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생활 첫째 해(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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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II. 공생활 첫째 해(71-75)

by mrsoojak 2022. 1. 9.

포토밭

71. 예수께서 알패오의 마리아의 집에 가셔서 사촌 형 시몬과 화해하신다.

 

붉은 황혼 가운데로 어둠이 내리덮이기 시작한다. 황혼은 꺼지는 불과 같이 점점 더 어두워지다가 보랏빛도는 루비 빛깔이 된다. 드물게 볼 수 있는 찬란한 빛깔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천천히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어두운 코발트색 하늘 속에 사라진다. 그 곳에는 별과 반달이 떠 있는 동쪽 하늘이 점점 더 가까이 온다. 달은 벌써 하현이 되어간다. 농부들은 집으로 돌아가느라고 걸음을 재촉하고, 불을 피운 아궁이에서는 나자렛의 낮은 집들 위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예수께서 읍내에 도착하실 참인데 다른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과는 반대로 아무도 어머니께 가서 알려드리지 말라고 하신다. “아무 일도 없을 터인데 왜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드리겠느냐?” 하고 말씀하신다.

이제 시내로 들어왔다.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고, 버릇없이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의 무리가 지나갈 때에 문을 꽝 하고 닫는 사람도 있다.

베드로의 무언의 몸짓은 대단하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도 좀 불안하다. 알패오의 아들들은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죄수와 같다. 그들은 예수의 양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살피고 이따금씩 예수에 대하여 몹시 걱정하는 겁에 질린 눈길을 교환한다. 예수께서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인사를 받으시고 몸을 숙여 어린이들을 쓰다듬어 주신다. 어린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이쪽이나 저쪽 편을 들지 않고, 그들에게 대하여 항상 몹시 다정하신 그들의 예수를 언제나 사랑한다.

그들 중 하나, 기껏해야 네 살이나 되었을 통통하게 살이 찐 꼬마가 붙잡고 있던 엄마의 옷을 놓고 예수께로 달려온다. 그리고는 그 작은 팔을 내밀면서 “안아줘!” 하고 말한다. 예수께서 그를 만족시키느라고 안으시니 꼬마는 무화과를 빨아먹던 지저분한 입으로 예수께 입맞춤을 하고는 그의 사랑을 한껏 발휘하여 예수께 무화과 조각 하나를 드리기까지 하며 말한다. “먹어봐! 맛있어!” 예수께서는 그의 선물을 받으시고, 그 어린이가 주는 한입거리를 웃으며 받으신다.

이사악이 물병들을 들고 샘에서 온다. 그러다가 예수를 보고는 물병을 내려놓고 예수께로 달려오면서 외친다. “아이고! 주님! 선생님의 어머님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동서의 집에 계셨었지요. 그런데 … 편지를 받으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 때문에 여기 온 것이다. 지금은 어머니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말아라. 나는 우선 알패오 아저씨의 집으로 간다.”

이사악은 조심성 있게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만 말하고 물병을 들고 집으로 간다.

“이제 우리는 그리로 가겠다. 너희들은 여기서 우리를 기다려라. 오래 있지 않겠다.”

“물론 저희는 상중에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여기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사람들, 그렇지?”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베드로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들은 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전체의 의사를 존중하신다. 그러나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내게 아무렇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다. 그 사람들은 악의가 없다. 그들은 그저 인간적으로 정열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가자.”

그들이 이제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이제는 정원 입구에 있다. 예수께서 앞장서시고, 뒤에 유다와 야고보가 있다. 이제 예수께서는 부엌 문지방에 계시다. 화덕 곁에는 알패오의 마리아가 있는데, 음식을 만들며 울고 있다. 한 구석에는 시몬과 요셈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라의 알패오도 있다. 그들은 조상(彫像) 모양으로 말이 없이 앉아 있다. 이것은 관습인가? 나는 모르겠다.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이 집을 떠난 영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과부는 고함을 지르고 본능적으로 예수를 떠밀다시피 하며 예수와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선다. 시몬과 요셉이 침울한 얼굴로 당황해서 일어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적의를 품은 태도를 알아차린다는 표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두 사람에게로 가신다(시몬은 그 얼굴로 보아 벌써 50세쯤 되어 보이고 어쩌면 50이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다정스럽게 청하는 몸짓으로 그들에게 양손을 내미신다.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어리둥절해 있지만 비열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사람의 알패오는 몸을 떨고 눈에 띄게 괴로워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가 하고 기다리고 있다.

“시몬 형님, 이제는 가장이 되었는데, 왜 나를 맞아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형님과 같이 울려고 왔습니다. 초상 때에 정말 형님들과 같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멀리 있었던 것은 내 탓이 아닙니다. 형님은 공평한 사람이니까 그 말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로 서 있다.

“그리고 내게 지극히 소중한 이름을 가진 요셉 형은 왜 내 입맞춤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형님들은 내가 형님들과 같이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까? 죽음은 참된 애정들을 죄는 끈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서로 사랑했었는데, 왜 지금은 불화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 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시며 돌아가신 건 너 때문이야.” 하고 요셉이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리고 시몬은 “네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 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것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그대로 있지 않았니? 아버지는 너를 보고자 하셨는데…” 하고 말한다.

“나는 아저씨에게 내가 한 것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형들이 잘 알고 있어요….”

더 공정한 시몬은 말한다. “그건 사실이다. 네가 왔는데, 아버지가 너를 쫓아내셨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자이고 또 괴로워하는 분이었다.”

“나도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형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하고. 그러나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이 고통을 원하셨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그 때문에 생살 한 조각을 내게서 떼어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 고통 중에서 일생 동안 그분에게 감추어져 있었던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신 아저씨를 위해서, 이 고통으로 어린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도 더 유익한 제물을 바칠 가능성을 가지게 된 형들을 위해서, 또 지금은 형님이나 마 친가지로 성숙한 사람들이 된 야고보와 유다를 위해서도 고통을 느꼈습니다. 시몬 형님, 야고보와 유다는 많은 고통으로 그들의 성숙의 값을 치렀습니다. 고통은 그들을 맷돌로 갈 듯 갈았습니다. 고통은 그들을 어른이 되게 했고,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 눈에 완전한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가 무슨 진리를 보셨겠어? 오직 한 가지, 즉 아버지의 핏줄이 마지막 시간에 당신에게 적대적이었다는 진실만을 보셨어.”라고 요셉이 냉담하게 대꾸한다.

“아니야, 핏줄 위에는 영이 있어, 아저씨는 아브라함의 고통을 깨달으셨어, 그 때문에 아브라함의 도움을 받으셨어.”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것이 참말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보장하니?”

“시몬 형님, 내가 보장합니다. 그리고 나보다도 아저씨의 죽음이 그것을 보장합니다. 아저씨가 나를 찾지 않으셨어요? 찾으셨다고 형님이 말했지요.”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예수를 보고자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어도 내 영이 죽지는 말기를 바란다. 예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물리쳤으니 다시는 오지 않을 거다. 아이고! 예수 없이 죽다니!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왜 내가 그 애를 쫓아냈지?’ 그렇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예수는 여러 번 “제가 가야 합니까?”하고 물었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쫓아냈다. … 이제 그 애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아버지는 너를 보고자 하셨다. 너를 보고자 하셨어. 네 어머니는 너를 찾으러 사람을 보냈지만 가파르나움에서 너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많이 우셨다. 아버지는 마지막 힘을 다 모아 가지고 네 어머니 손을 잡고 곁에 있어 달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약간 아들이기도 하지. 나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예수의 무엇인지를 조금 가지기 위해서 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불쌍한 아버지!”

그런 다음 울부짖고 고통을 나타내는 몸짓을 하는 동방(東方)적인 광경이 벌어졌는데, 거기에 모두가 동참하고 용기를 내서 들어왔던 야고보와 유다 까지도 함께 한다. 가장 침착한 것은 예수님이어서 그저 울기만 하신다.

“너도 우니? 그러면 아버지를 사랑했니?” 하고 시몬이 묻는다.

“아이고! 형님, 그런 걸 물어보세요? 아니, 내가 할 수 있었더라면 아저씨의 고통을 허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나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기는 해도 아버지는 내 위에 계십니다.”

“너는 죽어가는 사람을 고쳐주면서도 아버지는 고쳐드리지 않았다.” 하고 요셉이 격렬하게 말한다.

“아저씨는 나를 안 믿으셨어.”

“요셉아, 그건 사실이다.” 하고 형 시몬이 지적한다.

“아저씨는 믿지 않으시고 원한도 버리지 않으셨어요. 나는 불신과 미움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형들에게 이제는 동생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자 여기들 있습니다. 형들의 원한으로 이들의 격렬한 아픔이 더 무거워지게 하지 마세요. 형들의 어머니는 저절로 끝이 나는 죽음보다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 증오로 인해서 더 고민하고 계십니다. 형들의 아버지에게서는 증오가 평화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나를 보고자 하신 갈망이 그분께 하느님의 용서를 얻어드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게 대해서 형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고, 아무것도 청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세상이 내게 거절하는 모든 것을 배상해 줍니다. 나는 인성으로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내 영은 이 세상 위로 들어 올려서 천상의 현실 속에서 몹시 기뻐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 사랑과 핏줄의 법을 어기지 마세요. 서로 사랑하세요. 야고보와 유다에게는 핏줄에 대한 모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혹 있었다 하더라도 용서하세요. 사실을 올바른 눈으로 보세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부르심이 그들의 영혼에 부과하는 필요성을 이해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서 가장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원한은 없고, 다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형들?”

어머니가 꼭 껴안고 있는 유다와 야고보는 눈물 사이로 동의한다.

“시몬 형님, 형님이 맏이이니 모범을 보이세요 ….”

“나는… 나로서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러나 너는….”

“오! 세상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날이 바뀔 때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 그리고 나는! 오세요. 그리고 형제의 입맞춤을 내게 주세요. 나는 형님을 사랑합니다. 형님도 아시지요. 형님을 냉혹하게 만드는 편견을 떨쳐 버리세요. 그것들은 원래 형님의 것이 아니고, 형님보다 덜 공정한 외부 사람들이 형님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형님은 언제나 형님의 올바른 마음으로 판단하세요.”

시몬은 아직 내키지는 않지만 팔을 벌린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입맞춤하시고, 그를 동생들에게로 데리고 간다. 그들은 울고 통곡하는 가운데 서로 입맞춤한다.

“이제는 요셉 형.”

“아니다. 중언부언하지 말아라.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기억한다.”

“정말이지 형은 그 원한으로 그 고통을 영속시키는구먼.”

“아무래도 좋다. 나는 충실하다.”

예수께서는 계속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시몬에게로 돌아서서 말씀하신다.

“저녁이 늦어져 갑니다. 그렇지만 형님이 원하시면… 우리 마음은 아저씨의 유해를 공경하기를 갈망합니다. 알패오 아저씨가 어디 계십니까? 어디에 모셨습니까?”

“집 뒤 올리브 밭이 끝나는 비탈이다. 품위 있는 무덤이다.”

“제발 저를 안내해 주세요. 아주머니, 용기를 내세요. 아저씨는 당신 아들들이 아주머니 품에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몹시 기뻐하십니다. 그대로 계세요. 저는 시몬 형님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들! 요셉 형에게는 형의 아버지께 말씀드린 말을 하겠어. ‘나는 원한을 품고 있지 않아. 형을 사랑해. 형이 나를 보고자 하면 불러줘. 와서 형하고 같이 울겠어.’ 잘 있어.” 그리고 예수께서는 시몬과 같이 나오신다….

사도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짝 쳐다본다. 그러나 두 사람이 타협이 잘 된 것을 보고 기뻐한다.

“너희들도 오너라.”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형님, 이 사람들은 제자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아저씨게 경의를 표하기를 원합니다. 가자.”

그들은 올리브 밭을 지나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다.

 

72. “은총은 항상 의롭게 살겠다는 뜻이 있는 곳에서 작용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1944년 2월 13일에 본 셋째 환상과 넷째 환상을 여기 삽입하여라.

 

네가 보다시피 고집이 덜 센 시몬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거룩하게 재빨리 정의에 복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즉시 내 제자가 되지는 않았고, 네가 1년 전에 알지 못하고 부른 것처럼 사도는 더구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패오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렇게 나와 만난 뒤로는 적어도 중립적인 방관자가 되었다. 또 사람들의 빈정거림에 대하여 그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를 남자가 보호하고 옹호해야 하였을 때 그분들의 보호자도 되었다. 나를 ‘미친놈’ 취급을 하는 사람들을 압도할 정도로 용감하지는 못하였고, 나 때문에 얼굴을 좀 붉히고, 여러 당파에 반대되는 내 포교 때문에 온 집안의 위험을 걱정할 만큼 아직 지나치게 인간적인 사람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는 벌써 올바른 길에 들어서 있었다. 나의 제헌 뒤에는 그 올바른 길로 점점 더 확실하게 걸어갈 줄 알았고, 순교로 나를 증거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은총이 어떤 때는 청천벽력처럼 작용하고, 어떤 때는 천천히 작용한다. 그러나 항상 의롭게 살겠다는 뜻이 있는 곳에서 작용한다.

 

평안히 있어라 네 고통 중에 평화롭게 있어라. 이제 부활절을 준비하는 때가 시작되는데, 네가 나 대신으로 십자가를 진다. 예수의 십자가의 마리아(마리아 발또르따를 말함)야, 네게 축복한다.”

 

그 후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너는 한없는 애덕과 사려 깊은 조심성으로 모든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 들어박혀 있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일 것이고, 물리치는 것은 애덕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미 네게 말했었지. ‘너는 사람들이 찾는 도시일 것이다.’고. 모두가 올바른 의향을 가지고 오지 않느냐? 그랬으면 어떻다는 거냐? 너는 신중하다. 그러면 되었다. 시간을 허비할 것을 염려하느냐? 그런데 시간의 주인은 누구냐? 나다. 그러면? 자, 겁내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가자. 내가 몇 번이나 내 예정을 바꿔야 했는지 너도 알지? 그런데 내 경우에 그러하였던 것이다. … 모든 사람에 대하여 평화와 애덕을 가져라. 그리고 셋째로는 조심성이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교훈의 내력은 구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73. 예수 나자렛에서 학대를 받으시다.

 

네모난 커다란 방이 보인다. (내 안에서 내게 알려주시는 분이 말하는 것과 같이) 그것이 나자렛의 회당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노란 칠을 한 아무 장식도 없는 벽돌과 한편에 비스듬히 일종의 높은 의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위판이 앞으로 기울어진 높다란 작은 책상도 있고, 그 위에는 두루마리들이 놓여있다. 작은 책상인지 겹친 선반인지? 마음대로 골라 부르기 바란다. 요컨대 밑에 다리가 달려 있고, 위에는 두루마리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는 일종의 기울어진 탁자이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들 같이 하지 않고, 모두가 한쪽을 향하여 있고, 손은 합장하지 않고 거의 제대에 있는 신부와 같이 하고 있다.

의자와 책상 위에는 등불들이 놓여 있다.

 

저는 이 환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환상은 얼마 동안 바뀌지 않고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저더러 쓰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다시 나자렛의 회당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유대교 교사가 글을 읽습니다. 그의 단조롭고 코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들리지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군중 가운데에는 예수님도 사촌들인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계신데, 다른 사람들도 틀림없이 친척들이겠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독서가 끝난 다음 교사는 무언의 초청을 하는 것 모양으로 군중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예수께서 앞으로 나가셔서 모임을 오늘 가지자고 요구하신다.

나는 예수께서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복음서에 인용된 이사야의 그 대목을 읽으시는 것을 듣는다. “주의 명이 내 위에 내려오시고…” 나는 예수께서 그 대목을 해설하시고, 당신을 “이전 율법의 준엄을 자비로 바꾸는 사랑의 율법이라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을 듣는다. “이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정신이 병들고, 또 죄는 악습을 낳고 악습은 육체의 병까지도 생기게 하기 때문에, 따라서 육체도 병이 든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악의 영이 사로잡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해방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사슬을 끊고 하늘의 길을 내주려고, 눈먼 영혼들에게 빛을 주고 귀먹은 영혼들을 듣게 하려고 왔습니다. 주의 은총의 때가 왔습니다.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있고, 은총이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조들은 이 날을 보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이 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 그 존재를 선언하신 날이고, 예언자들이 그때를 예언한 날입니다. 그리고 벌써 초자연적인 힘으로 이 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은 이 날의 새벽이 밝아왔고 이제는 그들이 낙원에 들어갈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즉 다만 내 축복만이 없어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지 못하는 성인들은 그들의 영으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나타난 빛을 찾아오시오.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필요한 민첩을 얻기 위하여 여러분의 좋지 못한 정열들을 벗어버리시오. 믿고 더 착한 사람이 되고 구원을 원하겠다는 착한 뜻을 가지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은 내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차지하겠다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줍니다. 맘몬을 계속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것은 은총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당 안에 불평의 소리가 일어난다. 예수께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시고, 마음속을 살피시고 계속하신다. “나는 여러분의 생각을 압니다. 내가 나자렛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특권 있는 우대를 바라고 있지요.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이 이기주의로 그러는 것이지 믿음의 힘으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진정으로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겠습니다. 다른 여러 고장에서는 나를 받아들였고, 장차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이름을 들으면 분개할 그런 고장에서까지도 말입니다. 그곳에서는 내가 제자를 많이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은 내게 무관심하고 또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엘리야와 엘리세오의 일을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엘리야는 어떤 페니키아 여자에게서 믿음을 발견하였고, 엘리세오는 어떤 시리아 사람에게서 믿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페니키아 여자와 이 시리아 사람을 위하여 엘리야와 엘리세오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빵이 없고 문둥병자들이 깨끗해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다른 곳에서는 발견한 고급 진주와 같은 착한 뜻이 그들의 마음에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반대하고 믿지 않는 여러분도 그런 일을 당할 것입니다.”

군중이 흥분하여 저주를 하며 위협한다. 군중은 예수를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촌 사도인 유다와 야고보, 그리고 시몬이 예수를 옹호한다. 그러니까 화가 잔뜩 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를 시외로 쫓아낸다. 말만이 아닌 위협을 하며 야산 꼭대기까지 예수를 쫓아간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시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눈길로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하시고 탈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시어 야산의 오솔길로 해서 사라지신다.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작은, 아주 작은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은 나자렛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나자렛은 몇 킬로미터 저 아래쪽에 내려다보인다. 대단히 가난한 작은 마을이다.

예수께서는 어떤 오막살이 곁에 있는 낮은 담에 앉으셔서 마리아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아마 친한 집이든가 혹은 적어도 동방적인 인심의 가르침을 따라 환대하는 집인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나자렛에서 쫓겨나신 후 이곳에 피신하셔서, 당신이 어머니 곁에 계신 동안 틀림없이 그 근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사도들을 기다리신다.

예수님과는 사촌 사도 세 사람만이 같이 있는데, 그들은 지금 부엌에 모여서 어떤 나이 든 여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여인을 타대오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이 이유로 나는 그 여인이 클레 오파의 마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데, 가나의 혼인잔치에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같이 있던 여자인 것을 알아보겠다. 그 여자와 아들들은 분명히 예수와 어머니께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게 하려고 그곳으로 피해 온 모양이다.

마리아는 대단히 슬퍼하신다. 마리아는 회당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 들으셨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위로하신다. 마리아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이 그에게 악의를 품고 있고, 그를 불화와 말다툼이나 일으키려고 하는 미치광이로 보는 다른 친척들까지도 악의를 품고 있는 나자렛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애원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손짓을 하신다.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내버려 두세요!” 그러나 마리아는 조르신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어머니, 만일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곳에만 가야 한다면,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사방에 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진리를 미워하는데, 제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쉬운 사랑을 찾아내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사람을 구속하려고 왔습니다. 사랑은, 어머니가 사랑이십니다. 어머니는 제게 나머지 모든 것을 보상해 주는 내 사랑이십니다. 어머니와 이 작은 양 떼가 제 사랑입니다. 이 작은 양 떼는 제가 열정이라는 늑대에게서 빼앗아 하느님의 양우리로 데려오는 양 몇 마리로 날마다 불어납니다. 그 나머지는 의무입니다. 저는 이 의무를 다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선에 반항하는 냉혹한 마음에 부딪혀 부서지기까지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더 나가, 제가 쓰러져서 제 피에 그 마음들을 담글 때에야 비로소 그들 마음에 원수의 인호(印號)를 지워 버리고 제 인호를 박아서 그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이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성취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이고! 아들아! 내 아들아!” 마리아의 목소리는 몹시 고민하는 목소리이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어루만지신다. 나는 마리아가 머리에 베일 이외에 겉옷까지도 쓰고 계신 것을 알아본다. 마리아는 마치 여사제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얼굴을 베일로 더 가리고 계시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얼마 동안 딴 데 가 있겠습니다. 이 근방에 와 있게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요한을 보내라. 요한을 보면 너를 좀 보는 것 같다. 그의 어머니도 너와 내게 더없이 경의를 표한다. 하긴 그이가 아들들을 위해서 특권이 있는 자리를 바라기는 하지만, 예수야, 그이가 여자이고 또 어머니이니, 관대하게 보아주어야 한다. 그이가 제게도 그 말을 할 거다. 그러나 진정으로 헌신적인 여자이다. 그 여자가 그의 안에서 술렁이고 있는 인간성에서 해방되고 나면 믿음으로 위대한 여자가 될 것이다. 인간성은 그 여자의 아들들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모든 사람 안에서도 술렁이고 있단다. 모든 사람이 네게서 인간적인 이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또 혹 인간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기적인 이익을 기다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죄가 그 욕망과 더불어 그들 안에 있다. 네가 죄를 없앨 복된 시간,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내가 갈망을 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지없이, 그지없이 두려운 그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오! 그 시간! 네 어미 마음이 그 시간 때문에 어떻게 떨리는지 모른다! 아들아, 그들이 네게 어떤 짓을 하겠느냐? 예언자들이 그러한 수난을 당하리라고 예언한 구세주인 내 아들에게 말이다.”

“어머니, 그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시간에는 하느님께서 어머니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어머니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평화가 올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제는 가 보세요. 어두워지고 갈 길은 멉니다. 어머니께 축복합니다.”

 

74. 예수께서 어머니와 함께 쿠자의 요안나의 집에 가신다.

 

예수께서 쿠자의 요안나의 집으로 향해 가시는 것이 보인다. 문지기가 어떤 사람이 오는지를 알아보고는 어떻게 기쁘게 외쳤던지 온 집안이 술렁거린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축복을 하시면 들어오신다.

요안나는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달려와 땅에 엎디어 스승의 발에 입맞춤한다. 쿠자도 온다. 그는 처음에는 몸을 깊이 숙이고, 그 다음에는 예수의 옷자락에 입맞춤한다.

쿠자는 마흔 살쯤 된 미남자이다. 그는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골격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으로 머리털은 검지만 관자놀이에는 흰 머리카락이 몇 오라기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은 날카롭고 짙을 빛깔이며, 살갗은 희고, 네모난 검은 수염은 손질이 잘되어 있다.

요안나는 남편보다 더 크다. 지난번 병의 흔적이라는 두드러지게 날씬한 것뿐이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해골을 덜 연상시킨다. 그는 날씬하고 나긋나긋한 종려나무 같은데, 그 끝에는 매우 다정스럽고 검고 그윽한 눈이 있는 우아한 머리가 달려 있다. 숱이 많은 새까만 머리는 정성스럽게 빗겨져 있다. 반들반들한 넓은 이마가 이 어두운 빛깔 아래서는 훨씬 더 희게 보인다. 윤곽이 뚜렷한 작은 입은 우아하게 흰 뺨 가운데에서 어떤 동백꽃의 꽃잎과도 같이 그 자연스러운 붉은 빛깔로 두드러지게 보인다. 대단히 아름다운 여자이다. … 그리고 갈바리아에서 론지노에서 돈주머니를 주던 그 여자이다. 그곳에서 이 여자가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며 아연실색하고 베일로 얼굴을 잔뜩 가리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미소를 짓고 머리에 베일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 여자이다.

“선생님을 손님으로 모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고 쿠자가 묻는다.

“내 어머니를 기다리기 위해 좀 쉴 필요가 있어서요. … 나는 나자렛에서 오는 길인데… 내 어머니를 얼마 동안 모셔와야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가파르나움으로 가겠습니다.”

“왜 저희 집에 계시지 않고요? 저는 자격은 없습니다만…” 하고 요안나가 말한다.

“요안나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며칠 전에 남편을 여읜 과부 동서와 같이 옵니다.”

“집이 커서 여러분을 모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너무나 많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집은 선생님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주님, 이 집에서 죽음을 멀리 쫓아 보내시고, 이 집에 장미꽃이 다시 활짝 피게 하신 주님, 명령하십시오.” 하고 쿠자가 아내의 청을 뒷받침하며 말한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의 눈길을 보고 이것을 깨닫는다.

“나는 명령은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는 합니다. 내 어머니는 매우 피로하셨습니다. 최근에 고통을 많이 겪으셨지요. 어머니는 나 때문에 걱정을 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이리로 모셔 오십시오. 저는 어머님께 딸이 되고 종이 되어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요안나가 외친다.

예수께서 받아들이신다. 쿠자는 거기에 따른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즉시 나간다. 환상이 이중(二重)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쿠자의 호화로운 정원에 머물러 계시면서 쿠자와 그의 아내와 말씀을 나누고 계시다. 그동안 나는 요나타가 나자렛으로 마리아를 모시러 갔던 편리하고 빠른 마차가 도착하는 것을 따라오며 본다.

자연 이 사실로 인하여 읍내가 떠들썩하다. 마리아와 동서가 두 여왕과도 같이 요나타의 경의를 받으며, 사라의 알패오에게 집의 열쇠를 맡긴 다음 마차에 오를 때에는 흥분이 더해지다. 마차가 멀어져 가는데, 알패오는 회당에서 예수께 대하여 저지른 비열한 행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여 복수를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우리보다 낫습니다! 헤로데의 하인이 예수의 어머니를 어떻게 공경하는지 보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나는 나자렛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두 편 사이에 진짜 싸움이 일어난다. 적대적인 편을 버리고 알패오에게로 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야 물론이지요!” 하고 알패오가 대답한다. “지배인 집의 손님이란 말입니다. 그의 집사가 말하는 것을 들었지요. ‘제 주인이 그의 집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고 말했어요. 영광스럽게 해 주십사고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부자이고 권력 있는 쿠자이고, 그의 부인은 공주란 말입니다. 영광스럽게 해 주십사고! 그런데 우리 고을에서는, 아니 당신들의 고을에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단 말입니다. 얼마나 창피스러운 일입니까!”

나자렛 사람들은 대꾸를 못하고, 알패오는 더 힘 있게 말한다. “물론 예수를 차지하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뒷받침은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쿠자를 친구로 가지는 것이 무익한 일인 것같이 보입니까? 쿠자가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이 유리한 일인 것 같습니까? 그 사람은 분봉왕의 지배인입니다. 아시겠어요? 이게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까? 그리스도에 대해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행동하시오. 그렇게 행동해요! 여러분은 고관들의 미움을 삽니다. 그때에는… 아! 그때에는, 당신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소! 하는 쪽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땅 쪽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바보들! 악인들! 불신자들!” 욕설과 비난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그동안 나자렛 사람들은 기대가 어긋난 개들처럼 머쓱해서 떠나간다. 알패오는 마리아의 집 어귀에 복수하는 대천사 모양으로 혼자 남아 있다….

… 저녁이 깊어가는 시간인데 호수를 끼고 나 있는 눈부신 길로 튼튼한 말들이 속보(速步)로 끄는 요나타의 마차가 온다. 벌써 문에서 망을 보고 있던 쿠자의 하인들이 알리고 등불들을 들고 달려온다. 등불들로 인하여 달빛이 더 환해진다.

요안나와 쿠자가 달려오고, 예수께서도 미소를 띠고 나타나신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사도의 무리가 따라온다. 마리아가 마차에서 내리실 때 요안나는 땅에까지 닿도록 몸을 구부려 인사를 한다. “왕의 가문의 꽃은 찬미받으십시오. 구세주이신 말씀의 어머님께 찬미와 축복을 드립니다.” 쿠자는 궁중에서 헤로데 앞에서 할 수 있었던 어떤 절보다도 더 깊은 절을 하면서 말한다. “어머님을 제게로 모셔 오는 이 시간은 축복받으라. 예수의 어머님, 찬미받으십시오.”

마리아는 다정스럽고 겸손하게 대답하신다. “우리 구세주는 찬미받으시기를, 그리고 내 아들을 사랑하는 착한 이들은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가장 큰 경의의 표시로 환영을 받으며 모두 집안으로 들어간다. 요안나는 마리아의 손을 잡고 미소를 보내며 말한다. “제게 어머님의 시중을 드는 것을 허락하시겠지요?”

“나 말고, 항상 내 아들의 시중을 들고 사랑해요. 그러면 요안나가 내게 모든 것을 준 것이 될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내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 이것이 내 고통입니다.”

“저도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데, 왜 세상 사람의 일부분은 무관심할까요?”

“그것은 내 아들이 많은 사람에게 반대의 표가 되기 때문이고, 내 아들은 금속을 정련하는 불이기 때문입니다. 금은 정련됩니다. 그리고 찌꺼기들은 밑바닥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버립니다. 내 아들이 아직 아주 어릴 적에 누가 내게 이 말을 했습니다. … 그리고 나날이 예언이 실현됩니다….”

“마리아, 울지 마세요.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고 옹호하겠습니다.” 하고 요안나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하여 말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말없이 계속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 그 눈물을 그들이 앉아 있는 좀 어두운 구석에서 요안나만이 볼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75. 예수께서 안나의 집 포도 수확하는 데 계신다. 마비 환자 소년의 기적

 

갈릴래아의 농촌 전체가 포도 수확하는 즐거운 일에 종사하고 있다. 남자들은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서 정자 모양으로 올린 포도나무와 그냥 올린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딴다. 여자들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붉고 금빛나는 포도송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압착공(壓搾工)들에게 가져간다. 노래와 웃음과 농담이 포도밭에서 포도밭으로, 정원에서 정원으로 옮아간다. 동시에 포도즙 냄새가 퍼지고, 굉장히 많은 벌들이 취한 듯이 윙윙거리며 아직 작은 포도송이가 많이 달려 있는 포도 햇가지 위에서 바구니까지, 또 포도알들이 뿌연 죽같이 된 포도즙에서 몰라보게 되어 사라지는 양조통에까지 빨리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짐승 때 모양으로 포도즙으로 얼굴이 더러워진 어린이들은 풀밭으로, 마당으로, 길로 뛰어다니며 제비 소리를 낸다.

예수께서는 호수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마을로 향해 가신다. 그래도 북쪽으로 향한 두 산맥 사이에 일종의 함몰(陷沒)을 이루는 평야로 된 마을이다. 평야는 강(나는 요르단강으로 생각한다)이 건너질러 가기 때문에 관개가 잘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큰길로 지나가시고 많은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외치며 인사한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축복하신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호화로운 대저택이 있고, 그 입구에서 나이 먹은 부부가 스승을 기다리고 있다. “들어오십시오. 일이 끝나게 되면 모두가 몰려와서 선생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정말 큰 기쁨을 가져오십니다! 선생님에게서 오는 이 기쁨은 마치 수액처럼 포도나무 새 가지가 퍼져서 사람들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가 됩니다. 이분은 어머님이십니까?” 하고 집주인이 묻는다.

“내 어머니이십니다. 이제는 어머니도 내 제자의 무리에 들어 계시기 때문에 모시고 왔습니다. 받아들여진 순서로는 꼴찌이지만 충실한 순서로는 첫째이십니다. 어머니는 사도이십니다. 내가 나기 전부터 내게 설교를 하셨거든요. … 어머니, 오세요. 제가 전도를 처음 시작했을 때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피로한 어머니의 아들에 대해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동정심 많은 할머니, 주님께서 당신 은총을 할머니께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메시아와 어머님을 모셨기 때문에 은총을 얻었습니다, 오십시오. 집안이 시원하고 햇빛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머님은 쉬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피곤하시지요?”

“내게는 세상의 증오 외에는 다른 피로는 없어요. 그러나 그를 따르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내 아득한 어릴 때부터 내 소원이었어요.”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사람 중 마지막으로라도 메시아의 말을 듣고 메시아를 섬길 수 있을 만큼 오래 살기를 바랐었지요. 꼴찌라도 충실하게, 그러면요! 충실하게 말이지요!”

“어머님은 메시아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분의 시중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니 이 기쁨으로 어머님이 첫째이십니다. 저도 어미이고 얌전한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그 애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제 마음이 자랑스러워서 뜁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드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감미로운 황홀을 느낍니다. 저는 제 허무와 바로 아들 자신인 인자 안에 빠져 들어갔다가 역시 아들과 같이 몸을 일으킵니다. 그때에는 단순한 눈길로 영원한 진리를 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진리가 제 영의 살과 피가 됩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찬미합니다! 어머님의 마음은 깨끗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이해하시는 것이지요. 저희들은 죄가 많기 때문에 더 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제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이 그들에게 이해하게 하는 빛이 될 것이니까요. 정말이지 어떤 계획을 막론하고 쉽게 만드는 것은 사랑인데, 저는 어머니이고, 제게서는 사랑이 샘솟듯 하니까요.”

두 여인은 아직 이야기를 계속한다. 할머니는 우리 주의 어머님 곁에 앉아 있는데, 주의 어머님은 아주 젊으시고, 여전히 매우 젊으시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주인 남자와 같이 양조통들 곁에서 말씀하시는데, 수많은 포도 따기 일꾼들이 거기에 포도송이들을 붓고 또 붓고 한다. 사도들은 어떤 쟈스민 정자 그늘에 앉아서 포도와 빵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하루해가 황혼에 이르고 일이 천천히 끝난다. 농부들이 이제는 모두 으깨진 포도 냄새를 풍기는 시골식 큰 마당에 모여 있다. 이웃집 여기저기에서 다른 농부들이 온다.

예수께서는 밑에 농산물 부대들과 농기구들이 들어있는 홍예가 달린 건물 측면(側面)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올라가신다. 예수께서는 그 층계의 몇 단을 올라가시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나는 그 미소를 저녁 미풍에 너울거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본다. 그리고 그렇게도 환한 이 미소의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대단히 침울한 내 마음에 이 미소의 기쁨이 집주인이 말하던 포도주와 같이 들어와서 그 고통을 덜어준다.

 

오늘 예수님이 제 고통을 덜어주신 것이 이것이 첫 번째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신부님은 제가 성체를 모실 때에 점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우는 것을 보셨지요. 예수님은 항상 그러시는 것처럼 신부님이 “보라. 천주의 어린양” 하고 말씀하실 때에 제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시고 제게 미소를 보이시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침대 왼쪽에 계시던 자리를 떠나셔서 가볍게 굽이치는 것 같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으셔서 제 오른쪽으로 오셔서 손을 뻗어 제가 느낄 수 있게 어루만져 주시면서 “울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미소가 제 마음에 평화가 넘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시어 층계 꼭대기 맨 마지막 단에 앉으신다. 층계는 청중 중에서 가장 예우(禮遇) 받은 사람들에게 특별석이 된다. 가장 예우받은 사람들이란 집주인 부부와 사도들과 마리아이다. 항상 겸손하신 마리아는 이 귀빈석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셨으나 주인 여자가 그리로 모셨던 것이다. 마리아는 바로 예수 아래 단에 앉으셨다. 그래서 금발 머리가 아들의 무릎 높이에 있고, 또 비스듬히 앉으시면 사랑하는 비둘기 같은 그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다. 마리아의 부드러운 옆모습은 시골식 건물의 우중충한 벽 위에 마치 대리석 위에서처럼 환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좀 더 아래쪽에는 사도들과 집주인 부부가 있다. 마당에는 모든 농부가 모여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서 있고, 어떤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양조통에 올라앉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마당 네 귀퉁이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마리아 뒤에 있는 커다란 씨앗 부대에 넣으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씨앗을 가지고 장난을 하시고 즐겁게 어루만져 주시는 것 같다. 그동안 오른손으로는 조용한 손짓을 하신다.

“나는 ‘예수님, 오셔서 사람들이 일하는 것에 축복해 주십시오.’ 하는 말을 듣고서 왔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일에 축복합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든지 성실하면 영원하신 주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했습니다. 즉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데 필요한 첫째 조건은 모든 행동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제는 행동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성실한지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정신에 영원하신 하느님을 모시고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이 성실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셔서 내 행동의 아주 작은 부분 하나도 하느님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언젠가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유익한 생각이고 어떤 인간적인 위협보다도 사람을 죄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느님을 두려워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잘 들으시오. 여러분은 ‘네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얼굴이나 또는 주의 천사가 의인인 그들의 영에 나타났을 때 성조들이 몸을 떨었고 예언자들이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하느님의 분노의 때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발현은 사람들의 마음을 떨게 해야 했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가 능하신 분 앞에서 떨지 않겠습니까? 그 영원한 광채 앞에서 천사들이 천상의 알렐루야를 열심히 거듭 노래하며 흠숭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그 능하신 분 앞에서 말입니다. 바로 볼 수 없는 천사의 광채를 사람의 눈이 쳐다보면서도 눈동자와 정신이 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자비의 베일로 완화하십시다. 그러니 하느님을 뵙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의 분노가 계속되는 동안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 대신에 평화가 오고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가 그것을 맹세하였으니, 내 약속을 지키겠다. 여기 내가 보내는 분이 있다. 그런데 그분은 내가 아니면서도 나이다. 구원이 되기 위하여 육체를 취한 내 말씀이다.’하고 말씀하실 때에는 두려움에 뒤이어 사랑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가 이 세상에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왔으므로 하느님께 사랑만을 기쁘게 드려야 합니다. 봄바람이 포도나무 꽃가루를 퍼뜨릴 때에는 농부는 아직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일기불순과 벌레들을 통하여 실과에 대한 수많은 계략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포도 수확 때가 오면 염려는 일체 없어지고 수확의 확실성으로 몹시 기뻐합니다.

미리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된 옛세 가문의 후예가 왔습니다. 그가 지금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지혜의 포도즙을 가져다주고 또 사람들을 위한 포도주가 되기 위하여는 따서 짜주기만을 요구하는 신기한 포도송이입니다. 그것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기쁨을 주는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이 포도주가 그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데도 그것을 물리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를 마셔서 영양을 취한 다음에 그것을 물리치거나 그들 안에서 맘몬의 음식과 섞어 놓는 사람들은 훨씬 더 불행합니다.

이제는 내가 처음에 말했던 의견에 대한 말을 다시 하겠습니다. 영적인 일에나 인간적인 일에나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첫째 힘은 올바른 의향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지마는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그것은 그분이 행하는 기적 때문이 아니고, 그분이 주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고 때문이다.’하고 말하는 사람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은 이익을 탐해서가 아니라, 노동을 하느님께서 성화의 방법으로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노동은 도야(陶冶)하고 극기를 시키고 보호하고 향상하는 힘이 있으니까 나는 이웃을 도울 수 있기 위하여 일한다. 나는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빛내기 위하여 일한다. 아주 작은 낟알에서 이삭 뭉치를 나게 하시고, 포도씨에서 커다란 포도나무를 나게 하시고, 씨 하나에서 나무를 나게 하시며, 당신의 의지로써 없는 가운데에서 끌어내린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나를 가지고 밀과 포도나무와 실과들을 영속시키고 땅에 사람을 번식시키는 데에 당신을 도와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이다.’ 하고.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들같이 일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불린다는 신앙 외에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곁에서 더 가진 것 없는 동료가 궁핍과 쇠약으로 죽어간들, 이 불쌍한 사람의 아들들이 굶어 죽어간들, 자기 재산을 늘리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보다 한층 더 무자비해서 자기들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땀을 이용해서 재산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탐욕으로 남의 고달픈 일에서 끌어낸 것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말이지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실한 노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신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오늘은 승리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엄한 매를 맞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나 영원에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나를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을 환기시키실 것입니다. 오! 그때에 이 말이 영원 안에 울려 퍼지면, 그 말들이 시나이산의 벼락보다도 더 무서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말만을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오.’ 이 말은 봄에 포도나무 그루에 그것을 비옥하게 하느라고 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이기주의와 나쁜 열정의 해로운 풀들을 땅에서 뽑아내는 제초기(除草機)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포도나무를 기생초(寄生草)와 분리시키고 신선한 물로 영양을 주기 위하여 포도나무 그루 둘레에 동그라미를 파는 괭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수액을 압축시켜 열매가 형성되기로 된 곳으로 보내기 위하여 쓸데없는 순을 쳐주는 작은 낫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초목을 받쳐주는 튼튼한 버팀 막대에 초목을 꼭 잡아매는 끈과 같은 것이고, 끝으로 착한 뜻의 열매들을 익게 하여 그것을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되게 하는 태양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는 올 농사가 잘 되어 곡식도 많이 거두었고 포도 수확도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정말 잘 들어두시오.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이 기쁨은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에 여러분이 느끼게 될 한없는 기쁨과 비교하면 모래 한 알 만도 못한 것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말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열매를 많이 맺은 내 포도나무 가지들아 오너라. 너희들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모든 작업을 그것이 힘들 때에도 받아들였다. 그러니 이제는 나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단 즙을 많이 가진 너희들은 내게로 와서, 내 정원에서 영원히 활짝 피어나라.’

이 영원한 기쁨을 향하여 몸을 돌리시오. 이 선을 추구하도록 충실히 전념하시오. 이 선에 이르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영원하신 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미하시오. 당신의 말씀의 은총을 주신 데 대하여 그분을 찬미하고, 풍부한 수확의 은혜를 주신 데 대하여 그분을 찬미하시오.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를 사랑하시오. 그리고 두려워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 대신 백을 갚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끝내셨을 터인데, 모두가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세요! 선생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하고 외친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시어 팔을 벌리고 우레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강복하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당신 얼굴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시고,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얼굴이 여러분을 굽어보시고 당신의 평화를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이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집과 여러분의 밭에 있기를 바랍니다.”

군중이, 거기 모였던 작은 군중이 기쁨의 환성을 올리고 메시아를 환호한다. 그러나 그 후 열 살쯤 된 마비 환자 소년을 안은 어머니를 지나가게 하느라고 길을 터준다. 층계 아래서 그 여자는 마치 그 소년을 예수께 바치려는 것처럼 내민다.

“제 하녀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고 집주인이 설명한다. “그의 아들이 작년에 옥상정원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습니다. 저 애는 일생동안 누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 어머니는 선생님께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고 주인 여자가 덧붙인다.

“내게로 오라고 하세요.”

그러나 가엾은 그 여자는 어떻게나 흥분했는지 그 자신이 마비 환자가 된 것 같다. 그 여자는 온몸을 떨고 아들을 안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옷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마리아가 동정하여 일어나셔서 그 여자를 맞으러 내려오시며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고 오세요. 내 아들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들을 내게 주세요. 그러면 올라가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내 딸이여 오시오. 나도 어머니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에게서 아이를 받아 가지고, 그 불쌍한 짐을 팔에 안고 올라오시면서 소년에게 다정스럽게 미소를 지으신다.

마리아가 이제는 예수 앞에 계시다. 마리아는 무릎을 꿇고 말씀하신다. “아들아! 이 어미를 위해서!” 아무 다른 말씀도 없다.

예수께서도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랍니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하는 늘 하시는 질문을 안 하신다. 그렇게 안 하시고 미소를 지으시고 “부인, 이리 오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여인은 마리아 곁에까지 간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고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기뻐하시오.” 이 말씀을 채 끝내지도 않으셨는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늘어뜨리고 마리아의 팔에 무겁게 누워 있던 소년이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엄마!" 하고 기쁘게 외치면서 뛰어가 엄마의 품에 파고든다.

기쁨의 함성이 황혼이 붉게 물들인 하늘을 꿰뚫으려는 것 같다. 아들을 가슴에 꼭 껴안은 여인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예수께 묻는다. “제가 행복하다는 걸 말씀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또 어루만져 주시며 말씀하신다. “착하게 살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아들에게 이 사랑을 가르치면서 기르시오.”

그러나 여인은 아직 만족하지 않다. 그 여인의 소원은… 그의 소원은… 그러다가 마침내 이렇게 청한다. “제 어린것에게 주님의 입맞춤과 어머니의 입맞춤을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몸을 숙여 어린이에게 입맞춤하시고 마리아도 입맞춤하신다. 그리고 그 여인이 환호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환성 가운데로 만족해하며 멀어져 가는 동안 예수께서 주인 여자에게 이렇게 설명하신다.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이가 제 어머니 팔에 안겨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도 어린이를 고쳐 주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비탄을 위로하실 수 있으면 기뻐하시는데, 저는 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와 마리아 사이에는 그것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눈길의 하나가 오간다. 그분들의 눈길은 그만큼 뜻이 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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