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생활 첫째 해(8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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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II. 공생활 첫째 해(86~90)

by mrsoojak 2022. 2. 21.

 

86. “고운 내에 계신 예수님.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오늘은 청중이 거의 배가 되었다. 서민층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귀를 타고 와서 헛간에서 식사를 한다. 선생님을 기다리며 그들은 타고 온 짐승들을 말뚝에 매 놓았다.

날씨가 차다. 그러나 맑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중 소식통인 사람들은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생님이 왜 여기서 말씀을 하시는지 설명을 한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은 요한보다 더 나은 분인가요?”

“아니지요. 이분은 다르십니다. 나는 요한의 제자였었는데,, 요한은 선구자이고 정의의 목소리입니다. 이 선생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지혜와 자비의 목소리이지요.”

“어떻게 그걸 아시나요?” 하고 여럿이 묻는다.

“세례자 요한에게 충실한 제자 세 사람이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선생님이 태어나시는 것을 보았답니다. 생각해보시오. 선생님은 빛에서 나셨답니다. 빛이 어떻게나 세던지 목동이던 그 사람들이 양의 우리에서 도망쳐 나와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는 양들 있는 데로 갔답니다. 그 사람들은 베들레헴이 온통 불바다가 된 걸 보았답니다. 그런 다음 하늘에서 천사들이 땅에 내려왔답니다. 천사들이 날개로 불을 껐대요. 땅에는 빛에서 태어난 아기인 선생님이 계셨답니다. 모든 불이 하나의 별이 되었다는군요 ….”

“아니 아니, 그게 아닙니다.”

“맞아요, 그랬대요. 이 말은 내가 어렸을 때 베들레헴에서 마부 노릇을 했던 사람한테서 들은 얘깁니다. 메시아가 어른이 되신 지금, 그 사람은 그걸 자랑하고 있어요.”

“아닙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별은 나중에 나타났답니다. 별은 동방 박사들하고 같이 왔대요. 박사들 중의 한 사람은 솔로몬의 친척이었답니다. 따라서 메시아의 친척이었던 셈이지요. 메시아는 다윗 가문의 사람이고, 다윗은 솔로몬의 아버지였으니까요. 솔로몬은 사바의 여왕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리고 여왕이 가져온 선물들 때문에 여왕에게 반했었지요. 사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아들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 아들은 나일강 저쪽에 있었지만 유다의 아이였어요.”

“아니, 그런데 당신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당신 미쳤소?”

“아니오. 당신 말은 친척인 그 사람이 혈통에 속하는 왕들 사이에 있던 관습에 따라 향료를 가져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나는 사실이 어떤지를 알고 있어요.”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이런 겁니다.이런겁니다. 그 목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사악이 내 친구이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아기가 다윗 가문의 외양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예언이었어요 ….”

“그렇지만 선생님은 나자렛 분이 아니십니까?”

“잠자코 내 말을 들으세요. 선생님은 다윗 가문이시고, 또 그때는 칙령이 내렸던 때였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겁니다. 목자들은 빛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빛을 보았습니다. 제일 나이 어린 목동이 무죄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제일 먼저 주님의 천사를 보았습니다. 하프 소리보다도 더 듣기 좋은 천사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세주께서 나셨다. 가서. 경배하여라.’ 하고. 그런 다음 천사들이, 또 많은 천사들이 ‘하느님께는 영광, 착한 사람들에게는 평화’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가서 소와 나귀 사이에 있는 구유안에 갓난아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자들은 아기에게 경배하고, 아기를 한 친절한 여자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아기는 모든 어린아이와 같이 아름답고 얌전하고 아주 귀엽게 컸습니다. 그런다가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 저쪽에서 박사들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별을 보고 그 별이 발라암의 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벌써 걸을 수 있었습니다. 헤로데 왕은 미래의 왕에 대한 질투로 아기를 없애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천사가 위험을 알렸습니다.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마타레아보다 더 멀리 피난했기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목수일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때가 오자 당신의 육촌인 세례자가 예고한 다음,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셨고, 우선 그때의 목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선생님은 30년 동안 불구로 있었던 이사악의 마비증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사악은 지금 선생님을 전하기에 지칠 줄을 모릅니다. 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례자의 세 제자도 그와 똑같은 말을 내게 해 주었어요!” 하고 첫 번 사람이 자존심이 상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게 모두 진짜입니다. 진짜가 아닌 건 베들레헴의 마부가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걸 자랑한다고요?? 그 사람은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친절하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선생님은 베들레헴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전도를 못하셨어요.”

“그래요! 그렇지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싶어 하겠나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은 세례자가 부르는 것처럼 독사와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에요.”.”

“나는 병이 나았으면 해요. 아시겠어요. 나는 다리 하나가 회저에 걸렸거든요. 나는 당나귀를 타고 여기 오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을 찾아 시온엘 갔더니 안 계셨거든요…” 하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어요 ….”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개 같은 놈들!”

“그래요, 어디서 오셨소?”

“리따에서요.”

“멀리서 오셨군요!”

“나는 … 나는 내 잘못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나는 세례자에게 그것을 말했다가 어떻게 야단을 치는지 도망치고 말았어요. 이제는 용서를 받지 못할 것같이 생각됩니다….” 하고 또 한 사람이 말한다.

“무슨 일을 했는데요?"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께 말씀드리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이 나를 저주하실까요?”

“아니오, 나는 선생님이 베싸이다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소. 우연히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놀라운 말씀이었소!!! 어떤 죄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 나는 그 말을 듣게 그 죄녀가 되기를 거의 바랄 지경이었소! …” 하고 어떤 위엄 있는 노인이 말한다.

“선생님이 오신다.” 하고 말하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단 났군! 부끄러워라!” 하고 죄지은 사람이 말하며 도망치려고 한다.

“여보시오, 어디로 도망가는 거요? 빛을 미워해서 그것을 미워해야 할 정도로 검은 마음을 가지고 있소? 죄를 하도 많이 지어서 용서하는 사람인 나를 무서워할 정도가 되었소? 그러나 당신이 어떤 죄를 지을 수가 있소? 당신이 비록 하느님을 죽였더라도, 당신 마음속에 참된 뉘우침만 있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울지 마시오! 아니 그보다도 이리로 와서 같이 웁시다.” 손을 들어 그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으신 예수께서 지금은 그 사람을 꼭 껴안으신다. 그런 다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이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나서 여러분에게 올 터이니 잠깐만 기다리시오.”

예수께서는 집에서 멀어지시는데, 모퉁이에서 돌으시다가 엿듣는 자리에 있는 베일 쓴 여자와 부딪으신다. 예수께서는 잠깐 동안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더니 한 열 걸음 더 가셔서 발을 멈추신다. “여보시오, 무슨 일을 했소?”

그 사람은 무릎을 꿇는다. 50세쯤 된 사람이다. 열정으로 타는 듯하고 은밀한 고통으로 추해진 얼굴이다. 그는 팔을 내밀고 외친다. “아버지의 유산 전체를 여자들과 쓰기 위해서 어머니와 동생을 죽였습니다. … 그 뒤로는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 제 음식은 … 피였고! 잠은 … 악몽이었고 … 제 즐거움은 … 아! 여자들의 품에서, 그들의 음란한 부르짖음에서 저는 죽은 어머니의 싸늘한 시체와 독살된 아우의 헐떡거리는 소리를 느꼈습니다. 독사 같고, 메두사 같고, 탐욕스러운 곰치 같고, 파멸, 파멸 내 파멸이 된 창녀들은 저주받아라!”

“저주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저주하지 않소 ….”

“선생님께서는 저를 저주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울고, 당신의 죄를 떠맡소! … 당신의 죄는 대단히 무겁소! 당신의 죄는 내 사지를 으스러뜨리는 것 같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당신 대신 소멸시키기 위해서 세게 죕니다. … 그리고 당신에게는 용서를 주오. 그렇소. 당신의 큰 죄를 사해 주오.” 예수께서는 흐느껴 우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펴시고 기도하신다. “아버지, 제 피는 이 사람을 위하여도 흐를 것입니다. 우선 제 눈물과 기도를 드립니다. 아버지, 이 사람이 뉘우쳤으니, 용서해주십시오. 모든 심판을 맡겨 주신 당신 아들이 그렇게 원합니다! …” 예수께서는 아직 몇 분 동안을 그대로 계시다가 몸을 기울여 그 사람을 일으키시며 말씀하신다. “죄가 사해졌소. 당신이 이제부터 할 일은 보속의 생활로 당신 죄에서 남아 있는 것을 속죄하는 일이오.”

“하느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까? 그리고 제 어머니는요? 또 제 동생은요?”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은 모든 사람이 용서하오. 자, 이제는 가서 다시는 절대로 죄짓지 마시오.”

그 사람은 더 크게 울며 예수의 손에 입맞춤한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울게 버려두시고 집 쪽으로 돌아오신다. 베일을 쓴 여자가 마주 가려는 듯한 몸짓을 하다가 머리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 앞을 지나오시며 바라보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당신 자리로 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영혼들을 마귀가 돌돌 감고 있는 것을 당신 전능으로 빼내셔서 하늘로 가는 길에 다시 갖다 놓아주십니다.. 왜 이 영혼이 멸망할 뻔했습니까? 그것은 그 영혼이 율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당신의 온갖 무서운 권능을 가지고 시나이산에 나타나셔서 그 무서운 권능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나는 하느님이다. 내 뜻은 이러하다.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여기 징벌들이 다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주께서는 말씀하시기 전에 이런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백성 중에서는 아무도 존재하시는 그분을 보려고 산에 올라와서는 안되며, 사제들까지도 죽음의 엄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경계선에 가까이 오기 전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그때는 정의와 시련의 때이기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하늘의 문은 마치 하늘의 신비와 하느님의 분노를 돌로 덮어 놓은 듯이 닫혀 있었고, 그저 정의의 화살들만이 죄지은 자녀들에게로 하늘에서 내려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의로운 사람이 온갖 정의를 다하려고 왔습니다. 사람에게 은총과 생명을 주기 위하여, 징벌과 경계선이 없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주님이신 분의 첫째 말씀은 이것입니다.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이 말씀이 하느님의 목소리와 손가락으로 울려 퍼지고 나타나고 하지 않는 때는 하루의 한 순간도 없습니다. 어디에서? 사방에서요. … 모든 것이 이 말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풀과 별에 이르기까지, 물에서 불에, 양털에서 음식에, 빛에서 어두움에, 건강에서 병에, 부유함에서 가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이다. 네가 그것을 가진 것은 나를 통해서이다. 내 생각 중의 하나가 그것을 네게 주고, 또 다른 생각 하나가 그것을 네게서 빼앗는다. 너를 내 뜻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군대도 없고 방어물도 없다. 이 말은 바람소리 가운데에서 외치고,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속에서 노래하고, 꽃향기 속에 퍼져 갑니다. 이 말은 산꼭대기를 두드립니다. 이 말은 속삭이고, 말하고, 부르고, 양심들 속에서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하고 외칩니다.

이 말을 절대로 잊지 마시오. 이 말을 듣지 않으려고 여러분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양심을 짓누르지 마시오. 그 말은 그래도 존재합니다. 연회장의 벽이나 미친 듯이 날뛰는 바다의 파도 위에, 어린아이의 웃는 입술 위에나 죽어가는 늙은이의 창백한 얼굴 위에, 향기로운 장미꽃에나 무덤의 고약한 냄새 속에서도 하느님의 불을 뿜는 손가락으로 써진 이 말이 이르게 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술과 쾌락의 도취 중에, 사업의 와중(渦中)에, 밤의 휴식 중에 또는 홀로 산책하는 중에 이 말이 목소리를 높여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하고 외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가 탐욕스럽게 입 맞추고 있는 그 육체도, 그대가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그 음식도, 그대가 인색하게 모으고 있는 그 황금도, 그대가 게으르게 누워 있는 그 침대도, 침묵도, 고독도, 잠도, 아무것도 이 말을 침묵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를 버리지 않는 동무요, 네가 쫓아낼 수 없는 손님이다. 네가 착하냐? 그러면 손님이요 동무인 내가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네가 타락하고 죄가 있느냐? 그러면 손님이요 동무인 사람이 성이 난 왕이 되어 평화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은 떠나지를 않습니다. 떠나지를 않아요. 하느님과 떨어지는 일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갈라짐은 진정시킬 수 없고 영원한 것입니다.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를 이집트의 땅에서 종살이하는 집에서 구해냈다.’ 오! 이제는 얼마나 참되게, 얼마나 정확하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어떤 이집트에서,, 정말 어떤 이집트에서 여러분을 구해내셔서, 이곳이 아니라 하늘이 언약된 땅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입니까! 다시는 굶주림도 목마름도 없고, 추위도, 죽음도 없고, 모든 것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흐르고, 모든 영이 평화와 기쁨을 만끽할 주의 영원한 나라로 말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진짜 속박에서 여러분을 구해내시려고 합니다. 해방자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해방자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슬을 끊으려고 왔습니다.

인간인 지배자는 누구나 다 죽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노예가 된 인민들이 자유를 도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죽지 않습니다. 사탄은 영원합니다. 사탄은 여러분을 그가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가려고 감옥에 집어넣는 지배자입니다. 죄악이 여러분 안에 있는데, 그 죄악이 사탄이 여러분을 묶어 놓는 사슬입니다. 나는 사슬을 끊으러 왔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고, 또 이것이 내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이집트와 종살이에서 구해냈다.’고 하는 이해되지 않은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약속이 영적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여러분의 첫째 조상들을 유혹하였던 우상의 땅에서 구해내시고, 죄의 속박에서 끌어내시며, 여러분을 은총으로 꾸며서 당신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게로 오는 사람들은 다정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분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나는 너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내게로 끌어들이는 네 주 하느님이다.’

오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과 얼굴과 기도와 의지를 주께로 돌리시오. 은총의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셨다. 그리고 어떤 작은 노파와 머리가 온통 갈색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계집아이를 어루만져 주시고 축복을 가시며 지나가신다.

“선생님,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 대단히 아픕니다!” 하고 회저가 있는 병자가 말한다.

“우선 영혼입니다. 영혼이오. 회개를 하시오….”

“요한처럼 제게 세례를 주십시오. 저는 그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병자이기 때문에요.”

“이리 오시오.” 예수께서는 대단히 큰 풀밭 둘과 강을 가리고 있는 수풀 저쪽에 있는 강을 향하여 내려가신다. 예수께서도 신발을 벗으시고, 목발을 짚고 힘들게 따라온 그 사람도 신발을 벗는다. 둘이는 강가로 내려가고, 예수께서는 두 손을 모아 잔처럼 만들어 가지고 무릎까지 물속에 들어가 있는 그 사람의 머리에 부으신다.

“이제는 붕대를 푸시오.” 하고 그 사람이 오솔길로 다시 올라오는 동안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 사람이 하라시는 대로 한다. 다리가 나았다. 군중이 놀라서 소리 지른다..

“저도요!"

“저도요.”

“저두, 선생님의 손으로 세례를 받겠어요!” 하고 많은 사람이 외친다.

벌써 길을 반쯤 오신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며 말씀하신다. “내일 합시다. 지금은 가시오. 그리고 말을 들으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같이 있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예수께서는 집으로 돌아오셔서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아직 오후의 이른 시간인데도 부엌은 벌써 어둡다.

제자들이 예수께 친절을 다한다. 베드로가 묻는다. “선생님이 집 뒤로 데려가신 그 남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깨끗하게 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다시 오지 않고, 세례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보낸 곳으로 갔다.”

“어디로요?”

“베드로야, 속죄하려 간 것이다.”

“감옥으로요?”

“아니다, 여생 동안 보속을 하려고 갔다.”

“그러면 물을 가지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군요.”

“눈물도 물이다.”

“그렇군요, 이제는 선생님이 기적을 행하셨으니 사람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습니다. … 오늘도 벌써 곱절이나 왔거든요 ….”

“그렇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례는 너희들이 주어라. 처음에는 혼자서 한꺼번에 하고, 다음에는 두 사람, 세 사람, 여러 사람이 하여라. 그러면 나는 강론을 하고 병자와 죄 있는 사람들을 고쳐 주겠다.”

“저희가 세례를 베풀어요? 아이고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게서는 이 임무를 거두어 주십시오! 제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는데요!”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제일 먼저 세례를 베풀 사람은 바로 너다. 내일부터 당장.”

“주님, 안됩니다! 제가 이 굴뚝보다도 더 시꺼먼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 무릎 앞에 무릎을 꿇고 그 투박한 어부의 양손을 합장하여 그의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사도의 겸손한 진실성에 미소를 지으신다. 그런 다음 굽슬거리기보다는 오히려 곤두선 반백의 머리가 시작되는 이마 언저리에 입맞춤을 하신다. “자, 입맞춤으로 네게 세례를 준다. 좋으냐?”

“또 다른 입맞춤을 받게 또 죄 하나를 짓겠습니다!”

“그것은 안된다. 하느님의 선물을 남용해서 그분을 우롱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제게는 입맞춤을 안 주십니까? 저도 아직 무슨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신다. 몹시 잘 변하는 예수의 눈길은 그분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그분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던 기쁜 빛에서 심각한 어두움으로, 말하자면 권태에서 오는 어두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마 …… 네게도 입맞춤해 주마. 이리 오너라. 나는 아무하고도 불공평하게 하지 않는다. 유다야, 착하게 살아라. 만일 네가 원하기만 하면! … 너는 젊다. 너는 끊임없이 올라가서 완전한 성덕에까지 이를 수 있을 만큼 앞길이 창창하다 ….”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입맞춤하신다.

“이번에는 나의 벗 시몬도. 내 승리인 너 마태오도. 현명한 바르톨로메오 너도. 충실한 필립보 너도. 명랑한 마음을 가진 사나이 토마 너도. 묵묵히 활동하는 안드레아도 오너라. 내가. 제일 먼저 만난 너 야고보도. 또 이제는 네 선생의 기쁨인 너(요한)도. 내 어릴 적과 젊은 시절의 동무인 너 유다도. 얼굴과 마음이 의인을 회상시키는 너 야고보도. 자, 모두, 모두 … 그러나 내 사랑이 다양하지만 너희들의 착한 뜻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내일부터는 내 제자로서의 저희 생활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명예이고 의무라는 것을 생각하여라.”

“선생님, 언젠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아와 제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만일 저희들이 선생님이 기도하시는 것처럼 기도하면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시키시는 일을 할 능력과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때 나는 네게 이런 대답도 하였다. ‘너희들이 넉넉히 단련되고 나면, 뛰어난 기도를 가르쳐 주겠다.「나의」 기도를.「나의」 너희에게 남겨 주기 위해서. 그러나 그 기도도 입술로만 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은 진정으로 갈망하는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께로 올라가거라. 기도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사람이 하느님께 바치는 선물이다.’ 하고.”

“아니 그럼? 저희들은 아직 기도할 자격이 없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기도하고 있는데요 …”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유다야, 이스라엘이 기도는 한다. 그러나 그의 행실로 보아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알겠느냐? 나는? 너희들을 배반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마음속의 의향 없이 겉으로만 기도하는 사람은 선에 반대하는 사람이고, 배반자이다.”

“그리고 기적은요? 언제 저희들에게 기적을 행하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여전히 유다가 묻는다.

“우리가 기적을? 우리가? 아이고 맙소사! 그래도 우리는 맑은 물을 마시고 있단 말이야! 우리가 기적을? 아니 젊은이, 자네 헛소리를 하는 건가?”?” 베드로는 분개하고 질겁을 하고 몹시 흥분하였다.

“선생님이 유다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렇지 않았던가요?”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고, 또 너희들이 기적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너무 육체적인 사람으로 있는 한, 너희가 기적을 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희들은 단식을 하겠습니다.”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무익한 일이다. 육체라는 말로 나는 타락한 정열, 세 가지 갈망, 그리고 이 위험한 세 가지 갈망을 따르는 많은 악습을 뜻한다. … 불명예스러운 중혼(重婚)에서 난 자식들같이, 정신의 교만은 육체와 지배의 갈망과 더불어 사람과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악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저희들은 선생님을 위해서 저희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고 유다가 대꾸한다.

“그러나 너희들 자신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 저희들이 죽어야 합니까? 선생님을 모시고 있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어도 저는요 ….”

“아니다. 나는 너희들의 육체적인 죽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 안에서 동물적이고 악마적인 경향이 죽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육체가 그 욕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한, 거짓말, 교만, 분노, 자존심, 탐식, 인색, 게으름 따위가 너희들 안에 남아 있는 한 이 경향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저희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선생님에 비해 너무도 비속한 인간들입니다.”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속삭인다.

“그리고 선생님은 항상 똑같이 거룩하셨어. 우리는 이 말을 할 수 있어.” 하고 사촌 야고보가 단언한다.

“선생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셔 ….” 하고 요한이 말한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낙담해서는 안돼. 우리는 그저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해.. 저희들에게 나날이 선생님을 섬길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만일 우리가 ‘저희들은 죄가 없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또 속이는 것이 될 거야.. 대관절 누구를 속일 거야?? 우리가 말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우리를 속일 것인가? 우리가 속일 수 없는 하느님을 속일 것인가?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저희들은 약하고 죄인입니다. 당신의 힘과 용서를 가지고 와서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하면,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당신 인자와 정의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 불쌍한 마음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실 거야.”.”

“요한아, 순수함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네 입술, 숭배할 만한 사랑에만 입맞춤을 하는 네 입술을 통하여 영원하신 진리가 말씀을 하셨으니, 너는 참으로 행복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제가 있는 어두운 구석에서 말한 사랑하는 제자를 가슴으로 끌어당기신다.

 

87.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너희 주 하느님은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 사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 예수의 목소리는 방안에 울려 퍼진다.. 비가 와서 모든 사람이 방으로 피해 들어왔기 때문에 방에는 군중이 꽉 찼다. 앞줄에는 병자 네 사람이 있다. 한 여자가 인도하는 소경, 딱지 투성이인 어린이, 황달을 앓거나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여자, 그리고 들것에 실려 있는 네 번째 병자이다.

예수께서는 빈 구유에 기대서 말씀하신다. 요한과 두 사촌과 마태오와 필립보는 예수 곁에 있고, 유다와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와 야고보와 안드레아는 출입구에서 아직도 오는 사람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토마와 시몬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어린이들을 떠들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소액의 연보를 걷는다.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만들어 가지지 말아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생각으로 어디에나 다 계시는지를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어떤 방안에 들어박혀 있거나 성전의 가운데 있거나 똑같이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얼굴을 감추는 숨은 은인이거나, 으슥한 험로에서 여행자를 습격하여 죽이는 살인자이거나, 우리는 똑같이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조신(朝臣)들 가운데 있는 왕도, 전장에 있는 병사도, 성전 안에 있는 성직자도,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현인도, 밭고랑을 파는 농부도, 계산대에 앉아 있는 장사꾼도, 요람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도, 신방에 있는 아내도, 아버지의 집에 고이 숨어 있는 처녀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도,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도 하느님의 앞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있고, 사람의 행동도 역시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도!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면서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행동의 목적이 죄이면 무서운 말일 것이고, 행동이 성덕을 얻고자 힘쓰면 위로가 되는 말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은 나쁜 행실을 억제하게 되고, 좋은 행동들은 위안이 되어 격려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신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느님께서 착한 행동은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상금을 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이 확신에 의지한다. 이 확신은 내 생활을 차분하게 할 것이고 내 죽음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살거나 죽거나 내 영혼이 하느님의 우정의 빛나는 별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추론합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금지된 행동 가운데에는 우상 숭배가 들어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거룩한 예배를 하는 체할 때에 하나나 여러 거짓 신을 숭배한다는 것을 아신다. 내가 그 거짓 신들에게 제단을 세웠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다.’고 말입니다.

성전에조차도 하느님의 상이 없는데, 어떤 신들인가 하고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참 하느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가 없었는데 그 신들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완전하시고 지극히 순수하신 분을 사람이 상응하게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숭고한 접촉을 할 자격이 있는 성인 곁에 당신 존재를 널리 펴실 때, 오직 영만이 하느님의 영적이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자애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귀와 손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따라서 주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키타라*의 소리로 나타낼 수 없고, 망치와 끌로 대리석에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오! 의인들의 영이여, 그대들이 하느님을 뵐 때 그 행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 볼 것은 영원무궁세로 여러분과 동행할 지복(至福)의 여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 하느님을 위하여 할 수 없는 것을 거짓 신들을 위하여는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자를 신처럼 모시고, 어떤 사람은 황금을,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지식을, 또 어떤 사람은 군사적인 승리를 신처럼 모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 질서에는 자기와 비슷하고, 그저 힘과 행운으로만 자기를 능가하는 세력 있는 사람을 숭배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며 ‘나와 어깨를 겨룰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입니다.

이교도들이 짐승이나 뱀이나 천체들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마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뱀! 얼마나 많은 짐승! 얼마나 많은 꺼진 천체를 숭배합니까! 입술은 아첨하고 차지하고 매수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은밀한 우상숭배의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마음은 복수나 부정거래나 매음의 생각을 은밀히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쾌락과 탐욕과 악의 추한 신들에 대한 경배가 아닙니까?

‘유일하고 영원한 네 참 하느님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숭배하지 말아라.’ 하였고, ‘나는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 하였습니다.

강하십니다. 하느님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행동의 자유가 있고, 사탄은 유혹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만’하고 말씀하시면 사람은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고 사탄은 더 이상 유혹을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의 지옥으로 추방되고, 사람은 나쁜 행동을 지나치게 하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십니다. 누구를 질투하시고, 어떤 질투를 하시는 것입니까? 소인들의 치사스러운 질투가 아닙니다. 당연한 질투이고, 사랑 가득한 질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 여러분을 해치는지를 아시고, 무엇이 여러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하는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들 사이에 들어서서, 이 아들들을 구원이요 평화인 유일한 사랑, 즉 하느님에게서 빗나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치사하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사로잡지 않는 이 하느님의 질투를 깨달으시오. 이 질투는 무한한 사랑이고, 무한한 인자이고 끝없는 자유로서, 유일한 피조물을 당신께로, 당신 안으로 빨아들여 당신의 무한히 착하심에 같이 참여케 하려고 당신을 그 유한한 피조물에 주시는 것입니다. 착한 아버지는 자기의 재산을 혼자 누리기를 원치 않고, 그의 자식들이 한몫 끼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 재산을 모은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보다 자기 자식들을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과 이 욕망에 당신의 행동의 완전성을 가져다주십니다..

주님을 속이지 마시오. 주님은 죄 있는 사람들과 죄있는 아들의 아들들에게 벌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하실 때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인 여러분, 여러분의 정신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약속을 듣고 아주 기뻐하시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 고 하신 약속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후손 천대까지, 그리고 악의로 가 아니라 경솔함과 마귀의 계략으로 죄에 떨어진 가엾은 사람의 아들들의 천 번째 약함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또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뉘우치는 마음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아버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아버지 앞에서 저를 낮추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용서는 제가 참 삶을「살되」 돌아오기「살되」 위한 힘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면, 주께서는 팔을 버리실 것입니다.

두려워 마시오. 여러분이 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짓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냉정하게 되시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끝까지 죄 중에 남아 있어서, 죄를 실제로 원하고,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죄를 가지고 여러분의 소름 끼치는 신을 만드는 때일 뿐입니다. 그 모든 우상을 쓰러뜨리고 참 하느님께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오직 당신만이 계시는 것을 볼 때에 여러분의 마음을 신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당신 영광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그분의 집을 돌려드리시오. 그 집은 돌로 지은 성전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 문지방을 물로 씻고, 집안에서는 쓸데없거나 죄 되는 사치는 일체 치워버리시오. 하느님만을! 그분 하나만을! 하느님께서 전부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사람의 마음, 하느님이신 손님께 자기의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점으로도 낙원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마음을 지니고 하늘을 만드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과 동거를 시작하시오.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에서 이 동거는 완전하 능력과 기쁨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과의 이 동거는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의 두려워하는 놀람을 능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동거가 전능하신 분과의 전격적이고 무시무시한 만남이 아니라 아버지와 친구 로우리에게 내려오셔서 ‘내 기쁨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네가 나를 기쁘게 해 주는구나.. 아들아, 고맙다.’ 하고 말씀하시는 분과 같이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 명이 넘는 군중은 얼마 동안의 큰 기쁨의 시간이 지난 다음 나간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기쁜 바람으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요컨대 군중은 잠이 깨는 것 같다. 처음에는 웅성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힘찬 탄식 같기도 하다가 마침내 해방의 외침같이 된다. “선생님, 찬미받으십시오!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평화의 길을 뚫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당장 옳은 길을 걸어가면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병자들에게로 가신다. 병든 어린이와 노경과 얼굴이 노란 여자를 손으로 스치신다. 그리고 마비 환자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네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고.

그 남자는 예수를 쳐다보며 외친다. “지쳐빠진 제 몸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일어난다. 마침내 누군가가 병상에 있는 담요를 그의 몸에 씌어준다. 엄마는 딱지가 다 없어진 아기를 치켜들고, 소경은 빛과의 첫 번 접촉을 하려고 눈을 비빈다. 여자들이 소리 지른다. “디나는 이제 샛노랗지가 않아요.” 하고.

감격이 극도에 달하였다. 소리를 지르고, 찬미하고, 보려고 서로 떼밀고, 마을에 가서 말하려고 나가려고 애를 쓰고 한다. 예수께서는 사방에서 습격당하시는 격이 되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예수를 거의 찍어 누르는 것을 보고 외친다. “여보게들! 선생님이 숨이 막히시겠네! 와서 선생님을 빼내게!” 그래서 열 두 제자는 팔꿈치를 휘두르고 정강이를 차기까지 해서 예수를 끌어내고 해방에서 밖으로 모셔가는 데 성공한다. 베드로가 말한다. “내일은 제가 이것을 생각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문 곁에 계시고, 다른 사람들은 안쪽으로 들어가게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없다!”

“그 사람들 미치광이 같았습니다. 무슨 버릇이람!"

“내버려두어라. 그 사람들은 행복하였다. … 그리고 나도 그들과 같이 행복했고, 유다, 너는 시몬과 같이 헌금을 거지들에게 주어라. 모두. 우리는 주의 사도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다. 가거라. 베드로야, 가. 너무 많이 한다고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 네 변호를 할 것이다. 자, 잘들 가거라.”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기진맥진하셔서 집안으로 들어가시고, 제자들은 그동안 각기 순례자들에게 그들이 맡은 임무를 행한다.

 

*역주: 고대 그리스의 악기, 거문고의 일종.

 

88.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

 

잊지 못할 기념일! 베일을 썼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지의 사람”이 자기를 알렸습니다. 선생님은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 그리고 마리아가 요한이 되었습니다. 제 눈물은 선생님의 입맞춤과 약속으로 닦아졌습니다! … 그리고 선생님의 뜻에 의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신부님도 아십니다. 제가 이 날짜를 기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그리고 저는 하느님께 봉사함으로써 이 날짜를 기념하며, 이 봉사에 딸린 피로와 고생을 축복합니다. 그것은 … 오! 1943년 3월 1일의 그 시간은 하도 엄청나서, 이와 비교하면 십자가조차도 아무것도 아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온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이 야단법석이다. 어떻게나 동요하는지 꼭 벌통을 쑤셔놓은 것 같다. 그들은 말을 하고 밖의 망을 보고 사방을 살펴본다. 예수께서는 안 계시다. 마침내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결정을 하고 베드로가 요한에게 명령한다. “선생님을 찾아가게. 선생님은 강 쪽에 있는 숲 속에 계셔. 즉시 오시든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일러 주십사고 말씀드리게.”

요한은 빨리 멀어져 간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왜 이렇게 야단법석을 하고 이렇게까지 무례한 행동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나 같으면 그이한테 가서 그이의 신분에 상응한 경의를 표하며 맞이했을 걸세.. 그이의 방문이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야. 그러니까 ….”

“난 잘 모르겠어.”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 사람은 그의 젖형제하고는 다르겠지. …그렇지만 … 하이에나들과 같이 있으면 하이에나의 냄새가 배게 되고 그 본능도 배우게 된단 말이야. 게다가 자네는 그 여자가 자리를 떠야 한다고 하지만 … 조심해! 선생님은 그걸 원치 않으시고, 나는 그 여자의 후견인이란 말이야. 만일 그 여자에게 손을 대면 … 난 선생님 같지는 않을 걸세. 자네 행동을 잘 조절하라고 말하는 것뿐이야.”

“아이고! 도대체 그 여자는 누구야? 혹시 아름다운 헤로디아가 아닌가?”

“말장난하지 말아!”

“자네가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거야.. 자넨 그 여자에게 마치 여왕에게 하듯이 친위대 노릇을 한단 말이야 ….”

“선생님이 ‘그 여자를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게 보살펴라, 그리고 그 여자를 존중하여라.’ 하고 내게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야.”.”

“하지만 그 여자는 누군가? 자넨 아나?" 하고 토마가 묻는다.

“난 몰라.”

“자, 말해봐 … 자넨 알고 있지 …” 하고 여러 사람이 재촉한다.

“난 정말 몰라, 맹세해, 선생님은 틀림없이 아실 거야,, 그렇지만 난 몰라.”

“요한에게 선생님께 여쭈어보라고 해야 돼. 요한에게는 다 말씀하시니까.”

“왜?” 하고 유다가 말한다. “요한은 특별한 게 뭐가 있어? 자네 동생은 신인가?”

“유다, 그렇지 않아. 그 애는 우리 중에서 제일 선량한 사람이야.”

“자네들 이런 피로를 면할 수 있네.”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어제 내 동생이 그 여자가 강에서 안드레아가 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올 때에 보았다는데, 안드레아가 예수께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네.‘그 여자는 얼굴이 없다. 그 여자는 하느님을 찾는 영이다. 내게 있어서는 그 여자가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또 그 여자가 모두에게도 그렇기를 원한다.’ 하고. 그런데 ‘원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엄한 어조로 말씀하셨는지 나는 자네들에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충고하네.”

“난 그 여자를 가서 만나겠어.”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 봐.”.” 하고 베드로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한다.

“자네도 예수님한테 첩자 노릇을 하는 건가?”?”

“난 그런 직업은 성전 사람들에게 남겨주네. 호수에 사는 우리는 일해서 밥벌이를 하지, 밀고로 밥벌일 하진 않아. 요나의 아들 시몬이 자넬 정탐할까 봐 염려하진 말게. 하지만 내 비윌 거드리 진 말아, 그리고 내가 여기 있으니까 자네는 선생님께 불복종하게 가만 놔두진 않을 거야….”

“그래 자넨 뭐야?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지.”

“그렇지요. 나으리. 오히려 자네보다 더 가난하고 더 무식하고 더 촌스러워. 나도 그걸 알아, 하지만 그걸 슬퍼하진 않아. 하지만 마음이 자네와 같다면 걱정을 할 거야.. 그렇지만 선생님이 이 임무를 내게 맡기셨으니, 난 이 임무를 다하는 거야.”

“내 마음과 같으면이라고?? 그래 내 마음속에 자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말해봐, 비난하고 공격해 보라고….”

“아니, 도대체!” 하고 열성당원이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하고, 그와 함께 바르톨로메 오도 말한다. “유다, 결국, 그쯤 해두게. 베드로의 나이를 존중해야지.”

“난 모든 사람을 존중해, 그렇지만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즉시 대령하지. … 내가 말하게 내버려 둬… 이 부엌을 가득 채울 만큼 교만이 있고, 위선이 있고, 음탕이 있어.”

“내게 위선이 있다고?”?”

모두가 사이에 든다. 그래서 유다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시몬이 침착하게 베드로에게 말한다. “여보게, 내가 자네에게 몇 마디 하는 걸 양해해 주게. 이 사람이 결점이 있기는 해. 그렇지만 자네도 결점이 몇 가지 있어. 그중 하나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왜 나이와 출신과 …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나? 이거 보게, 자네는 예수님께 대한 애정으로 그렇게 행동하지만, 이런 말다툼이 선생님을 피로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나? 이 사람에게는(유다를 가리킨다) 이 말을 하지 않지만, 생각이 깊고 대단히 성실한 자네에게는 이 부탁을 하겠네. 선생님은 그 원수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우리까지도 걱정을 끼쳐드려서야! 선생님 주위에는 많은 적의가 에워싸고 있네. 그런데 왜 집안에서까지 적의를 만들자는 거야?”?”

“맞아.” 하고 타대오가 말한다. “예수님은 매우 침울하시고 야위기까지 하셨어. 밤에는 침대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시고 한숨을 쉬시는 소리가 들려. 나도 밤에 자주 깨서 선생님이 기도하시며 우시는 것을 보았어. 나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나를 껴안으시면서 ‘나를 많이 사랑해다오.「구세주」가 된다는 것이 정말 힘들구나!’ 하고 말씀하셨어.”

“나도 강가의 숲 속에서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어.”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그리고 내 의아스러운 듯한 눈치를 보시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어. ‘하늘에는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 외에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아느냐?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내 목을 죄는 밧줄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작은 새들에게 낟알을 던져서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여기에 왔다.’ 하고.”

가리옷의 유다는(그는 정신의 평형을 잃은 것 같다.) 땅에 엎어지며 어린아이처럼 운다. 마침 그때 예수께서 요한을 데리고 들어오신다. “대관절 무슨 일이냐? 그리고 왜 우느냐? …”

“선생님, 제 잘못입니다.” 하고 베드로가 솔직히 말한다. “제가 나쁘게 행동했습니다. 제가 유다를 너무 심하게 비난했습니다.”

“아닙니다. ……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 드립니다. … 저는 착하지 못합니다. … 저는 혼란과 불화와 반항을 일으킵니다! 저는 … 베드로가 옳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착하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여기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니까요.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래서 선생님께 괴로움만을 드리게 됩니다. 기쁨만을 드리고 싶은 선생님께 말입니다. …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

“그렇고 말고, 유다야. 나는 그걸 의심치 않는다. 너는 실제적인 정열로 아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내게로 왔다. 그러나 너는 젊다. 아무도, 너까지도 내가 너를 아는 것만큼 너를 알지 못한다. 자, 일어나서 이리 오너라. 우리 둘이서만 이야기하자. 우선 나를 부르게 만든 그 사람 이야기를 하자. 만나넨도 여기 왔다고 해서 나쁠 것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헤로데의 친척이라 해서 참 하느님을 갈망할 수가 없단 말이냐? 나 때문에 염려하느냐? 걱정할 필요 없다.. 내 말을 믿어라. 그 사람은 올바른 의향으로 왔다.”

“그러면 왜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하고 제자들이 묻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바로 ‘영혼’으로서 온 것이지 헤로데의 젖형제로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조용하게 온 것은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는 왕과의 친척관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침묵을 존중하자.”

“그렇지만 오히려 그가 저 사람을 보냈다면요?”

“누가? 헤로데가? 아니다, 염려 말아라.”

“그럼 누가 저 사람을 보냈습니까? 저 사람이 어떻게 선생님을 알까요?”

“바로 내 육촌 요한을 통해서이다. 요한이 옥중에서도 나를 전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또한 쿠자를 통해서도 …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증오 바로 그것을 통해서도 … 나를 알았을 것이다. 이제는 나뭇잎과 바람까지도 내게 대하여 말한다. 조약돌이 움직이지 않는 물속에 던져졌고 방망이가 종을 울렸다. 물결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먼 데 있는 물에까지 계시를 전하고, 소리는 그것을 공간에 넘겨준다. … 땅은 ‘예수’라고 말할 줄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결코 입을 다물지 않을 것이다. 자, 너희들, 가거라. 그리고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도 정중하게 대하여라. 다들 가거라. 나는 유다와 단둘이 남아 있겠다.”

제자들이 간다.

예수께서는 아직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다를 보시며 물으신다. “자! 너는 내게 할 말이 없느냐? 나는 네게 관한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네게서 그 말을 듣고 싶다. 왜 그렇게 우느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불안정해서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게 되느냐?”

“아이고! 선생님,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질투가 많습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그것을 아시지요. 그래서 저는 … 저는 여러 가지 일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불안해지고 … 옳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데도 나빠집니다 ….”

“울지 말아라! 누구를 질투하느냐? 네 본마음으로 말해 버릇하여라. 너는 말을 많이 한다. 너무 많이 할 정도이다. 그러나 무엇으로 말을 하느냐? 본능과 생각으로. 너는 피로하게 하는 끊임없는 본능의 작용을 따라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너와 네 자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에 관하여는 너를 말리거나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육체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육체는 흥분한 네 말이다. 너는 경마장 주임에게서 흥분한 말 두 마리를 받은 경마기수와 같다. 한 마리는 관능이다. 또 한 마리는 … 또 한 마리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으냐? 그래? 그것은 네가 굴복시키려고 하지 않는 잘못이다. 능란하지만 조심성 없는 경마기수인 너는 네 솜씨만 믿고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일등을 하기를 원한다. … 너는 적어도 말 한 마리를 바꾸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말들을 흥분시키고 채찍질을 한다. 너는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 박수갈채를 바란다. … 어떤 승리도 그것을 꾸준하고 참을성 있고 조심성 있는 노력으로 얻을 때에 확실해진다는 것을 모르느냐? 네 영혼에서 오기를 바란다. 내가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하겠느냐?”

“저는 선생님까지도 공평하지 못하시고 선생님 자신과도 일치하게 행동하지 않으시는 것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왜 나를 비난하느냐?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떤 일에 실수를 하였느냐?”

“제가 선생님을 제 친구들한테 모시고 가려고 했을 때 선생님은 ‘나는 비천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가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시몬과 라자로가 선생님이 권력 있는 사람의 보호를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니까 선생님은 받아들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베드로와 시몬과 요한을 더사랑하십니다. … 선생님은 ….”

“또 뭣이냐?”

“예수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쓸데없는… 이내 터지는 물거품들이다. 나는 네가 행복할 수 있을 터인데 저 자신을 괴롭히는 가엾은 인간이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너는 이 집이 호화롭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나로 하여금 이 집을 받아들이도록 부추기는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만일 시온이 그의 예언자들을 덜 학대하였더라면, 내가 마치 인간의 재판이 무서워서 은신처에 피난하는 사람처럼 이곳에 와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제자들에게는 임무를 주었지만, 네게는 임무를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내가 네게 심하게 굴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솔직하지 않았다. … 그 포도밭 … 오! 그 포도밭 이야기! 그 포도밭은 이름이 무엇이었더냐? 너도 고통을 당하거나 자신의 죄 갚음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친절하지 않았다. 너는 내게 대하여도 공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보았다. … 그런데도 너를 옹호하기 위하여는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그것도 언제나 그러하였다. 내 목소리도. 다른 제자들이야말로 질투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제자를 하나를 보호하였다면, 그것은 너이니까 말이다.”

유다는 창피스럽고 감격하여 운다.

“나는 간다. 지금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는 시간이다. 너는 여기 남아서 곰곰이 생각하여라.”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제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 저는 사랑하면서 괴롭힙니다. … 제 어머니와도 그랬는데 … 선생님과도 그렇습니다. … 만일 제가 장차 아내를 얻으면 제 아내와도 그럴 것입니다. … 저는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

“네가 뉘우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용서를 받았다. 잘 있거라.”

예수께서 나오셔서 문으로 가까이 오신다. 베드로가 밖에 있다. “선생님, 오십시오. 벌써 시간이 늦었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식사도 아직 못하셨으니 … 이 모두가 저 젊은이 때문입니다.”

“저 ‘젊은이’가 이제부터는 이런 일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너희 모두가 필요하다. 베드로야, 이것을 기억하도록 힘써라. 그가 네 아들이라면, 불쌍히 여기겠느냐? …”

“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기는 하겠습니다. … 그렇지만 … 그가 벌써 어른이 되었다 하더라도 못된 장난꾸러기에게처럼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제 아들이면 저렇지 않을 것입니다 ….”

“그만.”

“예, 주님, 그만해 두겠습니다. 저기 만나넨이 있습니다. 하도 짙은 빨간색이 거의 검게 보이는 겉옷을 입은 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거지들에게 주라고 이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잘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뭐라고 대답하였느냐?”

“사실을 있는 대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침대밖에 없으니, 마을로 가보시오.’ 하고요.”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그러나 베드로를 그대로 두시고 요한을 찾아가셔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당신 자리로 가셔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평화와 더불어 빛과 거룩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 했습니다.

언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또 누가 그렇게 합니까? 하느님을 모독할 때에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느님께 어울리는 사람이 되지 않고 그 이름을 부를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합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 아버지가 원하는 모든 것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하고 말한다고 실제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하느님’ 한다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께 설명을 했습니다만, 이스라엘에는 마음속 은밀한 곳에 많은 우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 대한 위선적인 찬양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찬양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향도 하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서는 많은 죄를 찾아내면서, 실제로 죄가 있는 곳, 즉 마음속에서는 죄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 경향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또 어리석은 자부심과 비인도적이고 반정 신적인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이름이 이교도의 입술에 오르면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이방인들에게 참 하느님께 접근하는 것을 금하는 일을 덧붙입니다. 그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창조된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주의 끌어당김을 느끼는 것을 왜 막습니까? 여러분은 이교도들이 그들 마음속에 부르짖고 불안해하고 찾는 그 어떤 불만족스러운 것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를 찾고, 무엇을 찾습니까?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교도가 그의 온 역량으로 미지의 신의 제단을 향하면, 즉 항상 그의 창조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영혼이라는 제단을 향하면, 모세가 받은 명령에 따라 세웠던 성막(聖幕)이 그랬던 것과 같이 영혼이 하느님의 영광의 차지가 되기를 기다리면, 그리고 그 이교도가 하느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때까지 울면, 하느님께서 그의 제사를 당신께 대한 모독이라고 물리치시리라고 믿습니까? 그리고 하느님의 부름으로 잠이 깨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갑니다’하고 말하는 영혼의 올바른 소원으로 생기게 된 그 행동이 죄가 된다고 믿습니까? 쾌락을 누리고 난 나머지를 성전에 바치고, 죄가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영혼과 육체로 하느님 앞에 들어가서 지극히 깨끗하신 분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타락한 예배가 거룩하리라고 믿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만, 부정한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저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 완전합니다. 여러분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만, 여러분의 영혼 상태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을 때에 하느님을 부르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됩니다. 오! 나는 어떤 위선자가 하느님을 부를 때, 어떤 사람이 뉘우치는 마음 없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른 데로 돌리는 하느님의 노하신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비록 하느님의 그 분노를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은 나이지만 그 때문에 공포를 느낍니다.

나는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을 읽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어른 안에는 더러움과 죄 밖에 없으니, 아주 어린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하느님을 부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죄인들이야말로 이 이름을 불러야 하고, 사탄에게 목이 졸림을 느끼면서 죄와 유혹자에게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불러야 합니다. 그들은 원합니다. 용서를 받고 병이 낫기 위하여 능하신 분을 불러야 합니다. 유혹자를 쫓기 위하여 하느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께서 에덴을 지나가지 않으시던 시간에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다는 말이 창세기에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에덴에 계셨더라면, 사탄이 거기 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하와가 하느님을 불렀더라면 사탄이 도망쳤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항상 이 생각을 가지시오. 그리고 진실하게 주님을 부르시오. 이 이름은 구원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끗해지기 위하여 강에 내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사랑으로 하느님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오. 거짓 기도나 관습적인 예배행 위로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여러분 자신 전체로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부르시오. 외롭지 않기 위하여 이 이름을 부르시오. 원조를 받기 위하여 이 이름을 부르시오. 용서를 받기 위하여 이 이름을 부르시오. 시나이산에서 하신 하느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시오. 선으로 변하지 않으면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부르면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시시각각 여러분의 성실한 행동 중에 여러분의 심장이 뛸 때마다, 필요한 때, 유혹과 고통을 당할 때 자녀다운 사랑의 말이 입술에 떠올라서 여러분이 ‘하느님,오십시오!’ 하고 말하면, 그것은 ‘함부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에는 참말로 여러분이 하느님이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병자들은 없다. 예수께서는 벌써 어둠이 깔리는 헛간 아래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계시다.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깨끗하게 되려는 갈망으로 강 쪽으로 서둘러 가는 사람들과 밭들을 건너질러 마을로 가는 사람들을 바라다보신다.

매우 짙은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은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그를 지켜보신다. 마침내 그 사람은 그의 말 있는 데로 간다. 그는 훌륭한 흰 말을 가졌는데, 장신구들이 많이 박힌 안장 밑에는 붉은색 마의(馬衣)를 입혔다.

“여보시오, 기다리세요.”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밤이 돼 가는데, 주무실 데가 있습니까? 멀리서 오셨습니까? 혼자십니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주 멀리서 왔습니다. … 그리고 …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 마을에 가서 잠자리를 찾아내면 … 그렇잖으면 … 예리고로 … 나는 믿을 수가 없는 수행원을 그곳에 남겨두었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내 침대를 드리지요.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음식은 있습니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더 환대를 해줄 마을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여긴 무엇이든지 다 있습니다.”

“다 있겠지요. 헤로데에 대한 미움까지도.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이름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형제라는 이름이지요. 이리 오십시오. 같이 식사하십시다. 말은 헛간에 매셔도 됩니다. 내가 여기서 자면서 지켜드리지요 ….”

“아니,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내가 여기서 자겠습니다. 빵은 받겠습니다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안 받겠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거룩한 몸을 누이시는 그곳에 내 더럽혀진 몸을 누이지는 않겠습니다.”

“나를 거룩하다고 믿습니까?”

“나는 선생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과 쿠자 … 선생님의 행적 … 말씀 … 궁정에는 마치 바다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조개껍질 모양으로 선생님의 행적과 말씀에 대한 소문이 자자합니다. 나는 요한에게 내려가곤 했는데 … 얼마 후 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나보다 더 훌륭하신 어떤 분이 당신을 구제하고 향상할 거요.'.' 하고 말입니다. 그분은 선생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를 알고 왔습니다.”

그들 둘만이 헛간에 남아 있었다. 제자들은 부엌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동정을 살핀다.

오늘 세례를 주는 일을 맡았던 열성당원이 맨 마지막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같이 강에서 돌아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하시고 나서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보호처를 찾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분에게 친구로 인사를 한다.”

시몬이 몸을 굽히고, 그 사람도 역시 몸을 굽힌다.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만나넨은 말을 구유에 맨다. 예수의 눈짓으로 알아차린 요한은 풀과 물 한 통을 들고 뛰어온다. 벌써 어둡기 때문에 베드로도 기름등잔을 가지고 달려온다.

“나는 여기 아주 편하게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갚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 타고 온 사람이 말한다. 그리고 예수와 시몬 사이에서 잔가지를 때는 불로 환하게 비추어진 부엌으로 들어온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89.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부모를 공경하여라.”

 

예수께서 강가를 천천히 왔다 갔다 하신다. 강가의 갈대에 그대로 걸려 있는 음산한 겨울날의 안개를 뚫고 날이 밝아온다. 요르단강 양쪽 가에는 눈 닿는 데까지 아무도 없다. 물 위에 깔려 있는 안개, 갈대에 부딪는 물소리,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하여 어지간히 흐린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짝짓기의 계절이 지난 후에 그런 것처럼 짤막하고 슬픈 어떤 새소리가 들려온다. 계절도 그렇고 먹을 것도 없고 해서 새들은 우울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새소리들을 들으시고, 한, 작은 새가 시계와 같이 규칙적으로 머리를 북쪽으로 돌리며 “찌르륵?” 하는 소리를 내고, 그다음에는 남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찌르륵?” 하고 그 울음소리를 되풀이하며 부르는 것에 흥미를 느끼신다. 마침내 작은 새는 건너편 강가에서 들려오는“칩” 하는 소리로 대답을 얻은 모양이어서, 조그마하게 기쁜 소리를 내며 날개를 흔들어 강을 건너간다. 예수께서는 “다행이군!”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하시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신다.

“선생님, 방해가 됩니까?” 하고 요한이 풀밭 쪽에서 오며 묻는다.

“아니다. 무슨 일이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려고요.. … 이것은 선생님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릴 수 있는 소식일 것 같아서 즉시 왔습니다. 또 선생님께 조언을 청하기도 하려고요..

제가 방들을 쓸고 있는데 가리옷의 유다가 와서 ‘내가 도와주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런 일을 항상 별로 좋아하지 않고, 명령을 해도 기꺼이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저는 놀랐습니다. … 그렇지만 저는 ‘아이고! 고맙네! 그렇게 하면 더 빨리 끝내고 청소가 더 잘 될 거야.’ 하는 이 말밖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쓸기 시작했고, 그래서 저희들은 아내 끝냈습니다. 그때 유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숲에 가세.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해오는데, 그건, 좋지 않아. 우리가 가세.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지만 자네가 가르쳐 주면 …’ 그래서 저희들은 숲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다와 같이 나뭇단을 만들고 있는 중에 그 사람이 ‘요한, 자네한테 말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네.’ 하고 말했습니다.

‘말하게나’ 하고 말하면서 저는 어떤 비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자네가 제일 젊으니까 우리가 더 화합해 있어야 할 거야.. 자넨 거의 나를 무서워하다시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자네가 하는 일이 옳기는 하네. 하지만 정말이지. … 나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세. 가끔 나는 못되게 굴 필요를 느끼네. 어쩌면 내가 외아들이라 응석받이로 자랐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착하게 되고 싶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나를 호의적인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아. 예수님의 사촌들은 감정이 상해 있어. … 맞아, 나는 그들에게 대해서 결례한 것이 많아. 그 사람들의 사촌에 대해서도 그랬고. 하지만 자네는 착하고 참을성이 있으니, 나를 사랑해 주게. 내가 자네 형제인 것처럼 해주게. 못됐지만, 그래, 그래도 어떻든 간에 사랑해야 하는 형제인 것처럼 말이야. 선생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내가 썩 잘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거든 내게 말해 주게. 그리고 항상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말게. 내가 마을에 갈 때에는 자네도 같이 가세. 내가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도와주게. 어제 나는 많이 괴로웠네.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셨고, 나는 어리석은 원한으로 나 자신도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았었네. 그런데 어제는 바라보고 깨달았어. …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괴로워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말이야. …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있다고 느껴. 나는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아. 같이 가세. 가주겠지? 내가 덜 나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겠어?’

유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 제 가슴은 사내아이에게 붙잡힌 새가슴처럼 뛰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착하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제 가슴이 기쁨으로 뛰었고, 선생님 때문에도 기뻐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서워서 가슴이 몹시 뛰기도 했습니다. … 그것은 제가 유다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선생님이 유다를 받아 주신 날 말씀하신 것이 머리에 떠올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자넬 도와주겠어. 그렇지만 만일 내가 다른 명령을 받으면 순종해야 돼 …’ 하고.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면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게 명령을 주시게 하겠다 하고 말입니다.”

“이거봐라. 요한아, 너를 가게 내버려 두겠다.. 그러나 네 정신을 혼란시키는 무엇을 느끼면 내게 와서 말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요한아, 너는 나를 매우 기쁘게 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가지고 저기 온다. 요한아, 가거라.”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몸을 돌리시고 “고기 많이 잡았느냐?” 하고 물으신다.

“흠 별로요, 잔챙이뿐입니다. … 그렇지만 이걸 그럭저럭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어떤 짐승이 밧줄을 끊어서 그물을 하나 잃었다고 투덜댑니다. 저는 ‘‘그놈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아? 불쌍한 짐승을 동정하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웃으면서 말한다.

“형제인 어떤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다. 그것을 너희들은 할 줄을 모른다.”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지요.”

“유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 사람은 착한 욕망과 비뚤어질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련한 어부인 네가 말 좀 해다오. 내가 요르단강에서 배를 타고 겐네사렛 호수까지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어! 그것은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닥이 평평한 작은 배로는 성공하실 것입니다. …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수심을 재야 하고, 강가와 얕은 곳, 떠다니는 나뭇가지, 물살 따위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돛이 어떤 경우에는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 그런데 선생님은 강으로 해서 호수를 돌아가시려는 것입니까?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럿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

“네가 바로 말했다. 어떤 사람이 악습에 젖어 있으면, 선을 향해 가려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혼자서 성공할 수가 없다.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는 불쌍하게 혼자 가다가 얕은 데 걸려서 올라앉고, 꼼짝 못 하고,,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한편 수심을 재면 동시에 키를 잡거나 노를 젓거나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비난을 하느냐? 너희들은 외부 사람들은 동정하면서 너희들의 동료인 저 사람은 동정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것은 옳지 않다. 저기 요한과 그가 빵과 야채를 사려고 마을로 가는 것이 보이지? 유다는 제발 혼자 가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가 요한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청한 것은 그가 바보가 아니어서 너희들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요한을 보내셨습니까? 요한도 타락하면 어쩌시려고요?”?”

“누가? 내 아우가? 그 애가 왜 타락할 거야?”?” 하고 갈대 사이에서 그물을 도로 찾아 가지고 오는 야고보가 묻는다.

“유다가 요한과 같이 가기 때문이야.”

“언제부터?”

“오늘부터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면 ….”

“그렇다. 나는 모두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너희들은 그 사람을 너무 혼자 내버려 둔다.. 그에 대해서만 재판관이 되지는 말아라. 그도 다른 많은 사람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가장 귀염 받으며 자랐다.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예, 맞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제베대오와 살로메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 있었더라면 지금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부모는 착합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에 대해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네가 말하는 것이 옳다. 오늘 나는 바로 거기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제는 가자. 벌써 풀밭으로 해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먹을 시간도 기도를 할 시간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 그리고 사람들은 자주 더 많이 오고요.”.” 하고 베드로가 한편 감탄하고 한편 걱정이 되어서 말한다.

“너는 그것을 불평하느냐? 이것은 아직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때문에 고통을 겪으십니다. 어제는 선생님이 식사를 거르기까지 하셨고, 지난밤에는 선생님의 겉옷 말고 다른 담요는 못 덮으셨지요. 선생님의 어머님이 그걸 아시면!”

“어머니는 내게 그렇게도 많은 신자를 데려다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머님은 여러 가지 부탁을 드린 저를 나무라실 것입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을 맺는다.

필립보와 바르톨로베오가 손짓을 하면서 그들을 향하여 온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 걸음을 재촉하며 말한다. “아이고!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이것 진짜 순례자의 행렬입니다. 병자들도 있고, 우는 사람들도 있고, 멀리서 온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빵을 사자. 부자들이 기부금을 내니, 그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해는 짧고, 헛간은 벌써 야숙하는 사람들로 혼잡합니다. 밤은 습기 차고 춥습니다.”

“필립보야, 네 말이 옳다. 우리는 모두 한 방에 빽빽이 끼여 자기로 하고, 다른 방들은 저녁에 그들의 집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자.”

“알겠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볼멘소리를 한다. “얼마 안 있어 저희들은 손님들에게 옷을 갈아입을 허락을 청해야 될 판이군요. 그 사람들이 하도 우리들에게 몰려들어서 우리를 도망치게 만들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는 다른 도망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저 여자는 무슨 일이냐?” 그들이 벌써 마당에 들어왔고,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여자를 알아보셨다.

“모르겠습니다. 저 여자는 벌써 어제도 여기 있었고, 어제도 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만나넨과 말씀하실 때 선생님께 마주 오려고 하다가 그냥 갔습니다. 저 여자가 다시 온 것을 보면 마을에 머물러 있거나 이 근방에 머물러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병이 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 바랍니다. 아주머니.” 하고 예수께서 옆으로 지나가시며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여자는 조용히 대답한다. “선생님과도 같이 있기 바랍니다.”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적어도 300명은 있다. 헛간에는 불구자들과 소경들과 벙어리들이 있고, 몸을 온통 부들부들 떠는 사람도 있다. 아주 어린 소년인데, 뇌수종에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남자가 손으로 붙잡고 있다. 그 소년은 얼빠진 모습으로 그저 신음하고 침을 흘리고 머리를 젓기만 하고 있다.

“아마 저 여자의 아들인 모양이지?”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모르겠습니다. 시몬이 순례자들을 돌보고 있어서 사정을 잘 압니다.”

열성당원을 불러서 물어본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 여자와 같이 있지 않다. 여자는 혼자이다. “저 여자는 그저 울고 기도만 합니다. 조금 전에 저 여자는 저보고 ‘선생님은 마음도 고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하고 열성당원이 설명한다.

“아마 배반당한 여자인 모양이군.” 하고 베드로가 주석을 단다.

예수께서 병자들에게로 가시는 동안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데리고 세례를 주러 간다.

그 여자는 그가 있는 구석에 울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기적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그 머리를 긴 두 손으로 잡으시고 입김으로 지능을 불어넣어 주시는 얼간이의 기적은 정말 훌륭하다. 모든 사람이 그 둘레로 모여든다. 베일을 쓴 여자까지도 온다. 아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조금 가까이 다가와 울고 있는 여자 곁에 서는 것 같다. 예수께서 바보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안에 지능의 빛이 들어가 너를 하느님의 빛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 얘야, 나와 함께 ‘예수’ 하고 말해라. 그렇게 말해라. 명령이다.”

짐승처럼 신음만 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던 바보가 어렵게 “예수”라고, 아니 오히려 “제쥬”라고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보기 흉한 머리를 여전히 두 손으로 잡으시고 당신 눈길로 그를 진정시키면서 “또 한 번”” 하고 명령하신다.

“옛수.”

“또.”

“예수!” 하고 바보가 마침내 말한다. 그리고 그의 눈이 이제는 무표정하지 않고, 입에는 다른 미소가 떠오른다.

“여보시오.” 하고 예수께서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이 믿음을 가져서 당신 아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아들에게 물어보시오. 예수의 이름은 병과 격정에 대해서 기적을 행합니다.”

그 남자는 아들에게 “내가 누구냐?”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소년은 “아버지” 하고 말한다.

남자는 아들을 가슴에 꼭 껴안으며 설명한다. “얘는 날 때부터 이랬습니다. 제 아내는 얘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얘는 생각도 못하고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십시오. 제가 믿음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요빠에서 왔습니다. 선생님께 무엇을 해 드려야 하겠습니까?”

“착하게 사는 것이오. 그리고 당신 아들도 당신과 같이.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하고요.. 아이고! 곧 가서 네 외할머니께 말씀드리자. 얘 외할머니가 제게 여기로 올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장모님이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은 기쁘게 떠나간다.. 지난날의 불구에서 남은 흔적이라고는 소년의 큰 머리통밖에 없다. 표정과 말은 정상적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선생님의 의지로 나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의 이름의 힘으로 나았습니까?” 하고 여러 사람이 묻는다.

“아들에게 항상 친절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나았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도 또한 구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예수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건강에는 영혼의 건강과 육체의 건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병과 죄에서 회복되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것은 영신적이거나 육체적이거나 어떤 병에도 사탄의 날카로운 발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육체의 고통 때문에 반항과 실망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육체의 병을 만들어내고, 영벌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정신적 또는 영신적 병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생각으로는 인류의 모든 불행에 벨제붓이 관계가 없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벨제붓이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서 질병과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고, 좌익과 타락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도 그를 통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불행으로 괴롭힘 당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게 되면, 그도 역시 사탄을 통해서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시오. 어떤 사람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도 사탄의 도구라고 생각하시오.”

“그렇지만 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병은 질서 안에 있는 무질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사람을 건강하고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 사탄이 가져온 무질서는 육체의 병약과 거기서 나오는 결과, 즉 죽음이나 치명적인 유전들을 끌고 왔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원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것만을 물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흠은 점점 더 퍼져서 사람의 세 가지 분야에 미칩니다. 점점 더 타락하고 그로 인해서 약해지고 병드는 육체, 점점 더 교만해지고 그로 인하여 더 타락하는 마음, 점점 더 우상숭배적인 것이 되는 정신 말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저 정신장애자에게 한 것과 같이 사탄을 도망치게 하는 이름을 가르쳐야 하고, 그 이름을 정신과 마음에 새기고, 내적인 자아(自我)에 소유권을 나타내는 도장처럼 찍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차지하십니까?” 선생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토록 믿어야 합니까?”

“그렇기만 하다면!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을 차지한다면 여러분은 벌써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권리일 것입니다. 나는 구세주이고, 내가 구해준 사람들을 차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요한은 … -저는 요한(세례자)을 따르던 사람입니다.- 요한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에브라임과 예리고 근처에서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는 분에게로 가거라. 그분은 맺고 푸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데 나는 다만 네 영혼이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민첩하게 만들기 위하여 회개하여라 하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기적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전에는 목발을 짚고 걸었었는데, 지금은 목발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세례자는 사람들이 그를 떠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하고 어떤 사람이 묻는다.

그러니까 먼저 말한 사람이 대답한다. “괴로워하다니요? 요한은 모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시오! 가시오! 나는 지는 별이고, 그분은 떠올라서 영원한 광채로 빛날 별이오. 어두움 속에서 남아 있지 않으려면 내 희미한 빛이 꺼지기 전에 그분께로 가시오.’ 하고 말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기 때문에 원한을 잔뜩 품고 있습니다. 그걸 아십니까?”

“압니다.” 하고 예수께서는 짤막하게 대답하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나 또는 적어도 그들의 행동 방식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꾸를 용납하지 않는 “비난하지 마시오.” 하시는 말씀으로 토론을 종결시키신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가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같이 돌아온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같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아침부터 이곳에 왔으니, 내가 아침나절에 하느님께 대한 말을 여러분에게 하고, 여러분은 오정에 떠나가는 것이 편리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또 저녁나절에 집에 돌아갈 수 없는 나그네들은 머무르게 할 생각도 했습니다. 나도 나그네와, 어떤 친구가 동정해서 준 최소한의 필수품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요한은 나보다도 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건강한 사람들이나 병이 별로 중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불구나, 소경, 벙어리 같은 사람들이 가지, 내게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심한 열병환자들은 안 갑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가는데, 내게는 육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도 옵니다. 율법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내가 형제들의 육체적인 필요에 대해서라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면 어떻게 내 사랑을 보여주겠는가 하고.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들이 내게 주는 것을 그들에게 주겠다. 부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빵을 구걸하겠다. 내 침대를 포기하고, 피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맞아들이겠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위로 증명됩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은 카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에 반항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형제입니다. 그러나 가정 안?? 같은 핏줄로 결합하고, 피와 살과 더불어 아담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우애로도 결합해 있는 그곳?? 에도 증오와 불화가 있음을 나도 보고 여러분도 봅니다. 형제와 형제가 대립하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항거하고, 부모가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항상 나쁜 형제가 되지 않고, 언젠가 불륜(不倫)의 남편이나 아내가 되지 않기 위하여는 어릴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가장 큰 조직체인 가정에 대한 존중을 배워야 합니다. 한 도시나, 한 지방, 한 나라, 한 대륙에 비하면 가장 작습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조국이니 나라니 하는 개념이 아직 없을 때에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이니, 그때에도 벌써 민족의 근원이 되고, 남편은 왕이고 아내는 왕후이고 자녀들은 신민(臣民)이 되는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살이 있고 활발한 가정의 핵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 그 나라가 오래갈 수 있습니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한 가정도 순종과 존경과 경제와 착한 뜻과 일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없이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십계명은 말합니다.

부모를 어떻게 공경합니까? 어떻게 공경해야 합니까?

공경은 참다운 복종과 결함 없는 사랑과 신뢰하는 존경과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은 신뢰를 배제하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나이 많은 사람들을 마치 우리가 종이나 아랫사람이 되는 것같이 대우하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까닭은 하느님 다음으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의 모든 물질적 필수품을 마련해 주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존재의 첫 번째 선생이고 첫번째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주거나 빵 한 조각을 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복받으세요’ ‘복 받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배불리 먹이기 위하여, 또 우리의 옷감을 짜주고 옷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일을 하느라고 건강을 해치는 분들에게, 우리의 잠을 지켜 주느라고 일어나고, 우리를 보살피기 위하여 휴식을 취하지 않고, 우리가 가장 고통스럽게 피로하였을 때 그분들의 품으로 우리의 침대를 만들어 주는 그분들에게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복받으세요’ ‘복 받으세요’라는 말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는 우리의 선생입니다. 우리는 선생을 두려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벌써 알고, 또 먹는 것과 기본적인 말을 하는 것을 벌써 알 때에 우리를 떠맡고, 또 우리가 인생의 가장 어려운 교훈을 받아야 할 때에는, 즉 ‘예절’을 배워야 할 때에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에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키고 인생살이의 준비도 시킵니다.

부모는 우리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어떤 친구가 아버지보다 더 친할 수 있으며, 어떤 친구가 어머니보다 더 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버지 어머니를 무서워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배반하셨다. 어머니가 나를 배반하셨다’고 여러분이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저 어리석은 젊은이와 그보다도 더 어리석은 처녀 외부 사람들을 친구를 삼고,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냉담하며, 죄가 된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분별없는 관계로 그들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망치고, 이러한 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의 원인, 녹은 납 방울과 같이 부모의 마음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 눈물들이 먼지와 망각 속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눈물을 거두시고 세십니다. 사람들이 짓밟는 아버지의 고통은 주께서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하는 고통은 비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의 비통한 사랑으로 죄지은 아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애원하더라도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으면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나는 ‘또 하늘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며’이라는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부모에게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벌은 너무 가벼울 것입니다! 내 세는 부질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는 이 세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서 상을 받거나 벌을 받거나 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은 하느님께 모욕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사랑의 계명을 주셨고, 따라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해서 육체적 생명 이상의 것, 즉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참 생명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러 가게 되며, 그의 영혼이 주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에 그는 벌써 죽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다음으로는 가장 거룩한 사랑을 해치기 때문에 벌써 자기 자신 안에 죄악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아들은 성실치 못한 남편이 되기 때문에 그는 자기 안에 장래의 간부의 싹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아들에게는 장래의 도둑, 끔찍하고 포악한 암살자, 몰인정한 고리대금업자, 방탕한 유혹자, 파렴치한 향락자, 조국과 친구와 자식과 아내와 모든 사람을 배반하는 혐오감을 주는 인간이 나오기 때문에 그는 자기 안에 사회적 퇴폐의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어머니의 사랑을 서슴지 않고 배반한 사람, 백발이 된 아버지를 무시한 사람에 대하여 존경심과 신뢰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직 더 들으시오. 자녀들의 의무에는 그와 비슷한 부모의 의무가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자식들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죄지은 부모도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나쁜 짓을 본받지 못하도록 행동하시오. 여러분은 정의와 자비로 주어진 사랑으로 사랑받게 되도록 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자비 자체이십니다. 하느님 바로 뒤에 오는 부모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의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시오. 자녀들에게 형 화가 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시오. 그들의 첫째 사랑이 되시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얻기를 바라는 첫째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어린 딸들이 바라볼 때에 그들이 남편감으로 꿈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특히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들의 장래의 아내나 남편을 슬기롭게 고르게 하고, 그들의 장래의 아내나 남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있는 것, 즉 참된 덕행이 있기를 바라게 하시오.

만일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고찰해야 한다면 하루 낮,, 하룻밤으로도 충분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줄이겠습니다. 나머지는 영원하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씨를 뿌리고 나서는 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 안에서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이삭을 낼 것입니다.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 바랍니다.”

떠나는 사람들은 즉시 출발한다. 그리고 머무를 사람들은 셋째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져온 빵이나 제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주는 빵을 먹는다. 투박한 틀들 위에 널빤지와 짚을 깔아서 순례자들이 거기서 잘 수 있다.

베일을 쓴 여자는 빨리 간다. 전에도 울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던 여인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떠나기로 결정한다.

예수께서는 식사를 드시려고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그러나 겨우 음식을 들기 시작하셨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문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안드레아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간다. 안드레아는 말을 하더니 들어온다. “선생님, 여인이, 울고 있던 그 여인이 선생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떠나야 하는 데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선생님이 어떻게 언제 식사를 하시겠어.” 하고 베드로가 외친다.

“나중에 오라고 말해야 할걸 그랬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조용히 해라. 나는 나중에 먹겠다. 너희들은 식사를 계속하여라.”

예수께서 나오시다. 여인은 거기밖에 있다.

“선생님 … 한 말씀만은 …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 아이고! 집 뒤로 오십시오. 제 고통을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여인의 말대로 하신다. 집 뒤로 가서야 비로소 예수께서 물으신다. “내게서 무엇을 바랍니까?”

“선생님 … 저는 처음에 선생님이 저희들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 그다음에는 선생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육체의 병에나 정신의 병에나 모두 사탄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 제게는 마음이 병든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애가 선생님이 부모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들었으면 했습니다! 이것에 제 고민입니다. 그 애는 동무들하고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 꼭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 도둑이 되었습니다. … 지금 당장은 집안에서만 그렇습니다만 … 그애는 싸움을 좋아합니다. … 남을 압도하려 드니까요. … 그애는 젊기 때문에 음탕 과 연회로 돈을 마구 씁니다. 제 남편은 그 애를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 저는 어미입니다. … 그래서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민하는지 아시겠지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 아이고, 선생님께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저는 난폭한 아들을 두었습니다!’하고 말하기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인은 예수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애달프게 운다.

“아들의 병이 나을 것이니, 이제는 울지 마시오.”

“그애가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 애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아이고! 그애는 영영 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들 대신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들을 위해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합니까?”

“그걸 제게 물어보시다니요. 저는 선생님께 그 애를 위해 청하려고 상부(上部)(上部) 베레아에서 왔습니다 ….”

“자 그러면 가 보시오!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아들이 뉘우쳐서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요?”

“어떻게요? 그럼 당신은 하느님께서 내가 청하는 것을 하실 수 없다고 믿습니까? 당신 아들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아버지, 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마음속에 그분의 부르는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실 것입니다. 아주머니, 가 보시오. 나는 언젠가 당신의 마을이 있는 지방을 지날 터인데, 당신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를 데리고 내 마중을 나올 것입니다. 당신 아들이 당신 무릎에 엎디어 울면서 용서를 청하고, 그가 이겨서 새로운 영혼을 가지고 나온 알 수 없는 싸움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났느냐고 묻거든 이렇게 말해 주시오. ‘네가 예수에 의해서 두 번째로 선에 태어났다’고.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시오. 당신이 내게로 온 것은 당신이 알고 있다는 증거요. 아들과 더불어 구원하는 힘을 가지기 위하여 아들이 나를 알고 또 나를 생각하게 만드시오. 잘 가시오. 믿음을 가진 어머니와 돌아오는 아들과 기뻐하는 아버지와 다시 모인 집안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 보시오.”

여인이 마을 쪽으로 향해 간다.

 

-그리고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90. “고운 내에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육체로나 동의로나 음란한 일을 하지 말아라.”

 

예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아, 두 가지 피로를 참을성 있게 견디어라. 지금은 고통의 때이다. 너는 마지막 시기에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알지?! 네가 그것을 보았지, 길을 걸을 때 나는 요한과 베드로와 시몬에게 몸을 기대고, 유다에게까지도 몸을 기댔다. … 그렇다. 그리고 옷자락만 스쳐도 기적이 나오는 나였지만, 이 마음은 바꿀 수가 없었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아, 고집스러우리만큼 무감각한 저 사람들에게 이미 내 마지막 시기에 들려준 말을 다시 하기 위하여 네게 몸을 의지하게 해 다오.. 그 사람들에게는 내 처형에 대한 예고가 스며들지 않고 겉에서 흘러내리고 말았다. 또 네 선생이 ‘고운 내’의 보잘것없는 들판에서 전도하던 때의 이야기도 하게 해 다오.. 네게 두 번 축복해 주마. 네 피로와 네 동정 때문에. 나는 네 노력을 세고, 네 눈물을 모은다.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위한 노력에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느라고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받는 상급이 주어질 것이다. 내 마지막 주간의 고통에 대하여 네가 흘리는 눈물에 대하여는 예수의 입맞춤이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다. 써라. 그리고 축복을 받아라.”

 

예수께서는 방들 중의 하나, 즉 끝에 있는 방에 연단 모양으로 탁자들을 쌓아 놓은 무더기 위에 서 계시다. 예수께서는 방에 있는 사람들과 헛간과 비가 와서 물이 흥건히 괸 마당에까지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리라고 매우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물이 그 위로 미끄러져 내리는 가공하지 않은 우중충한 모직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수도자들 같다. 방 안에는 제일 약한 사람들이 있고, 헛간에는 여자들이 있고, 마당에는 튼튼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비를 맞으며 있다.

베드로는 맨발에 짧은 옷만 입고, 머리에 얹은 천으로 비를 막는다. 물속으로 철벅거리고 다녀야 하고 뜻하지 않은 소나기를 맞아야 해도 그는 명랑성을 잃지 않는다. 그와 함께 요한과 안드레아와 야고보도 있다. 그들은 병자들을 조심스럽게 다른 방으로 옮기고, 소경들을 인도하고, 불구자들을 부축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자리잡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시고, 다만 네 제자가 물동이에서 꺼낸 해면처럼 비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애처롭게 생각하신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두요! 저희는 송진을 바른 나무와 같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두 번째 세례를 받고, 세례자는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하고 베드로가 유감스럽게 생각하시는 예수께 대답한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자리를 잡았고, 베드로는 마른 옷을 입으러 가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세 사람과 같이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다시 선생님께로 돌아왔을 때 그는 베일을 쓴 여자가 헛간 구석 쪽으로 향하여 오는 것을 본다. 베드로는 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면서, 또 굵은 빗방울에 맞아서 무릎까지 튀어 오르는 물웅덩이를 비스듬히 건너질러 가야 하리라는 것을 상관하지도 않고 그 여자에게로 갈 생각밖에는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여자에게로 가서 겉옷은 움직이지 않은 채 팔꿈치를 잡고 더 위쪽 비를 피할 수 있는 벽 근처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보초 모양으로 그 옆에 뻣뻣하게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예수께서 그것을 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환한 미소를 감추시느라고 머리를 숙이고 미소 지으셨다.. 이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가르침을 들으려고 규칙적으로 온 여러분은 내가 십계명을 차례대로 말하지 않고, 어떤 것들은 건너 뛴다고 말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듣습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있는 고통과 상처를 보는데, 거기에 여러분의 정신을 집중시키려는 것입니다. 나는 의사입니다. 의사는 우선 병이 제일 중한 사람들,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고, 그다음에는 병이 덜 중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란한 죄를 짓지 마시오.’ 하고.

어떤 사람의 얼굴에서 ‘음란한’ 사람을 알아보려고 휘휘 둘러보지 마시오. 서로서로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시오.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누가 여러분의 행실을 추측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러면 이웃 사람의 어리둥절한 눈에서 붉어져서 아래로 숙여진 그의 이마에서 무엇을 추측하려고 하지 마시오.

그리고 또 … 오! 특히 남자 여러분, 말해 보시오. 여러분 중에서 관능적인 만족이라는 저 재와 오물로 만든 빵을 도무지 맛보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을 한 시간 동안 창녀의 품으로 끌고 가는 음란밖에 음란이 없습니까? 아내와 더불어 결혼을 오용(誤用)하는 것은 음란이 아닙니까? 결혼의 오용이라고 말한 것은 그 결과는 피하면서 서로 관능의 만족만을 찾는 악습을 합법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이란 생식을 뜻하는 것이고, 행위는 수정을 뜻하는 것이고 또 수정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부부의 잠자리를 가지고 창가(娼家)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부부의 잠자리가 정욕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또 임신에 의해서 신성하게 되지 않으면 창가가 되는 것입니다. 땅은 씨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땅은 씨를 받아서 풀을 만들어냅니다. 씨는 땅에 뿌려진 다음에 흙을 떠나지 않고, 즉시 뿌리를 내려 흙에 달라붙어 자라고 이삭을 만들어냅니다. 초목은 땅과 씨의 결합에서 생겨납니다. 남자는 씨이고, 여자는 땅이고, 이삭은 아이입니다. 이삭을 만들기를 거부하고 그의 기운을 옳지 못하게 잃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부부의 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매음이지만, 다른 매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둘이 한 몸이 되어 자식을 통하여 번식하여라’고 한 계명에 불복종함으로써 더 중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고의로 임신을 하지 않아서,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만 법률상의 정숙한 아내인 여자 여러분, 여러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음부같이 될 수 있고, 또 여러분의 남편 하고만 있으면서도 음란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임신은 원하지 않고 쾌락만 원하며, 그것도 너무 자주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쾌락이란 것이 독이 있는 어떤 입에 오건간에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독약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쾌락은 불처럼 타오르는데, 배불리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아궁이 밖으로 나와서 점점 더 게걸스럽게 집어삼킵니다.. 쾌락은 혀에 재맛과 같은 쓰라린 맛을 남깁니다. 쾌락은 불쾌감과 메스꺼움과 자기 자신과 쾌락을 같이 나눈 상대에 대한 멸시 감을 줍니다. 그것은 양심이 깨어나면, 흥분이 가라앉으면 양심은 깨어나는 법입니다. 짐승 이하로 품위를 떨어뜨린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밖에 생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죄를 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간음죄는 대부분 남자에게서 옵니다. 또 나는 하나의 악몽과 같고 레위기가 다음과 같은 말로 단죄(斷罪)한 저 상상도 할 수 없는 결합에 대하여도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남자야, 남자가 여자이기나 한 것처럼 그와 결합하지 말아라’ 또 ‘동물과 결합하여 그것과 더불어 너를 더럽히지 말아라, 이것은 여자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이 결합들이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로 임신이 안되게 하면 거룩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결혼에 대한 부부들의 의무를 지적하였으니, 이제는 남녀 간에 쌍방의 악의와 돈이나 선물로 보수를 주고받고 행해지는 본 의미의 간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그 안에 제단에 들어 있는 훌륭한 성전입니다. 제단 위에는 하느님이 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타락이 있는 곳에는 안 계십니다.. 그러므로 음란한 사람의 육체는 거룩함을 잃고 하느님이 안 계신 제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흙탕과 자기가 토한 것에 뒹구는 취한 사람과 같이 사람은 짐승과 같은 음란으로 자기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벌레와 가장 더러운 짐승보다도 더 못하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밀이나 가축을 파는 것처럼 자기의 육체를 팔 정도로 타락한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서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말해 보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손에 쥐고, 그것을 살펴보고, 그것에 질문을 하고, 그 말을 듣고, 그 상처와 그것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고통을 보고 나서, 말을 하고 내게 대답을 하시오. 깨끗하게 태어난 마음의 저 고통을 당해 마땅할 만큼 그 과일이 달콤하던가요? 깨끗하게 태어났는데 여러분이 더러운 육체 안에서 살도록 강요하고, 음탕에 생명과 열을 주기 위하여 뛰도록 강요하고 악습으로 소모한 마음의 그 고통을 말입니다.

이거 보시오. 스스로 집에서 도망쳐 나왔거나 썩은 실과가 그 부패로 다른 아이들을 타락시키지 못하도록 쫓겨난 탕녀들, 당신들은 ‘엄마’하고 부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당신들의 어머니 생각을 하고 몰래 흐느껴 울지 않을 정도로 타락했습니까? 어쩌면 ‘나는 내게 창피를 주는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고통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말입니다.

아니, 백발로 인하여 존경받을 만하게 된 어떤 노인을 만날 때, 당신들의 아버지의 백발에 진흙을 한 움큼 쥐어서 던지듯이 수치를 던지고, 수치와 더불어 아버지의 고향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던졌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아니, 어떤 아내의 행복이나 어떤 처녀의 순진함을 보고, 또 당신들은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했고, 그것을 영영 다시 얻지 못하게 되었구나’ 하고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당신들은 후회가 창자를 쥐어짜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습니까?

아니, 당신들은 몹시 음탕하거나 몹시 업신여기는 어떤 남자의 눈길을 만날 때 당신들의 얼굴을 흉하게 만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니, 아기의 입맞춤을 갈망하면서도, 태어나기로 되어 있던 생명들을 당신들이 죽여서, 귀찮은 짐과 쓸데없는 불편처럼 버리고, 그것을 배었던 나무에서 떼어내어 두엄더미에 내던져서, 이제는 그 어린 생명들이 ‘살인자!’ 하고 부르짖기 때문에 감히 ‘뽀뽀해라’ 하는 말을 못 할 때에 당신들의 비참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습니까?

아니, 특히 당신들을 창조하시고 다음과 같은 것을 물으시려고 당신들을 기다리시는 최고 심판자를 생각할 때에 떨리지 않습니까? ‘너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네게 생명을 준 것이 그 때문이었느냐? 기생충과 타락의 소굴인 네가 어떻게 감히 내 앞에 나타나느냐? 너는 네게 있어서 신이었던 모든 것, 즉 향락을 가졌었다. 영원한 저주의 곳으로 가라.’ 하고 말입니다.

누가 웁니까? 아무도 울지 않습니까? 아무도 울지 않는다고요? 그렇지만 내 영혼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다른 어떤 영혼을 만나러 갑니다. 내 영혼이 왜 그리로 갑니까? 창녀를 맹렬히 비난하려고 갑니까? 아닙니다. 그의 영혼이 불쌍하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더러운 땀을 흘리는 더럽혀진 그의 육체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이 영혼을 위하여 사람이 되었고, 그의 구속자가 되고, 또 그의 자매들인 많은 영혼들의 구속자가 되려고 하늘을 떠났습니다! 왜 길 잃은 이 양을 거두어서 양의 우리로 도로 데려오고, 깨끗하게 해서 양 떼와 합치게 하고 목초를 주고, 오직 제 사랑만이 그럴 수 있는 것 같은 완전한 사랑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증오에 지나지 않는데, 그 영혼이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랑, 하도 관대하고 완전하고 다정스러워서 지난날을 한탄하지 않거나 또는 다음과 같은 말만 하면서 한탄하게 되는 그런 사랑을 말입니다. ‘영원히 아름다우신 하느님, 저는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너무나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누가 제게 되돌려주겠습니까? 제가 항상 깨끗했더라면 맛보았을 그것을 얼마 남지 않은 제 여생에 어떻게 맛볼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러나 세상의 온갖 음란에 짓밟힌 영혼아, 울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너는 혐오감을 주는 넝마 조각이다. 그러나 한 송이 꽃이 될 수 있다. 너는두엄더미이다. 그러나 꽃이 만발한 화단이 될 수 있다. 너는 더러운 짐승이다. 그러나 천사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너는 천사였다. 너는 꽃이 만발한 풀밭에서 장미꽃 가운데에서 장미꽃과 같이 신선한 장미꽃으로서 네 동정의 향기를 풍기며 춤추었다. 너는 차분하게 어린아이 노래를 부르다가 어머니 아버지에게로 뛰어가며 ‘나는 엄마 아빠가 좋아’ 하고 말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곁에 따라다니는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는 네 영혼의 하늘빛을 띤 하얀빛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왜? 왜 네 죄 없는 작은 영혼의 날개를 뜯어냈느냐? 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짓밟고 믿을 수 없는 다른 마음들에게로 달려갔느냐? 왜 네 깨끗한 목소리를 낮추어 거짓 사랑의 거짓된 말들을 하게 했느냐? 왜 너 자신을 모독함으로써 장미 꽃대를 꺾어버렸느냐? 하느님의 딸아, 뉘우쳐라. 뉘우침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깨끗해지는 것이고 높은 곳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사람은 너를 용서할 수 없느냐? 네 아버지까지도 너를 용서할 수 없겠느냐?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실 수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인자가 인간의 착함에 비할 수가 없고, 하느님의 자비는 사람의 비참보다 무한히 더 크기 때문이다. 정숙한 생활로 네 영혼을 존경받을 수 있게 만들어서 너 자신을 존중하여라. 다시는 네 영혼에 대하여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느님 곁에서 새 이름을 만들어 가져라.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너는 악습이다. 그러니 정숙한 사람이 되고, 희생이 되고, 네 뉘우침의 순교자가 되어라. 너는 네 육체를 즐겁게 하느라고 네 마음을 몹시 괴롭힐 줄을 알았다. 이제는 네 마음에 영원한 평화를 주기 위하여 네 육체를 몹시 괴롭힐 줄을 알아라.

자, 다들 가시오. 각기 여러분의 짐과 여러분의 생각을 가지고 가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뉘우치는 사람은 아무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알 수 있는 빛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보시오.”

많은 사람이 마을 쪽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방으로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병자들에게로 가셔서 고쳐 주신다.

한 떼의 사람이 한 구석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라져서 쉴 새 없이 요란한 손짓을 하고 흥분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비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옹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두에게 좀 더 분별 있게 판단하라고 충고한다. 마침내 다른 두 패에 비하여 수효가 적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가장 악착스러운 사람들은 중간 길을 택한다. 그들은 이제는 쓸데없게 된 기적 받은 세 사람의 들것을 시몬과 같이 옮기고 있는 베드로에게로 가서, 이제는 순례자들의 여관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습격한다. 그들은 “여보시오. 갈릴래아 양반” 하고 말한다.

베드로는 몸을 돌리고 이상한 짐승들을 보듯이 그들을 바라본다. 그는 말은 하지 않지만 얼굴은 보통이 아니다. 시몬은 흥분해서 떠드는 그 다섯 사람을 한번 흘낏 바라보고는 모두 그 자리에 버려둔 채 나간다.

다섯 사람 중 하나가 말을 다시 꺼낸다. “나는 율법학자 사무엘이오. 이 사람은 다른 율법학자 사독이고, 저 사람은 유명하고 권세 있는 유다 사람 엘르아잘이고, 또 한 사람은 장로 갈라셰보나이고, 끝으로 저 사람은 나훔이오. 알겠소? 나훔이오!” 그 어조는 아주 과장 조이다..

베드로는 이름을 말할 때마다 가볍게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에 이르러서는 머리를 반쯤밖에 숙이지 않고 아주 무관심하게 이렇게 말한다. “난 도무지 모르겠소.… 도무지 본 일이 없어서. 그리고 또 …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소.”

“시골뜨기 어부! 이 분은 안나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아시오.”

“나는 안나라는 사람을 모르오. 아니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많이 알고 있소. 바로 가파르나움에도 진짜 버섯 재배하는 안나가 있소.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떤 안나의 신임을 받는 사람인지 모르겠소.”

“이 사람? 당신 나보고 ‘이 사람’이라고 하는 거요?”

“아니 그럼 뭐라고 말하라는 거요? 나귀나 새라고 하라는 거요. 난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사람’이라고 한다고 가르쳐 주셨소. 그런데 내가 착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이지요.”

그 사람은 이 말이 그를 산 채로 껍질을 벗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한다. 다른 사람, 즉 처음에 말한 사람이 설명한다. “아니 안나는 가이파의 장인이란 말이오 ….”

“아! … 알았소! 그래서요?”

“그러니까 우리는 분개하고 있단 말이오!”

“뭣 때문에요? 날씨 때문에요? 나도 그렇소. 내가 세 번째나 옷을 갈아입었소.. 그래서 이제는 마른 옷이 하나도 없소.”

“여보시오, 바보인 체하지 마시오.”

“바보요? 이건 진실이오. 만일 당신들이 날씨 때문에 불만이 아니라면, 무엇이 불만이요? 로마인들에 대해서요?”

“당신 선생에 대해서요! 거짓 예언자에 대해서.”

“이보시오. 사무엘 양반! 내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난 호수와 같단 말이오. 잔잔하다가도 눈 깜빡할 사이에 폭풍우가 인단 말이오. 말조심하시오.”

그러는 동안 제베대오와 알패오의 아들들이 들어왔고, 그들과 같이 가리옷 사람과 시몬도 들어왔다. 그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는 베드로에게 가까이 간다.

“당신의 그 서민의 손으로 시온의 양반들을 건드리지 마시오!”

“아이고! 참 훌륭한 양반들이로군요! 그러는 당신들은 선생님을 건드리지 마시오. 그렇잖으면 즉시 우물로 날아가서 정말 안과 밖을 깨끗하게 씻게 될 테니까요.”

“나는 성전의 학자들에게 이 집은 개인 소유라는 것을 지적하겠소.” 하고 시몬이 침착하게 말한다. 그리고 가리옷 사람은 한술 더 뜬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항상 남의 집을 존중하셨고, 모든 집 중에서 첫째인 주님의 집을 더할 수 없이 존중하셨다는 걸 보증하오. 그러니까 선생님의 집도 똑같이 존중해야 하오.”

“엉큼한 벌레 같은 사람, 닥치시오.”

“엉큼하다니, 무엇이 엉큼하다는 거요? 당신들이 내게 혐오감을 일으켰소. 그래서 혐오감이 없는 곳으로 온 거요.. 당신들과 같이 있은 것으로 인해서 내가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요컨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뭐요?”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무뚝뚝하게 묻는다.

“당신은 또 누구요?”

“나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요. 알패오의 아버지는 야곱, 야곱의 아버지는 마탄, 마탄의 아버지는 엘르아잘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의 첫 조상인 다윗왕에 이르기까지 내 모든 조상의 이름을 대겠소. 그리고 나는 메시아의 사촌이오. 만일 당신 같은 귀하신 몸이 가믈리엘과 가이파보다도 하느님을 더 잘 아는 성실한 이스라엘 사람과 말하는 것이 불쾌하다면, 왕족인 조상과 유다 가문에 대해서 나하고 말 좀 합시다. 자, 말하시오.”

“당신의 친척이고 선생인 사람은 창녀들이 따라다니게 하오. 베일을 쓴 여자도 그중 한 사람이오. 나는 그 여자가 금을 팔 때에 보았소. 그리고 누군지 알아보았소. 그 여자는 쉬암마이의 정부인데 지금은 그 남자를 떠났소. 이것이 당신 친척에게 불명예가 된단 말이오.”

“누구의 정부요? 율법박사 쉬암마이의 정부요? 그럼 그 여자는 다 늙은 할망구겠구려. 그러니까 위험이 없소 …” 하고 가리옷 사람이 희롱조로 말한다.

“미치광이, 입닥쳐! 헤로데의 총신(寵臣) 엘키의 쉬암마이 말이요.”

“저런! 저런! 그러니까 이제는 그 여자가 총신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군요. 그 여자가 그의 정부였단 말이지요. 당신이 아니고. 그럼 왜 당신이 걱정을 하는 거요?” 하고 가리옷 사람이 아주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여보시오. 당신은 밀정 노릇을 해서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하고 알패오의 유다가 묻는다. “죄를 짓기 위해 넘어지는 사람의 명예가 손상되지, 죄인을 다시 일으키려고 애쓰는 사람의 명예가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내 선생님이고 형님인 분이 말을 해서 그 목소리가 시온의 탕아들 독설로 더럽혀진 귀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해서 그분에게 무슨 불명예가 온단 말이요?”

"그의 목소리? 아! 하! 당신의 선생이고 사촌인 사람은 나이가 서른 살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선자일 뿐이오. 그런데 당신은, 당신들 모두는 밤에는 귀머거리처럼 자고 있소 ….”

“이 뻔뻔스러운 뱀 같은 놈, 썩 나가라. 그렇잖으면 목을 조를 테다.” 하고 베드로가 소리를 지르니 야고보와 요한이 같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는 동안 시몬은 그저 이렇게만 말한다. “염치도 없구먼! 당신의 위선이 너무 커서 튀어나오고 넘쳐흐르오. 그리고 당신은 괄태충(括胎蟲)과 같이 깨끗한 꽃에 점액을 내뿜고 있소. 썩 나가시오. 그리고 사람이 되시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당신이 점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오. 사무엘, 나는 당신을 알아보겠소.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소. 하느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실 것이오. 그러나 내 앞에서 썩 나가시오.”

그러나 가리옷 사람이 알패오의 야고보와 같이 괄괄한 베드로를 말리고 있는 동안 유다 타대오가 개입한다. 그의 거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의 사촌과 더 비슷하고, 그의 눈길에는 똑같은 파란 불꽃이 서려 있어 그의 태도는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그는 천둥 같은 소리로 외친다. “무죄한 사람의 명예를 손상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명예를 손상하오. 눈과 혀를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행동을 하라고 만드셨소. 그런데 중상하는 사람은 눈과 혀에 나쁜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그것들의 신성을 더럽히고 품위를 떨어뜨리오. 나는 당신의 백발에 대한 나쁜 행위로 나 자신을 더럽히지는 않겠소. 그러나 악인들은 청렴한 사람을 미워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낸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의 악의를 쏟아놓는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어두움 속에서 사는 사람은 꽃핀 나뭇가지를 뱀과 바꾸오. 그러나 빛 속에 사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누가 그것을 공경하면 정의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들을 옹호하오. 우리는 빛 속에서 살고 있소. 우리는 빛의 아들들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사람들이고, 우리의 지도자는 여자도 죄도 모르는 성인 이시오.. 우리는 선생님을 따르고 그분의 적과 대항해서 그분을 옹호하오. 그러나 우리는 이 적들에 대하여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증오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오. 노인장, 원숙한 경지에 이른 젊은이의 충고를 들으시오. 이 젊은이는 영원한 지혜가 경솔한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시고, 선행에 있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소. 가서 당신을 보낸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신성이 모독된 모리아산의 집에 계시지 않고, 이 초라한 집에서 당신 영광 중에 게신다고 보고하시오. 잘 가시오.”

그 다섯 사람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하고 떠나간다.

제자들은 서로 의논한다. 아직 병이 나은 병자들과 같이 계시는 예수께 이 말씀을 드려야 하는가? 말씀을 드리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예수께로 가서 부르고 그 말씀을 드린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미소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너희들이 옹호해 주어서 고맙다. 그러나 어쩌겠느냐? 누구나 제가 가진 것을 주는 법이니.”

“그렇지만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보라는 눈이라, 많은 사람이 봅니다. 그 여자는 항상 개처럼 문 옆에 있습니다. 그 여자는 선생님께 해를 끼칩니다.” 하고 여러 제자가 말한다.

“그 여자를 그냥 내버려 두어라. 내 머리를 칠 돌은 그 여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구원을 받으면 … 내 기쁨은 이 모든 비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이 온화한 대답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

우주보다 더 넓은 나의 사랑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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