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생활 첫째 해 (목차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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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II. 공생활 첫째 해 (목차 1~5)

by mrsoojak 2021. 12. 20.

그리스도의 세례 레오나르도 드빈치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II. 공생활 첫째 해

 

1. 나자렛을 떠나시면서 예수께서 어머니께 하직을 하신다.

2. "마리아는 공동속죄자이기 때문에 우셨다."

3. 예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다

4. 요한에게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5. 예수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당하시다.

6. "사탄은 언제나 친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7. 요한과 야고보와의 만남

8. "나는 요한을 그의 순결 때문에 사랑한다"

9 . 요한과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메시아에 대하여 말한다

10. 베드로가 처음으로 메시아를 만나다

11. "요한은 겸손으로도 훌륭하였다"

12. 예수께서 베싸이다의 베드로의 집에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만나시다

13. 유다 타대오가 예수를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하기 위하여 베싸이다에 오다

14.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신 예수

15. "어머니, 앞으로는 어머니와 저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

16. 예수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시다

17. 가리옷 사람과 토마와의 만남. 열성당원 시몬에 대한 기적

18. 토마가 제자가 되다

19. 알패오의 유다, 토마, 그리고 시몬이 요르단강 옆에서 제자로 받아들여지다

20. 과월절을 지내신 후 여섯 제자와 더불어 나자렛에 돌아오시다

21. 가파르나움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다.

22. 회당에서 가파르나움의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다.

23.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시다

2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서 전도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다.

25. 예수께서 밤 동안에 기도하시다

26. 코라진 근처에서 문둥병자를 고쳐 주시다.

27. 가파르나움의 베드로의 집에서 반신불수를 고쳐 주시다

28. 기적적인 고기잡이

29. 가리옷 사람이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다시 만난다. 예수께서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

30. 예수께서 물고기 성문에서 칼날을 부러뜨리는 기적을 행하시다

31. 예수께서 가리옷 사람과 같이 성전에 가셔서, 거기서 전도하신다

32. 예수께서 가리옷 사람 유다를 가르치신다

33. 예수께서 게쎄마니에서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을 만나신다

34. "요한은 내게 대한 사랑으로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사람들의 완전한 전형이다."

35. 예수와 가리옷 사람이 열성당원 시몬과 요한을 만나다

36. 예수와 요한, 시몬, 유다가 베들레헴으로 간다.

37.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가셔서 농부의 집과 동굴에 들르신다

38. 예수께서 베들레헴의 여인숙에 들르시고 안나의 집 폐허에서 전도하신다

39. 예수와 목자 엘리야와 레위와 요셉

40. 예수께서 유다의 목자 이사악을 찾아가신다.

41. 예수께서 헤브론에 가신다. 즈가리야의 집. 아글라에

42. 예수께서 가리옷에 가신다. 늙은 사울이 죽다.

43. 돌아오시는 길에 예수께서 헤브론 근처에서 목자들과 만나신다

44. 예수께서 엄재하신 산과 유혹을 당하신 산악지대에 가신다

45. 예수께서 요르단강의 걸어서 건너는 곳에서 목자 요한, 마티아와 시몬과 만나시다

46. 가리옷 사람이 디오메데스에게 아글라에의 보석을 판다

47. 예수께서 유다 때문에 울으시고, 열성당원 시몬이 예수를 위로한다

48 "너희들의 경우에도 착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비율은 착한 사람들과 유다 사...

49. 예수께서 베다니아에서 라자로를 만나시다

5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셔서 성전에서 가리옷 사람의 말을 들으신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51. 예수께서 물고기 성문에서 병사 알렉산드르와 말씀하신다

52. 드고아 근처에서 예수와 이사악. 에스드렐로으로 출발하다

53. 예수께서 에스드렐론 평야로 목자 요나를 찾아가신다

54. 요나와 헤어지신 후 나자렛에 돌아가시다

55. 이튿날, 나자렛의 집에서

56. 올리브 밭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교훈

57. 집 근처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58. 나자렛의 정원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59. 코라진의 미녀를 고쳐주심.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전도하신다

60. 알패오의 야고보가 제자로 받아들여진다.예수께서 마태오의 계산대 곁에서 전도하신다

61. 베싸이다에 가신 예수. 군중에게 전도하신다

62.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다

63. 예수께서 티베리아의 호수에 오시어, 이 도시 근처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신다.

64. 예수께서 티베리아에 가시어 쿠자의 집으로 요나타를 찾아가신다.

65. 예수께서 알패오 아저씨의 집에 가셨다가 당신 집으로 가신다.

66. 예수께서 어머니께 제자들에 대하여 물으신다

67. "사도들의 인간성! 그것은 얼마나 둔했었느냐!"

68. 가나 근처에서 쿠자의 요안나의 병이 낫다.

69. 예수께서 리반산의 목자 베냐민과 다니엘을 찾아가신다.

70. 임해(臨海) 도시에 계신 예수께서 요나에 관한 편지들을 받으신다.

71. 예수께서 알패오의 마리아의 집에 가셔서 사촌 형 시몬과 화해하신다.

72. “은총은 항상 의롭게 살겠다는 뜻이 있는 곳에서 작용한다.”

73. 예수 나자렛에서 학대를 받으시다.

74. 예수께서 어머니와 함께 쿠자의 요안나의 집에 가신다.

75. 예수께서 안나의 집 포도 수확하는 데 계신다. 마비 환자 소년의 기적

76. 예수께서 도라의 집에 가신다. 요나의 죽음

77. 예수께서 메론 호수 근처 야곱의 집에 머무르신다.

78. 예리고 근처 요르단강을 걸어서 건너는 곳으로 돌아오신다.

79. 예수께서 라자로의 집에 가시고, 마르타가 마리아에 대하여 말한다.

80. 장막절 후에 또 라자로의 집에 들르신다. 요셉이 예수를 아리마태아에 초청한다.

81. 예수께서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연회 석상에서 가믈리엘을 만나신다.

82. 죽어가는 어린이가 살아남. 병사 알렉산드르. 예수께 대한 경고

83. 예수께서 밤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다.

84. “고운 내”에 가시기 전에 예수께서 라자로의 집에 가신다.

85. 예수께서 “고운 내”에 가신다. 제자들과의 공동생활의 시초

86. “고운 내”에 계신 예수님.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87.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88.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

89.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부모를 공경하여라.”

90.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육체로나 동의로나 음란한 일을 하지 말아라....

91. “고운 내”의 베일 쓴 여자

92.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93.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을 죽이지 말아라.” 도라의 죽음

94. “고운 내”에 계신 예수. 세례자의 세 제자

95.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아라.”

96.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미친 로마인을 고쳐 주시고, 로마인들에게 말씀하신다.

97.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아라.”

98.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아라.”

99. “고운 내”에 계신 예수. 종결. 주여 나 깊고 그윽한 곳에서 천주여 네 자비하심을... 100. 예수께서 “고운 내”를 떠나셔서 베다니아 쪽으로 가신다.

101. 드고아에서 암환자 예루사의 병을 고치시다.

102. 베다니아의 열성당원 시몬의 집에서

103. 라자로의 집에서 목자들과 같이 지내신 엔세니아*

104. “고운 내”로 돌아오시다.

105. 새 제자 한 사람. 갈릴래아로 떠나다.

106. 엠마오산 위에서

107. 회당장 클레오파의 집에서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II. 공생활 첫째 해

 

1. 나자렛을 떠나시면서 예수께서 어머니께 하직을 하신다.

 

(환시는 영성체 때에 시작되었다.)

나자렛의 집 내부가 보인다. 가족이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거실 같은 방이 보인다. 장방형의 식탁 하나와 벽에 기대 놓은 일종의 궤 하나만이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이 궤 같은 것은 식탁 한쪽의 의자로 쓰인다. 다른 벽들 앞에는 베틀과 등받이 없는 걸상이 놓여 있고, 그다음에는 다른 걸상 둘과 기름등잔들과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겹친 선반 하나가 있다. 새로 돋아나는 잎들로 겨우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 마지막 햇살만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저녁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식탁에는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 예수께서는 음식을 잡수시고 마리아는 작은 문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시중을 드신다. 그 문은 반쯤 열린 틈으로 그 어렴풋한 불빛이 보이는 아궁이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것같이 생각된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어머니도 앉아서 잡수시라고 두세 번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리아는 싫다고 하시며, 서글프게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흔드신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수프 대용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삶은 야채와 구운 생선을 가져오시고, 그다음에는 급류로 인해 굴러 다녀서 둥글게 된 돌들을 연상시키는 공 모양으로 된 꽤 무른 치즈를 가져오시고, 그다음에는 검은색 작은 올리브들을 가져오신다. 보통 접시처럼 둥글넓적하고 별로 두껍지 않은 빵은 벌써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밀기울이 섞인 꽤 검은 빵이다. 예수 앞에는 물이 담긴 손잡이 둘 달린 작은 항아리와 잔이 놓여 있다. 예수께서는 비통한 사랑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아무 말씀 없이 잡수신다.

마리아가 괴로워하신다는 것은 아주 뚜렷하다. 태연한 척하느라고 왔다 갔다 하신다. 아직 꽤 환한데도 등불 하나를 켜서 예수 곁에 놓고, 팔을 뻗어 예수의 머리를 몰래 쓰다듬으신다. 마리아는 생모사를 가지고 손으로 짠 것 같은, 그러니까 물이 스미지 않는 담갈색의 두 갈래로 된 배낭을 벌리고 속을 뒤지더니, 작은 정원으로 나가 정원 끝쪽에 있는 광 같은데로 들어갔다가 어지간히 시든 사과들을 가지고 나오신다. 그 사과들은 분명히 여름부터 보관했던 것이겠는데, 그것을 배낭에 넣으신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싫다고 하시며 나머지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데도 빵 한 덩어리와 작은 치즈 한 덩어리를 더 집어넣으신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예수의 왼쪽, 식탁의 좁은 쪽으로 다시 가까이 와서 예수께서 잡수시는 것을 들여다보신다. 마리아는 여느 때보다도 더 창백하고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늙어 보이는 얼굴로, 그리고 벌써 눈물을 흘렸다는 표적이 나타나는 눈 둘레의 거무스레한 무리 때문에 더 커 보이는 눈으로, 숭배하는 태도로 쓸쓸하게 예수를 들여다보신다. 눈은 눈물에 젖어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 반짝이며. 잔뜩 괴어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슬프고 괴로운 눈이다.

예수께서는 천천히 드시는데, 오직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억지로 잡수시는 것이 분명하다. 보통 때보다 더 생각에 잠긴 채 머리를 들어 마리아를 바라보신다. 눈물이 잔뜩 꾄 눈길에 마주치자 어머니의 감정을 존중하려고 고개를 숙이신다. 예수께서는 그저 어머니가 식탁 가장자리에 얹어놓고 있는 섬세한 손을 잡기만 하신다. 그 손을 당신의 왼손으로 잡아 뺨에 가져가신다. 그 손을 뺨에 대고 떨리는 그 가엾은 손이 어루만짐을 느끼게 하려고 그 손으로 뺨을 가볍게 스치신다. 그리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존경으로 손등에 입을 맞추신다.

나는 마리아가 흐느낌을 억제하려는 듯이 잡히지 않은 왼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본다. 그런 다음 속눈썹에서 넘쳐흘러 뺨으로 내리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으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잡수시기 시작하시고, 마리아는 이제는 어두컴컴하게 된 작은 정원으로 급히 급히 나가서 사라지신다.

예수께서는 왼쪽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고 이마를 손에 얹고 잡수시는 것을 잊으신 채 생각해 잠기신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시더니 일어나신다.

예수께서는 정원으로 나오셔서 휘 둘러보시고 나서 집 오른쪽으로 가셔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신다. 동굴 안에서 나는 목수의 작업장을 알아본다. 이번에는 그 작업장이 잘 정돈되어 있고, 널빤지도 나무 부스러기도 없고, 불도 피워 놓지 않았다. 작업대와 연장들이 제각기 제 자리에 놓여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

작업대에 기대서 마리아가 우신다. 어린아이 같다. 머리는 구부린 왼팔에 얹혀 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비통하게 우신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돌아오셔서 어떻게나 가벼운 걸음으로 가까이 가셨는지 마리아는 아들이 애정 담긴 비탄조 어조로 "어머니!"하고 부르면서 손을 머리에 갖다 댈 때에야 알아차린다.

마리아는 고개를 들고 눈물 어린 눈으로 예수를 쳐다보신다. 그리고 양손을 모으고 예수의 오른팔에 의지하신다. 예수께서는 넓은 소매 귀퉁이로 어머니의 얼굴을 닦고 어머니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으시며 이마에 입맞춤을 하신다. 예수는 장엄하고, 여느 때보다 더 씩씩해 보이시며, 마리아는 얼굴에 고통의 흔적만 없다면 더 젊어 보이신다.

"어머니, 오세요"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오른 팔로 꼭 껴안고 걸어서 정원으로 돌아오시며 집의 벽에 기대 놓은 걸상에 앉으신다.

정원에는 밤이 되어서 아무 소리도 없다. 아름다운 달빛과 식당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있을 뿐이다. 밤은 고요하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겨우 속삭이는 말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숙여 동의하신다.

그런 다음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친척들을 오게 하세요, 혼자 계시지 말고. 요 그러면 제가 더 안심하고 제 사명을 다할 거예요. 제 사랑이 어머니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주 오겠어요. 그리고 갈릴래아에 와 있으시면 집에 돌아을 수 없을 때에는 알려드릴 터이니까, 그때는 어머니가 저를 보러 오세요. 어머니, 이 시간은 와야 했습니다‥‥ 그 시간은 천사가 어머니께 나타났을 때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그 시간이 울렸고, 우리는 그것을 겪어야 합니다. 어머니, 그렇지요? 그 뒤에는 시련을 이긴 다음의 평화와 기쁨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 조상들처럼 언약된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 이 광야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조상들을 도와주신 것과 같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당신 도움을 정신적인 만나 같이 주셔서 시련이 가장 심할 때 우리 정신을 강화하실 것입니다. 함께 우리 아버지께 말씀드립시다‥‥."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마리아도 같이 일어나신다. 두 분은 눈길을 하늘로 돌리신다. 밤중에 빛나는 살아 있는데 제물이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을 천천히, 그러나 단어들을 똑똑 떼어가며 맑은 목소리로 외신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는 이 두 구절은 다른 구절들과 떼어서 강조하신다. 예수께서는 팔을 벌리고 기도하시는데, 정확히 십자가 모양으로 벌리지 않고, 사제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할 때와 같은 모양으로 벌리신다. 마리아는 손을 합장한 채로 이다.

그런 다음 두 분은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런데 나는 예수께서 포도주 드시는 것을 본 일이 없었는데 예수께서는 겹친 선반 위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서 흰 포도주를 잔에 좀 따라 가지고 식탁으로 가신다. 그리고 마리아와 손을 잡아 당신 곁에 앉히시고는 그 포도주를 억지로 마시게 하시고, 포도주에 빵의 부드러운 부분 한 조각을 담갔다가 마리아에게 들게 하신다. 하도 간청하시는 바람에 마리아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나머지 포도주를 드신다.

그런 다음 어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으신다. 예수와 마리아는 길게 누워계시지 않고, 우리가 식사할 때처럼 앉아 계신다. 두 분은 말이 없이 기다리신다. 마리아는 예수의 오른손과 무릎을 어루만지신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팔과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마리아도 같이 일어나신다. 두 분은 서로 껴안고 여러 번, 여러 번 다정스럽게 서로 입맞춤을 하신다. 매 순간 서로 떨어지려는 것 같다. 그러나 마리아가 아들을 다시 꼭 껴안으신다. 그분은 성모님이시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이시다. 아들과 헤어져야 하며 그 이별이 어떤 결과에 이를 것인지를 아는 어머니이시다. 이제는 마리아가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지를 말기 바란다. 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짙은 남빛 겉옷을 들어 어깨에 걸치시고 두건을 머리에 쓰신다. 그런 다음 걷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배낭을 어깨에서 허리로 비스듬히 메신다. 마리아는 예수를 돕고 한없이 그분의 옷과 겉옷과 두건을 매만지며, 그동안 아들을 또 어루만지신다.

예수께서는 집을 향하여 강복하시는 손짓을 하신 다음 출입문 쪽으로 가신다. 마리아는 예수를 따라가시고, 문지방에서 다시 한번 서로 입맞춤을 하신다.

길은 조용하고 쓸쓸하며, 달빛이 비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대문 틀에 기댄 채로 있는 어머니, 달빛 보다도 더 희고 조용한 울음 속에 더 빛나는 어머니를 보시려고 또 두 번 돌아다보신다. 예수께서는 하얀 길 위로 점점 더 멀어져 가신다. 마리아는 여전히 문에 기대서서 울고 계신다. 그러다가 예수께서는 어떤 길 모퉁이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이제 시작되었다. 골고타에서 끝나게 될 그분의 복음 전도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집안으로 돌아가 문을 닫으신다. 마리아를 위하여도 골고타로 이끌어갈 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위하여도‥‥.

 

2. "마리아는 공동속죄자이기 때문에 우셨다."

 

예수의 말씀.

"이것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네 번째 고통이다. 첫 번째 고통은 나를 성전에서 바칠 때였고, 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 피난이었으며, 세 번째 고통은 요셉의 죽음이었고, 네 번째 고통은 어머니와 나의 이별이었다."

 

신부의 소원을 내가 알기 때문에, "우리" 고통에 대한 서술을 서둘러서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겠다고 어제저녁 네게 말하였었다. 그러나 네가 보는 것과 같이 그 고통들은 내 어머니의 고통으로 인하여 벌써 명백히 드러났었다. 이집트에 피난한 이야기를 성전에서 바친 것보다 먼저 한 것은 그날 그 이야기를 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며, 너도 그것을 이해하니, 네가 신부께 말로 설명해 드려라.

네가 주시하는 것과 내가 다음에 네게 하여줄 설명과 엄밀한 의미의 "받아쓰기"를 번갈아 하도록 한 나의 의도는 네게 환시의 지복을 주면서 네 정신과 함께 너를 높이 올리기 위해서이고, 또 그렇게 하면 네가 서술하는 문체와 네가 설명하는 화법 사이의 차이가 명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나에 대하여 말하는 그 많은 책들이 손질을 하고 고치고 바꾸고 아름답게 꾸미고 한 탓으로 비현실적인 것이 된 것을 보고, 나를 믿는 사람에게 내 지상 생활의 실제에 다시 맞추어진 환상을 보여주기를 바라서이다. 그로 인하여 내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빵이 되는 내 겸손으로 인하여 더 위대하게 되어, 너희와 같은 사람이었으면서 인간의 겉모습 안에 하느님의 완전을 지니고 있을 나를 닮아 겸손하라고 너희에게 가르치게 된다. 나는 너희들의 모범이어야 하는데, 모범은 항상 완전해야 한다.

환상을 보이는 데 있어서 복음서의 시간적 순서와 꼭 들어맞는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는 않겠다. 나의 가르침과 인자의 순서에 따라서 어느 정해진 날에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택하겠다.

 

내가 떠나는 것을 보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훈은 특히 하느님의 뜻이 어떤 더 높은 사랑을 위하여 서로 버리라고 부르시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고통스러운 단념을 과감히 해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너희가 살아가는 중에 그런 경우를 얼마나 당하느냐! 그것들은 너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만나는 가시들로서 너희들의 심장을 꿰뚫는다는 것을 내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주의하라. "그것들을 갈망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들을 갈망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벌써 완전이기 때문이다- 그 가시들은 영원히 피어 있는 장미꽃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비록 너희들이 영적인 뒷발길질과 물어뜯음으로, 즉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그분께 모욕을 드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마치 뒷걸음질 치는 나귀들처럼 아버지의 뜻에 반항하고 거역한다.

"나는 그 재물밖에 가진 것이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 가셨다. 아니 나는 저 애정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 가셨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은총이 가득한" 여인에게 있어서는 애정과 감정의 형태까지도 완전하였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완전히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도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뿐인 재산, 오직 하나뿐인 사랑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마리아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이 애정밖에는 없었다. 부모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요셉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으로는 나밖에 없었다. 친척들은 나 때문에, 내가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마리아에 대하여 약간 적의를 품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마리아가 상식을 우습게 여기는 아들, 가문을 돋보이게 하고 물질적인 도움까지도 집안에 가져다줄 수 있었을 결혼 계획들을 거절하는 아들에게 자기 뜻을 받아들이게 할 줄을 모르는 어머니였다.

상식의 목소리요, 인간적 의식의 목소리인 친척들은 -너희는 상식을 양식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의식, 즉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척들은 내 생활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시나고가의 기분을 거스를지도 모르는 사상들을 벌써 감히 내놓는 나 때문에 언젠가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는 예언자들의 운명에 관한 교훈이 수두룩하다. 예언자의 사명이란, 쉬운 사명이 아니었다. 예언자의 사명은 흔히 예언자에게는 죽음을, 그의 일가족에게는 난처한 일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언젠가 내 어머니를 떠맡아야 하리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친척들은 내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들 앞에서 끊임없이 숭배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 등을 보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반대가 그 후 내 임무를 수행하는 3년 동안에 점점 더 커져서, 내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만나러 오게 될 때에는 공공연하게 비난을 하게까지 되었고 그들의 생각으로는 강력한 특권계급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는 내 괴벽 때문에 얼굴을 붉히게 까지 되었다. 나와 가엾은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었다.

마리아는 친척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친척 모두가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 같지 않았고, 그들의 어머니 클레오파의 마리아 같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계셨다. 마리아는 그 3년 동안에 당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계셨고, 나의 운명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너희들이 하는 것과 같이 반항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우셨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던 아들과 헤어질 때, 당신 혼자 있는 외로운 그 집에 내가 있지 않게 될 오랜 세월을 생각하고, 자기들이 죄 있음을 깨달으며, 그 죄의식 때문에 그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를 원할 정도로 공격하도록 부추겨지는 사람들의 악의를 보고 어떤 어머니가 울지 않겠느냐?

어머니는 공동속죄자이고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인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우셨다. 어머니는 그들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의 월계관을 만들 줄을 알지 못하는 모든 어머니들 때문에 우셔야 하였다.

이 세상에는 품 안에 있는 자식을 죽음에서 빼앗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으냐! 초자연적인 뜻에서 그들 곁에 있는 아들을 빼앗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으냐!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서는 그 모든 딸들 때문에. 외톨이가 된 어머니의 고통 속에 있는 그 모든 자매들 때문에 마리아가 우셨다. 또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서 하느님의 사도가 되고, 하느님께 대한 충실로 인해서 또는 사람들의 잔인성으로 인하여 하느님 사랑을 위한 순교자가 되도록 운명 지어진 그 모든 아들들 때문에도 우셨다.

내 피와 마리아의 눈물은 영웅적인 운명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튼튼하게 해 줄 것이고, 그들이 약함으로 인해서 저지른 불완전이나 죄까지도 지워 없애는 혼합물이 되며, 어떠한 고통이든지 그 고통 너머로 하느님의 평화를 줄 것이고, 그 고통을 하느님을 위하여 참아 받았으면 하늘의 영광을 줄 것이다.

선교사들은 온통 눈으로 덮인 나라들에 서로 그들을 따뜻하게 하는 불꽃처럼 이 혼합물을 찾아내고, 몹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에서 이슬처럼 이것을 찾아낸다. 마리아의 눈물은 그의 자비에서 나오고 순결한 마음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사랑과 결합한 동정녀의 자비에서 불을 얻고, 동정녀의 순결에서는 이슬 내린 밤을 지낸 백합의 꽃받침 속에 고인 신선한 물과 비슷한 향기롭고 시원한 물을 얻는다.

봉헌된 영혼들을 제대로 이해한 수도생활이라는 광야에서 이 혼합물을 찾아낸다. 광야라고 말한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밖에는 산 것이라고는 없기 때문이고, 부모나 친구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 대한 일체의 다른 애정은 오직 초자연적인 사랑이 되면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세상 안에서도 이 숭고한 혼합물을 찾아낸다. 내게 대하여 가지는 사랑 때문에 하도 이해를 받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어서 그들 혼자만이 사는 것으로 느껴지는 이 세상도 그들에게는 광야와 같은 것이다.

내 사랑하는 "희생들"은 이 혼합물을 찾아낸다. 희생이라고 말한 것은 마리아가 첫 번째로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희생이 되었고 또 그를 따르는 다른 영혼들도 희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의 어머니다운 손, 의사다운 손으로 더 큰 희생을 위하여 강하게 하고 도취시키는 눈물을 준다. 내 어머니의 거룩한 눈물!

마리아는 기도를 드린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신다 해도 기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하여라.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마리아는 우리와 너희들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

"주의 기도"는 나자렛의 정원에서 맨 처음으로 드렸다. 그것은 마리아의 마음 고통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였고, 우리의 뜻을 영원하신 분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뜻을 버리는 이 기간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내게 있어서는 목숨을 바칠 때에 절정에 이르렀고,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그의 아들이 죽을 때에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버지께로부터 용서를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죄 없는" 우리들은 존엄한 우리의 사명에 대하여 한숨 한번 지은 것에 대해서라도 용서를 받고 사죄를 받기 위하여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으면 받고 있을수록 임무가 더 축복을 받고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고, 하느님께 대한 공경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완전한 남자와 여자 두 사람도 허무와 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청한 것과 같이 용서를 청하였다.

우리의 빵은 어떤 것이었느냐? 오! 그것은 마리아의 깨끗한 손으로 반죽한 것을 내가 묶어 놓은 나무로 불을 피운 작은 화덕에서 구워 내는 그런 빵이 아니었다. 그런 빵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한 필요하다. 그러나 " 우리의" 일용한 양식은 우리 사명의 일을 날마다 행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임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하루의 기쁨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그 일용한 양식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냐,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아? 만일 인자하신 주님이 네게 고통의 임무를 주시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시면, 그날은 텅 빈 것 같고, 심지어는 그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얘야, 너희를 정당화하는 것은 예수이다.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아버지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게 하고 유익한 것이 되게 한다. 나는 그 말을 하였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하고. 그리고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말하여 그의 기도를 더 가치 있게 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는 항상, 항상, 항상 나와 일치하여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할 것이며, 하느님이요 사람인 내 목소리로 인간인 너희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기도를 꿰뚫린 내 손에 얹어 가지고 아버지께 들어 올리겠다. 그 기도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제물이 될 것이다. 너희들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합쳐져서 아들의 입맞춤 모양으로 아버지께 올라갈 것이고, 내 상처들의 피는 너희들의 기도를 값비싼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너희들 안에, 너희들과 함께, 또 너희들 차지로 아버지를 모시고 싶으면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는 "그리고 우리들을 위하여도...."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마쳤는데, 너는 이런 뜻으로 그 말을 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갈바리아를 올라가신 두 분께 대하여 몹시도 배은망덕하는 우리들을 위하여도, 네가 그 말들을 쓰기를 잘했다. 내가 우리 고통 중의 하나를 보여줄 때마다 그 말을 써넣어라. 이 말들은 묵상하고 뉘우치라고 울려주고 부르는 종소리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이쯤으로 그만두겠다. 쉬어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3. 예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의 말씀.

"네가 1월 30일에 쓴 말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나"라는 말과 "만일"이라는 말을 내놓을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네 대신 대답하겠다. 너는 이러한 말들을 썼다. "‥내가 이렇게 볼 때에는 내 육체적인 힘, 특히 심장의 힘이 몹시 흩어진다."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는 "불가능하다는 박사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겪는 일이 인간적이라는 증거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항상 힘을 마련해 주지, 절대로 약함을 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이다"하고. 그렇다면 왜 탈혼 상태에 빠진 위대한 사람들이 탈혼 중에는 내적인 상처와 큰 출혈의 결과인 고통과 물질의 무게를 없앰으로써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그들을 육체적으로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큰 행복을 누리다가, 탈혼이 끝나자마자 그들의 영흔이 그들에게서 떠나갔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기절하여 땅에 쓰러져버리는지 그들은 내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또 내 여종 데레사(*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고뇌와 같이, 내 성녀 젬마의 고뇌와 같이 또 내 사랑과 그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내 수난을 몸소 겪을 자격을 얻었던 다른 영혼들의 고뇌와 같이 내 고뇌를 되풀이하는 더할 수 없이 큰 고뇌를 몇 시간 겪고 난 그 사람들이 왜 가장 건강한 사람들도 가지지 못한 육체적인 기운과 균형을 도로 얻는지 또는 얻었는지도 설명해 주기 바란다.

나는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의 주인이다. 나는 그러한 내 종들을 내 마음대로, 내 손 안에서 장난감이 되는 예쁜 실처럼 사용한다. 네게 있어서는 기적은 기적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다. 네 지금의 육체적인 상태, 기적적으로 연장되는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극히 기초적인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 될 허탈 상태에 있으면서 그 격정을 느끼고 그 지복에 이르는데도 그것으로 인하여 죽지 않게 된다는 그것이다. 기적은 내가 불러주는 것이나 다른 영들이 그들의 하늘나라 말을 가져다주는 것을 네가 적은 시간에 네게서 솟구친 것과 같은 생명력이 지금 이 시간에 네게서 솟구쳐 오르는 데 있다. 기적은 네게 남아 있던 글을 쓸 수 있는 생명력이 기쁨으로 인하여 다 소멸한 후에 이렇게 갑자기 기운을 다시 얻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내가 네게 옮겨 넣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강기슭으로 흘러들어 가 적셔 주는 물과 같이 내게서 말라버린 네 정맥으로 들어가는 피와 같은 것이다. 강기슭은 물에 잠겨 있는 동안은 젖어 있다가 다시 말라서 다른 물이 올 때까지는 마른 채로 있다. 그것은 마치 새로 수혈을 받을 때까지 네게 있는 내 피를 뽑아내는 수술과 같은 것이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내가 계획하는 것을 위하여 내가 원하기 때문에 고뇌 중에 일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다. 너는 네 사랑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련한 인간이다. 너는 다른 공로가 없다.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원인이 되고 싶어 하는 갈망밖에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벌써 오래전에 네 존재가 죽음 속에서 해체되어야 하였을 터인데 네가 그대로 살아 있고, 또 내가 호의를 가지고 네 생명을 보호하여 주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이것이다. 내가 관조의 세계에서 너를 안고 다니지 않게 되고, 네게 말을 하지 않게 되면, 네가 말하듯이 "넝마 조각"으로 되돌아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네 경우에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나 무슨 일이든지 내가 원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내가 같은 의지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네 병을 고쳐줄 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내 사랑과 내 호의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어떤 사람이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즉 내 종들의 임무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면 그들의 생명을 항상 보존해 주었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행복한 생활은 절대로 마련해 주지 않았다고. 그것은 내 임무들은 고통 속에서 고통을 통하여 실현되기 때문이고, 한편 내 종들도 내 소원과 같은 소원, 즉 대속(代贖) 하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겠다는 소원밖에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운이 흩어져 없어진"다는 말을 하지 말고, "인자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의향과 내 기쁨을 위하여 내 약함을 사라지게 하셨었는데, 지금 나는 인자하신 그분이 내가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신 상태로, 즉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사랑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라고 말해야 한다.

자 이제는 사랑 가득한 순종으로 계속 하자.

같은 날, 44년 2월 3일 저녁에.

 

사람도 살지 않고 초목도 없는 벌판이 보인다. 곡식을 가꾼 밭은 없고, 흙이 좀 깊이가 있고 덜 메마른 곳에는 식물의 집단들처럼 드문드문 난 몇 포기의 풀들이 여기저기 덤불을 이루고 있다. 이 메마르고 황폐한 땅이 내 오른편에 있으며, 북쪽이 내 등 뒤에 있으니까 내가 볼 때에는 남쪽으로 뻗어나갔다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그 대신 왼쪽에는 둑이 꽤 낮은 강이 보이는데, 역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물이 매우 천천히 흐르는 것으로 보아 그 하상(河床)이 많이 가파르지 않고, 이 강은 벌판이 일종의 함몰을 이룬 위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흐름은 겨우 물이 괴어서 늪을 이루는 것을 막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물이 깊지도 않다. 이곳은 물밑이 보이는 곳이다. 깊이가 1미터, 기껏해야 1.5미터 이상도 될 것 같지 않다. 너비는 상 미니아또 -엠뽈리(S. Miniato-Empoli) 근처의 아르노(Arno)강 정도로 20미터쯤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관찰력이 좋지 않으니까 내가 말한 것은 어림잡아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강기슭 가까이에 있는 물은 약간 초록색을 띤 하늘색이며 강기슭의 축축한 땅에는 초록색 풀무더기가 띠 모양으로 자라고 있어, 앞으로 한없이 계속되는 돌과 모래로 된 그 우중충한 벌판으로 피로한 눈을 달래준다.

내가 무엇에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내게 설명하여 주는 것을 듣는다고 말한 그 내적인 목소리는 내 앞에 보이는 것이 요르단강 계곡이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이것을 계곡이라고 부르는 것은 강이 흐르는 곳을 흔히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곡이라면 야산을 필요조건으로 예상하게 되는데, 이 근처에는 야산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이 명칭을 붙이는 것은 정확하지 못한 것 같다. 요컨대 나는 요르단강 근처에 있고, 내 오른쪽에 보이는 황량한 벌판은 유다의 사막이다.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이룩한 일의 흔적이 없는 이곳을 가리키는 데 사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옳겠지마는, 우리가 사막에 대하여 가지는 관념에는 덜 어울린다.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사막의 모래언덕이 없고, 다만 홍수가 진 후에 충적지가 그런 것과 같이 돌과 파편 따위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나무 없는 벌거숭이 땅이 있을 뿐이다.

먼 곳에는 야산들이 있다. 그리고 요르단강 근처에 크나큰 평화가 깃들어 있고, 트라시메나(Trasimena) 호숫가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어떤 것, 일반 풍경을 초월하는 어떤 분위기가 느껴진다.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나 하늘의 목소리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곳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정신에 말하는 어떤 곳에 내가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이곳에는 - 내편에서 보기에 요르단강의 우안(右岸)을 끼고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많은 남자들이 있고 옷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민층의 사람들 같고, 어떤 사람들은 부자를 같은데, 그런 사람이 꽤 많으며, 여러 사람이 술과 선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바리사이파 사람들 같다.

한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바위 위에 서 있는데, 그 사람을 처음 보지만 세례자로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가 군중에게 말을 하고 있는데, 그의 설교에는 부드러운 맛이 별로 없다.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면 이 분격한 설교자에게는 어떤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까?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는 벼락이나 눈사태나 지진 소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연설과 몸짓이 과격하고 준엄하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내림에 대하여 말하며, 청중에게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치우고 그들의 생각을 일으켜서 마음을 준비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격렬하고 엄격한 화법이다. 선구자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예수와 같은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그 상처들을 노출시키고 파헤치고,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의사이다.

내가 요한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 그의 말은 복음사가들이 쓴 그 말이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은 급류와 같은 연설로 쏟아져 나온다 - 요르단강을 따라서 풀이 나고 그늘진 기슭을 끼고 가는 오솔길을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이 나아가시는 것이 보인다. 이 시골길, 아니 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오솔길은 하상이 높아져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지점에 가기 위하여 여러 해, 여러 세기를 다닌 대상들과 여행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 오솔길은 강 건너편으로 계속되어 건너편 기슭의 초록빛 속으로 사라진다.

예수는 혼자이시다.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아가시어 요한의 뒤에 다다른다. 예수께서는 광야의 속죄자의 우레 같은 목소리를 들으시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신다. 마치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아 메시아의 내림을 위한 정화를 준비하기 위하여 요한에게로 오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과 같다. 예수께서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입으신 옷으로는 서민층의 사람 같으시고, 아름다운 얼굴 모습으로는 귀족으로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을 군중과 구별 지어 주는 하느님의 표시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요한은 어떤 독특한 영적인 발산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그 발산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즉시 확인한다. 요한은 강단처럼 쓰던 바위에서 성큼 내려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고는 어떤 나무줄기에 의지하고 계신 예수를 향하여 거리낌 없는 걸음걸이로 간다.

예수와 요한은 잠시 똑바로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다정스러운 파란 눈으로 보시고, 요한은 대단히 검고 빛이 탁탁 튀는 듯한 엄격한 눈으로 바라본다. 두 분은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정반대의 사람이시다. 두 분이 다 키가 크다 - 이것이 그분들의 유일한 같은 점이다 -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가 다르다. 예수는 금발이고 긴 머리를 잘 빗었으며, 살갗은 상아색같이 희며, 옷은 수수하지만 위엄이 있다. 요한은 검은 머리가 덥수룩하게 어깨에까지 평평하게 덮였고 층층으로 잘랐으며, 바짝 깎은 수염이 거의 얼굴 전체를 덮고 있으나, 그래도 단식으로 인하여 쑥 들어간 뺨을 숨기지는 못하며, 열을 뿜는 듯한 검은 눈에, 피부는 태양과 악천후로 인하여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털이 빽빽하게 났으며, 반나(半裸)의 몸에 가죽끈으로 허리에 졸라 맨 염소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그 옷은 그의 상체를 가리고 겨우 야윈 옆구리 아래까지만 내려오며, 오른쪽에는 갈비대가 드러나 보이는데, 갈빗대에 덮인 것이라고는 오직 바람에 그을어 구리 빛깔이 된 피부가 있을 뿐이다. 마주 서 있으니 미개인과 천사와 같다.

요한은 그의 날카로운 눈으로 예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나서 부르짖는다. "여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셨다. 어떻게 주께서 제게로 오실 수가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조용히 대답하신다. "회개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요."

"절대로 안됩니다. 주님, 제가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주께로 가야 하는데, 주께서 제게로 오시다니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한이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신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시오. 그래서 모든 정의가 실현되고, 당신의 의식이 사람들을 더 높은 신비로 향하게 하고 '희생자'가 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이 전해지게 하시오."

요한은 눈물로 인하여 부드러워진 눈으로 예수를 지켜보고 앞장을 서서 강기슭을 향하여 간다. 예수께서는 겉옷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벗으시고 일종의 팬츠만을 입으신 채 벌써 요한이 들어가 있는 물로 내려가신다. 요한은 허리띠에 매달린 잔 같은 것으로 강물을 떠서 예수의 머리에 부어 세례를 준다. 그 잔 같은 것은 조개껍데기나 박을 반으로 쪼개서 속을 파내고 말린 것 같다.

예수는 글자 그대로 어린양이시다. 그 하얀 살갗으로도, 얼굴 모습의 정숙함으로도, 그 눈길의 부드러움으로도 어린양이시다.

예수께서 강변으로 다시 올라오셔서 옷을 입으신 다음 기도와 묵상에 잠겨계신 동안 요한은 그분을 군중에게 가리키며 그는 하느님의 성령이 일러주시고 구세주를 틀림없이 지적하는 표로 그분을 알아보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여 강가의 초록빛 바탕에 뚜렷이 나타나는 빛나는 그 얼굴밖에는 보지 못하게 된다.

 

4. 요한에게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미리 거룩하게 된 그의 정신은 초자연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담의 죄가 없었더라면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초자연적인 지능을 가졌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은총 지위에 그대로 있었고 죄 없는 가운데 창조주께 끝까지 충실하였더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주 하느님께서 죄 없는 사람과 친숙하게 말씀하셨고, 사람은 그 목소리를 듣고 기절하지 않았으며, 그 목소리를 틀리지 않고 구별하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운명은 이러하였다. 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그런 것과 같이 하느님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죄가 와서 사람은 감히 하느님을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발견하고 이해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내 종형인 요한은 전에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었는데 임신을 한 그 엘리사벳을 껴안으려고 은총을 가득히 입은 분이 사랑으로 몸을 숙였을 때 죄가 깨끗이 씻어졌었다. 아기는 태중에서 죄의 딱지가 마치 상처가 나을 때에 딱지가 떨어지듯 그의 영혼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기뻐서 뛰었었다.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만드셨던 성령께서는 사람이 된 구원을 담은 산 성합이었던 마리아를 통하여 그 아기를 위한 구원 사업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멀지 않아 태어나게 될 그 아기는 혈연관계로 뿐 아니라 말을 하는 사명으로도 나와 결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는 말을 만들어내는 입술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복음과 순교자로서의 그의 운명으로 선구자였고, 나는 요한이 시작한 복음과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당한 그의 순교에 숭고한 완전을 주는 사람이었다.

요한에게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둔하기 때문에 표시가 필요하였다. 사람들의 느린 눈과 게으른 귀가 식별하였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 말고 어디에다 그의 주장의 근거를 두었겠느냐? 나도 역시 세례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지혜는 우리가 만나는 순간과 방식이 이러해야 한다고 판단하셨던 것이다. 요한을 그의 동굴에서 광야로 나오게 하시고, 나를 집에서 나오게 하여 그 순간에 우리를 결합시키고, 내 위에 하늘이 열리게 하시고, 하느님의 비둘기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사람 위에 당신 자신인 하느님의 비둘기를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내 아버지의 천사 같은 이 생각보다 더 강력한 통고를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야 할지 어떨지 핑계를 대거나 의심을 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시가 여러 번 있었다. 탄생 후에 첫 번째 표시는 동방박사들의 표시였고, 두 번째는 성전에서였으며, 세 번째는 요르단강 강변에서였다. 그다음에는 수많은 다른 표시들이 왔는데 그것들을 네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내 기적들은 내 부활과 승천 같은 맨 마지막 기적에 이르기까지 내 천주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내 조국에는 내 표시가 가득 찼었다. 마치 동서남북 사방에 뿌린 씨와 같이 그 표시들은 인생의 모든 계층에 모든 장소에 이르렀었다. 목자들에게, 권력자들에게, 학자들과 쉽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제들과 지배자들과 어린이들과 군사들과 히브리인들과 외교인들에게 이르렀었다.

지금도 내 표시들은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단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을 구하기 위하여, 너희들을 내게 대한 믿음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마리아야,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아니 오히려 네게 복음서를 보여줌으로써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이것은 사람들을 내게로 데려오기 위한 더 강력한 시도이다. 너는 열렬한 기도로 사람들을 내게로 데려오기를 갈망하였다. 나는 이제 말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말은 사람들을 피로하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죄이다. 그러나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서 나는 환시, 내 복음서의 환시의 힘을 빌고, 그 환시를 더 명백하고 더 매력 있게 하기 위하여 설명한다.

네게는 환상의 위안을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나를 갈망하고 알 방법을 준다. 그리고 만일 이번에도 이 환시가 소용이 없고, 그들이 매정한 어린이들과 같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물리친다면, 네게는 은혜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내 분개가 갈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옛날 꾸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피리를 불었는데,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통곡을 하였는데,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들 "회개의 가망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 머리 위에 뜨거운 숯불을 자꾸 모아놓게 내버려 두고, 목자를 알려고 애쓰는 양들 쪽으로 몸을 돌리리라. 목자는 나이고, 너는 양들을 내게로 데려오는 목자의 지팡이이다."

 

신부님이 보시는 바와 같이 제가 서둘러서 이 지엽적인 점들을 말하였는데, 저는 그것들이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깜빡 놓쳤었지만, 신부님은 그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적어놓은 것을 읽다가 신부님의 규칙으로 쓰일 수 있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주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신부님은 제 독특한 문체로 한 묘사들을 알릴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대해 진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저는 그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스승께서 이 공책의 최근 받아쓰기에 불러주신 것과 반대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내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더 정확하면 (제가 보는 것에 대한 묘사가 말이지요) 그럴수록 내게로 오는 사람들의 수효가 많을 것이다." 이것은 묘사들이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들 덕택으로 많은 영혼이 예수께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점을 신부님께 맡겨드리니,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하십시오. 인간적으로는 저도 신부님과 같은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것의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가폰의 인간적인 것까지도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 불러주신 것에서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복음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는 사람들을 내게로 끌어오기 위한 더 강력한 시도를 한다. 나는 이제 말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환시의 힘을 빌고, 환시를 더 명백하고 더 매력 있는 것이 되게 하려고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또 저 자신으로서는 즉시 내성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에,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불안에 빠졌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반대로 샘내는 자(마귀)는 기뻐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불안에 빠졌느냐 하면 이제는 제가 보는 것은 쓰지 않고 불러주시는 것만 쓰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마귀는 제 마음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모르겠니? 터무니없는 네 환상들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안된단 말이다! 너를 미친년으로 취급받게 하는데나 소용될 뿐이다. 사실 네가 미친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이상해진 네 뇌의 악령들이다. 하늘을 볼 자격을 얻으려면 분명히 다른 것이 필요하다. " 이렇게 해서 하루 종일 제게 그 지독한 유혹의 분출을 당하게 합니다. 정말이지 제 크나큰 육체의 고통도 이것만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마귀는 저를 절망으로 끌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제 금요일은? 정신적인 유혹의 금요일입니다. 저는 광야에 계신 예수님, 게쎄마니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저 간사한 마귀를 즐겁게 해주지 않으려고 제가 졌다고 인정하지 않고 마귀와 또 제 안에 있는 덜 영적인 것과 싸우면서 오늘 제 기쁨을 신부님께 편지로 알려드립려다. 동시에 저로서는 제 가장 큰 기쁨인 이 환시의 은혜를 예수께서 거두어가시면 매우 기쁘리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예수께서 제게 사랑과 자비를 계속 베풀어주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5. 예수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당하시다.

 

요르단강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환상을 볼 때에 이미 내 왼쪽에 있는 것을 보았던 돌이 많은 쓸쓸한 곳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제는 파란 물이 천천히 흘러 내려가는 아름다운 강도 보이지 않고, 그 물의 동맥에서 양분을 얻어 강 양쪽 기슭에 강을 따라 형성된 초록색 정맥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가 그 쓸쓸한 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이 틀림없다. 여기에는 적막과 돌과 누런 먼지 상태로 변한 햇볕에 그을린 흙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쉬지 않고 바람이 불어서 먼지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그 소용돌이들은 열이 있는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메마르고 몹시 뜨거우며, 코와 목 안으로 몰아 들여보내는 먼지 때문에 고통을 주기까지 한다. 여기저기에 아주 드물게 가시 돋친 작은 나무 덤불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이 황폐한 곳에서 견디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벗어진 사람의 머리통에 몇 군데 드물게 난 머리털 무더기 같다. 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메마른 땅이 있으며, 그 둘레로는 바위와 적요가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자연으로는 이것이 전부이다.

엄청나게 큰 바위에 동굴 하나가 반쯤 되다 말았다. 안쪽으로 끌려 들어간 바위 위에 예수께서 앉으셔서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대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몹시 뜨거운 태양을 피하여 거기에서 쉬고 계신다. 내 안에서 알려주는 그분은 예수께서 앉아 계시는 바위가 그분의 장궤 틀도 되고, 별빛을 받으며 밤의 찬 공기 속에서 겉옷을 두르고 몇 시간 동안 쉬실 때에는 베개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사실 바로 곁에, 예수께서 나자렛을 떠나실 때에 메시는 것을 본 배낭이 있다. 이것이 그분의 전재산인데, 배낭이 헐렁한 것으로 보아 마리아가 넣어 주었던 얼마 안 되는 음식이 다 없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매우 마르고 창백하시다. 팔꿈치를 무릎에 괴시고, 두 손은 깍지 끼어 합장하시고 아래팔을 앞으로 내미신 채 앉아 계신다. 묵상을 하시는 것이다. 때때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시고 파란 하늘 거의 중천에 와 있는 해를 쳐다보신다. 가끔, 그리고 특히 주위를 둘러보시고 하늘 쪽으로 눈을 들어 쳐다보신 다음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눈을 감으시고 당신의 피난처가 되는 바위에 기대신다.

사탄의 소름 끼치는 입이 나타나는 것이 보인다. 사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뿔과 꼬리 따위를 가진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 그들 특유의 옷을 입고 가면무도회의 로미오의 옷 같은 겉옷을 걸친 베두인 (Bedauin)사람 같다. 머리에는 터반을 둘렀는데 그 자락들이 어깨에까지 내려와 어깨를 덮었고, 얼굴 옆으로 내려와서 그 얼굴에서는 매우 짙은 갈색의 좁은 삼각형과 얇고 뒤틀린 입술과 새까맣고 움푹 들어간 눈만이 보인다. 그 눈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빛이 나온다.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눈동자에서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가 없고, 오직 수수께끼라는 말 하나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다. 예수의 눈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예수의 눈도 그 매력적인 신비한 힘으로 우리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지만, 거기에서는 그분의 마음에 사람들에 대한 호의와 사랑만이 들어있다고 느끼게 된다. 예수의 눈은 영혼에게는 애무가 된다. 그러나 사탄의 눈은 우리를 찌르고 쓰라리게 하는 이중의 단도이다.

사탄은 예수께 가까이 와서 말한다.

"혼자 계시오?"

예수께서는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신다.

"어떻게 여길 오셨소? 길을 잃으셨소?"

예수께서는 다시 그를 바라보시고 말씀을 안 하신다.

"내 호리병에 물이 있었으면 드릴 텐데, 하지만 난 물이 없소. 내 말이 죽어서 얕은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오. 거기서 물을 마시겠소. 그리고 내게 빵을 줄 사람을 만날 거요. 나는 길을 아오. 같이 갑시다. 내가 길을 인도하겠소."

예수께서는 이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대답을 안 하시오? 당신이 여기 그대로 있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아시오? 벌써 바람이 일고 있소. 폭풍우가 몰아닥칠 거요. 갑시다."

예수께서는 묵묵히 기도를 하시며 양손을 꽉 쥐신다.

"아! 역시 당신이군요? 오래전부터 당신을 찾았는데! 이제는 당신을 살펴본 지가 정말 오래되었소. 당신이 세례를 받은 때부터이지요. 당신은 영원한 분을 부르시오? 그 양반은 아주 멀리 있소. 지금 당신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있소.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내가 왕이오. 하지만 당신이 불쌍한 생각이 드오. 그리고 당신이 착하고 또 소용은 없지만 당신을 희생하러 왔기 때문에 당신을 돕고 싶소. 사람들은 당신이 착하기 때문에 당신을 미워할 거요. 사람들은 돈과 음식과 향락밖에는 이해하지 못하오. 희생, 고통, 순종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죽은 말이오. 이 땅과 이 근처보다도 더 죽은 말이란 말이오. 그런 말들은 이 먼지보다도 한층 더 메마른 것이오. 여기에는 물 기회를 기다리면서 숨어 있는 뱀과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재칼밖에는 없소. 자, 갑시다.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을 위해 고통을 당할 만한 자격이 없소. 나는 사람들을 당신보다 더 잘 아오."

사탄은 예수 앞에 앉았다. 그는 무서운 눈초리로 예수를 속속들이 살펴보며 뱀 같은 입으로 비웃는다.

"당신은 나를 경계하는군요. 그건 잘못이오. 나는 이 세상의 지혜요. 나는 당신이 성공을 거두도록 도와주는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소. 이거 보시오. 중요한 것은 성공을 거두는 것이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를 인정하게 하고, 그들을 사로잡은 다음에는, 그들은 어디고 마음대로 끌고 가게 되는 거요. 그러나 우선 그들의 마음에 들게 그들처럼 돼야 하고, 우리가 그들을 우러러보고 그들의 생각을 따른다고 믿게 해서 그들의 마음을 끌어야 하오.

당신은 젊고 아름다우니, 우선 여자부터 얻으시오. 언제나 여자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요. 내가 여자를 불복종하게 만든 것은 잘못이었소. 여자에게는 달리 조언해야 하는 건데 그랬소. 그렇게 했으면 여자를 가지고 더 좋은 연장을 만들어 하느님을 이길 수 있었을 거요. 너무 급해서 그랬소. 하지만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내가 언젠가 당신을 천사의 기쁨으로 쳐다볼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 좀 남아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말을 듣고, 내 경험을 이용하시오. 아내를 얻으시오. 당신이 성공하는 데에서는 당신 아내가 성공할 것이오. 당신은 새 아담이니, 새 하와를 가져야 하오.

그리고 또 만일 당신이 육체적인 감각의 병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고칠 수가 있겠소? 여자가 정열과 교만의 풀이 나는 씨라는 것을 모르시오? 왜 사람은 지배하기를 원하는 거요? 왜 사람이 돈이 많고 세력이 강하기를 원하는 거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요. 여자는 종달새와 같소. 여자에게는 그를 끌어당기는 반짝거리는 빛이 필요하오. 황금과 지배가 여자들의 마음을 끄는 거울의 양면이고, 세상의 악의 원인이오. 보시오,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진 천 개의 범죄 뒤에는 적어도 9백 개가 여자를 차지하고자 하는 갈망이나, 남자가 아직 만족시켜 주지 못하거나 더 이상 만족시켜 주지 못하게 된 욕망으로 불타는 여자의 의도에 뿌리박고 있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거든 여자에게로 가시오. 그런 다음에만 인류의 악을 치료하고 고칠 수 있을 거요, 아시겠소? 여자는 아름답소! 세상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무것도 없소. 남자는 사고력과 힘을 가졌소. 그러나 여자는! 여자의 생각은 향수와 같고, 여자와의 접촉은 꽃이 애무하는 것과 같소. 여자의 우아함은 취하게 하는 포도주와 같고, 그의 약함은 남자의 손안에 들어 있는 비단 실타래나 아기의 곱슬곱슬하게 말린 머리털 같소. 여자의 애무는 우리 힘에 전달되어 그것을 불 질러 놓는 힘이오. 남자가 여자 곁에 가 있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피로와 근심 걱정이 없어지오. 여자는 우리 품 안에서는 꽃다발과 같소.

하지만, 내가 어지간히 얼빠진 사람이군요! 당신은 지금 시장한데, 나는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오. 당신은 기력이 다 없어졌소. 그런 이유로 땅의 이 향기, 우주의 이 꽃, 사랑을 주고 또 일으키는 이 실과가 당신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거요. 하지만 이 돌들이 얼마나 둥글고 반들반들하며,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얼마나 금빛을 띠고 있는지 보시오. 꼭 빵 같지 않소? 하느님의 아들인 당신이니, "그렇게 되어라" 하고 말하기만 하면, 이 시간에 주부들이 가족들의 식사에 쓰려고 화덕에서 꺼내는 것과 같은 맛있는 냄새가 나는 빵같이 될 거요. 그리고 아주 메마른 저 아카시아 나무에도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꿀같이 단 야자 대추와 맛있는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릴 수 있지 않소? 하느님의 아들, 실컷 잡수시오. 당신은 이 땅의 주인이니, 이 땅은 당신 발아래 엎디어 당신의 허기를 달래줄 거요.

당신이 빵 소리만 듣고서도 얼마나 얼굴이 창백해지고 비틀거리는지 알겠지요. 불쌍한 예수! 당신은 기적을 명할 수가 없게 될 정도로 약해졌소? 당신을 대신해서 내가 그렇게 할까요? 나는 당신 수준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오. 그러나 나도 무엇인가 할 수가 있소. 일 년 동안 내 힘을 포기하고, 그 힘을 모두 모으겠소. 하지만 당신은 착하고, 또 이제는 당신을 내 하느님이라고 부를 자격을 잃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내 하느님이기 때문에 봉사하고 싶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당신 기도로 도와주시오‥."

"입 다물어라.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귀는 심한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는 이를 갈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나 자제하고, 그의 악물었던 이가 느슨하게 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알겠소. 당신은 이 세상의 필요한 것들을 초월했고, 나를 사용하는 것에 혐오감을 느낀단 말이지요. 내가 그런 취급을 받아 마땅하오. 하지만, 그렇다면 이리 와서 하느님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시오. 사제들도 얼마나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타협하기를 거부하지 않는지 보시오. 결국 그들도 사람이지 천사가 아니거든요. 정신적인 기적을 하나 행하시오.. 내가 당신을 성전 첨탑으로 데리고 갈 테니 그 위에서 놀랄 만큼 아름답게 변모하시오. 그런 다음 천사들의 무리들을 불러 날개들을 서로 얽히게 해서 당신의 발을 놓을 발판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당신을 큰 마당에 내려가게 하라고 말하시오. 사제들이 당신을 보고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오. 사람은 아주 잘 잊어버리고, 특히 정신적인 것에 대해서는 더 그러하니까 때때로 그런 표시가 필요하오. 천사들은 당신에게 발을 얹어놓을 것을 마련해 주고, 당신이 내려갈 수 있게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을 얼마나 기뻐할지 당신도 알지요."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당신이 나타나도 사태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성전은 계속 장마당과 타락의 장소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당신도 아는군요. 성전에 있는 사제들의 마음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서로 잡아먹는 독사의 소굴이라는 것을 하느님으로서의 당신의 지혜가 알고 있는 거지요. 그들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 밖에는 없소.

그러니 이리 와 내게 경배하시오. 내가 당신에게 이 세상을 주겠소. 알렉산데르와 키루스와 케사르 따위 과거의 모든 가장 위대했던 정복자들이나 아직도 살아 있는 모든 위대한 정복자들도 당신의 왕권으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고, 또는 왕국들과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부와 광휘와 여자들과 말들과 군사들과 신전들을 가질 당신과 비교하면 흔해빠진 대상의 두목과 같은 거요. 당신이 왕 중의 왕과 세상의 지배자가 되면 당신의 표를 어디에나 세울 수 있을 거요. 그때에는 백성과 사제들이 당신에게 복종하고 당신을 존경할 거요. 당신이 세력 있고 유일한 사람이고 지배자일 것이기 때문에 모든 계급의 사람이 당신을 공경하고 섬 길거요.

잠깐만 내게 경배하시오! 경배를 받고 싶어 하는 갈망을 내게서 없애 주시오! 나는 그것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소. 그러나 그 갈망은 그대로 내게 남아서 나를 불태우고 있소. 내속을 태우는 이 극심한 갈증에 비하면 지옥의 불길은 서늘한 아침 공기와 같소. 이 갈증이 내 지옥이오. 오 착한 당신, 그리스도여, 잠깐만, 다만 한순간만!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한순간의 기쁨을! 하느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맛보게 해 주시오. 그러면 일생동안 당신의 계획을 위해 당신에게 충실하고 노예와 같이 복종하겠소. 잠깐만! 다만 한순간만, 그러면 다시는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소! "그러면서 사탄은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

반대로 예수께서는 일어나셨다. 그렇게 여러 날동안 단식을 하신 뒤라 더 야위셔서 키가 한층 더 커진 것 같다. 그분의 얼굴은 무섭게 준엄하고 힘차다. 그분의 눈은 불꽃을 내뿜는 사파이어 같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하였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목소리는 바위가 움푹하게 된 곳에 메아리를 일으키고 바위들과 황량한 땅에 터지는 천둥소리와 같다.

사탄은 저주받은 자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증오의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지르며 펄쩍 뛰어 일어나는데, 그 격노를 폭발시키는 그 몰골이 보기에 무시무시하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한번 저주하는 고함소리를 지르며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피곤하셔서 앉아 머리를 뒤로 젖혀 바위에 기대신다. 기진맥진하신 것 같다. 땀을 흘리신다. 그러나 천사들이 날갯짓으로 동굴 안의 숨 막힐 듯한 공기를 갈고, 깨끗하게 하고 시원하게 한다. 예수께서는 눈을 뜨시고 빙그레 웃으신다. 나는 예수께서 무엇을 드시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천국의 향기로 영양을 취하시고, 그것으로 원기를 회복하신 것 같다.

해는 서쪽으로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빈 배낭을 집어 드시고, 날이 빨리 어두워지는데 그분의 위로 날아다니며 아득한 빛을 내는 천사들이 모시는 가운데, 동쪽으로, 아니 그보다도 동북쪽으로 향하신다. 예수께서는 여느 때의 얼굴 표정을 다시 찾으셨고, 다시 자신 있는 걸음을 옮기신다. 그분에게는 오랫동안의 단식의 기념물 모양으로 야위고 창백한 얼굴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쁨으로 넋을 잃은 눈과 더불어 더 고행자다운 모습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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