교회당들이 있는 것인가? 요셉은 레위파 사람 하나와 말을 한다. 그 사람은 줄무늬가 있는 휘장 뒤로 사라졌다가 나이 많은 사제들과 같이 돌아온다. 나는 그들이 사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들은 율법 지식으로 선생들이고, 그래서 신자들을 시험할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예수를 소개한다. 그보다 먼저 두 사람은 별로 높지 않은 나무 걸상에 점잖게 자리 잡은 열 명쯤 되는 박사들 앞에서 몸을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석 달 열 이틀 전에 율법에서 성년이라고 이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들이 이스라엘의 계명에 따라 성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아이의 체질로 보아 그가 유년 시대를 벗어났고 이미 미성년자가 아님을 보여 준다고 간주하시기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의 아비인 제가 여기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하여 친절과 정의로 시험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시간을 위하여, 그리고 그가 되어야 하는 율법의 아들로서의 품위를 위하여 이 아이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계명과 경외 전설과 양피지에 적힌 관습과 양피지에 적힌 성서의 문구들을 압니다. 매일 외는 기도와 축복을 월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는 사나이답게 율법 자체와 할라쉬야(Halalcia)와 미드라스크(Midrasc)와 아가다(Agada)라는 율법의 세 가지 분야의 설명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아이의 행동과 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가 소원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아이가 계명에 복종하고, 계명을 소홀히 하는 데 대한 벌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아이를 시험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소. 얘야, 앞으로 나오너라. 이름이 무엇이냐?"

"나자렛치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나자렛 사람‥‥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느냐?"

"예. 저는 써진 말과 그 말 자체에 들어 있는 말을 읽을 줄 압니다."

"무슨 뜻이냐?"

"보이지는 않지만 닫힌 투박한 조개껍질 속에 들어 있는 진주와 같이, 외양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유와 상징의 뜻도 알아듣는다는 말씀입니다."

"보통이 아니고 대단히 슬기로운 대답이다. 이런 말은 어른의 입에서도 듣기가 매우 드문 일인데, 어린아이에게서 그것도 나자렛의 어린아이에게서 듣게 되다니!"

열 사람의 주의가 불러일으켜졌다. 그들의 눈은 그들을 자신만만하게, 뻔뻔스럽지는 않지만 또한 겁도 내지 않고 올려다보는 아름다운 금발 소년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다.

"너는 틀림없이 대단히 유식한 네 선생님을 명예롭게 한다."

"하느님의 지혜가 그의 올바른 마음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보시오, 이런 아들을 두었으니 당신은 참으로 행복하오!"

홀 끝쪽에 있는 요셉은 빙그레 웃으면서 몸을 굽힌다.

그들은 예수에게 세 개의 다른 두루마리를 주며 말한다 "금빛 리본이 달린 두루마리를 읽어라."

예수는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는다. 그것은 십계명이다. 그러나 처음 몇 마디를 읽자 심판관이 두루마리를 빼앗으면서 말한다. "계속해서 외어라."

예수는 어떻게나 자신 있게 말하는지 꼭 책을 읽는 것 같다. 주님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몸을 깊이 구부린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느냐? 왜 그렇게 하느냐?"

"이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과 겉으로 존경을 표시하면서 이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얼마 동안 밖에는 임금 노릇을 하지 못하시는 임금님 앞에서 신하들이 절을 합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으로 밖에는 볼 수 없지만 실제로 여기 계시는 왕 중의 왕 이스라엘의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서는 그분께 영원한 예속으로 속해 있는 어떤 피조물도 절을 해야 합니다."

"좋다! 여보시오. 우리는 당신 아들을 힐렐이나 가물리엘에게 사사시키도록 권하오. 이 아이는 나자렛 출신이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니 새로운 큰 박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게 되오."

"아들은 성인입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의 뜻이 성실하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얘야, 듣거라, 너는 이렇게 말한다. '축일들을 거룩하게 할 것을 기억하여라. 그러나 너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네 아들과 네 딸, 네 남종과 네 여종, 또한 짐 싣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라고. 그러면 어디 말해 보아라. 만일 안식일에 암탉이 알을 낳거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그 달걀이나 양 새기를 이용해도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아주 나쁜 것으로 생각해야 하느냐?"

"저는 많은 율법박사님들이-제일 마지막 분인 쉬암미(Sclammi) 선생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만-안식일에 난 달걀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단언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 다르고, 짐승이나 또는 새끼를 낳는 것 같은 동물적 행위를 하는 것이 다릅니다. 만일 제가 짐 싣는 짐승에게 일을 시키면. 제가 그 죄의 책임을 집니다. 그것은 제가 채찍으로 위협해서 짐승에게 일을 시키는 데 종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암탉이 그 난소에서 성숙해진 알을 낳거나 양이 새끼가 나올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새기를 낳으면. 이 행동은 그 자체로도 죄가 아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죄가 아니며, 안식일에 나는 달걀도 양 새끼도 죄로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행한 일은 무엇이든지 죄가 된다면, 어째서 그것은 죄가 안된단 말이냐?"

"새끼를 배고 낳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각 피조물에게 주신 법칙으로 조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탉은 일정한 형성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알이 완전해지고 낳아질 준비가 다 된다는 것을 예견한 이 법칙을 따르는 일 밖에 하지 않습니다. 양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법칙에 복종하는 일 밖에 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께서는 1년에 두 번, 꽃이 핀 풀밭에 봄의 미소가 올 때와 나무들의 잎이 떨어지고 추위가 사람들의 가슴을 죌 때에 양들의 본능에 복종하도록 조절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수확 때문에 가장 피곤하게 하는 달들이나 서리 때문에 가장 을씨년스러운 달들을 위하여 그 후 다른 시기에 양분 많은 젖과 고기와 치즈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때가 되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는 신성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창조주께 복종한 결과이기 때문에 제단에 바쳐도 되는 신성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험을 그만두겠소. 그의 놀라운 지혜는 어른들의 지혜를 앞지르오."

"아니오. 이 아이가 상징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 이 애의 맡을 들어봅시다."

"우선 시편 하나와 축복과 기도문을 외라고 합시다."

"계명들도."

"그럽시다. 미드라쉬오를 외어라."

예수는 태연하게 "이것을 하지 말아라‥‥저것을 하지 말아라‥‥"하는 것을 지루하게 줄줄 왼다. 만일 불평하기 좋아하는 우리가 지금도 그 모든 구속을 받아야 한다면, 정말이지 구원을 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됐다. 이제는 초록색 리본이 달린 두루마리를 펴라."

예수는 펴서 읽기 시작한다.

"더 앞으로 가서, 좀 더 앞으로 가서."

예수는 시키는 대로 한다.

"됐다. 읽고서 상징이 있다고 생각되거든 설명하여라."

"거룩한 말씀에는 상징이 없는 일이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상징을 알아내고 그것을 적용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읽겠습니다. 열왕기 4권* 22장 10절, '공보대신 사반은 왕에게 <대사제 힐키야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하면서 왕의 면전에서 크게 읽었다. 그 율법책의 내용을 듣자 왕은 자기의 옷을 찢었다. 그리고는‥‥.'"

"이름들은 건너뛰어라."

"'‥‥명하였다. <이번에 찾아낸 이 책에 여러 가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나와 온 유다 백성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야훼께 나가 여쭈어 보시오.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우리 선조들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불길 같은 야훼의 진노를 사게 되었소>‥‥.'"

"그만 하면 되었다. 이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여러 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옛날 연대기에 있는 사실에서 너는 어떤 상징을 발견하느냐?"

"저는 영원한 것을 시간 안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우리의 영혼도 영원하고, 하느님과 영흔의 관계도 영원합니다. 그때에 벌을 유발했던 것은 지금 벌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죄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이스라엘은 이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빛은 하느님께 구할 것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에게 청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의와 하느님께 대한 충성 없이는 빛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짓고,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지식이 없다고? 아아 니, 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러면 육백 열세 가지 계명은?"

"계명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압니다, 그러나 실천에 옮기 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징은 이런 것입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진노를 자기에게 불러오지 않게 그 뜻에 동의하기 위하여는 주님께 여쭈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완전하오. 엉큼한 질문의 함정도 이 아이의 대답을 당황하게 하지는 못하였소. 이 아이를 정말 교회당으로 데려가게 하시오."

그들은 더 넓고 더 잘 꾸며진 방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처음 하는 일은 예수의 머리를 짧게 하는 일이다. 요셉이 굽슬굽슬한 머리 잘린 것을 받는다. 그런 다음 그의 빨간 옷에 허리를 여러 바퀴 도는 긴 허리띠를 매 준다. 그의 이마와 팔과 겉옷에 불꽃처럼 생긴 작은 헝겊을 붙인다. 그것들을 장식 핀 같은 것으로 고정시킨다. 그런 다음 성시를 읊는다. 그리고 요셉은 긴 기도로 주를 찬미하고 아들 위에 가지가지 축복을 청한다.

예절이 끝났다. 예수는 요셉과 같이 나온다. 그들은 그들이 떠나갔던 곳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어린양 한 마리를 사서 바치고 나서 목을 딴 희생제물을 가지고 여자들 있는 곳으로 간다.

마리아는 예수에게 입맞춤을 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못 본 지가 여러 해가 되는 것 같다. 마리아는 지금은 어른의 옷과 어른의 머리털을 가진 예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쓰다듬는다‥‥.

- 그들은 나온다. 그리고 이것으로 환상이 끝난다.

 

* 역주 :공동번역 열왕기 하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8. 성전에서 예수가 박사들과 토론함

 

나는 예수를 본다. 이제는 소년이다. 흰 아마포로 생각되는 감으로 만든 것으로 발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었다. 그 위에 밝은 빨강의 장방형 천을 걸쳤다. 귀의 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는데, 머리털은 그가 더 어렸을 때 보았을 적보다 더 짙은 빛깔이다. 나이에 비하여 매우 큰 건장한 소년이다, 그러나 얼굴은 정말 어리다.

예수는 나를 바라보고 손을 내밀면서 미소 짓는다, 그러나 벌써 어른이 된 예수에게서 보는 것과 같은 다정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근엄한 빛을 띤 미소이다. 예수는 혼자 있다. 지금은 다른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줄곧 오르락내리락하는 돌이 많은 작은 길 위에 있는 작은 담에 가까이 있다. 그 길 가운데에는 비가 올 때에는 개울로 변하는 움푹 파인 곳이 있다. 지금은 날씨가 좋기 때문에 말라 있다.

나도 담으로 가까이 가서 예수가 하는 것과 같이 주위와 아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줄이 고르게 서 있지 않은 일단의 집을 본다. 높은 집, 낮은 집이 있고, 향이 각각 다르게 앉아 있다. 마치 우중충한 땅에 흰 조약돌 한 줌을 던져놓은 것과 비슷하다. 서투르기는 하지만 꽤 들어맞는 비유이다. 큰길 작은 길들이 이 흰 가운데에 정맥과 같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담 사이에는 나무들이 보인다. 꽃이 핀 나무도 많고, 새잎이 덮인 나무도 많다. 봄인가 보다.

내가 보아서 왼쪽에는 건물들이 있는 세 개의 질서 정연한 단으로 되어있는 큰 집단이 있고, 또 탑들과 마당들과 회랑들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더 높고 장엄하고 매우 화려한 둥근 지붕들이 달린 건물이 있는데, 그 둥근 지붕들은 구리나 금 같은 금속을 입힌 것같이 햇빛에 반짝인다. 이 전체를 요새인 것처럼 M자 모양의 총 안이 꼭대기에 장치된 성벽이 에워싸고 있다. 꽤 좁고 불쑥 내민 길에 걸쳐서 세워진 다른 탑들보다 더 높은 탑이 이 넓은 집단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엄격한 보초와도 같다.

예수는 이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처음에 하던 대로 다시 등을 담에 기댄다. 그리고 건물 집단 맞은편에 있는 작은 산, 그 밑에까지는 집들이 있다가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산을 바라다본다. 거기에서 길이 고리 모양으로 되어 끝나고, 그 저쪽으로는 장방형 돌을 불규칙적이고 고르지 못하게 간 길 밖에 없다. 그 돌들은 집정관 시대의 로마의 도로에 깔았던 돌처럼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오히려 비아렛지오(Viareggio-이탈리아의 도시)의 오래된 인도에 깔려 있는 전형적인 돌들과 비슷하다(그 돌들이 아직 비아렛지오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르게 깔리지는 않았다. 나쁜 길이다. 예수의 얼굴이 하도 근엄하게 되어서 나는 그 작은 산 위에서 그의 침울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헐벗은 작은 산이다. 그뿐이다. 그런데 나는 예수를 잃었다. 과연 내가 뒤돌아 보았을 때 예수는 거기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환상을 보면서 감빡 졸았다.

‥‥이 환상의 기억을 가슴에 간직한 채 잠이 깨었을 때, 모든 사람이 자고 있기 때문에 기운과 평온을 좀 되찾은 다음,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느 곳에 가 있게 되었다. 마당들과 샘들과 집들이 있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자들이다 사실 그것들은 집보다는 정자들 같다. 거기에는 옛날 히브리 사람들 식의 옷을 입은 많은 군중이 있고 몹시 시끄럽다. 주위를 둘러보고, 내가 예수가 바라보고 있던 그 건물 집단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연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총 안이 있는 성벽과 보초를 서는 것 같은 탑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한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에는 매우 아름답고 넓은 회랑들이 기대서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고 있는 많은 군중이 있다.

나는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펄럭이는 긴 옷을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가슴 꼭대기와 이마와 다른 부위 곳곳에 귀금속 판을 달고 있는 사제들이 보인다. 대단히 비싼 띠로 허리를 졸라맨 매우 넓은 흰옷 여기저기에서 그 금속판이 번쩍인다. 그리고 그보다 덜 요란스럽게 차린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도 역시 사제 계급에 속한 사람들 같으며, 더 젊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들이 율법 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인물들 가운데를 방황하고 있으면서, 내가 거기 무슨 볼일이 있는지를 모른다. 나는 신학 토론이 시작된 박사들의 어떤 집단에 가까이 간다. 많은 무리도 그리로 가까이 온다.

"박사들" 가운데에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가믈리엘(Gamaliel)이라는 어떤 사람과, 토론할 때에 가믈리엘을 지지하는 거의 소경이 되다시피 한 다른 노인 한 사람이 낀 집단이 있다. 이 노인은 힐렐(Hillel)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이름 첫머리에 기식음-氣息音-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H자를 붙였다), 가믈리엘이 그를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다루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선생이거나 친척인 것 같다. 가믈리엘의 집단은 더 폭이 넓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더 수효가 많은 다른 집단은 쉬암마이 ( Sciammai)라는 사람이 지휘하는 집단으로 사납고 퇴보적인 비타협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비타협성을 복음 성서는 매우 명백하게 설명한다.

많은 제자의 집단에 둘러싸여 있는 가믈리엘은 메시아의 내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니엘의 예언에 의거하여 그는 메시아가 벌써 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예언에서 알려준 바 있는 성전 재건 법령으로부터의 70주가 한 10년 전에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쉬암마이는 성전이 재건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노예상태는 더 심해졌을 뿐이고, 예언자들이 "평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메시아가 가져왔어야 할 평화가 세계에도 없고, 특히 원수에게 압제를 당하는 예루살렘에는 평화의 그림자도 없다고 단언하면서 가믈리엘을 공격한다. 쉬암마이는 적이 일체의 애국적 봉기를 그들의 검으로 진압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로마 군대가 확 들어찬 안또니아(Antonia)탑이 내려다보는 성전의 경내에까지 감히 그의 지배를 몰고 온다고 주장하면서 가믈리엘을 공격한다.

궤변투성이의 토론이 질질 끈다. 양쪽 대가가 박식을 자랑해 보이는데, 그것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듣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다. 이 의도는 명백하다.

빽빽한 그 열성 분자들 가운데에서 또렷또렷한 어린아이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가믈리엘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군중과 박사들 무리의 동요가 보인다. 방해자를 찾는다. 그러나 찾을 필요도 없다. 방해자는 숨지 않고, 스스로 나타나 "선생들" 집단 쪽으로 가까이 간다. 나는 소년 예수를 알아본다. 예수는 총명한 눈을 반짝이며 자신만만하고 솔직 하다.

"너는 누구냐?" 하고 사람들이 묻는다.

"율법이 명하는 것을 행하려고 온 이스라엘의 아들입니다."

과감하고 자신 있는 대답으로 인하여 예수는 호감을 얻고 찬성과 호의를 나타내는 미소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소년에게 흥미를 느낀다.

"이름이 무엇이냐?"

"나자렛의 예수입니다."

쉬암마이의 집단에서는 호의가 줄어든다. 그러나 가물리엘은 더 친절하게 힐렐과 동시에 대화를 계속한다. 아니 그보다도 가믈리엘이 노인에게 "저 아이에게 뭘 좀 물어보십시오" 하고 공손하게 말한다.

"네 확신의 근거는 무엇이냐?" 하고힐렐이 묻는다(나는 길이를 줄이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대답 첫머리에 이름을 써 놓겠다).

예수 : "시기에 대해서 그르칠 수가 없는 예언과, 예언이 실현될 시간이 되었을 때 같이 일어났던 표징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70주가 지났을 때는 카이사르가 그의 영토에 호구조사를 명령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가 평온하고 팔레스티나가 조용하였습니다. 그의 제국에 전쟁이 있고 팔레스티나에 반란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간 것과 같이, 성전의 완성으로부터 62주 더하기 1주라는 다른 기간도 끝나 갑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바쳐지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은 백성에게 그 예언의 계속이 실현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심을 하실 수 있습니까? 동방의 현자들이 보았고 바로 유다의 베들레헴의 하늘에 와서 머물렀던 별을 기억 못 하십니까? 그리고 야곱 시대부터 근후로 예언들과 환상들이 그곳을 베들레헴 출신인 다윗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의 아들의 또 아들인 메시아의 탄생을 맞아들이기로 된 곳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기억 못 하십니까? 순결과 믿음으로 인해서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렸던 동방의 현자들은 그 별을 보고 '메시아'라는 그 별의 이름을 알아차리고, 세상에 켜진 빛에 경배하려고 왔습니다."

창백한 시선을 한 쉬암마이. "너는 베들레헴 에프라타에 별이 나타났을 때 메시아가 났다고 말하는 것이냐?"

예수 :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쉬암마이 : "그러면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얘야, 너는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서 난지 하루에서 2년까지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게 했다는 것을 모르느냐? 성서를 그렇게도 잘 알고 있는 너니까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라켈이 제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것이다"하는 이 말도 알겠구나. 죽어가는 라켈의 울음을 거두어들인 베들레헴의 산과 골짜기는 그 울음소리로 가득하였고, 어머니들이 학살된 그들의 아이들을 슬퍼하며 되풀이하였다. 그 어머니들 가운데에는 분명히 메시아의 어머니도 있었다."

예수: "노인장 어른, 틀리셨습니다 라켈이 '고통의 아들'을 낳았던 그곳에서 새로운 라켈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아들, 그의 왕권 아래 모든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을 가장 무서운 노예상태에서 해방하기로 되어 있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라켈의 울음은 호산나로 변했습니다."

쉬암마이 : "그렇지만 그가 죽었으면 어떻게 그렇게 되겠느냐?"

예수 : "엘리야에 대한 말씀을 읽지 못하셨습니까? 엘리야는 불수레에 실려서 들려 갔습니다. 그런데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임마누엘이 당신 백성의 메시아가 되도록 그를 구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발을 적시지 않고 그의 땅에 도달하도록 모세 앞에 바다를 갈라놓으신 그분이 당신의 아들, 당신의 그리스도를 잔인한 사람에게서 구하라고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지 못하셨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확실히 말합니다만, 그리스도는 살아 있고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때가 오면 그의 능력을 가지고 나타날 것입니다." 밑줄 친 말을 할 때에 예수의 목소리는 쩡쩡 울려 공간을 채운다. 그의 눈은 한층 더 빛나고 능력과 약속으로 자극되는 것 같으며, 그는 어떤 선서를 하는 것처럼 오른팔과 손을 내민다. 그는 한 소년이다. 그러나 어른과 같이 엄숙하다.

힐렐 : "얘야, 누가 그 말을 가르쳐 주었느냐?"

예수 : "하느님의 성령입니다. 저는 사람인 선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 입으로 들으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힐렐 : "얘야! 너를 자세히 보게 우리 가운데로 오너라. 네 믿음에 접하니 내 바람이 다시 살아나고, 내 영혼이 네 영혼의 태양으로 빛난다."

그러면서 예수를 가믈리엘과 힐렐 사이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히고, 그더러 읽고 해석하라고 두루마리들을 갖다 준다. 이것은 규정에 따른 시험이다. 군중이 몰려와서 듣는다.

예수는 앳된 목소리로 읽는다. "'내 백성아, 마음을 달래라. 예루살렘의 노예생활이 끝났으니, 그의 마음에 말하고 그를 위로하여라‥‥ 광야에서 외치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주의 길을 닦아라‥‥그러면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쉬암마이 : "나자렛 아이야, 보아라! 여기서는 노예상태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같이 노예생활을 한 적이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서 선구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구자가 어디 있느냐? 너는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다."

예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선구자가 권고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 선생님 비슷한 분들에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은 주의 영광을 못 보실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으실 것입니다. 옹졸함과 오만과 허위가 선생님이 보고 듣지 못하게 방해하겠기 때문입니다."

쉬암마이 :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예수 :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 이해관계 위에는 주님의 이해관계가 있고, 제가 진리의 아들인 만큼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 덧붙여 말씀드리지만, 예언자가 말하고 저도 말하는 노예상태라는 것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노예상태가 아니고, 완전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완전히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메시아의 공로로 사람은 그를 하느님께서 떼어 놓은 악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인호가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그의 영원한 통치에 복종하는 모든 영에 박힙니다. 다윗 가문이여, 네게서 난 싹으로 온 땅을 뒤덮고 하늘에까지 이르는 큰 나무가 된 네 앞에 모든 민족이 머리를 숙일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모든 입이 그의 이름을 찬미할 것이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축성을 받은 사람이며 평화의 왕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모든 피로한 영혼을 취하게 하고 굶주린 모든 영혼을 배불리 먹여줄 그 사람, 땅과 하늘 사이에 계약을 맺을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을 때, 아직도 그들을 종으로 취급하면서 그들과 맺으셨던 것과 같은 계약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에 구세주의 공로로 그들에게 새로 부어진 은총과 더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생각을 새겨 넣으면서 맺는 계약입니다. 구세주를 통하여 모든 착한 사람이 주님을 알 것이고 하느님의 성전이 다시는 쓰러지지도 헐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쉬암마이 : "야! 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다니엘을 상기하여라. 다니엘은 그리스도가 죽은 다음 성전과 성도가 그를 위해서 올 국민과 두목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는 하느님의 성전이 다시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구나! 예언서들을 존중하여라!"

예수 : "선생님게 확실히 말씀드립니다만, 예언자들보다 나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은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알지 못하시고 후에도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것이 모두 참말이라는 것을 선생님께 단언합니다. 진짜 성전은 다시는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같이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고, 세상 마칠 때에는 하늘에서 살 것입니다."

힐렐 : "얘야. 하깨는 이렇게 말한다. '‥‥뭇 민족이 바라는 이가 올 것이다.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그리고 지금 짓는 이 성전이 예전의 성전보다 더 영화로울 것이다' 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 네가 말하는 것과 같은 성전인 모양이구나?"

예수: "선생님, 그렇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선생님은 정직하시기 때문질 빛을 향해 가시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제헌이 완성되면 평화가 선생님께로 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악의가 없는 이스라엘의 자손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믈리엘 : "얘 예수야, 예언자들이 말하는 평화 말이다. 만일 전쟁이 와서 이 백성을 파멸시키면 어떻게 그 평화를 바랄 수 있단 말이냐? 말 좀 해서 나도 밝혀 다오."

예수: "선생님은 그리스도가 나던 날밤 거기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하십니까?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천사들의 무리가 노래했다는 말을요? 그러나 이 백성의 뜻은 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백성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인간적인 권력을 지닌 왕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정신의 왕이기 때문에 의인이요, 구세주인 그 왕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백성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설교하겠기 때문에 이 백성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전차와 기병대를 갖춘 적과 싸우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의 마음을 극악한 향락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영혼의 원수들과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스라엘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승리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아, 너의 왕은 '암나귀와 나귀 새끼'를 타고, 즉 이스라엘의 의인들과 이방인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나귀 새끼가 그에게 더 충실해서 암나귀보다 앞서서 그를 따를 것이고 진리와 생명의 길에서 커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악의 때문에 평화를 잃을 것이고, 그들로 인하여 고통의 인간이 되리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들의 왕에게 당하게 한 것과 같은 고통을 여러 세기를 두고 당할 것입니다."

쉬암마이: "나자렛 녀석아, 네 입에서는 유치한 말과 동시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 나온다. 대답 좀 해보아라. 그래 선구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언제 우리가 선구자를 언제 가졌었단 말이냐?"

예수: "선구자는 존재합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하고 말라키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선구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앞서 옵니다. 선구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벌써 와 있습니다. 만일 주의 길을 닦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여러 해라는 간격이 있으면, 모든 길이 막히고 빗나가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선구자가 다만 한 시간만 주인보다 앞서 가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선구자를 보시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전도가 시작되었구나'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만, 그리스도가 이 길로 해서 오게 되면 많은 눈을 뜨게 하고 많은 귀를 듣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생님의 추종자들도 아니고 선생님 같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선생님네는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갖다 주는 대신에 죽음을 그에게 줄 터이니까요. 그러나 이 성전보다 더 크고, 지성소에 들어 있는 장막보다 더 높고, 지품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영광보다도 더 높이 구세주가 그의 옥좌와 제단에 앉게 되면, 하느님을 죽인 자들에 대한 저주와 이방인들을 위한 생명이 그의 수없이 많은 상처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시는 선생님, 되풀이해서 말씀드립니다마는,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지배를 하는 왕이 아니고, 영적인 왕국의 왕이며, 그의 신민은 오직 그들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의 영으로 다시 태어날 줄을 알고 또 요나와 같이 한번 태어난 다음 다른 고장에서 다시 태어날 줄을 알 그런 사람들뿐이겠기 때문입니다. 즉 참 생명을 인류에게 줄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재생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될 사람들 말입니다."

쉬암마이와 그의 추종자들, "이 나자렛 녀석은 사탄이다!"

힐렐과 그와 추종자들, "아니오. 이 아이는 하느님의 예언자요. 얘야, 우리와 같이 있어라. 이 늙은이가 아는 것을 네 지식에 넘겨주겠다. 그러면 너는 하느님의 백성의 스승이 될 것이다."

예수 : "진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있으면 구원이 이스라엘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목소리가 제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때가 오기까지 고독한 가운데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때가 오면 제 입술과 제 피로 예루살렘에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제 운명은 예루살렘에 의하여 돌로 맞고 암살당한 예언자들의 운명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존재 위에는 주 하느님의 존재가 있어, 저를 당신 영광의 발판을 삼으시라고 저 자신 그분께 복종하면서 그분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다립니다. 제 때에 저를 기다리십시오. 이 돌들이 다시 제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제 마지막 말을 듣고 떨 것입니다. 이 목소리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목소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을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왕국을 줄 것인데, 여러분의 이기심이 그 왕국이 순전히 인간적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지만, 사실은 천상적인 것입니다. 이 나라가 임하라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당신의 종이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을 완수하기를 열망하니, 그 뜻을 완전히 이루십시오' 하고."

그리고 여기서 영적인 정열로 불타는 얼굴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팔을 벌리고 어리둥절한 박사들 가운데에 서 있는 예수의 환상이 끝난다.

 

1944년 1월 29일

저는 여기서 확실히 신부님의 관심을 끌 두 가지 일을 말할 것이 있고, 또 잠이 깨면 그 말을 쓰겠다고 결정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다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나중에 쓰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하려고 하던 것을 여기에 쓰겠습니다.

신부님은 오늘 제가 어떻게 힐렐과 가믈리엘의 이름과 쉬암마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느냐고 물으셨지요. 그것은 제가 "제2의 목소리"라고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가 이런 것들을 제게 말해 줄니다. 이것은 제게 쓰라고 불러주는 내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는 좀 덜 느낄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들은 벌써 말씀드렸고 다시 되풀이해 말씀드렸지만 진짜 목소리들인데, 제 영적인 오성이 그것은 마치 인간의 목소리인 것처럼 지각합니다. 저는 그 목소리들을 마치 어떤 사람이 아주 가까이에서 제게 말하는 것과 꼭 같이 다정스럽거나 분개한 목소리로, 유쾌하거나 슬픈 목소리로 느낍니다. 그런데 이 "제2의 목소리"는 반대로 제 영안에서 말하는 빛, 또는 직관 같은 것입니다. 제 영 "안"에서라고 했지 제 영 "에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노인 옆에서 몹시 열렬히 말하는 저명인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토론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가까이 갔을 때, 제 안에 있는 "제2의 목소리"가 "가믈리엘-힐렐"이라고 말했습니다. 예, 먼저 가믈리엘의 이름을 말하고 다음에 힐렐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생각해 보고 있는데, 그 내적 지도교사가 마침 가물리엘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에 기분 나쁜 제3의 인물을 제게 가리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리사이파 사람같이 보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내적 지도교사는 제가 예수님 돌아가신 후의 세계를 보고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환상을 볼 때에는 이런 일이 매우 자주 있습니다. 이 내적 지도교사가 저 혼자서는 파악하지 못할 터인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어떤 세부사항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설명을 잘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게 말씀하기 시작하시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이쯤으로 끝내겠습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9. 예수의 행방불명으로 인한 마리아의 고통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아, 참아라.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런데 네 지도신부를 기쁘게 하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 다른 이야기를 다루자. 이 일은 재의 수요일인 내일로 미루기를 원한다. 나는 네가 이 힘든 일을 끝내기를 원한다‥‥너를 나와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뒤로, 대단히 뒤로 물러가자. 내가 열두 살 때에 토론을 하고 있는 성전으로 돌아가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예루살렘에서 성전으로 가는 길에 까지로 돌아가자.

 

너는 남자들의 집단과 여자들의 집단이 모였을 때의 마리아의 고통을 알겠지. 마리아는 내가 요셉과 같이 있지 않은 것을 본다. 마리아는 그러나 남편에 대하여 화를 내서 냉혹하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 모든 여자가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 여자들은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남자가 항상 가정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잊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이 그 어떤 비난보다도 더 요셉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마리아는 일장의 극적인 장면을 벌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다른 여자들은 사람들의 주목과 동정을 끌려고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몸을 떨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이 엄청나게 떠지는 것으로 마리아가 고통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 하도 분명해서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도 더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마리아는 이제 피로도 허기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하루의 행정이 길었고, 벌써 오래전부터 아무 음식도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버려둔다. 사람들이 준비하던 잠자리도 나누어 주려는 음식도 모두 다 버려둔다. 온 길을 되돌아간다. 저녁때라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상관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리아는 대상들과 순례자들을 붙잡고 물어본다. 요셉은 마리아를 따라가며 도와준다. 하루를 반대방향으로 걷고 나서 성도를 돌아나니며 안타깝게 찾는다.

그의 예수가 어디에, 대관절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리아가 나를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도록 허락하신다. 어린이를 성전에서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린아이가 대관절 성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고작 시내에서 길을 잃어 성전에까지, 그 안에까지 그 작은 발걸음으로 돌아왔다면,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엄마를 불러 어른들과 사제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고, 이들은 대문들에 게시판을 달아 부모를 찾을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게시판도 없었고, 시내에서 아무도 그 어린아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도무지 없었다. 예쁘다고? 금발이라고? 튼튼하게 생겼다고? 그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어린이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 애를 보았습니다. 여기 있었습니다. 저기 있었습니다' 하고 누가 단언할 수 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미래의 3일간의 고민의 상징인 사흘 후에 마리아는 기진맥진하여 성전으로 들어가서 마당들과 현관들을 돌아다닌다. 아무것도 없다.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엾은 엄마는 달려가고 또 달려간다. 그리고 매애 하고 우는 어린양들의 목소리까지도 그가 찾는 아들의 목소리같이 들린다. 그러나 예수는 울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는 한떼의 사람 저쪽에서 들려오는 정다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돌들이 떨릴 것입니다‥‥'하고. 마리아는 군중 사이로 길을 내려고 애를 써서 마침내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 박사들 가운데 똑바로 서서 팔을 벌리고 있는 아들이 저기 있다.

마리아는 신중한 동정녀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통으로 인하여 그의 조심성을 떨쳐버렸다. 그것은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리는 터진 둑과 같다. 마리아는 아들 쪽으로 달려가 의자에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껴안는다. 그러면서 외친다. '아이고!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했느냐? 사흘 전부터 우리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얘야, 엄마는 걱정으로 죽을 뻔했다. 아버지는 긴진 맥진하셨다. 예수야, 왜 이랬느냐?'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왜'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런 행동방식을 취했는지를 말이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따르느냐고 묻지 말 것이다. 나는 지혜였으므로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명에 '부름을 받았었고' 그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 위에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다. 그분의 이익이 우리 이익을 앞지르고, 그분의 애정이 다른 모든 애정보다 앞선다. 나는 내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하였다. 나는 박사들의 모후인 마리아를 가르침으로 박사들에 대한 가르침을 끝마쳤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겸손하게 순종하는 내 손을 잡을 때에 한 줄기 햇빛이 그의 마음에 돌아왔다, 그러나 내 말은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내가 아직 세상에 있을 21년 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많은 날과 구름 낀 많은 날이 하늘 아래서 흘러갈 것이다. 이 뒤에 올 나머지 21년 동안에 그의 마음에는 많은 기쁨과 많은 근심과 눈물이 번갈아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다시는 '얘야, 왜 우리에게 그렇게 했느냐?' 하고 묻지 않을 것이다. 너희 거만한 인간들아, 이 교훈을 배워라.

 

나는 네가 보는 환상인 내게 대해서 가르쳐주고 설명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네가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70. 성 요셉의 죽음

 

별책, 정확히 말해서 현시대의 거짓 종교들에 대하여 받아쓴 것을 교정하고 있는 중인데, 명령조로 이 환상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그 환상을 보면서 글을 쓴다.

 

목공소 내부가 보인다. 벽 두 면은 자연 동굴을 이용하여 어떤 집의 방들을 만든 것처럼 암벽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모양을 한 것은 정확히 북쪽과 서쪽이고, 다른 두 벽, 즉 남쪽과 동쪽은 우리네 벽 모양으로 회반죽으로 발랐다.

북쪽에는 바위를 타서 불완전한 아궁이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칠인지 아교인지가 들어 있는 솥이 하나 걸려 있다. 그곳에 여러 해 동안 태워 온 나무로 인하여 벽이 어떻게나 까맣게 되었던지 꼭 타마유칠을 한 것 같다. 벽에 구멍을 하나 뚫고 그 위에 구부러진 투박한 기와 같은 것을 덮어놓은 것이 나무 탄 연기를 빨아들이는 굴뚝 역할을 하려고 해 본다. 그러나 굴뚝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른 벽들도 까맣게 되었고, 지금도 연기가 방안에 구름처럼 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예수가 어떤 목공 작업대에서 일하고 있다. 널빤지들을 대패질하고 있는 중인데. 그 널빤지들을 뒤에 있는 벽에 기대어 세워 놓는다. 그런 다음 바이스의 물림 장치에 물려 놓은 일종의 등 없는 의자를 붙잡고 물림 장치에서 빼내어, 일이 제대로 되었는지 들여다보고, 직각자로 사방을 재본다. 그런 다음 아궁이로 가서 솥을 잡고 거기에 작은 막대기인지 붓인지 모를 것을 담근다. 밖으로 삐져나와 작은 막대기 같아 보이는 것 밖에 볼 수가 없다.

예수의 옷은 연갈색이다. 속옷은 꽤 짧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걷어 올렸다. 앞에는 일종의 앞치마를 입었는데, 솥을 만졌을 때에는 손가락을 거기에 문지른다. 예수는 혼자 있다. 열심히 그러나 침착하게 일하고 있다. 아무런 무질서한 움직임도 없고 아무런 초조도 없다. 정확하고 자기 일에 전념한다. 어떤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잘 다듬어지지 않는 나무옹이에도, 작업대에서 두 번이나 떨어지는 나사돌리개(그런 것 같다)에도, 눈을 맵게 할 것이 틀림없는 연기에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이따금씩 머리를 들어 닫힌 문이 있는 남쪽 벽으로 눈길을 보내며 무엇을 엿듣는 것 같다. 어떤 때 앞으로 나아가 동쪽으로 향한 벽에 나 있고 거리에 면해 있는 문을 연다. 먼지가 많은 좁은 길 한 부분이 보인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일거리로 돌아온다. 침울하지는 않으나 근엄하다. 출입문을 다시 닫고 일하러 돌아간다.

예수가 수레바퀴의 테를 이루는 조각 같은 것들을 만드는 데 골몰해 있는 동안 어머니가 들어온다. 남쪽에 있는 벽에 달린 문으로 해서 들어온다. 어머니는 매우 급하게 들어와서 예수에게로 달려간다. 짙은 하늘색 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같은 빛깔의 끈으로 허리를 졸라 맨 간단한 속옷이다.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아들을 부르며 비통한 애원의 몸짓으로 두 손을 예수의 한 팔에 올려놓는다. 예수는 그 팔을 어머니의 어깨에 얹으면서 어머니를 애무하고 위로하고 나서 일하던 것을 버리고 앞치마를 벗고 어머니와 같이 간다.

나는 그대가 그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알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한다. 마리아 쪽에서 말이 별로 없었다. "아이고! 예수야! 오너라, 와. 아버지가 대단히 불편하시다!" 마리아는 이 말을 입술을 떨면서 피로하고 충혈된 눈에 반짝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한다. 예수는 그저 "어머니!" 하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두 사람은 빛나는 녹음이 어우러진 작은 정원 쪽으로 난 문이 벙싯 열린 데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환한 옆방으로 들어간다. 정원에는 비둘기들이 빨래를 널어놓은 가운데로 날아다닌다. 방은 초라하나 매우 정돈이 잘 되어 있다. 작은 요가 여러 장 깔린 작은 침대가 있다(작은 요라고 말한 것은 무엇인지 두껍고 부드러운 물건이지만, 우리네 침대와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위에 요셉이 베개 여러 개를 베고 누워 있다. 죽음이 임박하였다. 몹시 창백한 그의 얼굴과 흐릿한 눈과 헐떡거리는 가슴과 온몸이 축 늘어진 것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그의 왼쪽으로 가서 못 투성이 이고 손톱까지 창백해진 손을 잡는다. 마리아는 그 손을 문지르고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움푹 들어가는 관자놀이에 반짝이는 줄을 이루는 땀과 눈꼬리에서 반짝이는 눈물을 수건으로 닦는다. 그리고 흰 포도주 같은 액체를 적신 수건으로 입술을 적셔 준다.

예수는 오른쪽에 가 선다. 그리고 착 까부라지는 몸을 민첩하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베개 위에 바로 뉘어 놓는다. 예수는 임종하는 이의 이마를 쓰다듬어 깨어나게 하려고 애쓴다.

마리아는 소리 내지 않고 아주 조용히 운다, 그러나 틀림없이 운다. 눈물 두 줄기가 창백한 뺨을 타고 짙은 하늘색 옷에까지 흘러내린다. 눈물은 반짝이는 청옥과 같다.

요셉은 깨어나서 예수를 뚫어지게 올려다본다. 손을 예수에게 준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이 하느님과의 접촉으로 마지막 시련을 위한 힘을 얻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예수는 그 손 위로 몸을 숙여 거기에 일을 맞춘다. 요셉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마리아를 찾는다. 그리고 마리아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리아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미소를 지으려고 해 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요셉은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순결하게 쓰다듬는데, 그것은 축복을 하는 것과 같다.

들리는 것은 다만 비둘기들이 구구 하는 소리와 날아다니는 소리,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그리고 방안에는 죽어가는 사람의 숨소리뿐이다.

예수는 침대를 돌아가 등 없는 의자를 들어 또 "어머니"라고만 말하면서 마리아를 앉힌다. 그런 다음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두 손으로 요셉의 손을 다시 잡는다. 이 장면은 어떻게나 진짜 같은지 마리아의 고통으로 인하여 내가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그런 다음 예수는 임종하는 이의 머리에 몸을 구부리고 시편 한 편을 요셉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어떤 시편인지 말할 수가 없다.

예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여, 당신께 바랐사오니 나를 보호하소서‥‥.

땅 위에 있는 성인들을 위하여 주님은 내 모든 소원을 놀라우리만큼 들어주셨도다‥‥.

나는 내게 당신 의견을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리로다.

나는 항상 내 앞에 주님을 모시고 있으며, 주님은 내가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려고 내 오른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내 육체도 바람 속에서 쉬리로다.

그것은 당신이 내 영혼을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곳에 버려두지 앉으실 것이고, 당신의 성인이 부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로소이다.

당신은 생명의 길을 내게 알려주실 것이고, 당신 얼굴을 뵙으로 나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리이다.'

요셉이 완전히 깨어났다. 더 생기 있는 눈길로 예수에게 미소를 보내며 예수의 손가락을 꼭 쥔다. 예수는 미소로 요셉의 미소에 응하고, 손가락을 꼭 쥐는 것에는 애무로 응한다. 예수는 양부의 아버지에게로 몸을 구부리고 조용히 계속한다.

'주여, 당신의 장막은 얼마나 사랑스럽나이까!

내 영혼은 주님의 안뜰에 가고 싶은 소원으로 다 타버리나이다.

참새도 몸 담을 곳을 찾아내고, 멧비둘기도 새끼들을 기를 둥지를 찾아내나이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제단을 원하나이다.

당신 집에서 사는 이들은 복되옵니다‥‥당신에게서 힘을 얻는 사람은 복되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의 골짜기에서 그가 택한 곳으로 올라가도록 마음을 준비시켰나이다.

오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오 하느님, 당신의 눈길을 돌려 당신의 그리스도를 보소서‥‥.'

요셉은 흐느끼며 예수를 쳐다보고 축복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그가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수에 대한 신뢰와 생기가 가득한 시선을 보이며 행복하다.

'오 주여' 하고 예수는 계속한다. '당신은 당신 땅에 호의를 보이셨고. 야곱을 종살이에서 구해내셨나이다‥‥.

주여. 우리에게 당신 자비를 보여 주시고 구세주를 보내 주소서.

내 안에서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원하나이다. 확실히 주 하느님은 당신의 성인들과 당신께로 향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백성에게 평화에 대하여 말씀하시리로다.

그러하도다. 그대의 건강은 가까이 왔고‥‥영광이 땅에서 살리로다‥‥인자와 진리가 서로 만났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었도다. 진리가 땅에서 일어났고, 정의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도다.

그러리로다, 주님이 당신 온정을 보여 주실 것이고, 우리의 땅이 열매를 맺으리로다. 정의가 주님 앞에서 걸어갈 것이고, 길에 그의 발자국을 남겨 놓으리로다.'

'아버지, 아버지는 이 시간을 보셨고, 이 시간을 위하여 피로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 시간이 오는 것을 도와주셨으니, 주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고 예수는 요셉의 뺨에 천천히 흘러내리는 기쁨의 눈물을 닦으며 덧붙인다.

그런 다음 다시 계속한다. '오 주여. 다윗과 그의 모든 관용을 기억하소서.

다윗이 주께 그것을 맹세한 것과 같이, 나도 주를 위하여 한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야곱의 하느님을 위하여 거처를 하나 발견하지 못하는 한‥‥ 쉬러 침대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내 눈에 잠을 주지 않고, 내 눈꺼풀에 휴식을 주지 않고, 내 영을 쉬게 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일어나시어, 당신의 휴식처로 오소서. 당신과 당신의 거룩한 계약의 궤가 될 곳으로, (마리아는 알아듣고 울음을 터뜨린다. )

당신의 사제들이 정의의 옷을 입고 당신의 성인들이 기뻐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 다윗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당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숨기지 마시옵소서.

주께서 다윗에게 맹세로써 한 약속을 하셨으니, 주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리로다. <<나는 네 옥좌에 네게서 난 자손을 앉히겠노라.>>

주님이 그를 당신 처소로 택하셨도다‥‥.

나는 다윗의 권력을 활짝 피게 할 것이며, 내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을 붙인 횃불을 준비하리로다.'

'아버지(성 요셉을 가리킴), 저와 어머니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는 제게 의로운 아버지셨고, 영원하신 분은 아버지께 당신의 그리스도와 당신의 거룩한 계약의 궤를 지키는 소임을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리스도에게 불 붙인 횃불이셨고, 거룩하게 된 태에서 난 아들에 대하여 사랑의 정을 가지셨었습니다. 아버지 평안히 가십시오. 아버지의 미망인은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 어머니가 혼자 있지 않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아버지의 쉬실 곳으로 평안히 가십시오.'

마리아는 차가워지는 요셉의 육체에 덮인 담요(꼭 겉옷 같다)에 얼굴을 숙이고 울고 있다. 예수는 요셉의 숨이 약해지고 눈이 흐려지므로 서둘러 그에게 마지막 도움을 드린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복 종하는 것만을 기뻐하는 사람은 복되도다‥‥.

그의 올바름은 영원히 남아 있으리로다‥‥.

올바른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비롭고 친절하고 올바른 그가 일어나는 도다‥‥.

의인의 기억은 영원하리로다‥‥그의 올바름은 영원하도다. 그의 힘은 영광이 되기까지 높아지리로다‥‥.'

아버지는 이 영광을 가지실 것입니다. 저는 멀지 않아 아버지를 먼저 가신 성조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으로 모셔 가려고 오겠습니다. 아버지의 영이 제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하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구원을 받으며 쉬고 있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도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그곳입니다.

'그분은 사냥꾼들의 올가미와 악의를 품은 말에서 나를 구해 주셨도다.

그분은 그 날개로 너를 덮어 주실 것이고, 그 깃 아래에서 너는 피난처를 얻으리로다.

그분의 진리가 방패와 같이 너를 보호하리니, 너는 밤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로다‥‥.

악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하시어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셨기 때문이로다.

천사들은 너를 손으로 받들어 네 발이 조약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너는 살무사와 바실릭(basilic)*을 짓밟을 것이고 용과 사자를 밟아 으깨리로다.'

아버지가 주님께 바라셨으므로 주님은 아버지를 해방하고 보호하겠다고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주께 목소리를 올려 보내셨으므로 주께서 들어주실 것이며, 아버지의 마지막 시련 때에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구원을 아버지께 보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 생명이 끝난 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지금 아버지를 격려해 드리는 구원을 통하여 아버지를 후세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구원은,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재빨리 와서 숭고한 포옹으로 아버지를 꼭 껴안고 모든 성조들의 앞장을 서서, 제게는 축복받은 아버지였던 하느님의 의인의 처소가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모시고 갈 것입니다.

저보다 앞서 가셔서 성조들에게 구원이 이 세상에 왔고, 오래지 않아 하늘나라의 문이 그들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시오.

아버지, 떠나십시오. 제 축복이 아버지와 같이 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죽음의 구름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요셉의 영에까지 이르게 하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말이 가까웠다. 노인은 이제 숨을 겨우 쉴 뿐이다.

마리아는 그를 쓰다듬는다. 예수는 침대가에 앉는다. 예수는 죽어가는 요셉을 껴안고 끌어당기고, 요셉은 착 까부라지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 장면에는 장엄한 평화가 가득 차 있다. 예수는 노인을 다시 누이고, 이 최후의 순간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마음 고통을 안고 예수에게 가까이 왔던 마리아를 껴안는다.

 

*역주 : 사람을 보기만 해도 죽이는 힘을 가졌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뱀 이름.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71. "마리아는 요셉이 세상을 떠났을 때 격심한 고통을 겪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심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여자들에게 나는 예수와 협력하면서 그의 과부 생활을 하는 마리아를 본받으라고 가르친다.

마리아가 마음의 고통은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고통을 겪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내 어머니 안에는 모든 것이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게 겪었지만, 심하게 겪었다.

그들 사이에는 정신적인 결합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이 꽤 미지근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역시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남편 요셉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마리아는 30년간의 충실한 생활을 그에게 바쳤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아버지요, 남편이요, 오라버니요, 친구요, 보호자였다.

이제 마리아는 그의 목숨이 매어져 있던 포도나무 그루에서 잘라낸 포도나무 가지 모양 외로움을 느꼈다. 그의 집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이제 마리아는 헤어지는 것이었다. 전에는 집안 식구들이 서로 의지하는 단일체였다. 그런데 지금은 주요한 벽이 없어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이 가정에 가해진 첫 번째 타격이었고,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와의 아주 임박한 이별의 예고였다. 마리아가 아내와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셨던 영원하신 분이 이제는 그에게 과부 생활과 아들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시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숭고한 '예'라는 대답 중의 하나를 한다. '예, 주님,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힘을 얻기 위하여 내게 바싹 다가온다. 마리아는 그의 생애의 가장 중대한 시간에 항상 하느님께 바싹 다가갔다. 성전에서 결혼하라고 부름을 받았을 때, 나자렛에서 어머니가 되라고 부름을 받았을 때, 역시 나자렛에서 과부의 처지에서 오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자렛에서 아들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당하면서, 골고타에서 내 죽음을 보는 고통을 당하면서 그렇게 하였다.

우는 너희들, 죽는 너희들, 죽을 몸으로 사는 너희들은 이 교훈을 받아라. 내가 요셉에게 한 말을 들을 자격을 얻도록 힘써라. 그 말들이 너희 임종 때에 너희들의 평화가 될 것이다. 죽는 너희들은 예수가 너희 곁에 와서 너희를 격려해 주게 할 자격을 얻기 위하여 이 교훈을 기억해 두어라. 그리고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역시 감히 나를 너희 곁으로 부르도록 하여라. 내가 오마. 손에는 은총과 위안을 잔뜩 들고, 용서와 사랑이 넘쳐흐르는 마음으로, 입으로는 사죄와 격려의 말을 하면서 오마.

죽음이 너희가 내 품에 있을 때에 찾아오면 격렬함을 모두 잃고 만다. 이 말을 믿어라, 내가 죽음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를 신뢰하면서 죽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즐거운 것이 되게 한다.

그리스도가 너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그 말을 하였다. '주여, 제 영을 당신께 맡기나이다'하고, 그리스도 그의 임종 때에 너희들의 임종과 공포와 그르침과 걱정과 용서받고자 하는 너희들의 소원을 생각하면서 그 말을 하였다. 그리스도는 창이 심장을 꿰뚫기 전에, 육체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안고, 이 말을 하였다. 그것은 그를 생각하면서 죽는 사람들의 임종의 고통이 주님에 의하여 완화되고, 영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고통에서 영원한 기쁨으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아, 이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착하게 살아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내 평화가 내 담화와 묵상을 통하여 네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예수의 가슴을 베개 삼고 마리아를 간호원으로 둔 요셉의 입장이 되어라. 요람에 들어 있는 아기와 같이 우리 사이에서 쉬어라.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72. 숨은 생활에 대한 결론으로

 

성모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이 공책들을 넘겨주기 전에 내 축복을 여기에 덧붙여 준다. 이제는 너희가 참을성을 좀 가지면 내 예수의 사적인 생활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다. 영보에서부터 예수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자렛을 떠나는 때까지 너희는 대담들 뿐 아니라, 예수가 가정생활할 때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해설도 얻게 된다. "

 

내 아들의 처음 시기인,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는 전부가 복음서들이 서술하는 그의 생활의 테두리 안에서 짤막한 일화들에 한정된다. 복음서에서는 내 아들이 스승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이고,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낮추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런데도 여기서, 평범한 생활의 허탈 속에서 기적을 행한다. 그는 기적을 내 안에서 행한다. 내 태중에서 형성되고 있는 아들과의 접촉으로 내 영혼이 완덕으로 이끌려 가는 것을 느끼는 나 안에서 말이다. 내 아들은 즈가리야의 집에서 세례자를 거룩하게 하고, 엘리사벳의 해산을 쉽게 해 주고, 즈가리야에게 말과 믿음을 돌려줌으로써 기적을 행한다. 요셉에게서 기적을 행한다. 즉 비록 의인이기는 하였지만 그의 능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높은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도록 그의 정신을 열어 줌으로써 행한다. 그래서 나 다음으로는 빗발치듯 쏟아지는 그 하느님의 은혜를 가장 기뻐한 사람은 요셉이었다. 요셉이 내 집에 오는 때부터 이집트로 피난하는 때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면에서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에 주의하여라.

처음에는 요셉이 다만 그 시대의 의인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계속적인 단계를 통하여 그리스도 시대의 의인이 되었다. 요셉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었고, 그 믿음에 조용히 빠져든다.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할 때에 '어떻게 할까?'하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여기서는 인간적인 걱정과 인간적인 근심을 가진 인간이 있는 그대로 온통 드러난다. 그러다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동굴에서 예수가 태어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거야'하고, 오고 있는 중인 예수는 벌써 이 희망과 더불어 그에게 용기를 준다. 그런데 희망은 하느님의 선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가 예수와의 접촉으로 거룩하게 되자 그는 희망에서 과감성으로 옮아간다. 요셉은 내게 대하여 품고 있던 존경 때문에 항상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물질적인 일과 좀 더 높은 차원의. 일도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는 가장으로서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하느님인 아들과 여러 달 동안을 같이 삶으로써 성덕이 가득 찬 후, 피난의 어려운 시간에는 걱정하는 나를 그는 격려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기를 가지고 있을 터이니까 여전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될 거요' 하고.

내 예수는 목자들에게 은총의 기적을 행한다. 천사는 나와 잠깐 만난 것으로 인하여 은총에 대한 경향을 미리 갖게 된 목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은총이 그를 영원히 구원하도록 은총이 있는 쪽으로 인도한다. 내 아들은 지나는 곳마다 피난을 하면서나 보잘것없는 나자렛 고향에 돌아와서나 늘 기적을 행한다. 그가 있는 곳에서 성덕이 마치 기름 얼룩이 리넨천에 번지듯이 번졌고, 공기가 꽃향기로 향기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접근해서 그를 만지는 사람은, 마귀가 아닌 이상, 성인이 되겠다는 걱정스러운 소원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었다.

이 걱정이 있는 곳에서는 이 걱정이 영원한 생명의 뿌리가 된다. 그것은 착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착하게 되고, 착함은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들의 거룩한 인성의 여러 시기를 알려주는 자세한 설명들을 통하여, 그의 일생의 시초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거룩한 인성을 상기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이것을 가지고 완전한 묘사가 될 하나의 전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네 영적 지도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면). 우리는 그것을 전부 한꺼번에 너희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것과 같이 진행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셨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 이익을 위하여, 네게 하여 준 설명 하나하나가 네가 입어야 하였던 상처에 대한 약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네가 별안간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그 약을 미리 주었다.

우박이 쏟아질 때에 그것을 피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폭풍우는 정신적인 물속에 잠겨 있는 인류를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지만, 너희들의 마음에 떨어진 초자연적인 가르침의 씨앗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한다. 그 씨앗은 바로 이 폭풍우의 때를 기다렸다가 표면으로 다시 떠올라서 '우리도 여기 있다'하고 말할 것이다. 내 사랑하는 딸아, 게다가(환상이 계속되는 순서에 대하여) 친절과 동시에 섭리적인 신중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현시대의 짓누름 밑에서 네가 어떻게 어떤 환상을 볼 수 있고 어떤 설명을 들을 수 있었겠느냐? 너는 그로 인하여 '대변자'라는 네 사명을 다할 수 없게 될 정도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우리는 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런 깃을 우선 네게 알려주었는데, 친절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우리는 네 고통과 잘 조화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그 고통을 한층 더하게 하였을 환상을 보여 주고 대화를 들려주는 것을 피하였다. 마리아야, 우리는 잔인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너희를 격려하도록 행동하지, 너희를 공포에 빠뜨리고 너희들의 고통을 더하게 하도록 행동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우리를 탁 믿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천상 선물을 가지고 너희들의 영을 안심시키러 오게 하려면, 너희가 요셉과 같이 예수님이 내게 남아 계시면, 모든 것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하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인간적인 선물과 위로를 네게 약속하지 않는다. 내가 네게 약속하는 것은 요셉이 받았던 것과 같은 위로, 즉 초자연적인 위로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다.

 

동방 박사들의 선물은 불쌍한 피난자의 목을 꽉 죄는 고리대금업자들하고, 집을 마련하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와 필요 불가결한 식량을 장만하는 데 번갯불 같이 빨리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거리를 얻을 때까지는 그 방편밖에 없었다.

히브리인 공동체는 항상 동족들을 도와줄 채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집트에서 만난 공동체는 박해당한 망명자들로만, 그러니까 그들과 합류하게 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졌었다. 예수를 위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의 예수를 위하여 남겨두기를 원하여 이집트에서 자리 잡는 비용에서 건져냈던 돈의 일부분은 귀국에 대비해 두어야 했었고, 우리가 돌아와서 나자렛의 집과 작업장을 수선하는 데 충분할까 말까 하였다. 시대는 변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은 항상 마찬가지여서, 남의 곤경을 이용하여 그를 부당하게 우린다.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데리고 있는 것으로 인해서 물질적인 재산이 마련되지는 않았다. 너희 중의 많은 사람은 예수와 겨우 조금 결합하여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이 물질적인 재산을 열망한다. 그들은 예수가 '영적인 재물을 찾아라' 하고 말한 것을 잊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덤으로 너희에게 올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새들에게 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도 양식을 마련해 주신다. 그것은 너희들의 영혼에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육체의 뒷받침이 필요한 만큼 너희가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우선 그분의 은총을 청하여라. 우선 너희 영에 필요한 것을 청하여라. 나머지는 덤으로 주실 것이다. 요셉은 예수와의 결합에서, 인간적으로 말해서는, 난처함과 피로와 박해와 굶주림을 받았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에게만 애착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영적인 평화와 초자연적인 기쁨으로 변하였다. 나는 내 남편이 '비록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여전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될 거요' 하고 말하게끔 되었을 그 상태에 너희들을 데려가고 싶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정신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나도 안다. 생명이 다 타버린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마리아야! ‥‥ 네가 예수에게 속해 있느냐? 예수에게 속해 있기를 원하느냐? 예수가 죽은 것과 같이 죽도록? 나에게 지극히 소중한 내 딸아. 울어라, 그러나 언제까지나 용감하고 꾸준하여라. 순교는 고통의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가 형벌을 참아 받는 꾸준함에 있는 것이다. 순교는 무기로 올 수 있다. 그러나 지향하는 목적이 같으면 정신적인 고통으로도 올 수가 있다. 너는 네게 참을성을 주는 내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 견딘다. 네가 형제들을 위하여 하는 일을 그들의 구원을 원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한다. 그것이 네 순교이다. 거기에 충실하여라. 모든 것을 너 혼자서 하기를 원치 않기로 동의하여라. 속박이 너무 강해서 눈물을 참으면서 행동할 힘과 네 본성을 억제할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항하지 않고 그저 참아 받기만 하면 된다. 예수에게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가 네 안에서 해줄 것이다. 예수 안에 머물러 있어라. 항상 그의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에게서 나오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러면 고통이 지독히 커서 네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더라도, 너는 여전히 예수 안에 있을 것이다.

네게 축복한다. 나와 함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하고 말하여라. 이것이 하늘나라에서 네가 이 말을 할 때까지 항상 네 외침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총이 항상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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