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준비 ( 6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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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 복음준비 ( 61~66 )

by mrsoojak 2021. 12. 18.

"나는 성장(成長)의 법칙이 면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1. "이 집에서는 질서가 존중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교훈이 네가 보는 것들을 통하여 주어진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 특히 특별히 비통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가정들에게 추천하는 겸손과 체념과 완전한 화합의 교훈이다.

너는 초라한 집을 보았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외국에 있는 초라한 집이라는 것이다.

아주 조그만 고생도 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편한 생활, 순탄하고 행복한 생활을 갈망하는 '그저 쓸 만한' 신자들이 많다. 그것은 그들이 기도와 영성체를 영혼들의 절실한 필요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필요를 위하여만 하기 때문이다(사실, 기도할 때에 이기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참 하느님인 나를 그들의 아들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난하다는 것을 느끼는 조그마한 만족조차 누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고향(나자렛)에서, 또 그들의 조국(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이 알려져 있고, 적어도 '그들의' 작은 집 한 채는 있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에 주택 문제까지 겹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조국에서는 몹시 가난해도 자그마한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일거리를 얻고 생활문제에 대비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나 때문에 위험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두 사람으로서, 풍토도 다르고, 갈릴래아의 기분 좋은 들판과 비교하면 몹시 쓸쓸한 나라에서, 그들을 알지 못하고 말과 풍속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피난민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흔히들 가지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작은 집에 있는 저 편안하고 애지중지하는 가구들과 저 보잘것없으면서도 필요한 많은 물건을 가지지 못했다. 그것들이 거기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고 보니, 마치 부잣집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치품과 같이 매우 아름다운 것 같이 생각된다. 그들은 고향과 집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그들의 생각은 그곳에 남겨두고 온 저 보잘것없는 물건들, 이제는 아마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을 채소밭으로, 포도나무로, 무화과나무와 다른 유익한 초목들에게로 달려간다. 그들은 매일 먹을 양식과 옷과 불, 그리고 자기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줄 수 없는 어린 나를 위하여 마련해야 할 필요에 처해 있다. 게다가 마음속에 고통이 많이 있다. 향수도 그렇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그렇고, 사람들의 불신임도 그렇다. 사람들은 특히 처음 얼마 동안은 까다로워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을 시켜달라는 것을 쉽게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도 보았지만, 이 집에는 평온과 미소와 화합이 감돌고, 일치단결하여 이 집을 더 아름답게 하려 애쓰고, 보잘것없는 채소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떠나온 집과 같게 하고, 한층 더 편안하게 하려고 힘쓴다.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다. 적의를 품은 땅이 거룩한 나에게. 하느님에게서 온 나에게 덜 비참한 땅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수많은 보살핌으로 나타나는 믿는 사람과 부모로서의 사랑이다. 가외로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는 염소와 나무 조각 남은 것을 가지고 파서 만든 작은 장난감들을 보아라. 그리고 자기들은 한 입거리 음식까지 희생해 가면서 나만을 위하여 사 오는 과일들을 보아라.

이 세상의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하느님께 얼마나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된 하느님 아들의 사랑을 말입니다.

이 집에는 신경질적이고 격하게 쉬운 사람도 없고, 무뚝뚝한 표정도 없으며, 서로 비난하는 것도 없고, 그들에게 물질적인 안락을 크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대하여는 더구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 요셉은 마리아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보았다고 비난하지 않고, 마리아는 요셉에게 더 안락하게 해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거룩하게 서로 사랑한다. 그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는 그 둘의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고 배우자의 이익이다. 참다운 사랑은 이기주의를 모른다. 그리고 참다운 사랑은 이 방면에 있어서 동정인 두 부부의 사랑만큼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순결하다. 사랑과 결합한 순결은 그 뒤에 다른 덕행들을 줄줄 따라오게 하며 순결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하여 부부로서의 완전을 이룩한다.

내 어머니와 요셉의 사랑은 완전하였다. 이 사랑은 일체의 다른 덕행으로 이끌어 갔고, 특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갔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육체와 마음에 괴로워도 이들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 두 성인에게서는 정신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모든 것을 지배하였다. 이 정신으로 그들은 주께서 그들을 당신의 영원한 아들의 보호자로 택하신 것을 감사하며 주를 찬미하게 되었었다.

이 집에서는 기도를 하였다. 지금은 가정들에서 너무도 기도를 적게 한다. 새벽과 황혼에도 그렇고, 식탁을 대하고 앉을 때에도 주를 생각하지 않는다. 또 새로운 날을 보게 허락하시고, 다시 밤을 맞이하게 허락하셨으며, 너희들의 피로에 강복하셔서 너희들에게 그 음식, 그 불, 그 옷, 그 집, 그리고 너희들의 인간 처지에서 역시 필요한 저 모든 물건들을 마련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주께 대한 생각은 안 한다는 말이다. 인자하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항상 '좋다'. 비록 그 재물이 초라하고 풍족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그것들에 맛과 가치를 준다. 영원하신 조물주를 너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보게 하는 사랑이 말이다.

이 집에서는 소찬에 만족하였다. 돈이 없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살기 위하여 먹었지, 폭음 폭식가와 같이 게걸스럽게 그리고 미식가들과 같이 변덕스럽게 식도락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먹지는 않았다. 폭음 폭 식가들과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음식을 절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절제하면 많은 사람에게 굶주림의 고통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몸이 둔해지도록 음식을 먹으며 비싼 물건으로 그들의 재산을 낭비한다.

이 집에서는 노동을 사랑한다. 돈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노동을 사랑할 것이다. 일을 함으로써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 같은 게으름뱅이들을 끈질긴 담쟁이같이 꽉 죄어 숨 막히게 하는 악습을 면하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고 난 뒤에는 음식이 맛있고 휴식이 기분 좋고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며, 이 일과 다음 일 사이에 일순간의 휴식의 값을 알게 된다.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과 정신에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악습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악습이 거기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상호 간의 애정과 존중과 존경이 발전한다. 순결한 분위기 속에서는 성덕의 꽃이 필 미래의 가정을 이룩할 다정스러운 자식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 집에서는 겸손이 지배한다. 오만한 너희들에게는 얼마나 큰 겸손에 대한 교훈이냐!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교만해지고 그의 배우자의 숭배를 요구할 만한 수없이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 중에는 남편보다 더 넓은 교양을 가졌다든지, 더 고귀한 집안 출신이라든지, 재산이 더 많다든지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정배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섬기고, 배우자더러 자기를 섬기게 하지 않으며, 그에 대하여 온갖 애정을 기울인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신 집안 어른이며. 가장이 되어 강생 하신 말씀과 영원하신 성령의 정배를 보호하라는 책임을 하느님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리아에게 피로와 일을 덜어 주려고 온갖 주의를 기울여 보살핀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마리아에게 피로를 면해 주기 위하여 집안의 가장 궂은일들은 도맡아 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마리아를 기쁘게 해 주고, 집을 더 편리하게 하고 작은 정원을 꽃으로 더 명랑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애를 쓴다.

이 집에서는 초자연적, 도덕적, 물질적 질서를 존중한다. 하느님은 가장 높으신 어른이시므로 그분께 공경과 사랑을 드린다. 이것이 초자연적인 질서이다. 요셉은 가장이므로, 그에게 애정과 존경과 복종을 드린다. 이것은 도덕적 질서이다. 집은 옷과 가구와 더불어 하느님의 선물이다. 무슨 일에든지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양들에게 털을 주시고, 새들에게는 깃을, 풀밭에는 푸르름을, 가축들에게는 여물을, 가금들에게는 낟알과 잎을 주시며 골짜기의 백합들에게는 옷을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집과 옷과 가구들을 그것들을 주시는 하느님의 손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고, 주의 선물로서 경건하게 다루며, 그것들이 초라하다고 해서 마지못해 바라보지도 않고, 섭리를 남용하여 그것들을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이것은 물질적인 질서이다.

너는 나자렛 사투리로 주고받은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였고, 기도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보는 것이 큰 교훈이 되었다. 많은 일에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중에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였던 거룩한 부부가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일에서 하느님을 모욕한 탓으로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 너희들은 이 교훈을 묵상하여라.

 

그리고 너는 어린 예수를 기억하면서 기뻐하여라. 그의 작은 어린아이 걸음을 생각하면서 미소하여라. 얼마 안 있어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눈물의 환시가 될 것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2. 예수에게 일을 처음으로 가르침

 

나는 비 오는 날에 햇살이 나는 것처럼 내 예수가 기분 좋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 장딴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간단한 하늘색 옷을 입은 다섯 살쯤 된 귀여운 금발의 어린아이이다. 그는 작은 정원에서 흙을 가지고 장난한다. 작은 무더기들을 만들고, 축소된 작은 숲을 만들려는 듯 거기에 나뭇가지들을 꽂는다. 조약돌들로는 길을 만들고, 그런 다음 작은 야산들 밑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어떤 접시 밑바닥을 가져다가 전까지 땅에 파묻는다. 그런 다음, 빨래터나 작은 정일에 물을 주는 데 쓰이는 웅덩이에 그릇을 담가 그 물을 땅에 묻은 접시 바닥에 붓는다. 그러나 아기는 고작 그의 옷을, 특히 소매를 적시는 일밖에는 못한다. 물은 금이 가거나 어쩌면 틈이 벌어진 접시 밑바닥으로 해서 새 버리고‥‥호수는 물이 말랐다.

요셉이 문지방에 나타나더니. 아무 말도 없이 얼마 동안 아기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것은 정말 명랑하게 하고 미소를 자아내는 광경이다. 그러다가 아기가 옷을 더 적시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를 부른다. 예수는 방긋 웃으면서 돌아서서 요셉을 보고는 팔을 내밀고 그에게로 달려간다. 요셉은 그의 짧은 작업복 한 귀퉁이로 더러워지고 젖은 작은 손을 닦아 주고 예수에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다정스러운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간다.

예수는 그의 일과 장난을 설명하고, 그것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다. 예수는 겐네사렛 호수와 같은 호수를 만들려고 하였었다(이 말을 들으니 나는 예수 아기에게 겐네사렛 호수 이야기를 해 주었던가, 그리로 데려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예수 아기는 놀려고 호수를 조그마하게 만들려 하였었다. 여기는 티베리아이고, 저기는 막달라, 좀 더 먼 데는 가파르나움이었다. 이 길은 가나로 해서 나자렛으로 가는 것이었다. 아기는 호수에 작은 배들을 띄우려고 하였었다. 이 나뭇잎들은 저쪽 호수 기슭에 가 닿는 데 쓰이는 배들이다. 그러나 물이 새 나가니‥‥.

요셉은 지켜보며, 마치 중대한 일인 것처럼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이튿날 작은 호수를 만드는데, 이가 빠진 접시를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아교로 잘 붙인 작은 나무 대야를 가지고 만들자고, 그래서 거기에다 요셉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 작은 나무배들을 띠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침 지금 예수가 피로하지 않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일부러 작게 만든 연장들을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면 내가 아버지를 도울 거야" 하고 예수가 방긋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면 네가 나를 도와주고 선량한 목수가 될 거다 와서 봐라."

그들은 작업장으로 들어간다. 요셉은 어린 예수의 키에 맞는 작업대, 아기 목수 작업대에 늘어놓은 작은 망치, 작은 톱, 조그마한 나사돌리개, 작은 대패를 예수에게 보여 준다.

"보아라, 톱질을 하려면 나무를 놓고 이렇게 누른다. 톱은 이렇게 잡고, 손가락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톱질을 한다. 해봐라‥‥."

수업이 시작된다. 예수는 힘을 쓰기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다. 입술을 꼭 다물고 조심해서 톱질을 한다. 그런 다음 작은 널빤지에 대패질을 한다. 그리고 널빤지가 좀 구부러지기는 했어도 그에게는 예쁘게 보인다. 요셉은 칭찬을 해 주고, 참을성 있게 사랑을 가지고 일하라고 가르친다.

마리아가 돌아온다. 분명히 집에서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마리아는 문어 귀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두 사람은 등을 문쪽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를 보지 못한다. 마리아는 대패를 다루는 예수의 열심과 요셉이 예수를 가르치는 애정을 보고 미소 짓는다.

그러나 예수가 이 미소를 느낀 모양이어서, 몸을 돌려 엄마를 보고는 반쯤 대패질 한 널빤지를 들고 달려가서 그것을 엄마에게 보인다. 마리아는 감탄하여 보고 예수에게 입 맞추려고 몸을 굽힌다. 마리아는 헝클어진 예수의 머리를 가다듬어 주고, 얼굴의 땀을 닦아 주면서, 엄마가 일할 때에 더 편안하게 작은 걸상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예수의 말을 다정스럽게 듣는다. 요셉은 조그마한 작업대 곁에 서서 손을 허리에 댄 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내 예수의 첫 번째 노동 학습을 구경했는데, 이 성가장의 온 평화가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3. "나는 성장(成長)의 법칙이 면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 세상이 가졌던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두 성인의 애정에 감싸여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행복하였던 내 어린 시절을 보여줌으로써 너를 위로하였다.

 

요셉이 내 양부였다는 말들을 한다. 물론 그는 남자였으므로 자기 젖으로 나를 기른 마리아처럼 내게 젖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게 빵과 튼튼하게 하는 음식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일하느라고 몸이 고달펐었다. 요셉은 내게 대하여 친어머니와 같은 애정을 가졌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린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는, 그것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을 배웠다-그런데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을 모셨던 제자는 일찍이 없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내 지능은 완전하였지마는, 나는 성장의 법칙이 면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서의 나의 완전한 지능을 인간적인 이해력의 수준에까지 낮추어서, 사람을 스승으로 가지고, 스승의 필요를 느끼도록 나 자신을 억제하였다. 그 후 내가 빨리 배웠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인하여 내가 스스로 한 사람에게 매여 있었다는 공로가 내게서 없어지지도 않고, 또 그 의인에게서도 내 어린 지능을 생활에 필요한 지식으로 길러 준 공로가 없어지지 않는다.

장난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로 하여금 일을 할 수 있게 되도록 이끌어 가던 요셉 곁에서 지낸 즐거운 시간들을, 나는 천국에 있는 지금 잊지 못하겠다. 추정상의 내 아버지와 작은 정원과 연기로 검게 된 작업장을 머리에 다시 떠올릴 때면, 집을 희한한 것이 되게 하고 나를 몹시 기쁘게 하던 그 미소를 머금은 엄마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서로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서로 사랑한 부부의 이 완전에서 가정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느냐!

요셉은 가장이었다. 가정에서 그의 권위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권위 앞에서는 하느님의 정배이며 어머니인 분의 권위도 공손히 굴복하였고, 하느님의 아들도 그 권위에 복종하였다. 이론도 없고 이의도 없고 반대도 없이 요셉이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모두가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말은 우리가 따르는 우리의 작은 법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마나 겸손하였느냐! 권력의 남용이 절대로 없었고, 그가 권위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치에 맞지 않는 기분은 절대로 없었다. 아내는 그의 친절한 고문이었고, 크나큰 겸손으로 아내가 자기를 그의 배우자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셉은 은총이 가득한 그 여자의 지혜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인도하는 빛을 얻어내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를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내 위에서 서로 얽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기운찬 두 그루 나무의 보호를 받는 꽃과 같이 자라고 있었다.

내가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 동안은 천국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그분들이 그곳을 따나 계시지 않았었고, 그 집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천사들도 그곳에 줄곧 머물러 있었다. 나는 천사들 중의 하나가 육체를 취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짐에서 해방되어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이익만을 돌보는 일과 치품천사(熾品-세라핌-Seraphim)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분을 사랑하는 데에만 전념하는 천사와 같은 영흔을 가진 요셉이었다. 요셉의 눈길! 땅의 정욕을 모르는 별의 빛과 같이 조용하고 깨끗한 눈길. 그것은 우리의 안식이요 우리의 힘이었다.

우리 집을 지키던 이 성인의 눈길이 사라졌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느님이었고, 또 하느님인 만큼 요셉의 복된 운명을 알고 있었고, 또 이 이유로. 림보(Limbes)에서 잠깐 머물게 한 다음 하늘나라의 문을 그에게 열게 되었던 그의 떠남을 슬퍼하지 않았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그의 다정스러운 존재가 없어진 집에서 울었다. 나는 사라진 친구를 슬퍼하며 울었다. 내게 그다지도 가깝던 이 성인의 떠남을 내가 슬퍼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아주 어렸을 적에 그 가슴에서 잠을 잤던 이 성인, 그렇게도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랑으로 감싸 주었던 이 성인의 떠남을 말이다.

끝으로 나는 세상의 부모들에게 어떻게 요셉이 교육학적 소용과 도움 없이 나를 착실한 일꾼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내가 연장을 다를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요셉은 나를 무위 속에 오래 머물러 있게 내버려 두지 않고 일을 시작하게 하였고, 마리아에게 한 내 사랑을 그의 첫째 보조자를 만들어 나를 일하도록 격려하였다. 엄마를 위하여 유익한 물건들을 만들어라, 요셉은 이렇게 하여 아들이면 누구든지 엄마에게 대하여 가져야 할 존경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의 목수를 양성하는 데 존경과 사랑이라는 이 지렛대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오늘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을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에게 노동을 사랑하게 하는 가정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자녀들이 집안에서 폭군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 대하여 냉혹하고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자란다. 그들은 부모를 그들의 하인으로, 그들의 종으로 본다.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에게서도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너희들이 너희 아들들을 성 잘 내는 난폭한 자들을 만들어서, 부끄럽게도 그들과 갈라져서 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 아들들은 모든 사람의 아들들이다. 20세기의 부모들아,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훨씬 더 유모나 가정교사의 아들들이며, 너희가 부자인 경우에는 그들이 중학교에 속해 있다. 너희들이 가난한 사람이면, 그들은 동무들에게, 거리에, 학교에 속해 있다. 그들이 이제는 너희들 것이 아니다. 너희들 어머니는 그들을 낳아 준다. 그뿐이다. 너희들 아버지는 그들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은 다만 육체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지능과 마음과 정신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지능과 이 마음과 이 정신을 도야할 권리와 의무를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믿어라.

가정은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한다. 파멸을 초래하지 않고 이 진리에 대립하는 이론이나 진보는 없다. 해체되는 길정에서는 장차 점점 더 타락하고 더 큰 파멸을 가져오는 남녀 밖에 올 수가 없다. 그래서 너희에게 단단히 이르는 말히지만, 원숭이족들이 화합해 있는 것보다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가정들과, 덕행과 근로와 사랑과 종교의 학교가 아니라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아서 결국은 부서지고야 마는 톱니바퀴 장치 모양으로 각자가 자기를 위하여 사는 무질서한 가정들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결혼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없게 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부수고 해체하여라. 사회 중에서 가장 거룩한 사회의 이 해체의 결과를 너희는 보고 또 겪는다. 자 너희들이 그러고 싶으면 계속하여라. 그러나 이 세상이 점점 더 지옥이 되고 가정과 민족을 잡아먹는 괴물들의 소굴이 된다 해도 한탄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니,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4. 예수와 유다와 야고보의 선생 마리아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아, 와서 보아라. 너를 인도하는 내 손에 잡혀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거라. 그러고 네가 보는 것은 모두 내 어린 시절의 복음에 써넣어야 한다. 거기에는 성가정이 이집트에 머무른 시절에 대한 환상도 적어야 한다. 이런 순서로 써라. 에집트에 있는 성가정, 그다음에는 아기 예수의 일에 대한 첫번째 학습, 또 그 다음에는 지금 묘사할 광경, 그러고 나서는 성인 예식 광경(오늘 11월 25일에 약속된 것), 끝으로 열두 번째 과월절 때 성전에서 학자들 사이에 있는 예수에 대한 광경이다. 내가 오늘의 광경을 네게 보이려는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오히려 그 광경은 내 아주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사정과 친척들과의 관계를 밝혀 준다. 이것은 내 왕권의 축일에 네게 주는 선물이다. 네가 나자렛의 집을 볼 때에는 그 집의 평화가 너 자신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써라."

 

나는 보통 식사를 하고 마리아가 베를 짜거나 바느질을 하는 방을 본다. 이 방 옆방은 요셉의 작업장인데, 그곳에서는 그가 활발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반대로 이곳은 조용하다. 마리아는 길쭉한 모직물들을 꿰매고 있다. 틀림없이 마리아가 짠 옷감일 것이다. 그 천은 너비가 50센티미터쯤 되고, 길이는 그 곱절쯤 된다. 요셉의 겉옷인 모양이다. 정원 쪽으로 열린 문으로는 보통 "마리아 꽃" 또는 "별 박힌 하늘"'이라고 부르는 자주색을 떤 하늘색의 저 마가레트가 마구 헝클어져 있는 울타리가 보인다. 정확한 식물학 용어는 모르겠다. 그 꽃이 핀 것으로 보아 가을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뭇잎들이 아직 예쁜 초록빛을 띠고 무성하게 있고, 양지바른 담에 기대 놓은 벌통 두 개의 벌들은 햇빛이 환한 가운데를 무화과나무에서 포도나무로 그다음에는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석류나무로 윙윙거리고 춤을 추며 날아다닌다. 석류들은 너무 익어서 터져서, 노란 칸이 지어진 빨갛고 푸른빛 상자 속에 줄지어 들어 있는 달콤한 홍옥 목걸이들을 보여 준다.

나무 아래에서는 예수가 거의 같은 나이 또래의 두 어린아이와 같이 놀고 있다. 그들도 머리털이 굽슬굽슬하지만 금발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정말 갈색이다. 검은 어린양의 머리 같아서, 자줏빛을 떤 매우 아름다운 두 눈을 가진 둥근 얼굴의 흰 살갗이 더 돋보인다. 또 한 아이는 머리털이 덜 굽슬거리고 짙은 밤색이며, 눈도 밤색이다. 그의 살갗은 더 갈색이다, 그러나 뺨은 약간 볼그레한 기운을 띠고 있다. 짙은 빛깔인 두 머리털 사이에 금발머리를 한 예수는 벌써 빛나는 후광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함께 의좋게 작은 짐수레들을 가지고 노는데, 짐수레에는 나뭇잎, 조약돌, 리본, 나무 조각 따위 여러 가지 상품이‥‥실려 있다. 그들은 장사꾼 놀이를 한다. 예수는 엄마를 위하여 물건을 사는 손님이다. 예수는 어떤 때는 이 물건, 어떤 때는 저 물건을 가져온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면서 그가 사 오는 것을 받는다.

그러나 다음에는 놀이가 바뀐다. 두 아이 중의 하나가 제안한다. "이집트를 건너질러 떠나오는 놀이를 하자. 예수는 모세가 되고, 나는 아아론, 너는‥‥마리아가 되어라."

"그렇지만 난 사내아인데! "

"상관없어. 그래도 마리아가 돼라. 너는 마리안데, 금송아지 앞에서 춤을 추는 거야. 이 리본이 금송아지가 될 거야."

"난 춤 안 춰, 난 남자야, 여자가 되기는 싫어. 난 믿는 사람이야, 우상 앞에서 춤은 안출 테야."

예수가 개입한다. "이 대목 놀이는 하지 말고 다른 놀이를 하자.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뽑혔을 때 놀이를 하자. 그러면 흉악한 우상숭배 문제도 없어지고, 유다는 남자로 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기쁠 거야. 너 좋지? "

"그래, 예수야,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너는 죽어야 한단 말이야. 모세가 그다음에 죽었으니까. 나는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네가 죽는 거 싫어."

"우린 모두 죽어야 해‥‥그렇지만 나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에 축복할 거야. 그리고 너희들 밖엔 없지만 너희에게 축복하면서 온 이스라엘에 축복할 거야."

그래서 모두 받아들인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걸은 다음에도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가지고 있던 짐마차 들을 아직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의견이 서로 달랐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엄마,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짐마차 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야고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그리구 유다는 누구 말이 옳다고 할지 몰라. 엄만 알아? "

"그래, 안다. 유목민이라 아직 짐마차들을 가지고 있었다. 멈춰 설 때에는 짐마차들을 고치곤 했단다. 짐마차에는 가장 몸이 약한 사람들이 탔었고, 또 그 많은 백성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남자들이 메고 다닌 결약의 궤를 빼놓고는 나머지 모두가 짐마차에 실려 다녔다. "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이들은 정원 안쪽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성시를 읊으면서 집을 향하여 온다. 예수가 앞장서서 오면서 은소리같이 맑은 목소리로 성시를 노래한다. 그 뒤로는 유다와 야고보가 성막을 나타내는 짐수레를 들고 온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와 아아론의 놀이 외에 백성의 놀이도 해야 하므로, 허리를 끌러 가지고 꼬마 짐마차 들을 발에 매고 진짜 배우들 모양으로 진지한 태도로 행렬을 한다. 그들은 덩굴을 올린 정자를 다 지나서 마리아가 있는 방 문 앞을 지나가면서 예수가 마리아에게 말한다. "엄마. 지나가는 성막에 인사해."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나, 태양의 후광 속에서 빛나는 얼굴로 지나가는 예수에게도 몸을 숙인다.

그런 다음 예수는 집의 경계, 아니 그보다도 정원의 경계가 되는 깎아지른 곳을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 동굴 위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명령과 약속들을 말하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소개하고, 그를 자기에게로 부른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유다가 깎아지른 곳으로 올라간다. 예수는 유다를 격려하고 그에게 축복한다. 그런 다음 널판지(이것은 넓은 무화과나무잎이다)을 가져오라고 하여 성가를 쓰고 그것을 읽는다. 전부는 아니고 꽤 많은 부분을 읽는데, 나뭇잎에 쓴 것을 읽는 것 같다. 그런 다음 여호수아에게 작별인사를 하니 여호수아는 울면서 그에게 입 맞춘다. 그러자 예수는 더 높이, 깎아지른 곳 꼭대기로 올라간다. 거기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즉 땅에까지 닿도록 엎디어 있는 두 아이에게 축복하고 나서. 짧은 풀 위에 누워 눈을 감고‥‥죽는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면서 문지방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가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외친다. "예수야, 예수야, 일어나거라! 그렇게 하고 있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죽은 걸 보고 싶지 않다!"

예수는 방긋 웃으면서 일어나 마리아에게로 달려가 입을 맞춘다. 야고보와 유다도 와서 그들도 마리아에게서 애무를 받는다.

"어떻게 예수는 그 길고 어려운 성가와 축복들을 욀 수 있어?‥‥ 하고 야고보가 묻는다.

마리아는 미소하면서 이렇게만 대답한다. "예수는 훌륭한 기억력을 가졌고, 내가 읽을 때에 아주 주의해서 듣는단다. "

"난 학교에서 정신을 차리지만, 그 애가 들을 듣고 있으면 이내 잠이 들고 말아‥‥그럼 난 도무지 외지 못하게 될까?"

"너도 배우게 될 거다. 염려 말아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빨리 정원과 방을 지나가서 문을 연다.

"알패오와 마리아, 형님네에게 평화가 있기를! "

"너희들에게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요셉의 형과 그의 아내이다. 든든한 나귀가 끄는 투박한 짐마차 하나가 길 가운데 멈춰 있다.

"무사히 다녀왔소? "

"아주 잘 다녀왔어. 그래 아이들은?"

"마리아와 같이 정원에 있소."

그러나 아이들은 벌써 엄마에게 인사를 하려고 달려온다. 마리아도 예수의 손을 잡고 온다. 두 동서가 포옹한다.

"애들이 얌전히 굴었어요?"

"아주 얌전하고 귀엽게 굴었어요. 친척들이 모두 잘 있어요?"

"모두 다 잘들 있어요 그리고 가나에서 포도, 사과, 치즈, 꿀, 이 선물들을 모두 동서네한테 보냈어요. 그리고‥‥요셉은? 예수에게 주려고 구해오라고 한 바로 그것을 발견했어요. 짐마차 위에 있는 저 큰 둥근 바구니에 들어 있어요." 알패오의 아내는 웃는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자기를 올려다보는 예수에게로 몸을 숙인다. 그의 새파란 두 눈에 입을 맞추며 말한다. "너한테 뭘 가져왔는지 아니? 안아 맞혀 봐라."

예수는 곰곰이 생각하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나는 예수가 요셉에게 깜짝 놀랄 선물을 하는 기쁨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요셉은 둥근 바구니를 들고 돌아온다. 요셉은 바구니를 예수 앞에 땅에 내려놓고, 뚜껑을 제 자리에 있게 맨 새끼를 끊고 뚜껑을 쳐든다‥‥. 그러니까 매우 깨끗한 건초로 된 잠자리에 잠들어 있는 아주 하얀 작은 양이 꼭 진짜 거품 뭉치같이 나타난다.

예수는 놀라고 몹시 기뻐서 "오! " 하는 소리를 낸다. 예수는 작은 짐승에게로 달려가려고 하다가 몸을 돌려, 아직 땅으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요셉에게로 뛰어간다. 그리고 그를 껴안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입 맞춘다.

사촌들은 작은 동물을 감탄하며 들여다본다. 양은 잠을 깨서 그 볼그레한 작은 부리를 쳐들고 어미를 찾으며 매애 하고 운다. 바구니에서 꺼내서 토끼풀 한 줌을 주니. 그 온순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먹는다.

예수는 "내 거야! 내 거야! 아버지, 고마워요! " 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썩 마음에 드냐?"

"오! 꼭 마음에 들어요! 하얗고 깨끗한‥‥새끼 양‥‥아이고 좋아!"그러면서 팔을 양의 목에 감는다. 그리고 작은 동물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갖다 대고 만족스러운 태도로 그대로 있다.

"너희들에게도 두 마리를 가져왔다" 하고 알패오가 아들들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그놈들은 검은색이다. 너희들은 예수처럼 질서가 잡히지 않아서 그놈들이 흰빛깔이면 늘 깨끗하게 보존하지 못할 거다. 이게 너희 양 떼가 될 거다. 그놈들을 같이 지켜라. 그러면 너희 두 장난꾸러기가 길거리로 돌아다니며 돌이나 던지고 하지는 않게 될 거다."

아이들은 짐마차로 달려가서 흰빛깔이기보다는 오히려 검은색인 다른 두 마리 양을 본다.

예수는 그의 양을 데리고 그대로 있었는데, 그놈을 안고 정원으로 가서 물을 먹인다. 그러니까 양은 예수를 오래전부터 알던 것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예수는 양을 부른다. 그 양에게 "백?quot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양은 매애 하고 울면서 기쁘게 대답한다.

손님들은 식탁 앞에 앉았고, 마리아는 그들에게 빵과 올리브와 치즈를 대접한다. 마리아는 능금주인지 꿀물인지 모를 것이 든 항아리를 가져온다. 나는 액체가 맑은 것을, 완전히 맑은 것을 본다. 어른들끼리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세 마리 양을 데리고 노는데, 예수가 다른 양들에게도 물을 주고 이름을 지어 주려고 함께 모으고자 하였었다. "유다야, 네 양은 이마에 무슨 표적이 하나 있으니까 '별'이라고 이름 붙이자 또 네 양은 죽은 히이드(heath)의 어떤 불꽃의 빛깔을 띠고 있으니까 '불꽃'이라고 부르자."

"좋아."

어른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알패오가 말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 사이의 논쟁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셉, 네가 내게 그렇게 할 생각을 주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동생은 예수의 기분을 좀 달래기 위해서 그에게 줄 어린양 한 마리를 원한다. 나도 이 애들을 위해서 양 두 마리를 사서, 그 애들을 좀 조용하게 하고, 다른 친척과 머리나 무릎 벗어진 데 대한 말다툼이 없게 하겠다. 학교에 좀 가고, 양을 좀 돌보고 하노라면, 그 애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을 거다' 하고. 하지만 올해는 너도 예수를 학교에 보내야겠다. 나이가 되었으니까."

"저는 절대로 예수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여요" 하고 마리아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한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또 요셉을 앞질러 말하는 데 놀랐다.

"왜요? 어린아이는 때가 되어 성인례의 시험을 치르려면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교육은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에는 안 갑니다. 이것은 결정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에서 그렇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여자일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한 여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셉, 그렇지요?"

"맞아요. 예수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마리아는 성전에서 교육을 받아서 율법에 대한 지식에는 진짜 박사예요. 마리아가 예수의 선생이 될 거예요. 내 뜻도 그래요."

"너희들은 그 애를 너무 귀여워한다."

"형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예수는 나자렛에서 제일 착한 아이예요. 예수가 우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변덕을 부리고 복종을 거절하고 존경을 안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은 없었지. 하지만 계속 너무 귀여워하면 그렇게 될 거다."

"자기 아이들을 자기 곁에 데리고 있는 것이 그 애들을 너무 귀여워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을 지혜롭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 예수를 이렇게 사랑해요. 그리고 마리아가 학교 선생보다 더 유식하니까 마리아가 예수의 선생이 될 겁니다."

"그러면 네 예수가 어른이 되면, 파리 한 마리까지 무서워하는 계집애 같은 녀석이 될 거다."

"아니, 그렇겐 안 될 거예요. 마리아는 씩씩한 교육을 할 줄 아는 강한 여자예요. 나도 약한 사람이 아니고, 씩씩한 모범을 보일 줄 알아요, 예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결점이 없는 아이예요.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올바르고 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형, 염려 말아요. 예수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은 결정이 된 일이니까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마리아가 결정했고, 너는‥‥."

"하지만 그것이 참된 일이라면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편의 견해를 받아들여 자기의 것을 만들기 때문에 같은 생각과 같은 의지를 가질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 아니에요? 만일 마리아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원하면, 나는 '안 되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기 때문에 나도 그것을 찬성하고 내 의견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첫날과 같이 서로 사랑합니다‥‥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늘 그럴 거요. 그렇지 않소, 마리아?"

"요셉, 그래요. 그리고 이런 일이 절대로 없기를 바라지만, 한 사람이 먼저 죽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래도 서로 사랑할 거예요."

요셉은 마리아가 아직 어린아이인 것같이 머리를 쓰다듬으니, 마리아는 평온하고 정다운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큰동서가 개입한다. "두 분 말이 대단히 옳아요. 아! 나도 가르칠 수 있었으면! 학교에서는 우리 아들들이 선과 악을 다 배우고 있어요. 그렇지만 가정에서는 선만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나는 몰라요‥‥ 만일 마리아가‥‥."

"형님.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예요? 거북하게 생각 마시고 말씀하세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형님을 사랑하고 형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저도 기뻐요."

"내 말은‥‥ 야고보와 유다가 예수보다 나이가 조금 위여서, 벌써 학교에 다니지만‥‥ 그 애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 이와 반대로 예수는 벌써 율법을 썩 잘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 ‥‥ 동서가 예수를 가르칠 때 그 애들도 받아 주겠어요?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이 더 착해지고 더 배우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요. 결국 아이들은 사촌 간이고, 서로 형제같이 사랑하니 좋아요‥‥. 난 참 좋겠어요! "

"만일 요셉이 좋다고 하고 아주버님도 좋다고 하시면, 얼마든지 그럴 생각이 있어요. 한 아이를 위해서 말하나 세 아이를 위해서 말하나 마찬가지예요. 성경을 다시 한번 본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아이들을 보내세요."

세 아이가 살그머니 들어왔다가 이 말을 듣고는 결정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애들이 계수님을 실망시킬 겁니다" 하고 알패오가 말한다.

"아니에요! 그 애들이 저한테는 늘 착하게 굴어요.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면 얌전히 굴겠지?"

두 아이는 마리아 곁으로 달려가,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서서 마리아의 목에 팔을 감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 단단히 약속한다.

"아주버니, 그 애들을 해보게 놔두세요. 그리고 저도 해보게 하시고요. 아주버니가 불만족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이 애들을 매일 오후 제6시(오정)에 보내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틀림없어요. 저는 피로하지 않게 하면서 가르치는 기술을 알아요. 어린아이들은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기분을 달래주게 돼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 애들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해요. 그러면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얻어냅니다. 그때 너희들은 나를 좋아하지?"

커다란 입맞춤 두 번이 대신 대답한다.

"아시겠어요? "

"알겠소. 이제는 계수님한테 '고맙다'는 말 밖에 할 것이 없군요. 그런데 예수는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할까요? 어떠냐 예수야? "

"나는 '그 여자 곁에 있으면서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집 곁에 거처를 정하는 사람은 복되다'라고 말하겠어요. 지혜서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의 친구가 되는 사람은 복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의 친구가 되는 것이 나도 기뻐요."

"아아 니! 누가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했지?" 알패오가 놀라서 묻는다.

"아무도 그런 사람 없어요, 형 이 세상의 아무도."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가 나와 야고보와 유다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관계 이외에 지식과 교육으로 마치 한 줄기에 달린 세 개의 포도나무 가지와 같이 결합하여 형제처럼 서로 사랑하였다. 이스라엘에서 당할 사람이 없을 박사인 내 엄마가, 다정스러운 내 엄마가 말이다. 지혜와 참지식의 본거인 내 어머니가, 마리아가 세상의 생활과 천국의 생활을 위하여 우리를 가르쳤다. '우리를 가르쳤다'라고 말한 것은 나도 내 사촌들과 같이 엄마의 생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의 호기심에 대하여 하느님의 비밀 위에 찍힌 봉인이 일반 사람의 생활이라는 외형 속에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기분 좋은 광경을 보고 즐거웠느냐? 이제는 편안히 있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 역주. 이런 꽃 이름은 우리나라에는 없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5. 예수의 성인례를 위하여 옷을 준비함

 

나는 예수님에게서 한 가지 약속을 받았다. 나는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의 성인례 예식을 보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 그랬더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신비가 방해를 받은 일 없이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게 되면 이내 보여 주마. 그 환상은 최근에 네게 보여준 나와 유다와 야고보의 학교 선생님인 내 어머니의 장면 다음에 넣어라. 이 장면은 그 장면과 성전에서 토론하는 장면 사이에 넣도록 하여라."

 

나는 마리아가 함지 위에, 아니 그보다도 질그릇 대야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것을 본다. 무엇인지를 섞고 있는데, 거기서는 나자렛의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차고 조용한 공중으로 김이 올라간다.

한겨울인 모양이다. 올리브나무를 빼고는 모든 나무가 잎이 떨어져 진짜 해골들 같다. 저 위에는 대단히 맑은 하늘에 해가 쨍쨍 비치고 있다. 그러나 해도 잎 떨어진 가지들을 흔들어 서로 부딪게 하고 올리브나무의 우중충한 초록색 잎들을 물결치게 하는 북풍을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성모님은 온통 거의 검은 밤색의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앞에는 투박한 천을 맸는데, 그것은 옷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앞치마이다. 마리아는 대야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젓던 막대기를 꺼내는데, 막대기에서는 아름다운 빨간 물방울이 떨어진다. 마리아는 살펴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한 손가락에 찍어서 앞치마에 문질러 시험해본다. 그리고 만족한 것같이 보인다.

마리아는 집으로 들어갔다가 아주 하얀 털실 타래 여러 개를 가지고 나온다. 그 털실 타래를 참을성 있게 그리고 능란하게 하나씩 대야에 잠근다.

이 일을 하는 중에 요셉의 작업장 쪽에서 큰 동서 알패오의 마리아가 온다. 두 여자는 서로 인사를 하고 말을 주고받는다.

"잘 돼요?" 하고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가 묻는다.

"그런 거 같아요."

"이방인의 여인이 그러는데 이 빛깔은 로마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빛깔이라더군요. 동서가 이 일을 했기 때문에 이걸 내게 준 거예요. 로마에도 동서처럼 수놓는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해요. 그 일을 하느라고 동서 눈을 못쓰게 하겠어요."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고개 짓을 한다.

큰동서는 마지막 털실 타래를 마리아에게 내놓기 전에 들여다본다. "어쩌면 털실을 이렇게 짜았어요! 어찌나 가늘고 고른지 꼭 머리카락 같아요. 동서는 무슨 일이든지 아주 완전하게‥‥ 또 몹시 빨리 해요! 이 마지막 타래는 더 밝은 빛깔이겠지요?"

"그래요, 이것은 옷을 지을 거니까요. 겉옷은 빛깔이 더 충충하지요."

두 여인은 함께 함지에서 일한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주홍 빛깔의 털실 타래를 꺼내 가지고 빨리 뛰어가서 작은 샘 밑에 있는 웅덩이에 가득 차 있는 매우 찬 물에 잠근다. 그 샘물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작은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헹구고 또 헹군다. 그런 다음 털실 타래들을 두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 놓은 갈대에 걸어 놓는다.

"이 바람 때문에 빨리 잘 마를 거요" 하고 큰동서가 말한다.

"요셉에게로 갑시다. 거긴 불이 있어요. 형님은 몸이 얼었을 거예요"하고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가 말한다. "형님이 도와주시다니 참 친절하세요. 그래서 빨리 했고 또 덜 피로해요. 고맙습니다."

"아이고! 마리아. 동서를 위해서라면 무언들 안 하겠어요? 동서 곁에 있으면 그렇게 즐거운걸. 그리고 또‥‥ 이 일이 모두 예수를 위한 거지요. 그런데 동서의 아들은 내게 몹시 소중해요! ‥‥ 예수의 성인례 축일을 위해서 동서를 도와주면 나도 그의 어머니 같을 거예요."

두 여인은 목수들의 작업장 특유의 대패질한 나무 냄새가 가득 찬 작업장으로 들어간다.

-환상이 여기서 멎는다‥‥.

‥‥그랬다가 예수가 열두 살 때에 예루살렘에 가려고 떠나는 데에서 다시 시작된다.

 

예수는 매우 아름답고 매우 성장하였다. 마치 젊은 어머니의 동생 같다. 굽슬굽슬한 금발을 가진 예수는 벌써 어머니의 어깨에 닿는다 머리가 이제는 아주 어렸을 때처럼 짧지 않고 귀밑까지 내려온다. 빛나는 그 컬 하고 마치 끌로 새겨서 만든 황금 투구와 같다.

예수는 빨간 옷을 입었다. 아름다운 밝은 홍옥 빛깔이다. 발목까지 내려와서 샌들을 신은 발 밖에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긴 옷이다. 옷은 길고 넓은 소매가 달려 있어 몸 움직임이 자유롭다. 목과 소매 끝과 덧댄 밑 자락에는 완자무늬를 다른 빛깔로 짜 넣은 것이 매우 아름답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66. 예수의 성인례를 위하여 나자렛을 떠남

 

나는 예수가 어머니와 같이 방으로 - 뭐라고 할까? - 나자렛의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다.

예수는 키가 크고, 잘 생기고, 뚱뚱하지는 않지만 튼튼하게 생긴 열두 살 먹은 미소년이다. 그의 체질 때문에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키가 꽤 커서 어머니의 어깨에 닿는다. 얼굴은 아직 어린아이 때 예수의 동그렇고 볼그레한 얼굴이다. 이 얼굴은 그 후 청년기와 성년기가 되면서 홀쭉해지고, 빛깔 없는 빛깔, 즉 볼그레한 노란색이 섞였을까 말까 한 어떤 섬세한 설화석고 같은 빛깔을 띠게 될 것이다.

눈, 눈도 아직 어린아이 눈이다. 크게 뜨고, 착실한 눈길 속에 명랑한 기운이 빛나는 큰 눈이다. 이다음에는 눈이 그렇게 크게 뜨이지 않을 것이다‥‥눈꺼풀이 눈을 반쯤 덮어 깨끗하고 거룩한 분에게 세상의 너무 큰 타락을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다. 다만 기적을 행하실 때에만 크게 떠지고 빛날 것인데, 그때에는 마귀와 죽음을 내쫓고, 육체와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지금보다도 한층 더 크게 떠지고 더 빛날 것이다. 그 후부터는 그 눈이 근엄한 눈길 속에 명랑한 빛을 띠지 않게 될 것이다. 죽음과 죄악이 그에게 점점 더 생생하게, 더 가까이 올 것이고, 그와 더불어 사람들의 고의적인 반대로 인하여 그의 희생이 무익하게 될 것임을 체험으로 알게 되는 지식이 그에게 점점 더 뚜렷하게 다 가올 것이다. 아주 드물게 있는 기쁨의 순간에 구속된 사람들과 같이, 특히 순수한 인간들과 그중에서도 어린이들과 같이 있을 때에나, 그 분위기로 인하여 인자가 넘치는 거룩한 눈길이 기쁨으로 빛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가 어머니와 같이 그의 집에 있으며, 그의 앞에서는 성 요셉이 사랑을 가지고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고, 그를 감탄하여 바라보는 사촌들과 그를 쓰다듬어 주는 큰어머니 알패오의 마리아가 있다‥‥예수는 행복하다. 내 예수가 행복하기 위하여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밝은 홍옥 색의 보드라운 옷을 입고 있다. 그 옷은 곱고 촘촘한 옷감으로 완전히 짜서 만든 폭신한 옷이다. 목 앞쪽과 길고 넓은 소매 끝과 땅에까지 내려오는 옷의 끝에는 완자 무의가 죽 둘러쳐져 있다. 그 무늬는 수를 놓은 것이 아니고, 옷의 엷은 빨간색 바탕에 더 짙은 빛깔로 짜 넣은 것이다. 옷에서는 잘 만든 새 샌들을 신은 발만이 겨우 드러나 보인다. 그 샌들은 늘 신던 두 가죽끈을 엇갈리게 한 바닥이 아니다. 옷은 큰동서가 감탄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보아 엄마가 만든 것인 모양이다. 아름다운 금발은 벌써 예수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보다 더 짙은 빛깔을 띠었고, 곱실거리는 머리가 귀 아래까지 내려오면서 소용돌이를 이룬 곳에는 구릿빛으로 반사한다. 이제는 어릴 적의 짧고 가벼운 곱슬머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은 성년기의 어깨까지 내려와 부드러운 원통형으로 될 굽슬거리는 머리채도 아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이 빛깔과 이 형태로 옮아가는 경향이 있다.

"자, 우리 아들이에요" 하고 마리아가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의 왼손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쳐든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소개하며 의인의 부성을 확인하는 것 같다. 의인은 미소 짓고 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덧붙여 말한다. "요셉,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이 애에게 축복해 주세요. 인생의 첫걸음인 학교에 가는 데에는 의식에 따른 축복이 필요 없었어요. 그렇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선언을 받으려고 성전에 가는 지금은 이 애에게 축복해 주세요. 이 애와 함께 제게도 축복해 주시고요. 당신의 축복은‥‥ (마리아는 흐느낌을 억누른다) 이 애에게 힘을 줄 것이고 제게는 이 애와 좀 더 떨어지는 용기를 줄 것입니다‥‥."

"마리아, 예수는 언제나 당신 아들일 거요. 형식으로 인해서 우리의 관계가 변하지는 않을 거요. 우리에게 이다지도 소중한 이 아들을 가지고 당신과 다투지 않겠소. 오 나의 거룩한 아내, 당신만큼 그의 인생을 지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마리아는 몸을 구부리고 요셉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는 아내이다. 그리고 동반자에 대하여 얼마나 애정과 존경을 많이 가진 아내인가!

요셉은 이 존경과 사랑의 표시를 의젓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음에는 마리아가 방금 입 맞춘 손을 들어 그의 아내의 머리에 얹고 말한다. "그렇게 하겠소. 복된 여인이여, 당신에게 축복하겠소. 그리고 당신과 같이 예수에게도 축복하겠소. 내 유일한 기쁨, 내 영광, 내 인생의 목적, 오시오." 요셉은 장엄하다. 똑같이 금발이고 거룩한 숙인 두 머리 위에 손바닥을 땅 쪽으로 향하게 하여 팔을 펴고 축복의 말을 한다. "주께서 그대들을 지키시고 축복하실지어다. 주께서 그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대들에게 평화를 주실지어다. 주께서 그대들에게 축복하실지어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되었소, 떠납시다. 길가기에는 유리한 시간이오."

마리아는 짙은 암홍색 넓은 담요를 집어서 아들의 몸을 싸 준다. 그렇게 하면서 얼마나 아들을 애무하는지!

나와서 문을 걸고 길을 떠난다.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방향으로 간다. 읍내 밖에 가서는 여자들이 남자들과 헤어진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사람과 같이 간다. 예수는 엄마와 같이 남아 있다. 순례자들은 흔히는 성시를 읊으면서 가장 즐거운 봄날이 되어 매우 아름다운 들판을 건너질러 간다. 풀밭과 밀밭과 꽃이 막 피기 시작한 나뭇잎들의 싱그러움. 들을 건너질러 길을 가는 남자들의 성가 소리. 나뭇잎들 사이에서 사랑에 들뜬 새들의 노래. 기슭의 꽃들이 비치는 맑은 개울들. 어미 양 곁에서 깡충거리는 어린양들‥‥ 4월의 가장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는 평화와 기쁨이 감돈다.

-환상은 여기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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