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3. "너희들을 당신의 종으로 선언하는 일은 주님께 맡겨드려라"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내가 창백해진 것을 아무도 부정확하게 해석하지 말기 바란다. 그 창백함은 인간적인 공포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내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을 예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두려움의 동기는 아니었다. 나는 요셉의 고통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요셉이 나를 고발 했으리라는 생각까지도 그 자체로는 나를 당황하게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고발할 마음을 굳힘으로써 요셉이 사랑을 어기게 되리라는 것이 내게 불쾌하였다. 내가 요셉을 보았을 때 내 피는 이 때문에 오직 한번 뛰었을 뿐이다. 그때야말로 한 의인이 사랑을 어김으로써 정의를 모욕할 수 있었을 순간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사랑을 어기지 않던 의인인 그가 사랑을 어긴다면, 그것은 내게 극도의 고통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내가 요셉에게 말한 것과 같이 만일 내가 겸손을 그 최후의 한도까지 이끌어 가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교만을 지워버리기 위하여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시는 그분을 내 안에 잉태할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 복음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 광경을 네게 보여 준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그분이 마음 속에 끊임없이 오시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들을 너무 외면하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믿음. 요셉은 하늘나라의 사자의 말을 무조건 믿었다. 요셉은 하느님이 인자하시며, 주님께 바라는 자기에게 주님은 이웃에게 배반을 당하고 속임을 당하고 우롱을 당하는 고통을 마련해 두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믿기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정직하였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고통 없이는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를 믿기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율법을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율법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도 사랑해서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데도 완전하다고 믿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웃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으로 그를 사랑하기를 그치겠는가?
절대적인 사랑. 용서할 줄을 알고, 용서하기를 원하는 사랑 말이다. 자기 마음 속으로 이웃의 결점을 변명하면서 미리 용서해야 한다. 죄인에게 정상을 참작케 하는 모든 사정을 인정하면서 즉시 용서해야 한다.
사랑과 같이 절대적인 겸손. 다만 생각만으로라도 잘못 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하기를 거부하는, 그전에 저지른 잘못보다도 한층 더 해로운 교만을 가지지 않을 줄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만 빼고는 모든 사람은 다 잘못한다. 어떤 남자나 여자가 '나는 절대로 잘못 생각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한층 더 어려운 겸손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행하시는 경탄할 만한 일들을 거기 대한 찬미를 하느님께 드리기 위하여 알리는 것이 필요치 않을 때에는, 그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한 이웃을 경시하지 않기 위하여, 숨길 줄을 아는 겸손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아! 그분이 원하시기만 하면, 당신 자신을 종에게 나타내 보이신다! 엘리사벳은 실제 그대로의 나를 '보았고,' 내 남편도 그것을 알 시간이 그에게왔을 때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보았다.
주님께서 너희를 당신의 종들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그분께 맡겨 드려라. 그분이 어떤 특수한 사명을 주시는 사람은 누구나가 당신의 무한한 영광에 덧붙여지는 새로운 영광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사랑을 가지고 빨리 그렇게 하고 싶어하신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던 대로의 사람, 즉 그의 창조주를 나타내는 더 작은 완전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은총을 특별히 받은 사람들아, '생명'인 유일한 말씀을 들을 수 있기 위하여, 너희 위와 너희 안에 영원히 빛나는 태양을 가질 자격을 얻기 위하여 숨어 있고, 침묵 속에 그대로 있어라.
오 ! 하느님이시며, 당신 종들의 기쁨이시며 더 없이 행복하신 빛이여, 당신의 것인 이 종들 위에 비치어, 그들로 하여금 그로 인하여 그들의 겸손으로 당신을 찬미하며,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신 나라의 광휘에까지 올려 주시는 당신만을 찬미하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4. 호구조사령
나는 또 나자렛의 집, 보통 마리아가 식사할 때에 있는 작은 방을 본다.
지금 마리아는 흰 아마포 일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마리아는 등불을 밝히려고 일감을 내려놓는다.어둠이 내려와서 정원 쪽으로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빛은 넉넉지 못하다. 마리아는 창문을 닫는다. 나는 그의 임신 기간이 상당히 경과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직 매우 아름답다. 걸음걸이가 자연스럽고, 그의 온 몸가짐이 우아하다. 곧 아기를 낳게 될 여자에게서 볼 수 있는 둔중함은 조금도 없다. 다만 얼굴만이 변하였다.
이제는 "여인"이다. 맨 처음 영보 때에는 침착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한, 순진하며 순결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아주 어린 처녀였다. 그 후 엘리사벳의 집에서 세례자가 태어났을 때에는 마리아의 얼굴이 세련되 었었고, 그의 아름다움이 원숙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한 얼굴이지만, 모성 안에서 완전에 이르는 여인의 다정스러운 위엄의 빛을 띤 얼굴이다.
마리아가 지금은 실제로 위엄과 은총이 가득한 "여인"이 되었다. 그의 미소까지도 위엄있는 상냥한 빛을 띤다. 마리아는 참으로 아름답다!
요셉이 들어온다. 작업장의 문으로 해서 들어오지 않고 바깥문으로 해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마을에서 돌아오는 것 같다. 마리아는 얼굴을 쳐들고 그에게 미소를 보낸다. 요셉도 마리아에게 미소한다. 그러나 그는 피로하고 걱정이 있는 것 같다. 마리아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요셉이 벗고 있는 겉옷을 받아서 긴 의자 위에 놓는다.
요셉은 식탁 가까이에 앉는다. 식탁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머리를한 손으로 괴고, 그동안 다른 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하면서 어떤 생각에 골몰해 있다.
"무슨 걱정이 있어서 괴로워하시는 거예요?" 하고 마리아가 묻는다.
"제가 위로해 드릴 수 있겠어요?"
"마리아, 당신은 언제나 내 위로요. 그러나 이번은 큰 걱정이요‥‥당신 때문에."
"저 때문이라구요? 요셉, 무슨 일인데요?"
"회당 문에 그들이 포고를 갖다 붙였소. 팔레스티나 전주민의 호구조사령이오.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하오. 우리의 경우에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하오‥‥."
"오!" 하고 마리아는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가로막는다.
"충격적인 소식이지 않소? 힘드는 일이라는 것을 나도 아오."
"아니예요, 요셉. 그런 것이 아니예요. 저는‥‥ 저는 성서를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벤쟈민의 어머니이고 야곱의 아내이며, 그에게서 구제주라는 별이 나게 될 라켈을생각하는 거예요. 베들레헴에 묻힌 라켈을 말이예요. 그런데 베들레헴에 대하여는 이렇게 씌어 있어요. '베들레헴 에프라타, 너는 유다의 가장 작은 고을이다마는 너에게서 영도자가 나올 것이다.' 다윗 가문에 언약된 영도자가 그곳에서 날 거예요‥‥."
"당신은‥‥ 당신은 때가 벌써 왔다고 믿는거요? 아! 어떻게 한다?" 요셉은 완전히 막막하다. 그는 동정의 눈길로 마리아를 바라본다.
마리아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짓는다. 요셉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미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미소이다. "그는 사람이다, 의인이지만, 사람이다. 그는 사물들을 인간으로서 보고 인간으로서 생각한다. 내 영흔아, 그를 불쌍히 여기고, 사물을 정신으로 판단하도록 그를 이끌어 오너라." 그러나 마리아는 친절로 요셉을 안심시킬 마음이 생긴다. 마리아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걱정에서 생각을 딴 데로 돌리게 하려고 애쓴다. "요셉, 저는 모르겠어요. 때는 가까웠어요. 그렇지만 주님께서 당신의 걱정을 없애시려고 때를 늦추실 수 있지 않겠어요?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여행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누가 아오? 마땅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돌아을 시간은 있을까? 그리고 만일‥‥만일 당신이 그곳에서 아기를 낳게 되면 어떻게 한단 말이요? 우리는 집도 없고
‥‥이제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염려 마세요,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예요. 하느님께서는 새끼를 낳아야하는 짐승에게 은신처를 찾게 해 주셔요. 그런데 당신의 메시아를 위해서는 은신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시겠어요? 하느님을 믿읍시다. 그렇지요?
그분을 항상 믿읍시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신뢰를 더 가져야 해요. 두 어린아이와 같이 그분의 아버지 같은 손에 우리 손을 맡깁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분께 우리를 완전히 맡겨 드립시다.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으로 인도하셨는지 보세요? 아버지도, 아버지들 중에서 제일 착한 아버지도 우리에게 그만큼 배려를 하지는못했을 거예요. 그분의 아들이 되고 종이 되어 그분의 뜻을 따릅시다. 아무런 불행도 우리에게 올 수 없어요. 이 포고까지도 하느님의 뜻이에요. 도대체 카이사르가 누구입니까? 하느님의 손에 들려 있는 하나의 연장이에요. 아버지께서 사람을 용서해 주시기로 결정하신 때부터 그분은 당신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도록 미리부터 사건들을 결정해 놓으셨어요. 유다의 가장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는데,그 영광이 벌써 예고되었어요. 이 영광이 나타나야 했어요. 하느님의 말씀은 거짓말을 할 줄을 모르니까요-만일 메시아가 다른 곳에서 나면 하느님의 말씀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될거예요-그래서 여기서 아주 먼 곳에 권력자가 일어났어요. 그는 우리를 정복했고, 지금, 세상이 평화를 누리고 있는데, 자기 신인의 수효를 알고자 해요‥‥오! 요셉, 우리가 이 평화의 순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우리가 좀 피로한 것쯤이 무엇이에요? 이걸 생각하세요. 세상에 증오가 없는 한 때! 그 빛은 숭고하고 그 영향은 구속인 "별"이 뜨기에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아아! 요셉, 두려워하지 마세요. 만일 길이 안전하지 못하고 군중 때문에 길을 가기가 어렵게 되면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고 호위할 거예요. 우리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왕을 호위하는 것일 거예요. 만일 우리가 은신처를 찾아내지 못하면 천사들이 그들의 날개로 우리를 보호해 줄 거예요. 우리는 아무런 불행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일도 있을 수 없을 거예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요셉은 넋을 잃고 마리아를 쳐다보며 그의 말을 듣는다. 그의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고 미소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걱정없이 우울한 기분없이 일어난다. "당신은 복된 여인, 내 영혼의 태양이오! 복된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 안에 가득한 은총의 빛으로 볼 줄을 아는구려! 그러면 시간을 허비하지 맙시다.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떠나야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와야 하오. 여기는 그‥‥ 그‥‥를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우리 아들을 위해서지요, 요셉.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야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아버지께서는 그의 강생을 신비로 둘러싸셨어요. 그러니 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예요. 예수, 그가 때가 되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라고 말할 때 그의 얼굴, 시선, 표정, 목소리의 아름다움은 묘사할 수가 없다. 그것은 벌써 황홀이다.
-그리고 이 황흘로 환상은 끝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5.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감정과 이해를 초월하여 만족시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내 말이 벌써 하나의 교훈이기 때문에 많은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에 대해 아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남편에 대한 친절, 동정, 애정넘치는 배려, 위로 따위 모든 것인 이 사랑을 가지지 않은 여자들의 잘못으로 너무나 많은 결혼이 파경에 이른다. 남자에게는 여자에게 무겁게 지워진 육체적인 고통의 짐이 지워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정신적인 걱정이 지워져 있다. 일할 필요, 취해야할 결정, 법에 의하여 정해진 권력과 자기 가족 앞에서 져야 하는 책임 따위‥‥ 아아! 남자를 무겁게 찍어누르지 않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 그리고 그도 역시 얼마나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느냐! 그런데 이기주의가 극도에 달하여, 피로하고 낙담하고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걱정이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쓸 데 없고, 또 때로는 옳지 못한 그의 불평의 짐을 보태 준다. 이 모든 것은 아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이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느낄 수 있거나 타산적인 만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감수성과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케 하는 것이며, 그가 바람과 평화의 하늘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있기 위하여 필요한 도움을 그의 정신에 주는 것이다.
너희들의 주의를 끄는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거기 대하여는 이미 말하였지만 강조한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신뢰는 그 안에 향주덕을 요약한다. 신뢰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란 말이다. 신뢰를 가졌다는 것은 바란다는 것을 전제한다. 신뢰를 가졌다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바라고 그 사람을 믿는 것, 이것이 신뢰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신뢰가 그래야 하는 그런 신뢰를 받으실 자격이 있다. 거기에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우리가 신뢰하는데, 우리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왜 신뢰를 하지 않겠느냐?
신뢰는 또한 겸손이기도 하다. 교오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 자신으로 만족한다. 내가 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이 사람이 능력이 없고, 거짓말장이이고, 주제넘기 때문이다‥‥' 하고. 겸손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사람을 믿는다. 왜 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겠는가? 왜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해야 하겠는가?' 하고.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는 한층 더 옳게 이렇게 말한다. '왜 내가 착하신 그분을 의심해야 하는가? 왜 내가 자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고.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당신을 주시고, 교오한 사람에게서는 멀리 떠나신다.
신뢰는 또 순종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느님게서는 순종을 사랑하신다. 순종은 우리가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떤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 때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느님은 우리의 참 아버지이시고 완전한 아버지이시다.
너희들이 묵상하기를 내가 원하는 세째 점도 역시 신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무 사건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네가 권력자이냐?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네가 권력에 굴복하느냐? 그것도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자야, 네 권력을 가지고 재난을 만들지 않도록 힘써라, 비록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재난이었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너의 재난'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 해도 모든 것을 허락하시지는 않고, 만일 네가 한계를 지나치면 하느님께서 너를 치시고 너를 부수시기 때문이다. 한편 단순한 신민인 너는 네 처지인 그 처지를 가지고 하늘의 보호를 네게 끌어오는 자석을 만들도록 힘써라. 그리고 절대로 저주를 하지 말아라. 저주하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려라. 당신의 피조물에게 축복하든가 그들을 저주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주님이신 그분이 하실 일이다.
평안히 가거라."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6.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나다
큰 길을 보인다. 사람이 굉장히 많다. 물건을 싣고 사람을 태우고 가는 나귀들이 있고, 돌아오는 나귀들도 있다. 춥기 때문에, 나귀를 탄 사람들은 나귀에 박차를 가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공기는 맑고 건조하다. 하늘은 청명하다. 모든 것이 한겨울 날이라고 정확히 나타내 주고 있다. 헐벗은 들판은 더 넓어 보인다. 목장에는 풀이 겨울 바람에 시들어서 키가 짧아졌다. 목장에서는 양떼들이 먹을 것을 찾으며, 천천히 뜨고 있는 해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 놈들도 춥기 때문에 서로 몸을 바싹 죈다. 그놈들은 입을 쳐들고 해더러 "빨리 오너라, 추워죽겠다!" 하고 말하려는 것처럼 쳐다보며 매애매애 하고 운다. 땅에 굴곡이 나타나고 점점 더 분명해진다. 진짜 구릉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풀이 무성한 움푹 파진 곳들과 작은 계곡을 이룬 비탈들과 산등성이들이 있다. 길은 그 가운데를 지나가며 동남쪽으로 향해있다.
마리아는 두꺼운 겉옷에 폭 싸여서 회색 나귀를 타고 간다. 안장 앞쪽에는 헤브론 쪽으로 여행할 때에 이미 본 적이 있는 장치가 있고, 그 위에는 필수품들을 담은 궤가 놓여 있다.
요셉은 고삐를 잡고 곁에서 걸어 간다. "피곤하오?" 하고 가끔 묻는다. 마리아는 미소를 짓고 그를 보며 "아니요" 하고 말한다. 세 번째에 가서는 마리아가 "오히려 걸어가는 당신이 피곤하실 거예요" 하고 덧붙인다.
"오! 나는 아무렇지도 않소. 내가나귀 한 마리를 더 구했더라면, 당신이 더 편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더빨리 갈 수 있었을 것 같소. 그러나 나귀를 구하지 못했구료. 지금은 모두 나귀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용기를 내요! 멀지 않아 우리는 베들레헴에 도착할 거요. 이 산만 넘으면 에프라타요."
그리고 둘 다 말이 없다. 동정녀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같다. 자기 생각 중의 어떤 것에 조용히 미소지으며, 군중을 바라보면서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목동인지,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보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마리아가 보는 것은 그녀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춥소?" 하고 요셉이 묻는다. 바람이 일기 때문이다.
"아니요."
그러나 요셉은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는 나귀 옆구리로 늘어진 발들을 만져본다. 그녀의 긴 옷에서 밖으로 나와있는 것이 보이는 샌들을 신은 발이다. 요셉이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보면 발이 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는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메고 있는 담요를 벗겨서 마리아의 다리 위에 펴고 가슴에까지 올려 손이 담요와 겉옷 밑에서 따뜻하게 한다.
그들은 양떼를 몰고 길을 가로지르는 목동을 만난다. 요셉이 몸을 숙여 그에게 무슨 말을 한다. 목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요셉은 나귀를 붙잡고 양떼의 뒤를 따라 풀밭으로 들어가게 한다. 목동은 그의 배낭에서 그릇을 꺼내 젖이 퉁퉁 불은 뚱뚱한 양의 젖을 짜서 요셉에게 건네주니, 요셉은 그것을 마리아에게 준다.
"하느님께서 두 분 모두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마리아가 말한다.
"당신은 당신 사랑 때문에, 또 당신은 당신의 친절 때문에.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멀리서 오십니까?"
"나자렛에서 옵니다" 하고 요셉이 대답한다.
"그래 어디로 가시오?"
"베들레헴에요."
"저런 상태에 있는 여자에게는 먼 여행이군요. 당신의 아내요?"
"그렇소, 내 아내요."
"어디 갈 데 가 있소?"
"아니요."
"거 난처하게 됐소. 베들레헴에는 거기서 등록을 하거나 다른 데로 가서 등록을 하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이 꽉 들어찼어요. 당신들이 숙소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곳을 아시오?"
"잘은 모르오."
"그렇다면‥‥ 여자를 위해(그러면서 마리아를 가리킨다)‥‥ 가르쳐 드리지요. 여관을 찾으시오. 여관은 만원일 거요. 하지만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 여관을 일러주는 거요. 여관은 광장에 있는데, 그것이 제일 큰 광장이지요. 제일 큰 거리에서 떠나 가면 길을 잘못들 수가 없소. 여관 앞에 샘이 하나 있고, 여관은 크고 낮고 현관이 달려 있지요, 여관은 꽉 찼을 거요. 여관과 여관 옆집에서 방을 구하지 못하거든 여관 뒤로 해서 들판 쪽으로 가시오. 산에는 여관에 자리가 없을 때 예루살렘으로 가는 상인들이 가끔 그들의 짐승을 두는데 쓰이는 마구간들이 있소. 산에 있는 마구간들이요, 알겠소? 습하고 춥고 문도 없소. 그렇지만 여자가‥‥ 길에 남아 있을 수는 없으니 그래도 의지할 곳이 될 것이오. 어쩌면 당신들이 잠자리로 쓰고 나귀에게도 줄 건초가 있는 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같이 계시기를 바라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기쁨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마리아가 대답한다. 요셉도 "평화가 당신과 같이 있기를" 하고 말한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난다. 가파른 언덕을 넘자 아주 넓고 낮은 땅이 나타난다. 그 움푹 들어간 곳에는 집들이 줄지어서 빙둘러싸고 있다. 이것이 베들레헴이다.
"마리아, 다윗의 고장에 다 왔소. 이제는 당신이 쉬게 되었소. 대단히 피곤해 보이는구려‥‥."
"아니예요, 저는 때가 된 것 같아요‥‥ 정말‥‥" 마리아는 요셉의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정말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이고! 어떻게 하지요?"
"걱정 마세요. 요셉. 당황하지 마세요. 제가 얼마나 침착한지 보세요."
"하지만 대단히 아플텐데?"
"아! 아니요. 저는 기쁨이 넘쳐요. 어떻게나 강하고 아름답고 억제할 수 없는 그런 기쁨인지, 제 심장이 아주 세게 뛰며 '아기가 태어나요! 아기가 태어나요!' 말할 지경이에요. 심장이 뛸 때마다 그렇게 말을 해요. 그것은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서 '엄마, 하느님의 입맞춤을 엄마에게 주려고 내가 왔어요' 하고 말하는 내 아들이에요. 아아! 얼마나 기뻐요, 요셉!"
그러나 요셉은 기쁘지 않다. 그는 급히 의지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이 문 저 문을 두드리며 의지할 곳을 청한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다. 모두 사람이 들어 있다. 그들은 여관에 도착한다. 여관은 안마당 둘레로 있는 회랑 밑에까지 야숙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요셉은 나귀를 탄 마리아를 안마당에 남겨두고 다른 집들을 찾아보려고 나간다. 그랬다가 낙담해서 돌아온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겨울의 이른 황혼이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요셉은 여관 주인에게 애원하고, 손님들에게 애원한다. 그들은 건강한 남자들이다. 이쪽은 만삭이 된 여자이다. 동정을 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소용없다. 한 부유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있는데, 요셉을 눈에 띄게 멸시하는 시선으로바라보고, 마리아가 가까이 가자 문둥병 환자라도 가까이 간 듯이 옆으로 비낀다. 요셉이 그를 바라보는데, 분개하여 얼굴이 벌개진다. 마리아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요셉의 손목에 손을 얹고 말한다. "고집부리지 마세요. 갑시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거예요"
그들은 나가서, 여관의 담을 끼고 간다. 그들은 여관과 초라한 집들 사이에 나 있는 골목길로 해서 돌아간다. 여관을 끼고 돌며 찾는다. 매우 낮고 축축해서 마구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굴이나 지하창고 같은 것들이 있다. 그중 좋아 보이는 것들은 벌써 사람들이 들어 있다. 요셉은 막막하다.
"여보! 갈릴래아 사람!" 하고 뒤에서 늙은 사람이 소리친다. "그 안쪽, 그 무너진 더미 밑에 굴이 하나 있소. 어쩌면 아직 사람이 들어 있지 않은 지도 모르겠소."
그들은 그 "굴"로 가까이 간다. 무너진 건물의 더미 가운데 은신처가하나 있고, 그 나머지로는 굴이 하나 있는데, 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에 뚫린 구멍이다. 옛날에 있었던 어떤 건축물의 기초 같은데, 거기에 네모지게 잘 다듬지도 않은 나무 줄기로 버티어 놓은 자재들이 지붕노릇을 한다.
햇빛이 얼마 없기 때문에 좀 더 잘 보기 위하여 요셉은 부싯깃과 부싯돌을 꺼내서,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맨 배낭에서 꺼낸 작은 등에 불을 켠다. 그는 안으로 들어간다. 소의 울음소리가 그를 맞이한다. "마리아, 와요. 굴이 비어 있소. 소 한 마리밖에 없소." 요셉은 미소짓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소!‥‥"
마리아는 나귀에서 내려 들어간다.
요셉은 기둥 구실을 하는 나무줄기 중의 하나에 박혀 있는 못에 작은 등을 걸어 놓았다. 거미줄이 뒤덮인 천장과, 흙을 다져서 만들었지만 구멍이 나 있는 벽과 돌맹이, 쓰레기, 짐승들의 배설물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고 짚이 덮여 있는 바닥이 보인다. 저 안쪽에서는 소 한 마리가 돌아서며 입에는 건초가 매달려 있는 채 그 조용한 커다란 눈으로 바라본다. 투박한 걸상이 하나 있고, 한구석에는 틈이 있는 곁에 돌 두 개가 있다. 이 가장 구석진 곳이 까매진 것으로 보아 그곳이 불을 피우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소에게 가까이 간다. 마리아는 춥다. 그래서 따뜻한 기운을 느끼기 위하여 소의 목에 두 손을 얹는다. 소는 알아듣는 것 같다. 요셉이 꼴시렁에서 짚을 많이 꺼내다가 마리아의 침대를 만들어 주려고 소를 저쪽으로 밀 때에도 역시 알아듣는 것 같다. 꼴시렁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소가 먹는 곳과 그 위에 있는 건초를저장해 두는 일종의 선반이다. 이 선반을 요셉이 꺼내는 것이다. 소는 그렇게 하게 내버려둔다. 요셉은 또 나귀에게도 자리를 마련해 주니, 피곤하고 배가 고픈 나귀는 즉시 먹기 시작한다. 요셉은 엎어져 있는 엉망으로 찌그러진 양동이도 하나 발견한다. 밖에 개천이 있기 때문에, 요셉은 밖으로 나가서 나귀에게 먹일 물을 떠 가지고 돌아온다. 그런 다음 한구석에 놓여 있는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다발을 집어서 바닥을 쓸려고 해본다. 그리고는 건초를 깔고, 가장 부숭부숭하고 가장 아늑한 모퉁이 소 곁에 건초로 침대를 만든다.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건초가 축축한 것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쉰다. 그는 불을 피운다, 그리고 성브루노회 수도자와 같은 인내로 건초를 한 줌씩 잡고서 불 곁에서 말린다.
마리아는 피로하여 등이 없는 걸상에 앉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이제 다 되었다. 마리아는 폭신한 건초 위에 그럭저럭 자리잡고 나무줄기에 어깨를 기댄다. 요셉은 텐트 역할을 하는 그의 겉옷을 출입구로 쓰이는 구멍에 펴는 것으로 실내장식을‥‥마친다. 매우 불완전한 은신처이다. 그런 다음 빵과 치즈를 동정녀에게 주고, 수통에서 마실 물도 준다. 그런 다음 "이제는 자도록 하오" 하고 말한다. "나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깨어 있겠소. 다행히 나무가 있소. 불이 오래 가고 잘 타기를 바랍니다. 등잔의 기름을 절약할 수 있겠소."
마리아는 순종하여 눕는다. 요셉은 곧 마리아의 겉옷과 처음에 발을 덮었던 담요로 덮어준다.
"그렇지만 당신은‥‥추우실 텐데요."
"아니오, 마리아. 나는 불 곁에 있소. 좀 쉬도록 해요. 내일은 좀 더나을거요."
마리아는 사양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요셉은 그가 있는 구석에 틀어박혀 곁에 잔가지들을 놓고 걸상에 앉아 있다. 잔가지가 별로 없다.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나무 줄기와 잠자리로 만든 짚에 쭈그리고 앉은 소의 몸으로 반쯤 가려진 문 쪽으로 어깨를 돌리고 오른편에 있다. 요셉은 왼쪽에 문 쪽을 향하여 돌아앉아 있다. 따라서 얼굴은 불을 향하고 어깨는 마리아 쪽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앉아 있다. 요셉은 마리아를 가끔 보기 위하여 얼굴을 돌리는데, 마리아가 자는 것처럼 조용한 것을 본다. 그는 나뭇가지들을 조금씩 써서 하나씩 불에 던져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얼마 안되는 그 나무를 오래 가게 한다. 등잔에는 기름이 다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흔들리는 불의 미광 밖에는 없어서 희미한 빛 속에 소와 요셉의 얼굴과 손의 흰빛만이 부각된다. 그 나머지 모든 것은 희미한 어둠 속에 섞여 버리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환상 자체가 스스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겸손과 순결의 교훈을 얻어내는 것은 너희들이 할 일이다. 쉬어라. 내가 예수를 기다리면서 깨어 있은 것과 같이 너도 깨어 있으면서 쉬어라. 예수가 너에게 그의 평화를 갖다 줄 것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7. 우리 주 예수의 탄생
나는 아직도 마리아와 요셉이 짐승들의 처지를 같이하며 의지할 곳을 얻은 그 초라한 돌 투성이 피난소의 내부를 보고 있다.
작은 모닥불도 졸고 있고, 불을 살피는 사람도 졸고 있다. 마리아는 그의 자리에서 머리를 쳐들고 바라본다. 마리아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머리를 가슴에 파묻고 있는 요셉을 보고, 깨어 있겠다는 그의 착한 뜻이 피로에 꺾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미소짓는다, 환한 미소이다. 마리아는 장미꽃에 앉는 나비가 내는 소리 보다도 더 조용하게 앉았다가 무릎을 꿇는다. 마리아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기도를 드린다. 팔을 거의 십자 모양으로,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앞으로 내밀고 기도하는데, 그 힘든 자세로 피로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가 한층 더 심각한 기도의 자세로 얼굴을 건초에 대고 엎드린다. 기도가 오래 계속 된다.
요셉이 잠이 깬다. 그는 불이 거의 죽어 가고 외양간이 거의 어둠에 싸여 있음을 본다. 잔가지를 한 줌 던지니 불꽃이 다시 살아난다. 그는 큰 가지를 얹고, 그 다음에는 더 큰 가지들을 얹는다. 이 폐허 사방에 파고 드는 조용한 겨울밤의 추위가 매서울 것이기 때문이다. 가엾은 요셉은 문 -요셉의 겉옷이 막아보려고 하는 그 뚫린 구멍을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꽁꽁 얼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손을 불꽃 가까이 갖다 대고, 샌들을 벗고 발도 불 가까이 갖다 댄다. 몸을 녹이는 것이다. 불이 잘 붙고, 그 불빛이 확실해지자 몸을 돌린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칙칙한 건초 위에 밝은 빛을 그어 놓던 마리아의 베일의 그 흰빛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요셉은 천천히 일어나서 자리로 가까이 간다.
"마리아, 자지 않소?" 하고 묻는다. 그는 세번이나 그 말을 묻는다. 마침내 마리아가 그것을 깨닫고 대답한다.
"기도드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소?"
"없어요."
"좀 자도록 해보오. 적어도 좀 쉬기라도 해요."
"그렇게 해보겠어요. 그렇지만 기도를 드리는 것은 피곤하지 않아요."
"잘자요, 마리아."
"잘자요, 요셉."
마리아는 다시 자기의 자세로 돌아간다. 요셉은 더 이상 잠에 지지 않으려고 불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기도한다. 불에 나무를 얹을 때나 손을 뗀다. 그리고는 다시 열렬한 기도로 돌아간다. 나무가 탁탁 튀는 소리와 가끔 땅바닥을 두드리는 나귀의 굽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달빛 한 줄기가 천장의 터진 틈으로 들어오는데, 마리아를 찾아오는 은빛 칼날 같다. 달빛은 달이 하늘에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더 깊어지더니 마침내 마리아에게 이른다. 이제는 달빛이 기도드리는 마리아의 머리에 와 있다. 달빛은 마리아를 빛나는 흰빛깔의 후광으로 둘러 싼다.
마리아는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머리를 들고 다시 무릎을 꿇는다. 아아! 이 순간엔 정말 아름답다! 마리아가 머리를 드는데, 흰 달빛으로 빛나는 것 같고, 인간의 것이 아닌 미소로 변모하였다. 그 순간에 마리아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무슨 소리를 듣는것일가?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다만 마리아 주위에 빛이 커지고, 커지고, 또 커진다는 것밖에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빛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고 마리아의 둘레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물건들에서 발산하는 것 같고, 특히 마리아에게서 발산하는 것 같다.
짙은 하늘빛인 마리아의 옷이 지금은 물망초와 같은 부드러운 하늘빛을 띠었고, 손과 얼굴은 거대한 밝은 청옥의 불 아래 있는 것처럼 하늘빛이 된 것 같다. 이 빛깔을 보니, 비록 더 엷기는 하지만 거룩한 천국에 대한 환시에서 봤던 빛깔이 생각나고또 동방 박사들이 오는 것을 본 환시의 빛깔도 생각난다. 그 빛깔은 특히 물건들 위로 점점 더 퍼져서 그것들을 감싸고 깨끗하게 하고 찬란하게 해 준다.
마리아의 몸에서 빛이 점점 더 발산하여 달빛을 흡수한다. 그 빛이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마리아가 빛을 맡아 가지고 있는 여자이고, 세상에 그 빛을 주게 될 여자이다. 세상에 주어지려는 찬란하고, 저항할 수 없고, 더불어 헤아릴 수 없으며, 영원하고 숭고한 이 빛이 새벽과 더불어, 새벽을 알리는 지저귐과 더불어, 깨어나는 새벽빛과 더불어, 점점 더 커지는 빛나는 원자들의 합창과 더불어, 거대한 향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올라오고 또 올라오는 밀물처럼, 급류같이 내려와서 베일 모양으로 펼쳐지는 밀물처럼 퍼진다‥‥.
갈라진 틈과 거미줄과 절묘하게 균형잡힌 것같이 보이는 불쑥 나온 파편투성이이며, 꺼멓고, 그을은, 혐오감을 일으키는 천장이 왕이 사는 방과 같이 보인다. 돌 하나하나가 은덩어리 같고, 틈 하나하나가 유백색으로 빛나며, 거미줄 하나하나가 은과 금강석으로 짠천개(天蓋)와 같다. 두 돌덩어리 사이에서 동면하는 큰 도마뱀은 어떤 여왕이 거기에 잊어버린 벽옥(碧玉) 목걸이와 같고, 동면하는 한 무리의 박쥐는 귀중한 풀마노(瑪瑙)와 같은 빛을 풍긴다. 제일 높은 구유에서 늘어져 있는 건초는 이제는 풀이 아니고, 물결치는 머리채처럼 우아하게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는 순은실, 정말 순은실이다.
투박한 나무로 만든 아래 구유는 광을 낸 은덩어리가 되었다. 벽들은 수단으로 덮인듯하고 비단의 흰바탕이 도드라지게 수놓은 진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땅바닥은‥‥땅바닥이 이젠 어떻게 되었는지?흰 빛으로 비추어진 수정이다. 불쑥 내민 곳들은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땅위에 던져 놓은 빛나는 장미꽃들과 같다. 그리고 구멍들은 향기와 좋은 냄새를 풍기는 귀중한 잔들과 같다.
빛은 점점 더 환해진다. 눈부시어 눈으로 그 빛을 견딜 수가 없다. 그 빛속으로, 마치 백열한 빛의 베일에 빨려 들어가듯이 동정녀가 사라진다‥‥그리고 그 빛에서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렇다. 내 눈이 빛을 견딜 수있게 되었을 때, 나는 마리아가 갓난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을 본다. 장미꽃 봉오리 만한 손과 장미꽃 속에라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작은 발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분홍빛의 토실토실한 작은 아기, 작은 나무딸기같이 빨간 입을 벌리고, 장미빛 입천장을 맞치는 작은 혀를 보이면서 꼭 금방 난 어린 양의 목소리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는 아기.
어떻게나 엷은 금발인지 머리카락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작은 머리, 동그란 작은 머리를 흔드는 아기. 어머니는 그 작은 머리를 한손바닥으로 받쳐 들고,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아기에게 경배하고, 거기에 입맞춤을 하려고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순결한 머리에 입맞추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뛰고 또 뛰는 작은 심장이 있는 가슴 한가운데에 입맞춘다‥‥나중에 상처를 입게 될 그곳에, 어머니는 티없는 이의 입맞춤으로 그 상처를 미리 처매준다.
환한 불빛 때문에 잠이 깬 소는 요란스러운 굽소리를 내며 일어나서 운다. 나귀도 머리를 들고 운다. 그놈들은 빛 때문에 잠이 깼다. 그러나 나는 그놈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또 모든 동물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창조주께 인사를 드리고자 하였다고 믿고 싶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초연할 정도로 열심히 마치 탈혼상태에서처럼 기도하고 있던 요셉도 몸을 흔든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이상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들고 돌아선다. 서 있는 소에 가려 마리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를 부른다. "요셉, 이리 오세요."
요셉은 달려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흠숭하는 마음으로 꼼짝 못하게 된것같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조른다. "오세요, 요셉." 마리아는 왼손으로 건초를 짚고 오른 손으로는 아기를 붙잡고 가슴에 꼭 껴안으면서, 다가오려는 마음과 불경스러움을 걱정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는 요셉 쪽으로 간다.
잠자리 맡에서 두 부부가 만나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쳐다본다.
"오세요. 예수를 아버지께 바칩시다." 하고 마리아가 말한다.
요셉이 무릎을 꿇는 동안, 마리아는 천장을 받치고 있는 두 들보 사이에 서서 두팔로 아기를 쳐들고 말한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 이 말씀은 아기를 대신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제가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아기와 더불어 저 마리아와 제 남편 요셉도 여기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종들이 여기 있습니다. 어느 때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당신의 뜻이 저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마리아는 몸을 숙이고 말한다. "요셉, 받으세요." 그러면서 아기를 준다.
"나! 나에게! 아! 안되오! 나는 자격이 없소!" 요셉은 하느님을 만져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하여 몹시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집한다. "당신은 넉넉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당신보다 더 자격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을 택하셨어요. 요셉, 아기를 받으세요. 그리고 제가 배내옷을 찾는 동안 안고 계셔요."
요셉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팔을 내밀어 작은 아기 몸을 안는다. 아기는 추워서 운다. 요셉이 아기를 안았을 때의 경외심으로 아기를 멀리떨어져 있게 하려는 생각은 오래지 않았다. 그는 아기를 가슴에 껴안고 흐느끼면서 말한다. "오! 주! 내 하느님!" 그리고 그 작은 발에 입맞추려고 얼굴을 숙이다가 발이 꽁꽁 얼어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러자 땅바닥에 앉아 아기를 품에 꼭 껴안는다. 그리고 그의 갈색 옷과 두 손으로 아기를 가려 주고 따뜻하게 해 주고 밤바람을 막아 주려고 애쓴다. 불 옆으로 가고 싶었지만, 거기에는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있다. 그가 있는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낫다. 바람을 막아 주고 약간의 열을 그들에게 줄 두 짐승사이로 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보는 것 같다. 그는 소와 나귀 사이로 가서 어깨를 문쪽으로 돌리고 갓난 아기 위로몸을 숙여 그의 가슴으로 오목한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의 안쪽 벽은 귀가 긴 회색 머리와 김을 내뿜는 콧구멍과 축축한 순한 눈을 가진 커다란 흰 입이다.
마리아는 궤를 열고 속옷과 기저귀를 꺼냈다. 마리아는 그것들을 따뜻하게 하려고 불 옆으로 갔다. 이제는 요셉에게로 가서 따뜻해진 속옷을 아기에게 입히고 나서 작은 머리를 그의 베일로 감싸준다. "이제는 아기는 어디다 누일까요?" 하고 말한다.
요셉은 휘 둘러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말한다. "기다려요. 두 짐승들과 꼴을 좀 더 저쪽으로 밉시다. 더 윗쪽에 있는 먹이통에서 건초를 끌어내려 이 안에 넣읍시다. 이 구유의 전이 바람을 막아 줄 것이고, 건초는 베개가 될 것이고, 소가 입김으로 아기를 좀 따뜻하게 해 줄거요. 소가 나아요. 소는 참을성이 더 많고 조용하니까." 그리고 요셉은 일을 시작한다. 그동안 마리아는 아기를 가슴에 꼭 껴안고 흔들면서 그 작은 머리를 따뜻하게 해 주려고 뺨을 갖다 댄다.
요셉은 불꽃을 활활 일게 하려고 나무를 아끼지 않고 불을 더 잘타게 한다. 건초를 불에 쬐어서 차차 말리고, 다시 차지는 것을 막으려고 가슴에 안는다. 그런 다음 아기의 요를 만들 만큼 건초를 넉넉히 모았을 때 구유로 가서 그것을 정리하여 요람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 다 했소. 이제는 아기가 건초에 찔리지 않게, 그리고 아기를 덮어 주게 담요가 한장 있어야겠는데‥‥"
"제 겉옷을 갖다 쓰세요" 하고 마리아가 말한다.
"당신이 추울텐데."
"오! 그건 괜찮아요. 담요는 너무까칠까칠해요. 겉옷이 부드럽고 따뜻해요. 저는 조금도 춥지 않아요. 그렇지만 아기가 이제는 고통을 당하지 말아야 해요."
요셉은 폭신한 짙은 파란색 모직으로 지은 넓은 겉옷을 집어 두겹으로 해서 건초 위에 깔았는데, 겉옷의 한 자락이 구유 밖으로 쏠려 있다. 구세주의 첫번째 침대가 준비되었다.
어머니는 물결치는 것 같은 걸음걸이로 아기를 안고 가서 내려놓고 겉옷 자락으로 덮어 주고는, 겨우 마리아의 얇은 베일로 건초에 찔리지 않게 되어 건초에 파묻힌 맨 머리 둘레를 겉옷 자락으로 싸준다. 드러나 있는 것은 주먹 만한 작은 얼굴뿐이다. 그리고 두사람은 구유 쪽으로 몸을 숙이고 행복해하며 아기가 처음 잠자는 것을 들여다본다. 따뜻한 배내옷과 건초가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였고 온순한 예수를 잠재웠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 Uomo-Dio)
48. "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인의 죄를 속죄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예수가 그의 평화를 네게 갖다주러 올 것이라고 내가 네게 약속했었다. 그런데 성탄날 내가 아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네 안에 있던 그 평화가 기억나느냐? 그 때는 네 평화의 때였다. 지금은 네 고뇌의 때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도.. 고통 속에서 우리와 이웃을 위한 평화와 일체의 은총을 얻는다는 것을 알지않느냐? 사람인 예수는 수난의 무서운 고통을 겪고 나서 다시 하느님인 예수가 되었다. 예수는 다시 평화가 되었다. 그가 떠나왔던 하늘, 세상에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의 평화를 널리 베푸는 하늘에서 다시 평화가 되었다. 그러나 수난의 시간에는 세상의 평화인 그가 이 평화를 빼앗겼었다. 만일 그가 평화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고통을 당해야하였다. 완전한 고통을 당해야 하였다.
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인의 죄를 대신 속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여인의 구속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동정을 서원함으로써, 일체의 인간적인 결합을 사양함으로써, 일체의 육체적 만족을 물리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얻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하와의 죄는 가지가 넷 있는 나무와 같은 것이었다. 교오, 탐욕, 탐도, 음란이라는 네 가지. 그런데 나무를 뿌리까지 메마르게 하기 전에 이 네 개의 가지를 잘라야 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나를 낮추면서 나는 교오(교만과 오만)를 이겼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낮추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의 내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은 다 겸손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제2위 성자)도 겸손을 가지고 계셨다. 여자인 나도 겸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내가 도무지 저항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참아견디어야 한 그모든 모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느냐?
의인이었던 요셉까지도 마음 속으로 나를 비난했었다. 의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내 임신을 비방하여 죄를 지었고, 그들의 말의 소문이 가혹한 파도처럼 달려와서 내 여인으로서의 명예를 부숴뜨렸다. 이것이 예수와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내 일생이 내게 마련해 준 수많은 모욕 중의 처음 것들이었다. 가난의 굴욕, 피난자로서의 굴욕,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이 된 예수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내 행동을 마음이 약한 탓이라고 공격하던 친척들과 친구들의 비난으로 인한 굴욕, 예수의 전도 생활 3년 동안의 모욕, 골고타의 그 시간에 받은 가혹한 모욕, 내 아들을 장사지내기 위한 자리와 향료를 살 만한 돈이 없음을 인정하기까지에 이르는 창피 따위 말이다.
나는 미리 내 아들을 포기함으로써 첫 조상들의 탐욕을 이겼다. 어머니는 강요에 의하지 않고는 절대로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만일 자식이 조국이나 아내의 사랑으로나 하느님 자신에 의하여 그의 마음에 요구되면 어머니는 이별에 저항한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자라는데, 그의 인격을 우리의 인격과 연결시켜 주는 끈을 절대로 완전히 끊지는 못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배꼽의 줄이 끊어진 뒤에도 어머니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신경, 육체의 신경보다도 더 살아있고 더 민감하며, 아들의 마음에 연결된 정신적인 신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나 어떤 인간의 사랑이나 조국에 대한 의무 때문에 아들이 어머니를 떠나가게 되면 그 줄이 고통을 줄 정도로 팽팽히 늘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어떤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면 그 줄이 끊어지면서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런데, 나는 내 아들을 가진 그 순간부터 그를 포기하였다. 나는 내 아들을 하느님께 바쳤고, 너희들에게 주었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열매를 훔친 하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내 태에서 나온 열매를 버렸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알게 하신 것만을 알기를 수락하고, 내가 들은 것 이외에는 나 자신에게도 하느님께도 묻지 않음으로써 지식에 대한 탐도와 향락에 대한 탐도를 이겼다. 나는 탐구하지 않고 믿었다.
나는 향락의 탐도를 이겼다. 육체의 감각적인 만족을 일절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 육체를 발로 밟았다. 사탄의 도구인 육체를 사탄과 더불어 내 발뒤꿈치 밑에 넣어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내 목적인 하늘! 내 유일한 갈망이신 하느님이 계신 곳, 이 갈망은 탐도가 아니고, 우리가 당신만을 갈망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는 필요사이다.
나는 게걸스럽게까지 되는 탐도인 음란을 이겼다. 과연 억제되지 않은 악습은 더 큰 악습으로 이끌어 간다. 그렇지 않아도 비난할 만한 하와의 탐도가 그를 음란으로 이끌어 갔다. 자기 혼자서 만족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하와는 그의 죄를 정교함에까지 이끌어 갔다. 하와는 음란을 알았고, 그것을 남자 동무에게 가르쳤다. 나는 경계표(境界標)를 뒤엎어서, 내려 보내는 대신에 항상 올려 보냈다. 타락시키기는 고사하고 나는 항상 정상을 향하여 끌어당겨서, 성실한 사람이던 내 짝을 천사를 만들었다.
하느님을 차지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그분의 무한한 보물을 차지하기가 무섭게, 나는 서둘러 나를 버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아기를 위하여, 아기에 의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육체뿐 아니라 애정과 생각까지도 자제하는 사람이야말로 순결한 사람이다. 나는 육체와 마음과 정신이 추잡한 여자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하여 순결해야 하였다. 나는 이 자제를 버리지 않아, 하늘에서는 오직 하느님의 것이고, 세상에서는 오직 내 것이던 내 아들에 대해서까지도 "이애는 내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원한다"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와 때문에 잃어진 평화를 여자에게 돌려 주는 데에는 이것도아직 충분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이 평화를 십자가 아래에서 얻었다. 죽어가는 내 아들의 외치는 소리에 오장육부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나는 여성성을 모두 잃었다. 나는 이미 육체가 아니고 천사였다. 정배로서 성령과 결합한 동정녀 마리아는 그 순간에 죽었다. 남아 있는 것은 은총의 어머니, 그의 고통으로 너희들을 은총에 낳아 주고 너희들에게 은총을 준 은총의 어머니였다. 성탄날 밤 내가 다시 여자로 확립한 암컷이 십자가 아래서 하늘의 인간이 되는 방법을 얻었다.
나는 만족을, 거룩한 만족까지도 일절 거부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하와로 인하여 동물의 암컷보다 나을 것이 없는 계집들의 처지가 되었던 너희들을 나는 너희들이 원한다면 하느님의 성녀들로 만들었다.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정상에 이르렀다. 요셉과 같이 너희들도 하늘로 인도하였다. 골고타에 있는 바위가 내게는 올리브나무 동산이다. 거기서 나는 다시 거룩하게 된 여자의 영혼과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가짐으로 해서 찬미를 받은 내 육체를 하늘에까지 올려가기 위하여 비약하였다.그리고 내 안에서 하와의 마지막 흔적까지, 독이 든 가지 넷이 달린 그 나무의 마지막 뿌리까지, 인류를 타락으로 끌고 간 관능에 깊이 박힌 뿌리에 이르기까지 없애버렸다. 육체의 감각에 깊이 박힌 이 뿌리는 세상 마칠 때까지, 또 마지막 여인에 이르기까지 너희들의 마음 속을 괴롭힐 것이다. 내가 사랑의 빛남 속에서 반짝이는 그곳에서 너희들을 부르며, 너희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구제책을 가르쳐 준다. 그 구제책은 내 주님의 은총과 내 아들의 피이다.
그리고 내 대변자인 너는 네가 면하지 못할 십자가의 못박음 가운데에서 힘을 가지기 위하여 예수의 이 첫새벽의 빛 속에서 네 영혼을 쉬게 하여라. 우리는 네가 여기 오기를, 고통의 길로 해서 올라오는 이곳에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고, 세상에 은총을 얻어 주기 위하여 더 많은 마음 고통을 겪을 수록 그만큼 더 높이 올라오는 이곳에 네가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평안히 가거라, 나는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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